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코로나19 위기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미중경쟁

동남아시아 일반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0/07/14

미중 경쟁의 현황
무역전쟁 발발 이후 미국은 대중의존도를 축소하기 위해 중국과 탈동조화(decoupling)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한 이후 미중 교역량은 축소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의 대중 투자는 물론 중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는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 합병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있으며, 미국 증권시장은 중국 기업의 기업공개(IPO) 기준을 강화하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중국이 홍콩 보안법 제정을 강행하자 미국은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에 즉시 착수하였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미국의 대중 압박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미국 국무부와 상무부는 자국은 물론 우방국이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도록 요청하는 것은 물론 미국 기업이 생산한 반도체 상품을 화웨이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도입하였다. 

탈동조화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은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 EPN)를 추진하고 있다. EPN의 궁극적 목표는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투명성, 지식재산권 보호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호주, 인도, 일본, 뉴질랜드, 베트남에 EPN 참여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전략적 측면에서 EPN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감소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있다. 국경 분쟁 지역인 갈완(중국명 자러완) 계곡에서 중국군의 공격으로 인도군이 20명 사망한 이후, 인도에서는 오성홍기와 시진핑 주석을 사진을 불태우고 중국산 제품을 파괴하는 등 반중 정서가 고조되고 있다. 중국 상품 불매운동이 고조되면서 중국기업이 개발한 앱을 삭제하는 앱이 인기를 얻었으며, 5G 네트워크에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과 분쟁을 거듭했던 베트남에서도 EPN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EPN은 남중국해에서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베트남의 전략적 목표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탈동조화 가능성에 대한 평가
경제적 측면에서 EPN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이지 않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2-3년 내에 구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데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는데 필수적인 전력, 수도, 항만, 공항, 철도 등이 부족하다. 아시아개발은행에 따르면,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의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서는 약 20조 달러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 

현재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인프라 건설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한 2013년 이후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을 통해 해상 실크로드 연안의 인프라 개발에 투자를 계속 확대해 왔다. 그 결과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와 신개발은행(NDB)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중국의 공세적 투자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 7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일본, 호주 등과 함께 인도태평양 비즈니스포럼(Indo-Pacific Business Forum)에서 미국의 민간투자 확대, 디지털 연결성 및 사이버보안 개선, 지속가능한 인프라 개발 촉진, 및 에너지 안보 및 접근성 강화에 1억 1,350만 달러를 배정하겠다고 약속하였다. 11월 제2차 태평양비즈니스포럼에서 미국 해외민간투자공사(OPIC)와 일본 국제협력은행(JBIC), 호주 외교통상부(DFAT)가 함께 추진하는 푸른 점 네트워크(Blue Dot Network)가 발표되었다. 12월 개발 촉진을 위한 투자활용 향상법(Better Utilization of Investment Leading to Development: BUILD Act)에 의거해 600억 달러 규모의 국제개발금융공사(IDFC)가 출범하였다. 2019년 12월에는 2018년 10월 의회에서 통과된 개발 촉진을 위한 투자활용 향상법(Better Utilization of Investment Leading to Development: BUILD Act)에 따라 미국 정부는 OPIC와 다른 해외개발기구들을 통합하여 600억 달러 규모의 IDFC를 출범시켰다. 

중국과 미국의 지원 현황을 비교해 보면, 미국이 중국을 대신해 동남아시아 지역의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현재까지 지원되거나 계획된 프로그램을 종합해 보면, 미국 투자액은 중국 투자액의 1/1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탈동조화를 추구한다면,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인프라 지원의 축소 또는 연기라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 다음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특정 국가의 전략이나 정책보다는 다국적 기업의 선택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다국적 기업이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안보적 고려가 아니라 경제적 이익이다. 중국 밖에서 생산하는 비용이 중국 안에 생산하는 더 크다면, 정부가 아무리 압박을 하더라도 기업은 중국에 머무르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특정 제품이나 기업에 대한 제재를 통해 탈중국을 유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EPN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국적 기업이 중국을 탈출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분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을 대표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애플워치와 아이폰 수리부품, 아이맥 컴퓨터, 홈팟 스피커, 에어팟 등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면제를 받기 위해 애플은 탈중국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년 11월 팀 쿡 최고경영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최고가 데스크톱 PC인 신형 맥프로 생산공장을 시찰하였다. 또한 애플은 조립 라인 일부를 중국에서 베트남과 인도로 이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애도 불구하고 중국 중심의 공급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베트남에서 무선 이어폰 에어팟을 만드는 기업은 베트남 기업이 아니라 중국 기업 리쉰정밀(立訊精密·Luxshare) 이다. 애플의 조립라인은 지리적으로는 중국 밖에 있지만, 공급망에서는 중국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전기자동차 업체인 테슬라는 중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무역전쟁으로 보복관세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테슬라는 2019년 상하이에 연 25만대 생산이 가능한 기가팩토리를 완공하였다. 2020년 1월 신차를 처음 인도한 테슬라는 4월 테슬라는 25만 대를 추가로 생산할 수 있는 2단계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 공사가 완료되면, 테슬라는 중국에서만 50만 대를 생산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이 국가들에서 생산된 상품이 중국에 수출되지 못할 경우, 미국이 대신 수입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이 국가들의 기업은 다시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할 것이다. 무역전쟁 이후 인도와 베트남의 대미 수출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미국이 중국을 대신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그러나 미국이 얼마나 많이 수입을 증가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일단 시장 규모에서 중국과 미국의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는 대규모 무역적자를 안보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대미 무역흑자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산지 표시를 속이는 우회 수출 문제도 있다. 미국은 베트남 기업이 중국산 제품을 수입해 미국으로 재수출하는 우회 수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보호주의 조치를 동원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할 수 있다.

EPN 참여에 대한 고려사항
미국은 우리나라에 EPN에 참여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다. 작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제4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에서 키스 크라크국무부 차관은 중국과 탈동조화의 필요성을 설명하였다. EPN 구상이 구체화된 올해 5월과 6월 그는 우리나라 정부에 EPN 참여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밝혔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정부는 이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을 공개하지 않았다. 외교안보적 차원에서는 EPN 참여 결정은 중국의 보복을 유발할 수 있는 아주 민감한 문제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EPN에 참여할 경우 우리 기업의 해외투자를 재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걸려 있다.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해서 EPN 참여 여부를 마냥 미룰 수만은 없다. 미중 패권 경쟁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EPN에 대한 대응책을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EPN 참여를 고려할 때, 세 가지 질문을 검토해야 한다. 첫째, 소비시장과 생산기지로서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가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가? EPN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인도에서는 대중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애플과 테슬라 사례가 보여주듯이, 미국 기업은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탈중국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가 중국을 대신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미국이 EPN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피터 나바로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탈동조화를 위해 1차 합의 파기를 주장하는 반면,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차 합의가 잘 이행되고 있어서 탈동조화는 정책 대안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9일 중국과 완전한 탈동조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입장을 얼마나 확고하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존 볼튼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비판했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경우 기존 견해를 여러 번 번복한 바 있다.

셋째, EPN이 제도화될 수 있는가? 장기적 전략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EPN이 최소한 다자조약으로 발전해야 한다. 여러 차례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정권이 체결한 다자 조약의 비준을 거부하거나 일방적으로 탈퇴한 바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TPP의 탈퇴를 다른 회원국들에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아태지역의 경제질서를 중국 중심에서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고 한다는 목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EPN은 TPP와 유사하다. TPP에는 미국을 포함해 12개 국가들이 참여했던 반면, 미국은 4개 국가들에게 EPN 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TPP를 탈퇴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다른 11개 회원국들과 함께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EPN 참여 여부는 탈중국 이후 경제적 손익 계산은 물론 미국의 입장과 공약을 명확하게 확인한 후 아주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한다. 미국 국내정치가 상당히 유동적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만약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대외정책의 기조가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AIF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