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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보호책임과 주권 원칙의 조화 문제: 라틴아메리카의 시각

중남미 일반 Lopez Torres Vianey Jared Ewha Womans University Graduate Student 2023/02/08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I. 주권국 개입과 보호책임의 원칙
부당한 주권 침해로 이어지지 않는 인도주의적 개입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국제관계학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로, 동 주제의 중요성은 유엔(UN) 창설과 함께 더욱 커졌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간 나타난 주권국 개입 사례는 세계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UN의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기에, 인도주의적 개입은 UN에 있어 다소 다루기 껄끄러운 주제이기도 하다.

1993년의 소말리아 1차 UN군 파병, 1994년의 르완다 학살에 대한 미온적 대응, 2004~2017년 이어진 아이티 개입 등의 사례에서는 UN이 민간인 보호를 명분으로 개별 국가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드러낸 비효율성과 역량 부족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으며, 이들 사례는 국제사회의 집단 기억에도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또한, 지금까지도 현지 주민 보호라는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대상 분쟁국의 주권을 침해하지는 않는 적정 수준의 개입이 어느 정도인지에 관한 명확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국가 혹은 국제기구가 현지 주민이 처한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한 우려를 명분으로 대상국 동의 없이 수행하는 군사적 개입으로 정의된다1). 하지만 탈냉전 이후 세계 환경이 변화하면서 이 개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석할지의 문제도 이전에 비해 더욱 복잡해졌다. 세계화 기조의 등장, 세계 각국 및 지역 간 긴밀한 협력 체제 형성, 주변국으로의 파급효과 우려 제기 등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일련의 현상은 개입과 주권이라는 개념의 전통적 해석에 대한 이견을 낳았고, 이에 더해 내전과 국가 내부 분규, 대규모 비자발적 이주민 발생과 같은 사태의 빈도가 늘어난 점도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가 낳은 산물로는 개입을 통한 보호의 대상이 기존의 집단에서 점차 인간 개인으로 옮겨갔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이 기조는 코피 아난(Kofi Annan) 전 UN 사무총장의 2001년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우리는 평화가 국가나 민족뿐만 아니라, 이들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속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데에서 새로운 21세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국가 주권이 더 이상 심각한 인권 침해를 가리는 방패막이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평화는 도움을 요하는 모든 개인의 일상에 실체적 형태로 실현되어야 합니다2)."


한편 주권과 개입에 관한 논의의 중심에 있는 ‘보호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 원칙은 UN이 발동할 수 있는 조치의 근거로, 그 중요성이 큰 만큼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잦다. 보호책임은 개입과 국가 주권에 관한 국제위원회(ICISS, International Commission on Intervention and State Sovereignty)가 2001년에 출범하면서 함께 등장한 개념으로, 2005년 세계 정상회의(World Summit) 개최 당시에 UN 총회의 공식 승인을 얻었다. 본 개념은 모든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지며, 만약 이 책임 완수를 거부하거나 실패할 경우 국제사회가 해당 의무를 대신한다는 내용을 근간으로 한다3). 이 측면에서 보호책임은 ▲각국이 자국민을 보호할 책임 ▲국제사회가 개별국의 자국민 보호를 지원할 책임 ▲특정국이 자국민 보호에 명백히 실패할 경우 국제사회가 보호 의무를 대신 수행할 책임이라는 3대 구성요소로 나누어볼 수 있다4).

다만 보호책임의 발동 조건은 집단학살(genocide), 전쟁범죄, 인종청소, 반인류범죄라는 네 가지 주요 위험 사태가 발생한 경우로 한정되어 있으며, 이들 사태 각각이 정확히 어떠한 상황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보호책임은 아직 개념적으로 완전하지 않은 데다가, 때때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보호책임은 여전히 UN 차원의 특정국 개입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는다. 


II. 보호책임과 주권 침해 문제
UN은 창설 이래 지금까지 회원국의 영토, 정치적 독립성, 국가 주권을 보호함으로써 전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5). 주권 및 불간섭 원칙을 다루는 UN 헌장 조항에 따르면 각 회원국은 자국 영토 내에서 완전한 관할권을 행사하고, 내정에 관해 타국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6).

하지만 오늘날의 국제 안보 환경은 UN 창설 당시와 크게 달라진 상태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내전 등 국가 내부 분규의 빈도 증가, 테러리즘의 확산, 비자발적 이주민 발생과 인간 안보(human security)7) 불안 등 21세기에 나타난 여러 문제는 UN 창설 당시부터 사용된 전통적 개념을 현대에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UN이 직면한 중대 과제는 각종 전통적 개념의 해석을 새로운 이슈와 조화시키는 동시에, 개인에 중요성을 부여하면서도 상호 의존성 심화와 세계화의 추세를 함께 인정하는 접근법을 이 과정에 반영하는 일이다.

한편  보호책임 관련 논의를 치열하게 전개하면서 이 개념에 대한 회의론도 가장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지역으로는 라틴아메리카가 있으며, 역내국 중 일부는 특히 보호책임의 세 번째 구성요소, 즉 특정국의 자국민 보호 실패가 명백할 때 국제사회가 보호 의무를 대신 이행한다는 내용에 우려를 제기해 왔다. 이는 나머지 두 요소의 경우 주권국에 대한 직접 개입 없이도 대상국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다루는 반면, 세 번째 요소는 특정국 내부 사안에 타국이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잠재적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호책임 개념의 출범에 아르헨티나, 칠레, 과테말라, 멕시코 등 일부 역내국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8),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여전히 주권 침해 가능성을 문제 삼아 보호책임의 효용과 동기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가를 여럿 발견할 수 있다9). 이 중에서도 보호책임 원칙수용을 전적으로 거부한 국가로는 반제국주의나 자국 보호주의 경향이 강한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가 있다10).

III.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보호책임
국제기구를 비롯한 국외 주체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특정주권국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여러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대외 정책이 민감하게 다루는 사안이다11). 이 지역의 국가 중 거의 전부는 식민주의, 노예제, 외세 개입, 군사 독재 및 정권의 횡포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경험한 바 있으며, 각국이 보호책임 채택에 보이는 고유한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상기 배경에서 보호책임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입장을 결정하는 2대 핵심 요소는 외세 개입과 군사 독재라는 역사적 경험이다. 이 중에서 외세 개입의 대상이 되었던 국가들은 외부 주체의 개입 의사 피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를 경계하고 저항하는 태도를 보인다. 또한 지난 한 세기 동안 등장한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독재 정권도 철권통치(Mano Dura)를 펼치면서 수많은 횡포와 초법적 살인, 실종을 가장한 납치, 강제 이주 등의 범죄를 저질렀고, 피해자 유가족을 위한 정의 실현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특정 주체의 초법적 지위 획득을 경계하면서  불간섭 원칙을 비롯한 국제법 수호에 큰 지지를 보내는 배경이 되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보호책임 개념 출범 당시부터 관련 논의에 참여했고, 국가 주권에 관한 토의에서도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는 세계 발전에서 소외된 남반구 지역, 통칭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일원으로서 북반구 및 서방 지역이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을 동원해 국제사회에 대한 책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주장을 편다12). 일례로 멕시코는 자주성 보전과 불개입 원칙 실현을 자국 대외 정책의 핵심 요소로 삼고 있는데, 이들 원칙은 강대국, 혹은 이들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국제기구가 주도할 가능성이 큰  보호책임과는 상극 관계에 있다13). 또한 멕시코와 브라질은 주권 침해 문제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UN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다만 이와 같은 일부 국가의 반대 및 우려 의사 표명이 보호책임에 대한 지역 전체의 완전한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라틴아메리카는 보호책임의 제한적 활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선택지 모색을 위한 협력을 계속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1990년대에 민주화 및 국가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 간 협력 진작을 추구하는 다수의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냈고, 그 사례로는 미주기구(OAS), 제3주체를 통한 분쟁 해소 제도, 인권 현황 감시 기구 등이 있다. 특히 지난 한 세기간 발생한 각종 참상의 재발을 막기 위해 미주 각국이 협력해 신설한 여러 제도는 UN과도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모범 관행이자 귀중한 선례로 기능한다. 현대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과거의 참상을 겪으며 주변국에서 같은 사태가 재현되는 일을 막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으며, 바로 이 점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보호책임 관련 논의에 힘을 실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라틴아메리카가 보호책임에 관한 논의를 진전시킴으로써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대표적 분야로는 인권 보호 증진을 들 수 있다. 현재 역내국 모두는 자발적·비자발적 이민자 발생, 기아, 기후변화, 폭력 사태와 같은 문제를 다양한 수준에서 겪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안보 차원의 많은 도전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오늘날 이 지역 국가들이 직면한 주요 위협 중 하나는 조직범죄 확산에서 기인한 만성적 폭력인데, 2017년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인구 비중은 8%였지만, 살인 건수 비중은 이를 훨씬 넘어선 33%에 달한다14). 이처럼 횡행하는 범죄와 치안 불안 문제는 다양한 파급효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는 정세 불안이라는 심각한 사태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각국이 서로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문제 대응 과정에서 협력할 수 있는 보호책임 이행의 수준에 합의할 수 있다면 현 상황의 악화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IV. 결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보호책임 개념 출범은 물론 그 이후 전개된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는 점은 보호책임이라는 용어를 구체적으로 개념화하는 과정에 서로 다른 다양한 시각이 반영되도록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경험과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여러 귀중한 교훈을 얻었으며, 이를 UN과도 공유함으로써 세계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국가 모두가 보호책임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가 여럿 남아 있다. 먼저 UN은 관련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권과 개입의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정의해 그 범위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개입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에도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한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국가 안보에만 과도하게 치중하던 기존의 경향에서 벗어나 지역 안보라는 보다 큰 목표 달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궁극적 차원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보호책임이 논란의 대상이라는 지금의 입지에서 벗어나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으려면 개입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지, 그리고 이 개념을 얼마나 유연하게 해석할지에 관한 각국의 의견을 조율해 지역 전체의 통일된 견해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각주
1) Moravcová 2014:66
2) Nobel Peace Prize Outreach 2001
3) Arredondo, Rodrigues, and Serbin 2011:5
4) Šimonović n.d.
5) Evans 2004:82
6) United Nations 2021
7) 인간 안보(human security) : 1994년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이 새로운 안보개념으로 제시하였으며, 군사감축이나 군비축소 외에도 인권, 환경보호, 사회안정, 민주주의 등이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만 진정한 세계평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안보의 궁극적인 대상을 인간으로 보는 개념임.
8) Arredondo et al. 2011:5
9) Gómez 2015:28
10) Serrano and Murillo S. 2017:92
11) Montero Bagatella 2015:214
12) Thakur 2006
13) Rosas 2007
14) Aguirre and Mugga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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