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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미국 내 라티노의 증가: 제국의 수확인가

중남미 일반 박구병 아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2021/12/02

라티노 이주민의 증가와 미국 인구의 변화
2000년, 2010년과 2020년의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내 라티노(Latino/a, 최근의 표기로는 Latinx), 즉 라틴아메리카 출신 주민의 수는 3,530만 명에서 5,047만 명, 6,198만 명으로 늘어 총인구 대비 12.5%에서 16.3%, 18.7%로 꾸준히 상승했다1). 40여 년 전인 1980년 백인 인구는 미국 전체 인구에서 약 80%(아프리카계 11.5%, 라티노 6.4%)를 차지했으나 2000년에 백인 인구 비율은 전체의 69.1%로 떨어진 반면, 히스패닉(Hispanic) 또는 라티노의 비율은 아프리카계의 비율(12.1%)을 약간 상회하는 12.5%에 이르렀다. 그리고 2020년 인구 3억 3,145만 명 중에 백인 인구 비율은 61.6%로 더 떨어져 다른 인종ㆍ종족 집단과 비교해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라티노의 가파른 증가율에 따라 2010년에 미국의 에스파냐어 사용 인구는 브라질, 멕시코 다음의 국가에 해당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멕시코 출신은 2000년 2,064만 명에서 2010년 3,179만 명으로, 2019년에는 3,748만 명으로 늘었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50개 주 가운에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에서 라티노는 전 주민(3,953만 명)의 39.4%(약 1,557만 명)를 차지함으로써 백인(34.7%)을 추월해 최대 종족 집단이 되었다2)

라티노의 증가는 미국 서남부와 중서부의 꾸준한 노동력 수요와 연관되어 있었다. 1970년대 중반 이래 빠르게 늘어난 아메리카 국가 간 이주, 즉 사실상 미국으로의 대규모 이주는 미국의 국제 관계에서 핵심적인 쟁점으로 부상했다. 2005년 제프리 S. 파셀(Jeffrey S. Passel)과 로베르토 수로(Roberto Suro)의 연구3)에 따르면, 미국은 1992년과 1997년 사이에 연평균 113만 9,000명, 1999년과 2000년 사이에 연평균 154만 1,000명, 2002년과 2004년 사이에는 연평균 116만 4,000명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그 중 3분의 1은 멕시코 출신이고 이에 더해 약 4분의 1이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 출신이었다. 요컨대 유입된 라티노는 줄곧 모든 이민자 수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설계와 기획이 만든 국가’: 미국의 이주민 규제와 그에 대한 저항
이런 수치와 비율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역사적 검토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크게 보아 그동안 한편에서는 ‘이민의 나라’ 담론과 개방 효과에 대한 진보적 수용, 다른 한편에서는 안보와 경제적 여건의 악화에 대한 현실적 우려가 맞서면서 이주민 규제는 특정 시기에 거세졌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이 끝난 뒤부터 대공황에 이르기까지 80여 년간 미국의 서남부 국경은 사실상 개방되어 있었다. 애리스티드 R. 졸버그(Aristide R. Zolberg)가 '설계와 기획이 만든 국가(A Nation by Design)'라고 표현했듯이, 미국의 시민권이 1868년 수정헌법 제14조의 통과 이후에도 오랫동안 노골적인 인종적ㆍ종족적 제약을 통해 미국 국민 만들기의 도구로 활용되었지만, 멕시코 출신의 이주민들은 의도적인 배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예컨대 1952년 이민과 국적법(The 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 일명 맥카랜-월터 법(McCarran-Walter Act)은 아프리카계 이주민들의 수를 제한하고자 카리브 해의 옛 영국령 식민지 출신에게 할당량을 부과했다. 그러는 사이 멕시코인들은 ‘뒷문으로, 창문을 통해 무리 지어 몰려들었다.’4)

하지만 1965년 이민법, 일명 하트-셀라 법(Hart-Cellar Act)과 1976년 의회 수정안은 이런 역사적 흐름을 크게 바꿨다. 1965년 법과 1976년 수정안은 결국 ‘불법 체류 외국인’이라는 용어를 사실상 멕시코인들과 동의어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1965년 이민법은 애당초 오랫동안 진행된 미국과 멕시코 사이 노동자 이주 관행을 간과하면서 멕시코의 인접국 혜택을 없애고 2만 명 한도의 일률적 할당제를 부과함으로써 멕시코 출신의 미승인 이주를 양산했다. 한도 조치의 발효로 1976년에 추방된 멕시코인들은 78만 1,000명으로 치솟았는데, 이 수치는 전 세계 다른 국가 출신 밀입국자들의 수를 합친 것보다 약 8배가 많았다.

1970년대 전 세계적 경기 침체와 1980년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국면에서 라티노로 대표되는 ‘외국인들의 침입’에 대한 대중의 반발과 혐오 분위기가 고조되고 1990년대 초까지 미국의 정치적 보수화가 뚜렷해졌다. 아울러 배외주의의 득세 속에서 복지혜택 축소, 소수 집단에 대한 적극적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 철폐, 이중 언어 정책 폐지 등 세 가지 요구가 거세졌다. 1994년 공화당 소속 캘리포니아 주지사 피트 윌슨(Pete Wilson)이 주도한 주민발의안 187호(Proposition 187) 또는 ‘우리 주를 구하라(Save Our State)’ 발의안은 시민권 심사 강화, 밀입국 이주민들의 보건의료ㆍ교육ㆍ사회복지 서비스와 지원금 수혜 차단 등을 요구했다. 1999년 연방지방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렸지만, 주민투표에서 58%의 찬성을 이끌어낸 이 발의안은 라티노 이주민들이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리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또 1993년 9월 텍사스 엘파소市의 ‘봉쇄 작전’과 1994년 10월 샌디에이고에서 시작된 ‘문지기 작전(Operation Gatekeeper)’은 2년 간 장벽, 야간 조명, 경비 인력을 늘려 국경의 통과지점을 봉쇄하면서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대의 무장화를 촉진했다. 

1990년대에 폐지 공세와 소송의 표적이 된 또 다른 정책은 1961년 3월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행정부가 도입한 적극적 우대 조치였다. 캘리포니아에서 그에 대한 반발은 1996년 선거를 앞두고 고용, 계약, 대학 입학 절차에서 인종, 종족, 성별을 고려한 우대 조치를 금지하는 주민발의안 209호로 구체화되었다. 외국인 범법행위자의 추방을 명시한 1996년의 불법 이민 개혁과 이주민의 책임에 관한 법(The Illegal Immigration Reform and Immigrant Responsibility Act) 제정과 1998년 공립학교의 이중 언어 교육 철폐, 영어 전용을 요구한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 227호 역시 유사한 성격을 지녔다5).

다만 공화당 소속의 제임스 센즌브레너(James Sensenbrenner)가 발의해 2005년 12월 연방 하원을 통과한 이민개혁법(H.R.4437), 일명 ‘국경 보호, 테러방지, 불법 이주 통제법’은 몇 가지 결정적인 규제 조항 탓에 라티노 사회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다. 이 법안의 쟁점은 국경 통제뿐 아니라 이미 미국에 밀입국한 수백만 명에 대한 처리(합법화 또는 추방), 그리고 미국 기업들을 위한 초청 노동자(guest workers) 프로그램이었는데, 미국에 입국하거나 체류하는 이주민들에게 도움을 준 이들의 행위는 범죄로 간주될 수 있었다. 이 법안이 시행된다면, 미승인 이주민들에 대한 모든 인도주의적 또는 공공 서비스는 범죄 행위로 기소될 수 있었다. 아울러 이 법은 연방 정부에 700마일(1,130km)에 이르는 국경 장벽 설치를 권고하고 ‘증명 서류 없는 미승인 이주민(undocumented immigrants)’을 막기 위한 경찰과 군의 동원, 더 엄격한 고용 통제의 실시 등을 요구했다. 결국 법안의 징벌적 특성 탓에 격렬한 저항이 벌어졌고 로저 매호니(Roger Mahony) 추기경의 호소 등으로 운동의 저변이 넓어졌다. 2006년 3월 4일 로스앤젤레스에서 100만 명 이상이 모인 최초, 최대 시위를 비롯해 500만 명 이상의 적극적인 반대에 직면해 이 법안은 연방 상원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시사점과 향후 전망: ‘사다리 걷어차기’를 딛고 
1950년 당시 미국(1억 5,070만 명)과 라틴아메리카(1억 6,882만 명)의 인구가 엇비슷했던 데 비해 2000년에 라틴아메리카의 인구는 약 5억 1,200만 명으로 미국 인구 2억 8,220만 명)의 약 1. 8배가 되었다. 인구의 팽창뿐 아니라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외채위기와 경기 침체에서 비롯된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신자유주의 개혁의 명목 아래 심화된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잃어버린 5년’은 꾸준한 유출 요인으로 작용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언론인 후안 곤살레스(Juan Gonzalez)는 오랜 세월에 걸친 라티노 이주민의 증가 추세와 미승인 이주민의 존재를 ‘제국의 수확(Harvest of Empire)’으로 요약한다. 거대한 라티노 인구와 ‘이민 위기’는 미국의 팽창과 라틴아메리카 개입의 오랜 역사가 초래한 ‘부메랑 효과’이자 의도치 않은 수확이었다는 것이다6)

또 아비바 촘스키(Aviva Chomsky)의 지적에 따르면, 이주민의 증가는 전 지구적 경제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7). 예컨대 19세기 말 이래 미국인 소유 농장과 미국 기업의 소유지가 확대되면서 멕시코를 비롯한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 지역에서 현지 주민들의 생존에 필요한 공간이 지속적으로 축소되었다. 더욱이 1960년대 급진적 민족주의의 시대에 라티노 활동가들은 푸에르토리코인과 멕시코인 모두 미국의 팽창기에 영토 병합을 통해 정복당한 이들의 후손이라고 역설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이들은 유럽계 이민자들보다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비견할 만하다. 

소수 집단에 대한 적극적 우대 조치는 이런 과거사의 정리를 위한 필수적 절차로 인식할 수 있지만, 미국의 역사는 배외주의(nativism)의 지속, 즉 미국의 영토에서 태어난 이들의 특권을 이주민들의 권리보다 중시해온 흐름이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어떤 세대든 배외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들은 대체로 이주민의 자손이었고, 이들은 문화적 통합을 강조하면서 신참내기 이주자들의 혜택을 규제하고자 했다. 말하자면 ‘사다리 걷어차기(PULLAM, pull the ladder after me)’ 현상의 반복이었던 셈이다8)

하지만 라티노 이주민들은 이주민 규제법과 ‘사다리 걷어차기’의 현실을 딛고 독자적인 활동 영역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을 중심으로 한 라티노 메트로폴리스의 성장과 그것이 미국 사회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은 충분히 감지되고 있다. 상기한 2006년 로스앤젤레스의 저항에서 드러났듯이, 역사적 소수 집단의 일원인 젊은 세대 라티노 유권자들이 미국의 양당 체제와 그것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소수의 기업-보수파 세력(corporate-conservative minority)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지 그리고 향후 변화에 어떻게 기여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각주
1) https://www.census.gov/library/visualizations/interactive/race-and-ethnicity-in-the-united-state-2010-and-2020-census.html (2021년 10월 25일 검색) 
2) http://censusviewer.com/state/CA (2021년 10월 25일 검색) 
3) https://www.pewtrusts.org/research-and-analysis/reports/2005/09/27/rise-peak-and-decline-trends-in-us-immigration-19922004 (2021년 10월 25일 검색) 
4) Carlos Rico, “Migration and U.S.-Mexican Relations,” Christopher Mitchell, ed., Western Hemisphere Immigration and United States Foreign Policy (University Park: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992), p. 243.  
5) Zaragosa Vargas, Crucible of Struggle: A History of Mexican Americans (New York an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pp. 362, 369. 
6) Juan González, Harvest of Empire: A History of Latinos in America (Revised Edition) (New York: Penguin Books, 2011); 후안 곤살레스 (이은아ㆍ최해성ㆍ서은희 옮김), <미국 라티노의 역사> (그린비, 2014), 17쪽. 
7) Aviva Chomski, “They Take Our Jobs!”: And 20 Other Myths about Immigration (Boston: Beacon Press, 2007); 아비바 촘스키 (백미연 옮김),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이민에 대한 미국 사회의 편견과 신화>(전략과 문화, 2008), 178, 227쪽. 
8) Alejandro Portes and Rubén G. Rumbaut, Immigrant America: A Portrait (Third Edition)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6), pp. 37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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