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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태국 새 헌법 개정안과 국민투표

태국 김홍구 부산외국어대학교 동남아창의융합학부 교수 2016/05/03

2014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태국 군부가 주도하는 헌법초안위원회는 지난 3월 29일 새로운 헌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1932년 입헌혁명 후 만들어진 20번째 헌법이다. 헌법 개정안은 2016년 8월 7일 국민투표를 거치게 되며, 2017년 9-11월 사이에 총선이 실시될 예정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쿠데타 이후 만들어진 두 번째 것이다. 그간 경위를 살펴보면, 쿠데타 직후 쁘라윳 짠오차 육군 사령관은 최고권력 기구인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를 만들어 의장의 자리에 오른 후 2014년 8월 24일부터는 총리에 취임해 과도내각을 이끌게 되었다.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의 명에 따라서 임시헌법이 제정되고, 국가입법회의와 국가개혁작업을 담당할 국가개혁위원회가 임명되었으며 국가개혁위원회에서는 헌법초안위원회를 임명해 헌법 개정작업을 추진했다.

헌법초안위원회가 기초한 첫 번째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비선출 총리를 임명할 수 있고, 상원의원 일부를 임명하게 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 위기 시에 최고사령관, 육·해·공군 3군 사령관, 경찰총장 등이 포함된 위기관리위원회가 행정, 입법권을 장악해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등도 담겨 있었다.

군사정권이 헌법 개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노렸던 점은 한마디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강화하고 탁씬 전 총리 세력의 재집권을 무력화시키거나 봉쇄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발해 탁씬 전 총리는 헌법개정안의 비민주성을 비난하고 국민 대다수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이 첫 번째 개정안은 2015년 9월 6일 국가개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결되었으며 헌법초안위원회가 새롭게 구성돼 두 번째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이번에 만들어진 헌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헌법초안위원회는 완전 한 문민 통치가 복원되기까지 잠정적으로 5년 동안 민정 이양기를 인정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상원 관련 조항이다. 상원은 모두 20개 직능단체로부터 200명을 간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민정 이양 기간 동안에는 상원을 250명으로 정하되 244명은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가 선발위원회를 통해서 임명하게 되는데, 이 중 194명은 직접 임명하고, 50명은 20개 직능단체에서 간접 선출된 후보자 군에서 선발하게 된다. 나머지 6명은 고위직 군과 경찰에서 임명되는 데 사실상 군 최고사령관과 육·해·공군 사령관, 국방담당 사무차관, 경찰청장 등의 군부 지도부를 의미한다. 이 내용은 헌법초안위원회가 제출한 원안에는 없었던 것이나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의 강력한 요구로 반영된 것이다. 또한 개정안은 상원의 권한을 강화해 정부 통제, 감시, 조언 기능을 부여했으며, 내각으로 하여금 3개월마다 상원에게 개혁 작업을 보고하도록 규정했다. 

총리 선출과 관련해서도 상원은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원에서 적어도 5% 이상 의석(하원 전체 의석수 500석)을 얻은 각 정당은 3명의 총리 후보를 추천할 수 있으며(선출의원 또는 아닌 자도 가능) 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총리를 선출한다. 하지만 5년 민정 이양기 동안에는 어떤 후보도 하원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하는 경우에, 상원과 합동회의를 개최해 양원 3분의 2 찬성으로 3명 리스트를 무효화 시키고,리스트 밖에 있는 인사를 총리로 선출할 수 있도록 했다(논란이 많은 이 내용은 국민투표 시 추가 질문 항목으로 넣을 예정 이다). 이런 내용은 2000년대 들어 치러진 모든 선거를 휩쓴 탁씬 계열 정당추천 총리 후보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비선출 총리직은 1992년 5월 민주화 운동이 성공한 이래 사라졌던 제도이다.   

새 헌법 개정안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강화해 행정부를 과도하게 견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통치불능 상태에 빠져 국가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하원의장, 야당대표, 상원의장, 총리, 대법원장, 최고행정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준 사법 독립기구의 장들을 소집해서 위기해결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2013년 말과 2014년 초에 발생했던 정치위기 시 반 정부 시위대가 잉락 친나왓 총리 퇴진을 압박했지만 물러나지 않아 발생했던 위기의 재발을 막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선거관리위원회, 반부패위원회, 금융감독원 같은 준사법적 독립기구에 정부 정책이 국가에 피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 경고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으며, 정부가 그 경고를 무시해 후일 손해가 초래됐을 때는 법에 따라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하원 총 500석 중 350석은 지역구 의원, 150석은 비례대표 의원으로 구성된다. 이 중 비례대표의원 선출 방식은 일반적인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는 다른 변형된 비례대표제도(Mixed Member Apportionment, MMA)를 도입했다. 유권자는 자신이 원하는 후보자에게 한 표만을 행사하게 되며, 낙선자의 득표수도 모두 비례대표 의석수로 환산되는 방식이다. 이 같은 투표방식은 탁씬 계열의 대정당(타이락타이당, 프어타이당 등)에게 불리하고 중소정당에 유리한 제도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탁씬 계열 정당이 압승한 과거 두 차례 선거(2005년과 2011년)에 적용해 시뮬레이션 해 본 결과 가장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

개정안은 실제로 개헌마저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개헌안 발의를 위한 3 독회 과정 중 첫 단계에서 최소 상원 3분의 1의 찬성을 획득해야 하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10명 이상의 의석수를 갖는 모든 정당에서 각각 10% 이상의 찬성 없이는 개헌 발의를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앞으로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시행될 예정이지만 벌써부터 통과되지 못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탁씬-잉락 전 총리를 지지하고 있는 프어타이당이나 레드셔츠는 헌법 반대 투쟁을 벌일 것임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헌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탁씬-잉락계 정당들이 의회 내 다수당이 되지 못하도록 하고, 설사 다수당이 되더라도 그 역할을 다 할 수 없도록 수 많은 견제장치를 설치해 둔 것들이다. 탁씬은 얼마 전 외신기자 회견에서 새 개정안은 21세기 헌법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18세기 헌법 같은 것이라고 강력 비난했다. 학계, 학생,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심상치 않다. 심지어는 반 탁씬-잉락 세력의 중심에 서 있는 민주당도 일부 개정안의 비민주성을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군사정권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태세이다. 2006년 쿠데타 후 만들어진 2007년 헌법은 1997년 헌법의 승자독식 성격의 다수제적 특성을 크게 약화시키고, 사법부와 헌법재판소, 반부패위원회 등 독립기구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탁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과 2011년 총선에서 탁씬 계열의 정당들이 모두 승리했다. 따라서 군사정권은 이번 헌법 개정을 통해서 탁씬-잉락계 정당들의 영향력을 철저히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국민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친, 반 탁씬 세력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참고문헌]
- 2016년 3월 29일 태국헌법 초안(타이어)
- Michael Peel, “Fugitive ex-Thai PM denounces ‘crazy’ constitution plan,” Financial Times, February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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