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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리투아니아 팔루츠카스 총리 사임 – 정치적 스캔들과의 헤어질 결심은 언제쯤
리투아니아 서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EU연구소 발트연구센터 연구교수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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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31일, 리투아니아 긴타우타스 팔루츠카스 총리가 취임한 지 일 년도 안 되어 여론의 압박과 연이은 언론의 집중 탐사보도 등으로 인해 끝내 사임했다. 리투아니아 최대여당인 사회민주당 소속인 팔루츠카스는 2024년 10월 총선 이후 3개 정당의 연합정부 형성을 주도하며 12월 총리직에 올랐다. 그러나 올해 5월부터 불법적이고 부적절한 기업 유착 관계가 수면으로 드러나면서 특종기사가 연신 터졌고 부패방지관련 기관들이 급박하게 행정적 조사에 착수하면서 리투아니아의 19대 정부는 출범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붕괴되며 리투아니아를 정치적 불확실성에 빠뜨리고 말았다.
팔루츠카스는 사임의사를 표명하면서 “현재 직책에서 물러나지만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지키기에 힘쓰고 추측과 사실을 확실히 구분해 줄 조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번 팔루츠카스의 퇴임 소식은 단순한 정치적 개인의 신변 변화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유럽연합 가입 이후 30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줄어들 줄 모르는 리투아니아 국가 정치 지도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언젠가는 곪아터질 것 같던 정치와 기업 간 이해 상충, EU 기금의 오용의 논란을 더 부채질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여 국내외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다.
팔루츠카스 전 총리의 상황을 곤두박질하게 만든 것은 이른바 ‘쥐소송’ 스캔들이다. 해당 사건은 2012년 전 총리가 빌뉴스 시정부의 국장으로 재직 중이던 시절 쥐퇴치 장비 입찰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하여 특정 기업에 특혜를 제공하고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와 관련되어 있다.
리투아니아 대법원은 팔루츠카스에게 2년의 집행유예와 함께 빌뉴스 시정부에 약 1만 6,500유로의 손해배상금을 납부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판결에 따르면 팔루츠카스는 판결확정일로부터 1년 이내에 벌금을 완납해야 했으나 팔루츠카스측은 곧 법원에 4,340유로를 선납하고 잔여금액은 2015년 말까지 매달 867유로씩 분할 상환하겠다는 내용의 연기신청서를 제출했으며 2013년 6월 법원도 팔루츠키스가 벌금납부에 소홀히 하거나 지정한 기일 내에 완납하지 않으면 시차원에서 강제 징수 절차에 착수할 것이라는 조건을 걸어 연기 신청을 수용했다. 그러나 2025년 봄부터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언론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팔루츠카스는 상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어떤 강제 징수나 추징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빌뉴스 시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팔루츠카스는 2014년 5월부터 겨우 1만 1,580유로만 손해배상금을 납부하여 약 4,900유로의 미납금이 남아 있었다. 미납금은 언론에서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한 무렵인 2025년 7월 8일이 되어서야 완납했다.
가족들이 연류된 거대 스캔들 사건의 중심에 선 팔루츠카스 전 총리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리투아니아 금융범죄수사관들이 팔루츠카스 총리의 친척이 연루된 업체 단코라(Dankora)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다. 해당업체는 유럽연합 보조금을 받아 역시 팔루츠카스가 일부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업체 ‘가르니스(Garnis)’로부터 배터리 시스템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가르니스 회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총리의 동생을 포함해 5명이 연루되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금융범죄수사부는 국영개발은행 ILTE가 6개월 전 총리가 일부 소유한 회사로 20만 유로의 대출을 승인한 과정에 대한 조사도 착수했다.
이 사건은 리투아니아 조직범죄, 부패 관련 사실을 추적보도하는 시에나(Siena) 신문과 독립방송 라이스베스(Laisves) TV의 합동 조사 보고서 발표 이후 경위가 급박하게 확산되었다. 리투아니아 야당들은 팔루츠카스 전 총리가 의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기업 주주총회에 참석하여 회사의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정황상 팔루츠카스가 의회의원이라는 헌법적 지위에 부합하지 않는 사적 사업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했음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거법에 따르면 리투아니아에서는 공직 선거에 출마하려면 벌금납부를 사전에 이행해야 하므로 2024년 의회 선거에 출마할 자격이 있었는가에 대한 논의도 뜨겁다.
초반에는 팔루츠카스를 정치적 파장으로부터 보호해 주고자 했던 나우세다 대통령도 수색이 본격화되고 이번 스캔들에 가족들이 깊게 연루된 것이 드러나자 입장을 바꾸었다. 조사 결과 가르니스와 단코라 뿐만 아니라 국가 및 유럽연합 기금을 수혜하는 가족 경영 기업 네트워크 전반에서 불투명한 금융 거래 패턴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신임도에도 큰 타격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당 소속 의원 다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된 총리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뒤로 한 채 총리에 대한 강력한 지지 입장을 고수해 왔다. 사회민주당은 이번 사건은 “인간적인 실수”일 뿐이라며, 팔루츠카스에 대한 신뢰에는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리투아니아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을 넘어 흔들릴 수 있는 유럽연합에 대한 신뢰
이런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유럽의 주요 분석가들은 리투아니아의 시스템적 취약점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향후 보조금 신청에 대한 감시가 강화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이번 스캔들이 리투아니아 국민들로 하여금 유럽연합 기금이 정치적 착취와 엘리트의 횡포에 취약하다고 인식하여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적인 감정을 증폭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은 개인 정치인의 부패가 국가기관 뿐 아니라 유럽연합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 훼손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 볼 수 있을 법하다.1)
이 스캔들은 리투아니아 민주주의 제도의 회복력을 시험하는 동시에 특히 리투아니아가 유럽 시장 및 투자 네트워크와의 통합을 심화함에 따라 공공 및 EU 기금에 대한 더욱 강력한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함을 여실히 잘 보여준다.
레이저와 핀테크 사업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리투아니아에서 정치 사회적 부패는 여전히 시급한 사회 문제로 남아있다. 의료 기관, 의회, 법원,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정당이 가장 부패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족벌주의, 정당 구성원에 대한 편애, 특정 집단에 유리한 법률 제정, 그리고 권력 남용이 가장 심각한 부패유형으로 지적되었다. 권력 남용에 대한 인식은 특히 10% 증가했다.2)
2022년 유럽평의회 부패방지기구(GRECO)는 대통령, 장관, 총리, 정치 고문, 리투아니아 경찰및 국경수비대원을 포함한 최고 행정 기능을 맡은 사람들과 관련하여 리투아니아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촉구했다. 부패방지기구는 평가보고서에서 리투아니아가 부패 방지를 위한 포괄적인 규범적, 제도적 틀을 갖추고 있으며 새로운 부패방지법을 통해 더욱 개선될 것이라 밝혔으나 관련 규정의 시행, 부패 방지에 필요한 전반적인 조율방식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고위 정치인과 법 집행관 모두에게 적용되는 현행 윤리 규정이 지나치게 일반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주 강하고 종합적인 부패방지법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법집행은 아주 미비한 것으로 평가된다.3)
전쟁보다 장사를 추구하는 리투아니아 정치인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굵직굵직한 정계 유착과 특혜 문제는 단순한 개인적 스캔들 사건을 떠나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가 안보보다 개인적 이익이 우선시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심각한 우려감을 불러일으키며 리투아니아인들은 이에 큰 실망감과 피로감을 내보이고 있다.
2024년 1월 4일 우크라이나의 국가부패방지위원회는 리투아니아의 대기업 비츄나이(Vičiūnai) 그룹을 국제전쟁지원기업 명단에 포함했다고 발표했다. 본 업체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여전히 러시아에 남아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업체는 1991년 설립된 회사로 비치(VIČI)라는 브랜드를 주력으로 게맛살을 위주로 한 생선가공식품, 다양한 냉동·즉석식품들을 수출하는 리투아니아를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주 소베츠크에 자매 기업을 설립하고 현지 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부터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할 것을 약속해 왔으나, 여전히 러시아 현지에 남아서 사업을 이어가며 새 직원도 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베츠크 공장에서 2022년에만 2,487만 2천 유로(약 366억 원)의 순수익을 거두었으며 이는 전년도보다 6.5% 상승한 것이다.
이 업체는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 카우나스의 현 시장인 비스발다스 마티요샤이티스가 주식의 50%를 소유하고 있으며 시장의 아들도 기업 운영진 중 한 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가부패방지위원회는 ‘비츄나이 활동은 러시아 사람들로 하여금 서방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아직도 러시아로부터 등을 돌리지 않고 있다고 착각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2024년 5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정치인 이그나스 베겔레 또한 러시아와 관련된 가족 사업 스캔들로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형 마르티나스 베겔레가 소유하고 부모가 자금을 댄 냉난방 장비업체 빌프라(Vilpra)가 생산한 94만 유로어치의 에어컨을 키르기스스탄에 판매한 것이 문제의 화두가 되었다. 키르기스스탄은 리투아니아의 주요 무역 대상국이 아니었으나 난데 없이 2022년 9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유럽연합의 대키르기스스탄 에어컨 수출에 있어 리투아니아가 단연 선두를 차지했다. 이에 회사가 벨라루스나 러시아로 상품을 수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키르기스스탄을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또 이들 업체는 벨라루스를 통하여 러시아에 자동차를 공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여 리투아니아 관세 범죄청은 2023년 여름 빌프라가 생산한 에어컨의 키르기스스탄 수출을 금지했다. 반면 빌프라 사장은 벨라루스 및 러시아와는 어떤 무역 관계도 맺지 않고 있다고 단언했으나 추가 조사로 키르키기스스탄에 수출된 상품이 벨라루스로 넘어갔다는 정황이 밝혀졌다. 2025년 8월 빌프라는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 위반 혐의로 3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받는 것에 그쳤다.
팔루츠카스 사건은 부패 의혹이 발단이었던 만큼 사회민주당 정당 뿐 아니라 리투아니아 정부 차원에서도 “스캔들에서 벗어난 벗어난 정부”라는 국가적 신뢰 회복과 반부패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하게 내보여주고 있다. 리투아니아 국민들도 그동안의 정치인들의 불·편법적 기업 유착을 타파하고 실질적인 정치 부패 개혁과 투명성 강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이번 총리 경질은 리투아니아의 고질적인 정치 부패 시리즈에 종지부를 찍을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국내외적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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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https://weeklyblitz.net/2025/08/05/lithuanian-prime-minister-resigns-amid-corruption-scandal-involving-eu-funds-and-family-ties/
2) https://stt.lt/en/analytical-anti-corruption-intelligence/map-of-corruption-in-lithuania/7707
3) https://www.coe.int/en/web/portal/-/more-action-needed-by-lithuania-to-curb-high-level-corruption-in-politics-and-law-enforc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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