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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인도의 입헌 민주주의: 문화적 배경과 최근 변화

인도 Sarabjit Kaur University Institute of Legal Studies, Panjab University Professor 2021/12/24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20세기 후반의 주요 특징으로는 민주주의 이념이 확대되면서 세계 많은 국가에서 민주주의 체제가 도입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본 이념을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에 맞추어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인도에 대한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인도 고유의 문화적 맥락에서 민주적 입헌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최근 나타나는 우려스러운 변화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의 본문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절인 ‘입헌 민주주의의 개념적 배경’에서는 입헌 민주주의가 과연 어떠한 사고에 기반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탈식민 사회에서 문화가 동 개념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조망하는 학자들의 의견을 고찰해본다. 두 번째 절인 ‘인도의 입헌 민주주의’에서는 민주주의 적용에 있어 인도가 가진 특유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소개하며, 뒤따르는 ‘인도 헌법에 담긴 민주주의’에서는 신생 인도에서 제정한 헌법이 민주주의적 가치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구체적인 조항들을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인도의 입헌 민주주의 약화 경향’ 절에서는 입법-행정-사법 3부와 연방-주정부 간 관계에서 인도 헌법에 담긴 민주주의 정신과 제도가 약화되어가는 징후를 살펴본다.

입헌 민주주의의 개념적 배경 
입헌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두 가지 개념적 구성요소인 민주주의와 입헌주의를 각각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민주주의(Democracy)는 그리스어로 민중/대중을 의미하는 Demos, 그리고 권력/통치를 의미하는 Kratos를 그 어원으로 하며, 민주정치에서는 법치의 원리에 근거하여 권력의 작위적 행사, 통치에서의 지나친 강제력 동원, 그리고 독재 행위를 방지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입헌주의는 권력분립, 정부기관 간 견제와 균형, 인권 보호와 같은 개념을 통해 정부의 활동범위를 제한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입헌주의는 개인의 권리, 일정 수준의 복지에 관한 권리,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정부체제 등에 관한 규범을 제시하여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완성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두 개념이 합쳐진 입헌 민주주의는 집단에 의한 권력 행사라는 개념에 기반하며, 이를 통해 ‘정치체제에 민주적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Post, 2000, p.185). 한편 정치학자 해나 핏킨(Hanna Pitkin)은 장기적 안정성과 민주적 정당성에 바탕하는 통치구조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국민적 특성을 반영하는 근본적 가치기준’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Post, 2000, p.186). 이와 같은 헌법적 가치와 구조를 지니지 않은 민주주의도 여전히 국민에 의한 정부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오늘날 세계 집권세력이 각자 나름대로의 국민적 동의에 기반해 통치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상황에서는 그 유용성에 한계가 있다. 또한 세계 각국이 지닌 문화적 배경이 제각각 다르기에 보편적 민주주의를 자국의 상황에 맞게 적용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민주주의를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를 반영하는 문화적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한다(Curew, 1991; Linz and Lijphart, 1996). 반면 다른 일각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모든 사회와 문화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Post, 2000, p. 149).

이에 따라 입헌 민주주의를 인도와 같은 국가에 적용하는 데에는 국가 체제의 민주성과 국내 문화적 가치기준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도전요소가 존재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인도의 입헌 민주주의
인도는 국가 성립부터 꾸준히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어 왔다. 비록 1975년 6월 26일부터 1977년 3월까지의 약 21개월간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와 휘하의 국민회의당(Indian National Congress)에 의한 민주주의 체제가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지만, 1977년 3월의 선거로 정권 교체에 성공하며 민주적 제도가 회복될 수 있었다.

인도는 역사 내내 다양한 도전에 맞닥뜨렸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사례이다. 민주주의 제도를 수립하는 데 인도가 겪은 주요 도전요소 중 하나는 문화 및 언어의 다양성으로, 인도 각지에는 독자적 정체성과 문화를 지닌 언어권이 산재해 있고, 영국 식민정부에서 지정부족(Scheduled Tribe)으로 분류한 바 있는 국내 공동체에는 표준 언어와는 차별화된 방언을 구사하는 이들도 많이 살고 있다.

카스트 제도 또한 인도 사회의 복잡성을 가중시키는 또 하나의 요소이며, 종교적 다양성도 인도에서 중요한 맥락이다. 인도-파키스탄 분리 당시 많은 수의 이슬람 신자들이 파키스탄으로 이주해 갔지만, 아직 상당수의 무슬림들이 인도에 남아 있다. 이 밖에도 기독교, 시크교, 유대교, 자이나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 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 공동체도 여럿 존재한다.

인도는 다양한 정체성의 공존이라는 맥락 하에 민주적 의회제도를 채택하게 되었다.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박사의 리더십 아래 인도 제헌회의(Constituent Assembly of India)에서 만들어낸 신생 독립 인도의 헌법은 이러한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국내 각 공동체들이 자신만의 문화적 전통에 따라 사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권리를 보장해 주었다. 본 헌법은 역사상 많은 차별을 받아온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나 지정 부족 출신인들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에 관한 내용도 담고 있다.

인도 헌법에 담긴 민주주의 
인도 헌법 전문(前文)은 인도가 정의, 자유, 평등, 우애에 기반하여 주권, 사회주의, 세속주의, 민주주의 가치를 지닌 공화국이라 정의한다. 본 헌법에는 다른 국가의 사례보다 포퓰리즘적 요소가 더욱 많이 반영되어 있는데, 일례로 국가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제4장의 제38조에서는 ‘사회·경제·정치적 정의가 공적 생활의 모든 제도를 관할’하는 사회적 질서를 통해 ‘국민의 복지를 추구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 밖에도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항에는 양성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제39조), 평등한 법 적용과 무상 법률 지원(제39A조), 근로, 교육 및 특정 영역 공공 부조에 관한 권리(제41조), 정당하고 인간적인 근로환경 및 생활에 필요한 수준의 임금 지급 (제 42조 및 제43조), 아동에 대한 무상 의무교육(제45조)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들 내용은 정부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개념으로 존재하며, ‘그 어떤 법원에서도 강제할 수 없다’라는 규정을 통해 구체적 법적 분쟁의 사례에서는 문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적 권리와 관련한 헌법 제3부는 법적 강제력을 부여 받는다. 제14조부터 제18조까지는 종교, 인종, 카스트, 성별, 출생지에 따른 차별의 금지, 공공 근로에서의 기회의 균등, ‘불가촉 제도’의 폐지와 세습작위의 폐지를 각각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19조는 발언과 표현의 자유, 평화적인 비무장 집회의 자유, 집단 및 공동조합 결사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을 보장한다. 이후로는 일사부재리의 원칙과 자기부죄 거부권(제20조), 개인 생명과 자유는 법이 규정하는 절차에 의해서만 제약할 수 있다는 원칙(제21조), 그리고 개인 체포 시 그 근거와 자신이 선정한 법적 대리인으로부터의 협의와 변호를 받을 권리를 고지해야 한다는 원칙(제22조) 등 개인권과 관련한 절차적 사항이 등장하고, 그 후 뒤따르는 4개 조항에서는 종교의 자유 및 정교분리 원칙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인도의 사법부는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형성하는 상기 필수적 권리들을 보호하는 데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사법심사(Judicial Review) 권한은 입헌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인도 사법부는 미국 법원이 입법부 및 행정부에 행사하는 심사 권한을 본받아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인도 헌법 제226조는 정부 및 관계자, 혹은 정부로부터 위임 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모든 이들의 명령의 합법성과 합헌성을 검토할 권한을 법원에 부여하고 있으며, 동 권한에 따라 헌법 조항 및 여기에서 규정된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은 무효화할 수 있다. 상기 내용을 담은 인도 헌법은 계몽된 지식인들의 노력과 공적 토론의 산물이었으며, 여기에 참여한 지도자들은 모든 국민을 자유 공화국 체제에 포섭하고 신생 독립국의 자유로운 정신이 만민에게 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힘썼다. 이렇듯 신 인도 헌법은 대의민주주의, 개인과 집단의 권리 보장, 역사적 차별집단에 대한 평등권 보장 등을 통해 개인 각각이 새로운 인도의 평등한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최근 인도의 입헌 민주주의 약화 경향 
인도의 민주주의는 민주적 제도가 여러 도전을 맞닥뜨리고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오랫동안 기능해왔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민주적 가치가 훼손되어감을 보여주는 사례가 다발하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암베드카르 박사 등 신생 인도에 공헌한 이들은 아직 세간에서 높은 공적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오늘날 정치 엘리트들이 인도의 역사를 자신의 견해에 맞추어 다시 쓰려는 노력을 전개하며 이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점차 많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12월에는 지난 1955년 제정된 시민권법(Citizenship Act)에 대한 개정이 수행되어 정치적 공동체 참여권에 종교적 정체성을 결부시키면서 인도의 법체계가 이전까지의 세속주의와 종교간 평등 추구라는 가치에서 멀어지는 사례가 발생했으며,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 적용되는 법 앞에서의 평등 개념이나 법의 평등한 적용 원칙도 도전을 받게 되었다. 또한 힌두교 국가로서의 인도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인도 인민당(BJP, Bhartiya Janata Party)이 집권한 이후 아요디아(Ayodhya) 지역에 수백년간 존재해온 바브리 마스지드(Babri Masjid) 모스크1)의 자리에 힌두교 사원을 짓는 계획을 세우는 등 세속주의의 가치가 위협받고 있기도 하다.

이에 더해 인도 헌법은 행정부가 입법부에 책임을 지는 의회 제도를 규정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총리가 사실상 제왕적 대통령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는 등의 변화도 감지된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인도 의회뿐 아니라 많은 주의회에서의 책임성 약화를 불러오고 있다.

국가 체제에서 입법부의 입지가 약화됨과 동시에 사법부의 역할도 변화를 맞게 되었다. 국내 최고위 법원들은 전통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안을 다루는 일을 피해 왔으나, 최근 바브리 마스지드 모스크 철거 사건에 관한 판결에서는 피의자 모두를 무죄로 판단하고 기존 모스크의 자리에 힌두교 사원을 짓는 계획에 힘을 실어주는 등 정치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일어나는 변화에 의해 권력분립의 원칙이 훼손됨에 더해 2016년 헌법 개정으로 주정부의 권한도 약화되었다. 본 개정안은 재화·용역세(GST, Goods and Services Tax)를 통한 간접 징세 방식을 추가하고 조세 권한을 각 주정부에서 GST 위원회(GST Council)로 이관하여 인도의 연방-주정부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2019년에는 각 주의 구조를 재조정하고 주간 경계선을 바꾸거나 일부 주의 헌법적 지위를 사전 협의 없이 변경하는 법안 때문에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관계가 더욱 큰 변화를 맞았다. 이밖에도 연방정부는 농업 자유화 법률이나 중앙집권적 개혁을 통해 전통적으로 각 주에 권한이 위임되어 있던 영역에서도 자신의 세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결론 및 향후 전망
오늘날 인도의 민주주의는 문서상으로, 그리고 언론 보도 상으로는 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각종 위협을 받고 있으며, 특히 앞으로 정치적 입지가 약하거나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고 역사적 억압 대상이 된 수백만 명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민주주의로부터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청년들은 정치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시위 대응 과정에서 자신의 헌법적 권리를 행사하던 학생, 농민, 여성과 어린이들이 폭력과 체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각종 민간인 및 정적에 반란 모의 혐의를 씌워 초법적 수단으로 구금하는 등의 사례가 다수 발견되는 점은 인도의 입헌 민주주의가 이전보다 약화되었음을 방증한다. 이 밖에도 국가적 통합의 중요성 강조, 국민의 권리가 아닌 의무 부각, 자유가 아닌 복종 추구, 이념적 동일성 확보를 위한 공포 요소의 활용, 그리고 행정부 권한에 대한 견제의 약화 등은 오늘날 인도가 본래의 헌법과 제헌의회에서 내세웠던 비전과 점차 동떨어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오늘날 인도의 민주주의는 일종의 변곡점이자 교차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앞으로 어떠한 경로로 나아갈지 결정하는 주체는 우리이며, 민주주의가 문서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본 목표를 바탕으로 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 각주
1) 인도 내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의 분쟁이 되고 있는 지역으로, 1992년 힌두교 활동가들이 기존에 존재하던 모스크를 강제 철거하면서 큰 논란이 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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