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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정세변화] 이란 전쟁에 따른 중동부유럽 에너지 시장 충격과 대응
중동부유럽 일반 이혜빈 EC21R&C 연구원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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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으로 인한 유럽 에너지 시장 충격과 EU의 대응
이란 전쟁 여파로 심화된 중동부유럽 권역 내 에너지 가격 불안
2026년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개시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서면서 유럽 에너지 시장의 불안이 급격히 확대됐다. 분쟁 개시 이후 유럽 천연가스 벤치마크 가격은 60% 이상 상승해 MWh당 50유로(약 8만 6,947원)를 상회했으며, 브렌트유 가격은 3월 9일 배럴당 116달러(약 17만 5,346원)를 돌파했다. 가스 의존도가 높은 헝가리·루마니아 등 국가들의 도매 전력 가격은 전년 대비 12%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2026년 2월 말 기준 EU 회원국의 가스 저장률은 약 30%로 5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이란 전쟁이 겹치면서 에너지 공급 불안이 한층 심화됐다.
*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위치한 폭 약 40km의 해협으로, 세계 원유 및 LNG 교역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에너지 수송로
EU, 에너지 가격 완화 조치 추진과 러시아산 원유 금지 법안 제출 연기
EU 정상들은 2026년 3월 20일 브뤼셀 정상회의 이후 발표한 결론문에서 집행위원회가 수입 연료 및 전력 가격 급등의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임시·표적화 조치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은 회원국의 국가 보조금 활용 가능성과 전력 소비세 인하 제안 방침을 밝혔으며, 에너지 집약 산업을 위한 전력망 요금 인하 법안과 ETS 배출권 재원으로 조성되는 300억 유로(약 52조 1,682억 원) 규모의 탈탄소화 투자 지원 계획도 공개했다. 다만 세금 감면 및 국가 보조금을 둘러싼 회원국 간 재정 여력 격차와 배출권거래제(ETS: Emissions Trading System) 개편 방향에 대한 이견이 조치 이행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EU 집행위원회는 러시아산 원유의 영구 수입 금지 법안 발표 시점을 연기했다. 당초 2026년 4월 15일로 예정됐던 발표일은 잠정 의제에서 삭제됐으며, 집행위원회 에너지 정책 대변인 안나카이사 이트코넨(Anna-Kaisa Itkonen)은 “새로운 발표 날짜를 제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불안이 확대되는 가운데, 헝가리·슬로바키아를 둘러싼 드루즈바 송유관* 분쟁이 맞물리면서 연기 결정에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 가격 및 공급 불안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중동부유럽 각국은 자국 여건에 따라 상이한 대응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 드루즈바 송유관(Druzhba Pipeline): 1964년 소련 시기 개통된 세계 최대 규모 송유관 중 하나이다. 러시아 서시베리아에서 출발해 벨라루스·우크라이나를 경유해 중유럽까지 약 4,000km 이어지며, 남부 지선은 슬로바키아·헝가리·체코에 원유를 공급한다.
중동부유럽 각국의 에너지 위기 대응
미·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충격은 중동부유럽 권역 전반에 파급됐다. 헝가리·슬로바키아·체코·불가리아 등 중동부유럽 국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직접 의존도가 낮지만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가격 전가 효과는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국가별 공급 구조와 정책 여건에 따라 대응 양상은 상이하게 전개되고 있다.
⑴ 헝가리, 드루즈바 중단·이란 분쟁 겹치며 위기 가중
헝가리는 이란 전쟁 발발 이전부터 드루즈바 송유관 중단으로 인한 원유 공급 차질을 겪고 있었다. 2026년 1월 27일 러시아 드론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서부 브로디(Brody) 인근 송유관 설비가 파손되면서 헝가리행 원유 공급이 전면 중단됐다. 헝가리는 전체 원유 수입의 86~92%를 드루즈바 남부 지선에 의존해 왔으며, 내륙국 특성상 대체 공급망 구축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구조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 전쟁이 발발해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포린트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헝가리의 에너지 비용 부담이 한층 가중됐다.
· 연료 가격 상한제 도입 및 전략 비축유 방출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헝가리 총리는 2026년 3월 11일 연료 가격 상한제를 발표했다. 95옥탄 휘발유의 소매 상한가를 리터당 595포린트(약 2,642원), 경유는 615포린트(약 2,744원)로 설정하는 동시에 이에 대한 소비세를 EU 최저 수준으로 인하했다. 가격 상한제는 헝가리 번호판과 차량등록증을 갖춘 차량에 한해 적용되며, 개인은 물론 농업인·운송사업자 등 사업자도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오르반 총리는 아울러 공급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 비축유 방출을 허용하는 행정 명령을 발동했다.
· EU 대러 제재 해제 촉구 및 우크라이나 압박 수위 확대
가격 상한제 발표에 앞서 오르반 총리는 3월 9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안토니우 코스타(António Costa)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의 전면 재검토·유예를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페테르 시야르토(Péter Szijjártó) 헝가리 외교통상부 장관은 해상 원유 수송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육상 공급 경로마저 차단된 것은 헝가리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라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2월 22일에는 원유 수송이 정상화되기 전까지 EU 제20차 대러시아 제재 패키지* 채택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 EU 제20차 대러시아 제재 패키지: 러시아산 원유 해상 운송 서비스 금지, 암호화폐 거래 금지, 주변국을 통한 제재 우회 방지 조치 등을 포함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 조치도 단계적으로 강화했다. 헝가리는 2월 19일 드루즈바 원유 공급 재개 전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디젤 공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으며, 3월 25일에는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재개될 때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단계적으로 차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르반 총리는 아울러 원유 공급 재개 전까지 EU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한 900억 유로(약 156조 5,658억 원) 규모 차관의 집행에도 반대하겠다고 공언했다.
* 우크라이나 에너지 컨설팅업체 엑스프로(EXPRO)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2025년 기준 전체 가스 수입의 약 45%를 헝가리를 통해 조달해 왔다.
⑵ 슬로바키아, 드루즈바 중단 속 공급 안정화 모색
슬로바키아 역시 드루즈바 송유관 중단으로 인한 원유 공급 차질에 국제 유가 급등이 겹치면서 이중적 에너지 압박에 직면했다. 현재 슬로바키아는 러시아산 원유 처리에 특화된 브라티슬라바(Bratislava) 소재 슬로브나프트(Slovnaft) 단일 정유소에서 원유 전량을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슬로바키아 정부는 전략 비축유 25만 톤을 2026년 9월까지 단계적으로 방출해 슬로브나프트 정유소 운영을 우선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공급 안정화를 위한 단기 수급 관리 조치도 병행됐다. 슬로바키아 정부는 2026년 3월 18일 긴급 결의안을 승인해 경유 수출을 제한하고, 주유소가 차량 1대당 1만 탱크 충전 및 최대 10리터 추가 판매만 허용하도록 했다. 외국 번호판 차량에 대해서는 인근 체코·오스트리아·폴란드의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차등 가격을 적용하는 것도 허용했다. 로베르트 피초(Robert Fico) 슬로바키아 총리는 폴란드 차량들이 국경을 넘어와 슬로바키아의 저렴한 연료를 대량 구매하면서 북부 슬로바키아 일부 주유소의 경유가 고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조치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아울러, 슬로바키아는 크로아티아를 통한 아드리아(Adria) 송유관 경유 비러시아산 원유 조달을 단기 수급 대안으로 병행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체코와의 드루즈바 역송 협력을 통한 공급 다변화 방안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⑶ 체코, 탈러시아 전환 완료로 공급 안정 유지 및 역내 지원 모색
· 드루즈바 의존 탈피 및 호르무즈 해협 영향 제한적 구조 확보
체코는 2025년 트란스알핀(TAL: Transalpine Pipeline) 확장 완료를 통해 이탈리아 트리에스테(Trieste) 터미널에서 독일을 경유해 공급되는 비러시아산 원유 조달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드루즈바 송유관 의존에서 벗어난 체코는 이번 에너지 공급 불안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급 여건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이에스(IEŚ: Institute of Central Europe) 분석에 따르면, 체코의 원유 수송 경로는 호르무즈 해협이 아닌 사우디아라비아 얀부(Yanbu) 터미널을 경유하는 홍해·수에즈 운하 루트를 활용하고 있어 이번 해협 봉쇄의 직접적 영향도 제한적인 구조다.
· 유휴 드루즈바 인프라 활용한 슬로바키아 원유 공급 방안 추진
한편, 체코는 자국 드루즈바 구간을 역방향으로 운영해 슬로바키아에 원유를 공급하는 방안에 대한 투자 의지를 공식화했다. 카렐 하블리체크(Karel Havlíček) 체코 산업통상부 장관은 3월 18일 데니사 사코바(Denisa Saková) 슬로바키아 경제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원유가 체코에서 슬로바키아로 공급될 수 있도록 기술적 조치에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초기 투자 규모는 최대 10억 체코 코루나(약 709억 4,000만 원)이며, 향후 2~3년 내 연간 공급 가능 물량은 200만~300만 톤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양국 장관은 설명했다.
역송에 활용될 체코 드루즈바 구간은 TAL 파이프라인 확장 이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중단되면서 현재 유휴 상태인 인프라다. 이를 서방산 원유의 슬로바키아 공급 경로로 전환하는 이번 방안이 체코의 탈러시아 전환 경험을 역내 에너지 연대로 이어가는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⑷ 불가리아, 90일분 비축 확보 및 가격 모니터링 체계 구축
불가리아는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에 대해 비축량 현황 공개와 모니터링 체계 강화를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스타니미르 미하일로프(Stanimir Mihaylov) 불가리아 재무부 차관은 3월 10일 국회 임시 회의에 출석해 현재 가솔린·경유·등유와 정제용 원자재를 포함한 비축량이 90일 이상의 정상 소비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미하일로프 차관은 원유 가격 1% 상승 시 불가리아 내 소매 연료 가격이 평균 약 0.8%포인트 오르는 구조라고도 설명했다.
또한, 불가리아 정부는 안드레이 규로프(Andrey Gyurov) 총리 주재로 부처 간 실무그룹을 구성해 원유 공급, 국가 비축량, 연료 가격에 대한 일일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세관청과 국세청은 원유 수입 및 연료 물량 상시 점검과 함께 유가 급등 시 기업·가계 지원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도록 했다.
불가리아의 주요 원유 수입원은 아제르바이잔과의 장기 고정가 계약으로, 이번 이란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가리아 내 최대 정유 시설인 루코일 네프토킴 부르가스(Lukoil Neftochim Burgas) 정유소의 임시 관리인 루멘 스페초프(Rumen Spetsov)는 3월 정유소의 원유 처리 수요는 완전히 충족됐으며 4월 공급 일정도 준비됐다고 밝혔다.
이란 전쟁을 계기로 드러난 대응 여력 격차와 정책 부담
이번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는 중동부유럽 각국의 에너지 공급 구조와 정책 기조에 따라 상이한 대응 양상을 낳고 있다. 체코는 TAL 파이프라인 확장을 통해 드루즈바 의존에서 벗어난 상태로, 이번 위기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급 여건을 유지하는 한편 슬로바키아에 대한 역송 지원까지 검토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했다. 반면 드루즈바 남부 지선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유지해 온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송유관 중단과 국제 유가 급등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복합적인 에너지 압박에 직면했다. 이는 에너지 공급 구조 전환의 진전 수준이 위기 대응 여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란 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불안이 지속되면서 EU 차원의 대러 에너지 정책 추진 여건에도 일정한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러시아산 원유 영구 금지 법안 제출이 연기된 상황은 이러한 정책적 부담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향후 이란 분쟁의 전개 양상과 국제 에너지 가격 흐름은 중동부유럽 각국의 공급 안정화 전략뿐 아니라 EU 차원의 에너지 안보 및 역내 정책 조정에도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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