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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필리핀의 선거 비용 과다 문제: 원인과 함의 분석

필리핀 Cleo Anne A. Calimbahin, PhD De La Salle University-Manila Associate Professor 2022/05/03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필리핀에서는 오는 2022년 5월 9일에 대선과 의회 선거, 지방 선거를 모두 합친 총선이 실시되며, 필리핀 국민들은 이때 대통령에서부터 지방 의회 의원에 이르기까지 총 1만 8,180명의 공직자를 뽑기 위해 투표소로 향하게 된다. 이번 선거는 향후 6년간의 국가적 정책과 프로그램, 그리고 국정 운영의 방향을 판가름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필리핀의 1987년 헌법은 대통령직의 6년 단임제를 규정하고 있으며, 금번 대선에서 최다 득표하는 후보가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 밖에 의회 및 지방 선거의 향방은 필리핀이 가진 선거 제도와 절차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러한 맥락 아래에서 본고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필리핀 정치에 존재하는 정책 중심적 정당의 부재와 정치 가문의 득세라는 요소가 어떠한 방식으로 선거 비용 과다 문제를 초래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둘째, 해당 문제 해결을 위해 선거 비용에 대한 감독을 수행하는 필리핀 선거 관리 위원회(Commission on Elections, 이하 필리핀 선관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어떠한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짚어본다.

필리핀은 정기적이고 자유로운 선거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선거 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을 충족하지만, 실제로 실시되는 선거의 면면을 살펴보면 부족한 점이 많이 발견된다. 현재 필리핀에서는 후보가 선거에 나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지나치게 커서 선출직에 도전할 수 있는 인력 자체가 재력에 따라 제한되며, 여기에 제도화된 정당의 부재라는 문제가 겹치면서 권력이 정·재계 엘리트만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 결과 투표소로 향하는 필리핀 국민들이 뽑을 수 있는 후보의 다양성이 제한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레니 로브레도(Leni Lobredo) 현 부통령의 사례와 같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지지층을 확보한 유력 인사가 선거 비용 문제로 출마를 주저하는 경우도 빈발한다.

2022년 대선 선거전에서 현재 선두를 달리는 주자는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철권 통치를 펼치며 장장 20여 년간 재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Sr.) 전 대통령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Ferdinand Marcos, Jr.)로, 통칭 봉봉 마르코스(BongBong Marcos)라 불린다. 계엄령 선포 이래 50년여가 지난 지금에 이르러 당시 독재자의 아들이 대선 유력 주자로 떠오른 사실은 필리핀 국민에게 있어서도 역설적이다. 봉봉 마르코스를 비롯한 많은 후보들은 각 주와 시·군에서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기득권 세력인 정치 가문 출신인데, 2016년에 실시된 조사에 의하면 필리핀 의회 하원 의원 중 70%가 이러한 정치 가문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 이들 의원은 국가 재정을 비롯한 자원으로 각종 호의를 베풀어 지역 인사들과 후원 관계를 수립하는데, 이처럼 권력자와 유권자가 정치적 목적에서 유착 관계를 형성하면서 공공재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기반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표 1> 필리핀의 2022년 총선에서 선출되는 대표 일람


자료: 필리핀 선관위 및 래플러 뉴스(Rappler News)


필리핀의 정당과 정치 가문 문제
정치 가문이 아직까지 공고히 존속하는 반면 정당의 제도화 수준은 낮은 정치 지형으로 인해 필리핀에서 선출직 선거를 치르는 데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높아, 여기에 도전할 수 있는 인물은 소수에 국한된다. 필리핀의 한 저명한 선거 운동 전략가가 추산한 바에 의하면 대통령직에 한 번 출마하는 데 필요한 금액은 총 50억 필리핀 페소(한화 약 1,200억 원)에 달하고2), 또 다른 통계에 의하면 2019년 상원 의원직에 도전한 후보들이 선거 운동에 지출한 평균 비용도 1억 9,000만 필리핀 페소(한화 약 46억 원) 수준이다3). 필리핀 선거 운동에서 TV 광고는 전파를 탄다는 점에서 ‘공중전(Air War)’으로, 지역 유권자들에 대한 현장 유세는 발로 뛴다는 점에서 ‘지상전(Ground War)’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중 후자에는 지역 유지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대가성 지출 및 유권자들에 대한 금품 살포가 포함되며, 이 같은 유권자 매수 행위는 필리핀에 깊게 뿌리내린 문제이다. 1인당 소득이 연간 3,300 달러(한화 약 417만 원), 대통령의 월급이 41만 5,728 필리핀 페소(한화 약 1,000만 원)에4) 불과한 필리핀에서 선거 지출 비용 규모는 일반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며, 선거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를 누구나 인식하고 있지만 그 해결은 아직도 요원하다.

한편 필리핀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책 중심적 정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려면 금품을 살포하고 후원을 통해 핵심 지지층을 동원해야 한다는 점도 선거 비용을 높이는 주요 문제점이다5). 필리핀의 많은 정당 영수들은 소속원들을 위한 재정과 자원을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재력을 지닌 인사들로, 정당 강령과 이념은 그때마다 선거 표심을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에 따라 정당 차원에서의 장기적 정책안 수립이 이루어지지 않음은 물론, 선거철이 지나면 대부분의 정당이 사실상 휴지기에 들어간다. 정당 후보 공천도 내부 규정이나 공식 지명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당 지도부에서 정치적으로 가까운 가문 인사를 천거하거나 입장이 같은 유명 인사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필리핀의 입법부를 손아귀에 쥔 유력 인사들의 다수는 정치 가문 소속인데, 이들은 하원 의석 중에서 70%를 장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자가 대표하는 지역구의 지방 정부 또한 통제권에 넣고 있다6). 이에 따라 특정 지역의 주지사, 시장, 지방 의회 의원직 모두를 한 가문이 독점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이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체제를 구축하고 현금과 현물 모두를 동원한 후원 정치의 기반을 닦아야 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선거 비용 상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처럼 유권자 매수 행위를 주도하는 정치 가문 인사들은 공공 서비스 제공의 제도화보다는 각자의 지역구가 자신의 후원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데 더욱 집중하게 된다.

필리핀의 선거 관리와 규제·감독 문제
필리핀 헌법에 따라 선거 절차의 제반 사안을 담당하고 관련 분쟁을 처리하는 책무를 부여받은 기관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이 보장되는 독립 기관인 필리핀 선관위이다. 지난 2009년에 필리핀의 선거 개혁 협의체는 필리핀 선관위에 선거 비용 과다 문제에 대응할 것을 촉구했고7), 필리핀 선관위는 여기에 화답해 이로부터 3년 후인 2012년에 선거 비용 전담 부서(CFU, Campaign Finance Unit)를 신설했으며, 이 CFU는 이 후 선거 비용 전담실(CFO, Campaign Finance Office)로 개칭했다. CFO가 부여받은 임무에는 각 후보와 정당의 선거 비용 모금과 지출 현황 감시, 후보별 비용 지출 관련 보고서와 진술서 검토, 모든 선거 지출 보고서에 대한 기록 체계의 개발과 관리, 선거 비용에 대한 디지털 정보의 대국민 공개 등이 있으며, 그 외에 타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후보들의 선거 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규정 위반자에 대한 기소, 벌금 부과, 자격 박탈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CFO 출범 이후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비용 과다와 선거 운동 기부금의 투명성 부족이라는 필리핀 선거의 양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황으로, 그 주요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규정의 허점으로 인해 각 후보가 선거를 위해 모을 수 있는 기부금에 제한이 없다. 현재 필리핀의 선거법은 후보마다 선거에 지출할 수 있는 상한선을 설정하고 있지만, 후보들은 지출액을 의도적으로 줄여 보고하는 식으로 이 규정을 회피하고 있고, 실제로는 엄청난 액수에 달하는 지출액을 개인이나 기업의 후원으로 보전받는다. 둘째, 필리핀 선관위는 선거 비용 관련 규정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CFO가 제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 후보가 제출하는 보고서를 면밀히 관찰·검토·조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에 더해 회계 인력과 사기 행위 수사 인력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어야 하지만, 현실적 여건상 CFO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은 제한적이다. 

금번 대선을 앞두고 열린 후보 토론회에서도 선거 비용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는데, 대권 주자인 이스코 모레노(Isko Moreno) 마닐라(Manila) 시장은 자신이 지난 2016년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상원 의원 선거에서 쓰다 남은 선거 자금 5,000만 필리핀 페소(한화 약 12억 원)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했다8). 비록 남은 선거 비용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 실정법 위반은 아니지만, 선거 비용 모금액 및 지출액을 감시해 금품이 정책과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유도한다는 선거 관리의 원칙에 비추어보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9).

원래대로라면 헌법 기관인 필리핀 선관위가 선거 과정에 연관된 모든 과정을 주도적으로 관할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필리핀의 인물 중심적 정치 환경에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후보의 후원 관계를 동원한 전략을 펴야 하고, 이에 따라 금품과 호의, 현물로 유권자를 매수하는 행위가 빈발한다. 또한 모금액의 출처, 그리고 선거 비용 지출 내역과 그 성격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새로이 도래한 디지털 선거 운동의 시대에 더욱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2016년과 2022년에 이루어진 선거 운동을 살펴보면 후보들은 SNS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펴고, 경쟁자에 불리한 허위 정보를 유포하기 위해 전담 부서도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온/오프라인상에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는 필리핀 선관위가 선거 운동에 관한 규정과 원칙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만 할 것이다.

결론
필리핀 정치에는 국가 및 지방 대표를 뽑기 위해 치러지는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는 사실과 더불어 다양한 고질적 문제점이 존재한다. 먼저 정당 체계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반면 국가 재원을 동원해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 가문이 강한 주도권을 가지기에, 공공재 공급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권력자와 유권자 간의 유착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를 감독하는 국가 기관이 지금처럼 약화된 상태로 남아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국가 재원은 낭비되고 부패가 판을 치게 될 것이다. 

다만 이번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의 선거 운동에서 자원봉사자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은 필리핀 선거에 새로이 등장한 희망적 요소라 할 수 있다. 로브레도 부통령은 원래 선거 비용 문제로 출마를 망설였지만, 지지자들이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서서 선거 물자를 기부하고, 선거 유세 인력을 위한 음식과 교통수단을 제공했으며, 도시와 농촌의 빈곤 계층을 위한 무료 급식 사업을 전개했다. 로브레도 후보의 지지자 중에는 일부 기업계 인사 외에도 중산층 출신의 개인이나 가족이 다수를 차지하며, 각종 선거 유세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로브레도 부통령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보이기 위해 무료 재능 기부를 행하는 경우도 많다. 필리핀 정치의 역사상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도가 이처럼 높았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2년 필리핀 선거를 앞둔 현시점에서 역내 민주주의의 미래가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지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2022년에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가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비민주적 규범이 확대되면서 권위주의 정권과 이를 지원하는 세력 사이의 연대가 강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10). 이러한 권위주의 세력 연대의 특징 중 하나는 정치 개혁이나 민주주의 진전에 관심이 없는 대선 후보의 선거 비용을 기부한다는 것이며, 필리핀의 일부 전문가들은 일부 외국 정부들이 자국의 영향력 확대와 이익 보호를 대가로 특정 필리핀 대선 후보를 지원한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11).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필리핀 선관위 내부에 선거 비용 문제를 강력하게 감독하고, 기존 법체계를 정비하며, 선거 비용 지출과 모금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 내는 조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 졌다고 평해볼 수 있다.



* 각주
1) Jemma Purdey, Teresa S Encarnacion Tadem & Eduardo C Tadem. 2016. Political dynasties in the Philippines, South East Asia Research, 24:3, 328-340, DOI: 10.1177/0967828X16659730
2) See ANC Interview of Lito Banayo. July 14, 2021. https://www.youtube.com/watch?v=edXoN3C7QHQ
3) See https://www.rappler.com/nation/elections/233081-senate-candidates-statement-contributions-expenses/
4) Source: https://www.dbm.gov.ph/wp-content/uploads/2012/03/Manual-on-PCC-Chapter-5.pdf
5) For more: https://th.boell.org/en/2021/10/28/coalitions-and-candidates-2022-philippine-elections
6) Jemma Purdey, Teresa S Encarnacion Tadem & Eduardo C Tadem. 2016. Political dynasties in the Philippines,  South East Asia Research, 24:3, 328-340, DOI: 10.1177/0967828X16659730
7) See: https://pcij.org/article/3302/pcij-pera-at-pulitika-launch-br2-books-on-money-politics-3
8) https://www.philstar.com/headlines/2022/01/23/2155872/moreno-admits-keeping-p50-million-excess-campaign-funds-2016
9) See: https://aceproject.org/ace-en/focus/campaign-finance/onePage
10) For more: https://freedomhouse.org/sites/default/files/2022-02/FIW_2022_PDF_Booklet_Digital_Final_Web.pdf
11) See:  https://www.scmp.com/week-asia/politics/article/3169385/philippine-presidential-election-envoy-says-china-has-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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