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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러시아-벨라루스 통합 추진의 정치적 배경과 함의

러시아 / 벨라루스 Rovshan Ibrahimov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2021/11/15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벨라루스 관계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소련의 붕괴와 함께 독립한 국가로, 우크라이나 및 트랜스코카시안 연합(Transcaucasian Federation)과 함께한 1922년 소련 창립,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함께한 1991년 소련 해체 발표라는 두 개의 중대 사건에서 행보를 함께해왔다. 양국은 민족 구성과 언어 면에서도 많은 공통점을 지니며, 인적 교류도 활발하다. 현재 벨라루스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은 총인구의 7.5%에 해당하는 70만 명 수준이며, 반대로 러시아에 거주하는 벨라루스인도 60만 명에 달한다.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양국은 상호 협력을 위한 법적 기반을 다져왔다. 1996년 4월 2일에 그 노력의 첫번째인 ‘벨라루스-러시아 간 공동체 신설 조약(Treaty on the Creation of the Community between Belarus and Russia)’이 조인되었으나, 본 조약의 내용은 국가 간 통합보다는 두개의 개별 국가 간 협력에 방점을 두었다. 이로부터 1년 후 같은 날에는 ‘벨라루스-러시아 간 연맹 조약(Treaty on the Union of Belarus and Russia)’이 조인되었으며, 이 날은 지금까지 ‘벨라루스-러시아 국민 간 통합의 날’이라는 국가 간 공동 휴일로 기념되고 있다. 이후 1998년에는 ‘연맹국가 신설 조약(Treaty on the Creation of the Union State)’이 조인되었고, 동 조약은 2000년 1월 26일자로 발효되었다. 

과거 소련 영토 내에는 주로 러시아가 주도하는 다양한 국가간 협력 및 통합 프로젝트가 존재하며,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사례는 구 소련 가입국간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독립국가연합(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이다. 하지만 CIS는 초국가적 주체로서의 독립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실제 권한이 많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는 구소련 회원국들이 다수 참여한 다음의 기관들을 추가로 만들어냈다.
■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 회원국의 역내 안보를 담당하는 군사조약기구로, 1992년 신설
■ 상하이 협력기구(SCO,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각종 안보 문제를 다루는 기관으로, 2001년 신설
■ 유라시아 경제연합(EAEU, Eurasian Economic Union): 회원국 간 심도 높은 경제 통합을 추진하는 기관으로, 2015년 신설

벨라루스는 위 모든 기관의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며, 이는 러시아와 가장 높은 수준의 협력관계 모델인 연맹국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국가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연맹국이 실제로 창설된다면 공동 대통령과 의회, 화폐를 가지게 되는 등 국가 주권영역의 통합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러시아와의 통합 추진 배경과 현황 
연맹국 창설 구상은 오랫동안 벨라루스를 통치해온 알렉산더 루카셴코(Alexander Lukashenko) 대통령이 1994년에 최초로 제안한 것이다. 1995년에는 러시아어의 공식어 지위 부여 여부, 그리고 러시아와의 경제 통합 추진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으며, 그 결과에 따라 러시아어가 벨라루스와 같은 공식어 지위에 오르고 러시아와의 긴밀한 경제 통합 과정이 시작되었다.

재임 초기 루카셴코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통합을 추진한 주요 이유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첫째, 구소련 체제에서 양국간 경제는 높은 수준으로 통합되어 있었고, 물품 생산 부문에서도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었다. 소련의 그 어떤 회원국도 특정 상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않았으며, 대신 다양한 특화 구조를 바탕으로 각국이 서로 다른 생산과정을 담당했기에 모든 회원국의 참여 없이는 최종생산품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따라서 루카셴코 대통령은 벨라루스의 생산역량을 보존함에 있어 러시아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둘째, 벨라루스는 석유 및 천연가스를 자체적으로 보유하지 못해 주로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한다. 대신 벨라루스는 석유화학산업의 규모가 커 원유 정제를 통한 수출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다. 일례로 2019년 기준 석유 제품 수출량은 1,052만 톤을 기록했다. 따라서 벨라루스의 입장에서는 자국 산업과 농업의 보존, 그리고 국내소비 혹은 국외수출을 위한 석유제품 생산에 있어 러시아에서 원유와 천연가스를 할인된 가격에 구매하는 일이 필수적이고, 정제유를 러시아로 역수출함으로써 얻는 이득도 상당하다.

셋째, 새로운 연맹국의 대통령직에 오르고자 하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정치적 야심도 존재했다.  당시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대통령은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신규 연맹국 대통령직에 도전하기에는 무리가 큰 상황이었다. 하지만 옐친 대통령이 1999년 12월 31일부로 사임하고 후계자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블라디미르 푸틴이 2000년부터 대통령직을 계승하면서 루카셴코 대통령의 꿈이 이루어지기는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2000년 이후에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연맹국 최종 창설에 보이는 열의가 줄어들었으며,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비용을 늘린 직후인 2007년 1월에는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함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 벨라루스의 주권과 독립을 땅에 묻고 싶지는 않다”라는 공개 발언을 통해 중요한 심경의 변화를 나타냈다.

루카셴코 대통령이 통합에 미온적 반응을 보이면서 연맹국 창설안 추진은 지지부진해졌고, 러시아로부터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얻어내야 할 때에만 수면 위로 등장하여 간간이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게다가 2010년에는 양국 간 관계가 더욱 복잡한 국면에 접어들며 통합과정이 완전히 멈춰 섰다.

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벨라루스의 군사적·정치적 충성을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 이러한 러시아의 지원은 한때 연간 20~30억 달러(한화 약 2조 4,000억~3조 5,000억 원) 에 달해 벨라루스 GDP의 5~6%를 차지할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단순한 정치적 충성에만 만족하지 못한 러시아가 경제 원조 규모를 점차 줄여갔다.

이에 따라 벨라루스는 2019년에 연맹국 창설 의제에 복귀하여 그 실현을 위한 행동계획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주제가 다시금 언급된 데에는 2020년 8월 9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벨라루스 대선을 염두에 둔 측면도 존재한다.

부정선거와 정치적 억압 의혹에 따른 서방국의 제재 
상기 대선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여섯 번째로 도전했다. 벨라루스 헌법은 대통령직에 연임 제한을 두지 않으며, 현재까지 실시된 선거 중 유일하게 민주적이었던 경우는 루카셴코가 최초로 당선된 1994년 대선뿐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의 완곡한 표현을 빌리자면, 1994년 이후의 나머지 선거는 민주적 선거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금번 선거에는 이례적으로 야당 후보가 출마했으며, 블로거 출신 세르게이 티하놉스키(Sergei Tikhanovsky), 사업가 출신 블라디미르 세프칼로(Vladimir Tsepkalo), 은행가 출신 빅토르 바바리코(Viktor Babariko)가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중앙선거위원회(Central Election Committee)는 세팔코와 바바리코의 후보등록을 거부했고, 티하놉스키는 구금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티하놉스키의 아내인 스베트라나 티하놉스카야(Svetlana Thkhanovskaya)가 남편 대신 대선에 출마했고, 바바리코와 세팔코의 지지도 얻어냈다.

대선일인 2020년 8월 9일, 중앙선거위원회는 루카셴코가 80.10%를 득표해 10.12%를 얻은 티하놉스카야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음을 발표했다. 그러나 OSCE 보고서에 따르면 투표 및 검표 과정에서 다수의 투표권 훼손과 선거부정 사례가 관찰되었으며, 벨라루스 역사상 전례 없는 대규모의 시위가 발생해 재검표를 요구했다.

하지만 시위 발발에도 불구하고 루카셴코는 2020년 9월 23일에 다시금 대통령직에 취임했으며, 이 취임식은 날짜도 미리 공지되지 않은 채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스베트라나 티하놉스카야는 어쩔 수 없이 나라를 떠나 리투아니아에 정착해 벨라루스의 정당한 대통령으로 인정받았고, 폴란드와 독일 방문시에도 국가원수 방문에 준하는 의전을 받았다.

취임식 이후 EU 및 서방 국가들은 루카셴코와 그의 측근, 그리고 민스크자동차(MAZ, Minsk Automotive Plant), 벨라루스자동차(BelAZ, Belarusian Automotive Plant), 석유제품 무역사인 뉴오일컴퍼니(New Oil Company) 등 8개 대기업에 대한 제재를 시작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칼륨 비료(Potash) 생산기업이자 정부의 주요 수입원인 벨라루스칼리(Belaruskali)를 제재했고, 영국은 벨라루스로부터의 석유제품 수입량을 감축했다. EU가 2021년 첫 4개월간 벨라루스의 내연기관 수출액의 22%, 차체 수출액의 75%, 변속기 기어박스 부품 수출액의 26%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제재의 여파가 기계부품 제조업 등에서 크게 느껴질 것으로 보인다.

2021년 5월 23일 라이언에어(Ryanair) 여객기가 민스크에 강제 착륙한 후 여기에 타고 있던 야당 대표이자 인기 있는 온라인 채널인 넥스타(NEXTA) 편집장인 로만 프로타세비치(Roman Protasevich)가 구속된 사건이 발생하자, EU는 여기에 대응한 제5차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2021년 10월 7일, 유럽 의회는 유럽집행위원회가 ‘벨라루스 정권에 대한 제재 시행에 있어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을 통과시켰다.

각종 제재로 인해 벨라루스 경제가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세계은행은 금년 벨라루스 GDP 성장률이 1.2%에 그치고, 2022년과 2023년에는 각각 2.8%, 2.3%씩 감소할 것으로 내다본다.

결론: 위기에 빠진 루카셴코 대통령의 친러 행보와 양국 통합 추진의 함의
 상기한 제재를 극복하기 위해 벨라루스는 자국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대체 시장을 모색하고 있으며, 일례로 칼륨 비료는 이미 중국 시장에 진출했고, 러시아 시장의 확대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벨라루스에 대한 국제적인 경제 제재와 국가 내부 시위 발생으로 인해 루카셴코 대통령의 입지는 크게 약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루카셴코 대통령은 위기 극복을 위해 다시 한번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2021년 9월 10일에 양국 대통령은 크림반도에서 회담을 가졌으며, 여기에서 양국 간 통합에 관한 28개 추진안에 합의했다. 발표문에 따르면 양국 간에는 거시경제정책과 산업정책의 일원화, 공공 조달과 정부 구매의 공동화, 지불체계의 통합, 정보안보상 협력의 강화와 관세·조세·에너지 분야 조율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이 추진될 예정이다. 이에 더해 2023년 12월 1일까지 양국간 연맹체계 내에서 천연가스 시장을 통합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에 서명할 계획도 존재한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통화체계 단일화 제안도 꺼내 들었지만, 이 문제는 추후에 더욱 자세히 논의하기로 하였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정치적 충성을 대가로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공급하는 천연가스 가격을 1,000 입방미터당 128.5달러(한화 약 15만 원)로 책정했으며, 이는 여타 유럽국가를 대상으로 받는 가격인 1,500달러(한화 약 180만 원)에 비하면 획기적으로 저렴한 것이다. 또한 2022년 말까지 총 6억 3,000~4,000만 달러(한화 약 7,400억~7,500억 원)에 이르는 차관도 제공될 예정이다.

결론적으로, 루카셴코 대통령은 국내외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러시아의 지지를 얻어내고자 했으며, 이에 따라 이전까지 정체 상태에 있었던 양국간 통합 구상의 추진이 재개되었다. 물론 이 사실만 가지고 단기간 내에 러시아-벨라루스 연맹국이 탄생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러시아는 지금까지 타국과의 관계에서 활용하기 위해 개발해온 다양한 통합 정책들을 실제 현장에서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벨라루스에서 얻은 교훈을 아르메니아와 키르키스스탄, 그리고 그 국제적 지위상 분쟁이 존재하는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대상으로 활용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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