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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인도네시아의 2024년 선거 논란과 민주주의

인도네시아 이지혁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 2022/07/04

2022년 4월 11일 수도 자카르타를 포함한 몇몇 도시에서 학생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대의 요구 사항에는 수도이전법(UU IKN) 재검토, 생필품 가격 안정, 식용유 파동 해결 등이 있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집권 연장에 대한 거부였다. 그 형태가 대선 연기이든 헌법 수정을 통한 3선 도전이든 근본적으로 어떤 형태의 집권 연장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선과 총선, 그리고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지선)가 예정된 2024년은 인도네시아 정치사에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동남아 국가들은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발전을 이룩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후퇴하거나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인도네시아만이 다소 예외적인 모습을 보였었는데 최근 인도네시아마저도 이러한 흐름에 합류하면서, 동남아의 민주주의 발전과 확산을 바라는 이들의 희망이 요원해지고 있다. 1997~1998년 아시아금융위기는 인도네시아에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 다차원적인 위기를 초래했지만, 결과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개혁(reformasi) 시기를 거치면서 인도네시아는 대통령부터 기초단체장까지 모두 유권자가 직접 선출하는 제도를 정착시켰다. 그러나 최근 인도네시아가 개혁의 동력을 상실한 채 과거 권위주의로 회귀하려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 중 선거와 관련된 논란은 흔들리고 있는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체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2024년 선거: 대선·총선·지선 
2019년 4월 17일 인도네시아는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대선과 총선을 같은 날 치렀다. 이전까지는 2008년 선거법(UU No.42/2008)에 따라 총선과 대선은 3개월 이상의 간격을 두고, 총선이 먼저 치러지고 나서 대선이 치러졌다(2014년 총선: 4월 9일, 대선: 7월 9일). 2013년 헌법재판소가 2019년 선거부터 총선과 대선을 동시에 시행할 것을 판결하고 관련된 통합선거법(UU No. 7/2017)이 제정됨에 따라, 2019년 인도네시아는 소위 ‘역사상 하루에 치러진 가장 복잡한 선거’를 치렀다. 동 선거를 통해 대통령·부통령, 전국구 국회의원(DPR, Dewan Perwakilan Rakyat) 및 지역대표 국회의원(DPD, Dewan Perwalkilan Daerah), 그리고 지방의회 의원(DPRD, Dewan Perwakilan Rakyat Daerah)을 선출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의원의 임기가 5년이기 때문에 차기 대선 및 총선은 2024년에 예정되어 있고, 2022년 초 다음 선거 날짜를 2024년 2월 28일로 확정했다. 

한편 지방의회 의원(DPRD)에 의해 간선제로 임명되었던 지방자치단체장(이하 지자체장)은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2004년부터 직선제로 변경되었다. 직선제 도입 후 2005년 6월을 시작으로 지자체장의 임기 종료 시점에 따라 지선이 순차적으로 시행되었는데, 2010년에서야 전국의 모든 지자체장이 유권자에 의해 직접 선출되었다. 인도네시아는 1945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후 지방정부가 설립된 시기가 달랐으며, 금융위기 이후 개혁 시기에 지방분권화가 이뤄짐에 따라 기존의 행정구역에서 새롭게 분리된 행정구역이 생겨나면서 지선의 시기는 더욱 복잡하게 나뉘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전역이 아혹(Ahok) 주지사의 신성모독죄 여부로 혼란스러웠던 2017년,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었던 2018년, 코로나19로 인해 선거일이 연기되었던 2020년에 각각 지선이 있었다. 그런데 2016년 인도네시아 국회는 서로 다른 해에 분산되어 치러졌던 지선을 모두 같은 해에 치르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따라서 지자체장의 임기 종료와 상관없이 2024년에 전국 동시 선거를 치를 계획을 세웠고 여러 논란 끝에 선거일을 11월 27일로 확정했다.

선거를 둘러싼 논란들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거대 인프라 개발을 통한 경제성장에 국정 운영의 역점을 두었으며, 집권 2기는 균형 잡힌 국토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수도 이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의 발발로 이러한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2기 조코위 정권은 많은 자원과 시간을 방역에 할애해야만 했다. 코로나19로 경제성장에 자신의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한 조코위 대통령에게 3선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과 더 현실적으로는 2024년으로 예정된 대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헌법 개정 혹은 관련 법안 제정이 수반되는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상실된 기회 보상, 수도 이전 완결, 현 정부에 대한 높은 국정 만족도, 조코위를 대체할 차기 대선 후보의 부재, 높은 선거비용1) 등이 집권 연장의 명분으로 거론되고 있다. 요컨대 선거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포스트 팬데믹 기간의 경제회복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대통령의 측근과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헌법 개정을 통한 3선 도전을 공론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비등해지자 공론화의 방향이 대선 연기로 옮아갔다.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대선과 총선은 2019년부터 같은 날 실시되기 때문에 대선 연기는 현직 의원들에게도 총선 연기, 즉 임기 연장이라는 반대급부가 있을 수 있다. 집권 연장 주장이 실현 가능성이 낮은 현 정부 내부 차원에서의 단순한 바람이라고만 취급할 수 없는 것은 여당연합이 국회의원 의석수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조코위 대통령은 집권 연장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여론의 흐름에 따라 그의 생각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3선 도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조코위 대통령은 이런 제안은 자신의 뺨을 때리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사용하면서 3선 도전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코위 대통령의 ‘부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근거로 그의 아들의 시장 출마가 자주 언급된다. 조코위 대통령은 자신의 자녀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그의 장남인 기브란(Gibran Rakabuming Raka)은 2020년 조코위 대통령이 두 차례 시장을 역임했던 수라카르타(Surakarta) 시장직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기브란은 조코위 대통령이 속한 정당인 PDI-P의 후보로 출마했는데, 조코위 대통령이 당내 경선에서 기브란과 경선을 치를 것으로 예정된 후보자가 출마하지 못하게 실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아들뿐만 아니라 사위인 바비 나수션(Bobby Nasution)도 인도네시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메단(Medan) 시장에 당선되었다. 아울러 그가 권력을 쉽게 놓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을 자아낸 데에는 조코위 대통령의 레거시(legacy)에 대한 강한 집착도 크게 작용한다. 현재 많은 인프라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고 야심 차게 준비한 수도 이전이 코로나19로 차질을 빚고 있다. 

한편, 대통령의 집권 연장만큼은 아니지만 2024년에 전국 동시 지선을 치르는 것도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논란의 핵심은 2024년보다 훨씬 이전에 임기가 종료되는 지자체장의 권력 공백을 막기 위해 중앙정부가 임시 지자체장을 임명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주지사나 시장이 부패에 연루되어 공석이 될 경우 임시 주지사가 임명될 수 있지만 길게는 임기가 3년이나 될 수 있는 지자체장을 중앙정부가 임명하는 것은 유권자로부터 투표권을 박탈하는 것이고 어렵게 이룩한 민주주의를 너무 쉽게 권위주의 방식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미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는 5월 12일 2022년 상반기에 임기가 종료되는 지역의 지자체장을 임명했는데, 2022년 연말까지 7명의 주지사(gubernur), 76명의 군수(bupati), 18명의 시장(wali kota)의 임기가 종료될 예정이다2). 인사 검증을 통해 내무부 장관이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를 승인하는 절차를 통해 임시 지자체장이 임명되는데, 비평가들은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정부에 임시 지자체장을 선발하는 기준(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절차를 공개하라고 명령하였으나 정부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앞에서 언급된 논란 외에도 대선, 총선, 지선을 같은 해에 치르는 데 따르는 행정적 부담과 예산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세계 최대의 군도 국가라는 지리적 특징, 세계 인구 4위, 다당제 정치체제, 복잡한 투표 방식, 수개표 방식 등은 인도네시아 선거 관리의 근본적인 어려움이다. 2019년에 처음으로 같은 날 치러진 총선과 대선에 투입된 선거관리위원 중 과로로 사망한 사람이 약 900명에 이르는 믿기 어려운 사실은 선거 관리에 대한 우려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질’ 문제에 대한 염려를 자아낸다. 벌써 선관위가 과중한 업무량에 대한 걱정을 표출하고 있는 가운데 총선과 지선은 대선에 밀려 주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권위주의 유산
통치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임기가 연장될 필요성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를 32년 동안 철권 통치한 수하르토(Suharto) 대통령은 정해진 임기가 끝날 무렵이면 공공연하게 자신이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지만 32년을 통치했다. 측근과 지지자들이 집권 연장을 주장하는 것이 대통령 본인에게는 큰 영광일 수 있지만,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정치적 퇴보를 의미한다. 인도네시아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할 때 집권 연장, 선거 연기, 중앙정부에 의한 임시 지자체장 임명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만은 아니다.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고 일부 효율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 상황에만 집착하면 방향과 원칙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이었던 수카르노(Sukarno)의 종신 집권 선언과 그를 이은 수하르토 대통령의 32년 철권통치는 1945년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임기가 유연하게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두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따른 값비싼 교훈으로 인도네시아는 1999년에 있었던 1차 개헌에서 대통령의 임기를 두 번으로 제한했다. 대통령의 임기 제한은 대통령 직선제와 군인의 정치 참여 금지와 함께 개혁의 핵심 어젠다였다. 따라서 두 번의 임기 이상의 집권 연장은 1945년 헌법 개헌의 기본 합의와 그 안에 담긴 헌법주의의 핵심 가치를 위반하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4월 7일 조코위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더는 선거 연기와 집권 연장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학생 시위가 있기 하루 전날인 4월 10일 다시 한번 집권 연장에 대한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비슷한 시기에 인도네시아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팜오일(Palm oil) 수출 중단 선언과 치솟는 식용유 가격으로 조코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면서 재집권에 대한 공론화는 수그러들고 있다.

어렵게 이룩한 민주적 제도가 경제 안정, 효율성, 선거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으로 권위주의 시대의 방식으로 회귀하는 모습은 지금도 엘리트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용하기 쉽고 익숙한 권위주의 체제의 유산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는 정치인에게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유권자에게는 정치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화된 정치 행위다. 따라서 헌법을 수정해 3선에 도전하는 것, 코로나19를 핑계로 선거를 연기하는 것, 시민으로부터 지자체장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행위는 통치자의 정당성과 유권자의 권리 상실을 의미한다. 10년이라는 짧은 정치 경력임에도 정치 엘리트도 군부 출신도 아닌 서민 조코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 자체로 레거시가 될 충분한 요건을 갖췄다. 그런데 정당성이 결여된 상태로 자신의 정치적 레거시에만 집착한다면 이미 구축된 레거시마저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국가 발전을 위한 그의 열망이 야망으로 변질될 수 있다. 





* 각주
1) 선관위(KPU)와 선거감독청(BAWASLU)은 2024년 선거 관리와 감독에 각각 76조 루피아와 33조 루피아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다.
2) 일반적으로 인도네시아의 행정단위인 ‘kabupaten’을 군으로 번역하고, 해당 지자체장인 ‘bupati’를 군수로 번역하지만, 실제 ‘kabupaten’은 한국의 군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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