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대만대표부 설립 후 6개월, 리투아니아가 풀어야할 숙제

리투아니아 서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EU연구소 선임연구원 2022/05/10

개국공신 조부의 정치적 성향을 이어받은 리투아니아 외무부 장관
2020년 리투아니아 대선에서는 ‘조국 연합 - 리투아니아 기독당(Tėvynės sąjunga - Lietuvos krikščionys demokratai, 이하 TS-LKD)’이 압승을 거두었다. 현재 외무부장관인 가브리엘류스 란스베르기스(Gabrielius Landsbergis)가 당 대표로 있는 본 정당은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독립을 이끈 사유디스(Sąjūdis)를 이어받은 중도우파 정당이다. 사유디스는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끌어낸 개국공신이자 자유 리투아니아 공화국 사상 최초의 국무총리를 역임한 ‘비타우타스 란스베르기스(Vytautas Lansbergis)’와 정치이념 및 현대역사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한다. 현재 정당 대표이자 외무부 장관인 가브렐류스 란스베르기는 비타우타스 란스베르기스의 직계 손자이다. 

비타우타스 란스베르기스는 현재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그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카리스마는 상당하다. 이런 배경에서 TS-LKD는 사유디스의 정신을 뒤이어 사회주의 청산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가장 중요한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2021년 11월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Vilnius)에는 대만대표부(Taivaniečių atstovybė Lietuvoje)가 설립되었고 그것은 이 작은 나라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바로 그 기관명칭에 다른 나라에서는 금기시되어 있는 ‘대만’이라는 어휘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동안 중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표방하는 사회주의 중국의 정체성에 반하는 행위로 해석해 왔었는데 반사회주의를 표방하는 TS-LKD의 정책상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시나리오다.

결과적으로 양국의 대사들이 소환되었고 중국은 리투아니아에 경제제재 조치를 내렸다. 중국은 리투아니아의 이번 행보에 대해서 ‘중국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며 필요한 경우에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응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리투아니아는 중국의 행보에 대해서 별다른 염려를 하지 않는다. 리투아니아와 중국간의 교역이 비교적 미미하다 보니 대만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금방 메꿀 수 있을 거라는 계산에서 일까.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리투아니아의 속내는?
사실 리투아니아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 정부 시절인 2019년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모여 거대한 인간 띠를 만드는 ‘홍콩의 길’ 시위가 펼쳐졌다. 이 행사는 1989년 발트3국인들이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서 장장 600km의 거리를 200만 명이 모여 손을 잡아 만든 ‘발트의 길’에서 착안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리투아니아인들은 홍콩 사람들을 지지하기 위해 수도 빌뉴스의 중심인 대성당 광장에 모여 대규모 반중 집회를 열었다. 이후 중국은 이런 반중 행사를 유치하게 내버려 둔 리투아니아 정부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2021년 5월 리투아니아는 중동부유럽과 중국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17+1’ 블록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하여 반중 감정을 대외적으로 또다시 드러냈다. 란스베르기스 외무부 장관은 과거 사회주의를 겪었던 중동부유럽 국가들만이 참여하는 17+1이 아닌, 전 유럽이 참여하는 27+1 블록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하며 다른 국가들이 리투아니아의 반중 행보에 같이 동참해주기를 간접적으로 호소했다. 이번 리투아니아 내 대만대표부 설립은 세 번째로 중국의 심리를 건드린 중대한 사건이 되었다.  

사실 리투아니아만이 아니라 유럽연합(EU) 내에서도 반중 감정은 서서히 증폭되고 있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중국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국가들의 경제적 손해와 코로나19 사태의 확산 등은 유럽에서도 중국에 대한 시각을 새로이 고착시켰다. 환경문제를 위한 국제 협의를 무시하는 것은 보통이고 유럽의 일반적인 인건비의 50%에 불과한 금액으로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참여하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쌓아왔다. 네덜란드 내 5G 구축을 위한 입찰에서 일반적인 금액의 50%로 입찰을 따낸 중국에 대해서 입찰 참여국인 스웨덴의 경우 그 후 중국에 대한 마찰이 커지고 있고 반중 감정도 동시에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EU 내에서도 인도-태평양 지역의 무역을 활성화하는 글로벌 게이트웨이를 추진하고, 슬로베니아가 리투아니아를 향한 지지를 표명하는 등 반중 정서가 더 확대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유럽에 대한 중국의 경고에 희생양이 된 리투아니아?
중국이 리투아니아에 던지는 일련의 행동들은 유럽 전체에 대한 경고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동안 EU는 중국 관련 이슈에 대해서 통일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방식으로 접근해 온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현재 유럽이 자신들을 경제적 파트너이자 경쟁자, 그리고 라이벌로 동시에 보고 있다며 이런 대중국 관점을 모순적이라고 평가해왔다. 지금 중국은 EU에 대해 일관성 있고 동일한 정책을 펼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리투아니아의 놀라운 행방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경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국가 세력에 대해 더 강력한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을 밖으로 끌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리투아니아에 대한 중국의 경고는 유럽의 연대가 단순히 선언적 발언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구현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디아나 미츠케비치에네(Diana Mickeviciene) 주중 리투아니아 대사는 이런 상황에서 EU 내에 리투아니아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대한 질문에 ‘(리투아니아는) EU의 공동시장을 수호하고 중국이 EU 회원국에 행하는 경제적 무력행사를 중지하도록 요구하는 EU의 통일성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대표부 설립의 경제적 효과
마침내 2021년 11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대만대표부가 설립되었다. 리투아니아 정부 차원에서 중국의 반응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예측을 마다하고 용기 있게(!) 실행한 이후 리투아니아는 기대하던 경제적 이익을 얻고 중국과의 관계 악화에서 기원한 경제적 손실을 보상 받았을까. 

리투아니아의 이러한 외교적 행보는 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대한 관심을 대변하고 있다. 현재 리투아니아는 유럽으로 집중되어 왔던 외교 방향을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으로 확장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1년 하반기에는 서울에 주한리투아니아 대사관이 문을 열었으며 2022년에는 싱가포르에 리투아니아 대사관이 생길 계획이다.

리투아니아는 인근 에스토니아의 IT,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 상황을 눈 여겨 보고 있으며 레이저 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왔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지금  유럽 투자에 호의적인 대만과의 관계를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 리투아니아 차원에서도 더 이득이 많을 것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예상에 걸맞게 최근 대만은 리투아니아에 집적회로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단지 재정적 투자만이 아니라 관련 원천기술을 리투아니아와 공유하겠다는 청사진도 공개했다. 그러면 리투아니아는 전세 계에서 유일하게 대만의 반도체 기술을 공유하는 국가가 된다. 레이저 산업을 국가의 기간 사업으로 내세운 리투아니아에게 이처럼 좋은 기회는 없다. 현재 리투아니아에는 집적회로 관련 사업이 전무하고 전문가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관련분야를 집중적으로 발전시켜 대학 내 연구를 활성화하는 부차적 효과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효과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는 아직 묘연하다. 우선 리투아니아 농업부는 초창기에는 대만에 리투아니아의 농산물과 유제품 수출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실은 그 성과를 기대하기가 아주 힘들었다. 리투아니아 식품수출협회는 리투아니아가 대만시장에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으며 유통, 물류 등을 고려해 보았을 때 대만은 중국을 대체할 시장은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식료품 수출은 문화적 요소도 깊게 작용한다. 핸드폰이나 전자제품은 모든 나라에서 동일하게 인식을 하지만 식품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수산물 가공업체인 AG씨푸드리투아니아(AG Seafood Lithuania) 역시 미래시장에서도 중국과 대적할 만한 국가는 없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대중국 무역 손실을 대만과의 관계 증진으로 메꿀 수 있다는 것이란 기대는 국가별로 수출입 분야가 다르므로 무의미한 기대라는 분석도 있다.

대만대표부의 명칭은 우리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와 중국과의 관계 악화 일로에서 우려할 만한 점이 단지 경제적 측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리투아니아인들이 중국과의 관계악화를 우려하면서까지 독단적으로 일을 벌인 리투아니아 정부에 대한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부서간 소통의 부재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Gitanas Nauseda) 리투아니아 대통령 역시 대만 대표부 설립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명칭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이며 행정부와의 조율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즉 리투아니아 외무부의 입장은 경제부처들이나 의회에서도 정식으로 조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리투아니아 외무부는 대만 명칭의 공식적인 사용은 대만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디아나 미츠케비치네 주중 리투아니아 대사는 “리투아니아 정부는 명칭에 대해서 아무것도 결정을 내린 것이 없다. 비외교기관인 해당 설립기관에 자체적으로 명칭을 맡겼을 뿐이다. 명칭을 결정할 권리는 기관을 설립하는 측에 있다. 이것은 1991년 서명했던 외교관계수립 공동성명서에서 제시한 중국에 대한 리투아니아의 의무사항에 반하지 않는다. 그 성명서에는 비외교적 대표부를 통해 교류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금지조항이 없고 이미 대만에도 다수 설립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차기 총선 이후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친중 정부라도 들어서게 되면 이번 정권으로 인해 야기된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더 큰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의 여지는 있다. 이럴 경우 기업들과 무역업자들에게도 큰 문제를 야기한다.

리투아니아 역시 대만 명칭 사용에서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빌뉴스에는 ‘주 리투아니아 대만 대표부’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도 정작 대만에 만들어질 리투아니아 대표부에는 ‘주 타이페이 리투아니아 대표부’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는 것은 얼핏 납득하기가 어렵다.  

이 모든 것은 말이 통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
리투아니아와 중국과의 관계 악화의 원인은 경제적 정치적 이유 외에 다른 측면에서 분석하는 움직임도 있다. 리투아니아 대만대표부는 리투아니아어로 ‘Taivaniečių atstovybė Lietuvoje’라 표기한다. 여기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Taivaniečių’라는 어휘는 국가로서의 대만(Taivanas)이 아니라 ‘대만사람들의’, 즉 대만인을 말하는 리투아니아 단어 ‘taivanietis’의 복수 2격형으로 민족이나 사회를 일컫는 의미가 있다. 리투아니아어와 어휘구조가 다른 중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국호로서의 국명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라는 표현은 리투아니아어로 ’한국인들의 언어’라고 불리며, 이런 방식은 ‘한국인들의 영화’, ‘한국인들의 음식’, ‘한국인들의 노래’ 등 어떤 민족의 문화를 대변할 때 쓰인다. 한국식 담화 표현으로는 단순히 ‘한국’이라는 단어만이 사용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대만에 거주하는 민족과 사회를 일컫는 말로 국가 자체와는 하등의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에 사는 소수민족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중국어 표기를 적절하게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쨌든 리투아니아는 이번 경우를 통하여 중국의 팽창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다른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뜻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를 볼 때 중국에 대한 불신이 더 심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을 찾아 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피한 일일 지도 모른다. 대내외적으로 불어 닥친 난관을 리투아니아가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