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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태국의 소프트 파워 문제: 명확한 개념 이해와 목표 설정의 필요성

태국 Pongkwan Sawasdipakdi Thammasat University Lecturer 2022/06/02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1. 서론
밀리(Milli)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태국 가수 다누파 카나티라꾼(Danupha Khanatheerakul)은 미국 캘리포니아 뜨거운 사막 기후 지대에서 열린 2022년도 코첼라 밸리 음악·예술 축제(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에서 태국의 인기 있는 후식인 ‘망고 찹쌀밥(Mango Sticky Rice)’이라는 명칭의 곡을 주제로 공연하면서 실제로 망고 찹쌀밥을 먹는 연기를 선보여 관객을 열광케 했다. 공연 다음 날, 소식을 전해 들은 태국에서는 망고 찹쌀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태국 전역의 후식 상점이 손님들로 가득 찼고, 상인들은 이러한 수요에 대응해 각지에서 망고를 사들여 재고량을 늘리기도 했다(Reuters, 2022). 쁘라윳 짠오차(Prayut Chan-o-cha) 태국 총리는 상기 열풍을 언급하면서 태국 문화부(Ministry of Culture) 차원에서 망고 찹쌀밥을 유네스코(UNESCO)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임을 밝혔고, 태국 언론은 가수 밀리가 명망 높은 코첼라 밸리 축제에 초청된 최초의 태국 솔로 가수일 뿐만 아니라 태국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알리는 데에도 크게 일조했음을 칭송했다.

태국 정부에서 소프트 파워 개념이 진지하게 논의된 것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1년에도 쁘라윳 총리는 한국의 걸그룹 블랙핑크에서 리사(Lisa)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인 태국 출신 케이팝 아이돌 라리사 마노반(Lalisa Manobal)을 언급하면서 리사의 뮤직비디오 ‘LALISA’에서 태국의 파놈룽 성(Phanom Rung Stone Castle)과 기타 태국의 유산을 소개한 점을 높이 평가한 바 있고, 리사가 한국에서 거둔 성공에 고무되어 태국의 소프트 파워를 활용해 자국의 경제적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한 전략을 추진할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Bangprapa, 2021). 리사의 출생지인 태국 북동부 부리람(Buri Ram)주 관광 위원회(Tourism Council)는 리사가 고향에서 먹었던 미트볼 구이나 튀김을 좋아한다고 발언한 점에 호응해 사상 최초로 미트볼 축제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는데(Thai PBS, 2021), 상기 망고 찹쌀밥의 사례처럼 리사의 미트볼 관련 언급 이후 그녀의 고향에서는 미트볼 상점의 판매액이 1만%가량 폭증했고, 최초의 미트볼 축제 개최일에 기록된 거래액도 최대 100만 바트(한화 약 3,700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자국의 소프트 파워 잠재력에 대한 빈번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태국 정부 차원에서 실제로 태국의 창의 경제(Creative Economy) 지원을 위해 내놓은 구체적 정책의 사례는 별달리 찾아볼 수 없으며, 심지어 소프트 파워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모습이 관찰되기도 한다. 이에 본고는 태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소프트 파워 개발 정책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그리고 소프트 파워 개념에 대해 이들이 가진 기존의 오해가 태국의 경제 성장이나 국가 이미지 쇄신 등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어떠한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소프트 파워에 대한 인식 문제
소프트 파워는 높은 인용 빈도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정의하기 쉽지 않은데, 태국 정부 및 학계에서는 본 개념을 사실상 문화 정책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Charoenvattananukul, 2018). 이처럼 소프트 파워와 문화 정책이라는 두 가지 상이한 개념이 자주 혼용된다는 사실은 전자에 대한 오해가 태국의 정책 결정 당국 및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문화라는 개념이 가치나 대외 정책과 함께 소프트 파워의 필수불가결한 기반 자원이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문화가 소프트파워 그 자체라는 생각은 분명한 잘못이다.

해당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미국의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 2005)는 소프트 파워가 ‘한 나라가 타국의 행동에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하고 있다. 소프트 파워는 강제가 아닌 포섭, 외부적 유인이 아닌 자체적 매력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하드 파워(Hard Power)와 구별된다. 본 개념에 따르면 한 사람이 무력을 통해 타인의 선망을 강제할 수 없는 것처럼 일국이 다른 나라에 자국의 문화와 가치를 받아들일 것을 종용할 수는 없다. 반면 한 나라의 문화, 가치, 대외 정책이 타국에서 선망 및 수용의 대상이 되어 해당 국가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의 자발적인 행동 변화가 나타난다면 그제야 소프트 파워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따라서 본 개념의 핵심 요소는 타국 행동의 자발성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각국이 추진하는 정책이 자국의 소프트 파워 증대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소프트 파워는 정책의 목적 자체라기보다는 그 부산물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일례로 한국이 추진한 공공 외교와 문화 정책도 원래 복잡한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생겨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국 정권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고 국가 이미지 쇄신과 한반도 긴장 완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국가 이미지 향상을 위한 한국의 공공 외교 정책은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왔으나, 실제로 문화 및 창의 산업에 대한 체계적 전략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의 외환 위기 이후의 일이다. 본 전략은 궁극적으로 이른바 한류 열풍으로 이어져 한국의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국제 사회 인식의 개선이라는 효과도 가져왔다(Pakmalee, 2021). 

다만, 한류의 성공을 과연 소프트 파워 실현의 사례로 부를 수 있는지에는 아직 논의의 여지가 존재한다. 상기했듯 소프트 파워는 강제나 외부적 유인 없이 타국의 행동을 자국의 의도에 맞게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말하는데, 단순히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나라들이 한국과 관련한 행동 양식을 바꾸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Charoenvattananukul, 2018).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한국의 공공 외교와 대외 홍보 정책이 설정한 궁극적 목표가 소프트 파워 신장이 아닌 문화 및 창의 산업의 진작을 통한 경제 성장과 국가 이미지 제고였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러한 방식을 통해 타국이 자국의 문화 및 관련 분야에서의 성과에 대한 선망을 보내며 같은 길을 걷고자 한다면, 이를 소프트 파워의 기반이 견실해졌음을 시사하는 변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태국에서 나타나는 논의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태국의 정책 결정자 및 학자들은 소프트 파워 개념을 태국 문화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저질러 전자를 궁극적 목표나 정책 부산물이 아닌 단순한 상품으로 여기고 있다. 태국 당국자들은 많은 사례에서 소프트 파워를 단순한 창출 및 활성화의 대상으로 취급하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는 태국 문화부 및 상무부(Ministry of Commerce)에서 발표한 소프트 파워 5F 운동을 들 수 있다. 태국 정부의 홍보용 페이스북(Facebook)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5F란 음식(Food), 영화(Film), 패션(Fashion), 격투(Fighting), 축제(Festival)이다(Petpailin, 2022). 물론 상기 다섯 개 분야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태국의 문화 자원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데, 팟타이(Pad Thai)와 똠양꿍(Tom Yum Kung)에 이르는 태국 음식은 세계 각지에서 사랑받고 있고, 무에타이(Muay Thai)라고도 알려진 태국 복싱도 최근 올림픽 종목에 추가될 정도로 높은 국제 인지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태국 문화의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문화 부문에서의 소프트 파워가 강화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즉, 5F 운동이 선정한 다섯 가지 분야는 소프트 파워의 기반 요소일 뿐, 그 자체가 아니며, 국가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들 자원을 활용하는지에 따라 타국의 선망을 얻어 태국의 이익에 맞는 방향으로의 행동을 유도한다는 소프트 파워의 실현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3. 소프트 파워의 목표 문제 
소프트 파워와 문화 정책 사이의 개념 혼동이 가져오는 또 다른 문제점은 정부 전략의 궁극적 목표가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쁘라윳 총리는 한 인터뷰에서 소프트 파워가 태국의 창의 경제를 뒷받침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는데, 후자가 전자를 위한 기반 요소가 될 수는 있어도 그 역은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쁘라윳 총리가 소프트 파워의 의미를 혼동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는 태국 정부가 자국의 소프트 파워를 실현하고 수출하려는 노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문화 정책이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문화 정책은 분명 수출 증대나 관광객 유치를 통해 경제 성장을 촉진하거나 국가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지만, 구체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따라 그 접근법과 절차, 그리고 필요 인프라가 달라진다. 이 점에서 만약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이 기업 활동을 적절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절차와 수단을 창출하는 일이 힘들어지게 된다. 

상기한 바 이외에도 태국 정부가 창의 경제 육성 및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기존의 정책에도 포괄성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지금까지 태국의 문화 산업 개발을 감독하는 책무를 맡은 정부 기관은 다수 존재하지만, 문화 및 창의 경제 진작을 위해 장기적 전략을 수립하고 각 기관의 구체적 역할을 지정한 한국의 사례와는 달리 태국에서는 서로 다른 정부 부처에 속한 기관들이 해당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더해 현존하는 많은 규제로 인해 각 지역의 콘텐츠 생산자나 개발자들이 창의 경제에 진입하거나 유관 기관으로부터의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Bangkok Post, 2021).

상기한 관료제적 문제에 더해 현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태국 정치 지도자와 정책 결정자, 그리고 관료들의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다. 창의 경제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창의성에서 성공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만, 태국 당국은 자국 문화와 관련해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난 대한 새로운 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Channuntapipat, 2022). 이들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태국 문화에 속하는 요소는 태국 복싱과 전통 춤, 의복 등으로 제한되며, 반면 기존 성 관념의 틀을 깬 등장인물을 조명해 주변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 등 현대적 감성의 문화 상품은 지원 대상인 태국 문화로 분류되지 못해 정부 지원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태국 영화 제작자들은 정부의 엄격한 검열을 받고, 이른바 국가 안보와 중대하게 연관된 분야를 다루는 내용은 금지되며, 영화에 등장하는 알코올 음료도 국민의 도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일일이 편집해 감추어야 한다. 이처럼 태국의 콘텐츠 생산자들은 정부의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데다가 까다로운 검열을 받고 있어 자신의 창의성을 자유롭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4. 결론  
자국의 문화 및 관련 상품을 알리는 데 성공한 한국의 사례에서 큰 감명을 받은 태국 정부는 이를 모방한 모델을 통해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태국이 한국과 같은 높은 수준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으려면 소프트 파워가 과연 무엇이고, 이를 통해 이룰 수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비전을 갖추고, 이와 관련한 장기적 측면에서의 계획 수립에 노력해야만 한다. 또한, 창의 경제 진작을 통해 경제 성장과 소프트 파워 실현을 노리는 태국 정부의 노력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제무대에서 성공한 밀리나 리사와 같은 유명인들이 개별적으로 태국 문화를 소개하는 데에서 한 층 발전한 수준의 전략을 입안해 추진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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