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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칠레 신정부의 대외·경제정책과 대(對)아시아 관계

칠레 Diego Telias Universidad Católica de Chile - 2022/05/10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칠레의 신정부
2022년 3월 11일에 정식 임기를 개시한 칠레 신정부의 등장은 칠레 정치의 역사적 변혁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칠레에서는 지난 16년간 중도좌파 성향의 미첼 바첼레트(Michelle Bachelet, 2006-2010/2014-2018년 집권) 현 UN 인권고등판무관(UN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과 중도우파 성향의 세바스티앙 피녜라(Sebastián Piñera, 2010-2014/2018-2022년 집권) 전 대통령이 번갈아 가며 정권을 잡아 왔지만,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전면에 등장한 것은 신세대 정치인들이다. 학생 운동가이자 하원의원 출신에 올해 36세라는 젊은 나이의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는 스페인 국왕을 비롯한 해외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칠레 의회 의사당에서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지난 2021년 11월에 치러진 대선 2차 선거에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José Antonio Kast) 후보를 물리치고 승리한 보리치 대통령은 2019년 10월의 대규모 시위사태 이후 복잡해진 칠레 정세를 안정시키고 기존 정치의 변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 원수직에 올랐다. 이번에 집권하게 된 ‘존엄성을 인정하라(Apruebo Dignidad, 이하 AD연합)’ 정당 연합체는 기존 광역전선(Frente Amplio)과 공산당 등 좌파 진영 정당을 포괄하는 조직으로, 분열된 의회 상·하원 모두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기에 조세개혁과 같은 주요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데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칠레 정부 요직에는 학생운동 시절부터 보리치 대통령과 깊은 친분을 쌓고 정치적 행보를 함께한 인물들이 등장했는데(Caro and Cáceres 2022b), 그 대표적 인물로는 전 하원의원이자 현 대통령비서실장인 조르지오 잭슨(Giorgio Jackson), 전 공산당 출신 하원의원으로 대변인직에 오른 카밀라 발레호(Camila Vallejo), 그리고 무소속 출신으로 대선 2차 선거에서 활약한 내무장관 이즈키아 시케스(Izkia Siches)를 들 수 있다. 보리치 내각 최고위급 인사 24명 중 14명은 여성이며, 무소속 출신 인물이나 이전 바첼레트 정권에 참여했던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통합당(Convergencia Social) 계열 인사도 등용되었다. 칠레 내각 인사 과정에서 특히 큰 주목은 받은 직위는 시장에 보내는 신호를 결정하는 재무장관직으로, 좌파 계열 인사이지만 전통적 경제정책에 유화적인 마리오 마르셀(Mario Marcel)이 이 자리에 오르면서 칠레 기업계도 다소 안심하는 분위기이다(Sajuria 2022).

한편 칠레에서는 2020년 10월의 지하철 요금 인상발 소요 사태 이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73 ~1990년 집권) 독재정권이 만들어냈던 헌법을 대체할 신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제헌 회의도 진행 중에 있다. 헌법의 내용이 시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대표들에 의해 작성되는 것은 칠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에 여기에 부여되는 역사적 의미가 크고, 제헌회의 위원구성에서 성별균형 및 원주민 대표성 확보가 이루어진 점도 혁신적이다. 제헌회의는 2022년 7월까지 헌법 초안을 마련해 공개해야 하지만, 기한연장 요청을 통해 2022년 하반기까지 합의안 공개를 미룰 수도 있다. 일단 신헌법의 내용이 공표되면 이로부터 60일 후에 의무투표제가 적용되는 국민투표가 시행되어 신헌법 승인 여부를 판가름하게 된다.

비록 정권교체와 제헌 회의는 개별적인 사안이지만, 보리치 대통령이 초기부터 신헌법 제정에 찬성해왔다는 점에서 신정부와 신헌법은 운명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신정부는 이 밖에도 범죄와 마약 밀매, 남부의 민족 갈등, 북부의 이주민 문제에 대한 사회적 파란에 더해 이 같은 사회 문제들의 원인을 제공한 불평등 현상과 같은 다양한 도전 요소들도 극복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치학자 후안 파블로 루나(Juan Pablo Luna, 2022)는 칠레 새 정부의 성격을 개혁성(Reformist)이 아닌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과도성(Transitional)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권 및 환경중심적 대외정책
신정부 외무장관에 취임한 안토니아 우레욜라(Antonia Urrejola)는 2018년부터 미주인권위원회(Inter-American Commission on Human Rights)에서 활동하다가 2021년에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사회당 인사들과 인맥이 있고 호세 미구엘 인술자(José Miguel Insulza) 미주기구(OAS,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전 사무총장의 재임 당시 그의 오른팔로 활약했다. 우레욜라 외무 장관의 등용은 신정부가 외무부에 인권 중심적 방향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좌파 진영 내부 경선 때 보리치 당시 후보가 베네수엘라의 인권침해를 비판한 반면 공산당의 다니엘 자두(Daniel Jadue) 후보는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등 인권문제가 대외정책분야의 쟁점으로 떠올랐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베네수엘라 및 니카라과의 인권 현황에 비판적 시각을 보였던(Jara 2022) 우레욜라의 외무 장관직 등용은 보리치 대통령의 입장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고 인권 문제가 신정부에서 중요한 이슈로 다루어질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며, 민주주의 및 인권 보호를 중시하는 칠레 신좌파진영의 입장을 홍보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레욜라는 외무 장관직에 오르기 전부터 다자주의와 협력에 입각한 대외정책을 강조해왔지만, 이밖에 또 하나의 중심 개념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육상환경과 해양생태계 모두의 보전을 포함한 다차원적 방식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 나간다는 취지의 이른바 ‘옥색(Turquoise)’ 정책이다(Navarrete 2022). 육상 녹지를 대변하는 녹색과 바다의 푸른빛이 섞여진 옥색 정책은 국제운동을 중시하는 칠레의 젊은 활동가들이 펴낸 단행본 ‘대외정책의 새로운 목소리(Nuevas Voces de Política Exterior)’에서 만들어낸 개념이다(Bywaters C., Sepúlveda, and Villar Gertner 2021).

신정부 출범 직후 발표된 대외정책 관련 활동 중 하나가 에스카주 협정(Escazú Agreement) 준수를 확약하는 대통령의 선언문이었다는 점도 환경문제에 대한 강조의 차원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에스카주 협정은 환경정책에 대한 대중의 정보접근성을 제고하고 시민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남미 국가들 간의 협정으로, 현재 발효에 앞서 칠레 의회의 비준을 기다리는 중이다. 칠레는 코스타리카와 함께 2018년부터 본 협정을 주도하며 협상과정에 참여해 왔으나, 이전 피녜라 행정부는 협정 내용에 담긴 모호한 규정들이 국내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그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Navarrete 2022). 하지만 이번에 출범한 신정부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환경문제가 향후 칠레 대외정책의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여타 국가들과의 협력대상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국제 경제관계 
신정부의 대외정책에서 또 다른 이슈로 떠오른 것은 무역협정 문제이다. 칠레가 지금까지 체결한 무역협정은  31개로 여타 나라들에 비해 높은 편이며, 이 중 다수가 아시아 국가들과 성사된 것이고(<표 1> 참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의 비준을 위한 토의도 진행되고 있다. 다만 보리치 대통령은 CPTPP에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으며, 각종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을 재평가하는 자리인 외무부 국제경제관계차관(Undersecretary of International Economic Relations)에 호세 미구엘 아후마다(José Miguel Ahumada)가 지명된 사실도 CPTPP 비준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우레욜라 외무장관은 CPTPP는 칠레 정부의 우선순위 상 높지는 않지만 보리치 대통령도 제헌회의 이후 해당 협정의 비준을 논의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Latorre 2022). 따라서 CPTPP를 비롯한 신규 무역협정의 비준여부는 2023년이 되어서야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며, 기존에 체결된 여타 협정들도 큰 폭으로 바뀔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크지 않은 상황이다.

아시아권 국가들과의 연계
보리치 대통령은 취임 후 대외정책 관련 첫 언급을 통해 국가간 관계를 단순한 이념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우레욜라 외무장관은 아태지역에 대한 구체적 공조와 영향력 투사를 지향하는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이 대통령의 정책 시행에 필수적 요소라고 언급했다(Caro and Cáceres 2022a). 이처럼 태평양동맹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칠레가 에콰도르의 신규 가입 추진 등을 통해 해당 협력체의 새로운 활로 모색을 시도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표 1> 칠레와 아시아권 국가간 경제관계 진전 역사
자료: 칠레 외무부 국제경제관계차관실


칠레는 남미와 아태지역을 잇는 교량 역할을 자처하면서 아태지역과의 관계 구축을 선도해왔고(Schulz and Rojas-De-Galarreta 2020), 이 과정에서 경제적 개방성 향상과 일부 국가에 대한 편향적 의존성 타파라는 목적의 대외정책을 추진해왔다(Oyarzún Serrano 2018). 이에 따라 칠레는 일본, 한국, 중국, 아세안(ASEAN) 등 동아시아 경제 주체들과의 연계 면에서 여타 남미국가들과는 차별화되는 수준의 성과를 거두어 낼 수 있었다.

비록 FTA가 신정부 외무부의 중점사안에서 제외되면서 신규 무역협정 모색이 이전만큼 빠르게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칠레가 이미 오랫동안 협력관계를 구축해온 국가들과의 교류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칠레의 입장에서 인도태평양 지역과의 연계는 경제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데, 현재 동아시아의 한중일 3개국 및 인도와의 연간 무역액은 800억 달러(한화 약 98조 4,000억 원)에 달하고, 특히 중국은 칠레 전체 무역액의 30%를 차지하는 독보적 위치에 있다(<그림 1> 참조).

<그림 1> 칠레의 아시아권 주요국 대상 무역액 동향 단위: 백만 달러
자료: 트레이드맵(Trade Map)

향후 전망
칠레 신정부가 인권 문제에 중점을 둔다는 사실은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일례로 지난 2019년에 자임 벨롤리오(Jaime Bellolio) 하원의원이 홍콩의 시민운동가 조슈아 웡(Joshua Wong)과 면담을 가진 사실로 중국 대사관이 이의를 제기하자, 당시 하원의원이었던 보리치는 “칠레 의원이 누구를 만나는지는 중국 대사관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El Mostrador, 2019a).

하지만 칠레가 1970년에 남미 국가 중에서 대중(對中)수교의 첫 번째 타자가 된 점,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 가입을 지지한 점, 그리고 2005년에는 중국과 FTA를 체결한 점 등에서 볼 수 있듯 칠레-중국 관계는 상당한 중요성을 갖기에, 단순히 인권 문제 만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처럼 중국과의 관계가 깊다는 점은 향후 다양한 문제와 관련한 중국과의 대화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우호적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들과 유사한 태도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들어서는 일대일로 구상 참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가맹, 코로나19와 관련한 백신 기부 등으로 칠레와 중국간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하지만 태평양 횡단케이블 주관사 입찰 때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당시 국무장관이 칠레를 방문해 중국기업 제안을 거절할 것을 요청한 사실에서 보이듯 미-중 경쟁이 점차 심화되면서 앞으로 중국발 투자를 비롯한 영역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미국의 견제를 제외하면 칠레-중국 관계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는 별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여타 아시아권 국가들과의 관계도 이전과 큰 변화 없이 유지될 공산이 크다. 일본의 경우 2022년 3월, 양국 수교 125주년을 기해 칠레를 방문한 오다와라 키요시(小田原 潔) 방위성 부대신은 기념행사를 참관하고 보리치 대통령 취임선물로 포켓몬 꼬부기(Squirtle) 인형을 선물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어 칠레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오다와라 부대신은 일본이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법치 등의 가치를 칠레도 공유한다면서 중국과의 차별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도 2022년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전화로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앞으로 우호적 관계의 발전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산적해 있는 칠레 국내 문제와 신헌법 제정 관련 이슈를 고려할 때, 칠레 정부는 아직까지 CPTPP 비준 건이나 미-중 분쟁 등 규모가 큰 대외정책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대신 칠레는 이주민 위기나 환경문제 등 국가적 대응이 보다 시급한 문제에 단기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환경분야에서는 아시아권 국가들과의 협력 기회가 이전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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