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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싱가포르의 한류와 한국의 이미지

싱가포르 심두보 성신여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부교수 2012/01/16

한류는 중국, 대만 등 동북아시아의 유교문화권으로부터 시작하여, 보다 다양한 문화, 종교, 인종적 구성을 갖춘 동남아시아를 점령하였으며,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류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드라마, 영화, 가요 등 한국의 대중문화 텍스트들이 해외에서 유통되고 소비됨으로써 한국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와 환상을 생산하고 있는 점일 것이다. 결국, 개선된 한국의 이미지와 소프트파워는 관광, 의료, 화장품, 가전제품 등 소비재산업 전반으로 확산되어 한국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는 동남아 한류의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교통의 요지이자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서의 한류 전개의 맥락을 짚어보는 것은 한류를 재조명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싱가포르의 사회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싱가포르의 지리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도양과 태평양이 교차하는 말라카 해협, 말레이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역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지리적 거점으로서 다양한 문화와 문명의 교차로이다. 더욱이, 다민족 국가라는 인구 사회적 특성에 더해 외국과의 교역을 중시하는 정치경제적 조건은 타문화에 대해 개방적이고 코스모폴리탄한 사회 문화적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다.

바로 이 같은 개방적인 분위기는 역설적이게도 한류가 싱가포르에 다소 늦게 정착하게 된 요인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 높은 경제지표와 승한 화교 구성이라는 면에서 비교할만한 국가인 대만, 홍콩과 달리 싱가포르에서는 한류가 쉽게 상륙하지 못했다. <불꽃>, <호텔리어> 등의 드라마가 TV에서 방영되었으나 그 인기는 소수의 중년여성 팬층에 국한되었다. 당시 싱가포르 국민들의 한류에 대한 정서는 다음과 같이 냉소적이었다. “우리는 다양한 외래문화를 경험했다. 한류라는 것도 그저 금세 왔다가 금방 떠나가는 것이지 않겠는가?” 게다가 일본과 함께 아시아 최상위 선진국 경쟁을 한다고 자부하던 싱가포르 입장에서 볼 때 한국 대중문화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국은 이때까지만 해도 노동쟁의와 남북군사대치 그리고 건설업이 발달한, 그래서 다소 거친 이미지가 있는 국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케이블 채널에서의 지속적인 한국드라마 방영, 특히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 히트작의 등장은 싱가포르 내 한국 드라마 팬덤을 조금씩 확장시켰다. 여기에 더해 2002년 월드컵 개최, 박세리, 박지성 등 국제적 스포츠스타의 등장은 <한국 (문화) 알기> 류의 기사가 싱가포르 신문과 잡지에 점차 실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어서, 이러한 기사에서는 한국 대중문화의 부상에 대한 폄훼와 시기가 드러나곤 했다. 예를 들어 연예 주간지 『8 Days』는 2003년 여름에 <살려 주세요, 한국풍(韓國風)에 중독됐어요. (‘Help, I’m addicted to Koreana’)>라는 제목의 특집호를 발간했다. 그 중 <한국을 방문했을 때 조심해야 할 대화 리스트>라는 박스 기사는 “당신 참 예쁘군요. 어디서 성형 수술 하셨어요?,” “월드컵 결승에는 진출 못 했네요?,” “우리 개 그렇게 보지 마세요!” (한국이 보신탕 소비국이란 점을 비꼼) 등의 항목을 통해 한국을 조롱했다. 또, <당신이 한국광(韓國狂. ‘Koreana nut’)이라는 10가지 증거>라는 다른 박스 기사는 그 첫째 증거로 “여전히 오프사이드 룰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항목을 기재함으로써 2002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선전을 편파 판정의 덕이라는 식으로 폄훼했다.

2004-5년경 <대장금>은 꺼져가고 있던 동북아시아에서의 한류를 회생시킨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대장금>은 여전히 만개하지 못하던 한류를 비로소 점화시킨 드라마였다. 2004년경부터 VCD를 통해 싱가포르에 보급되던 <대장금>은 2005년 케이블방송 방영, 2006년 공중파 방영을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대장금>은 남성우월주의와 신파성으로 특징지어지던 그 동안의 한국 드라마에 대한 편견을 불식했으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깊고 풍부하다는 새로운 인식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냉소적이던 남성 시청자들도 한류 팬으로 포섭할 수 있었다. 다소 비판적인 내용의 한국 특집호를 발간한바 있는 주간지 『8 Days』가 2005년 9월에 <살려줘요, 아직도 한국 열광에 중독돼 있어요! (‘Help! I’m still addicted to Koreamania!’)>라는 제목으로 한류에 관한 기획 특집호를 다시 발간했다. 2년 전과 비교해 그 논조가 상당히 달라졌다. 한 기사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 한국 영화, 드라마가 계속 수입되고 있으며 여자 골프와 축구에서 한국인이 국제적 명성을 떨치는가?” 라고 질문을 던진 후 그 이유를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잘한다. 모든 면에서 세계 일류 수준이다.”

싱가포르가 영어 상용국이라는 점은 싱가포르 문화지형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주민의 뛰어난 영어 구사력은 다른 아시아 지역에 비해 영미문화에 대한 높은 노출을 가능케 만들었으며, 특히 젊은 층의 서구문화 감수성은 매우 높다. 한국 드라마가 스토리를 중심으로 해서 싱가포르 중년층을 포섭하였다면, “아시아적 개성”을 담은 서구적 음악(중독성 있는 후크송, 신나는 박자와 댄스, 자신감 넘치는 랩 등으로 구성됨)인 K-pop은 이미 세련된 귀를 갖게 된 싱가포르 청소년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드라마가 주요소였던 과거의 한류와 달리 K-pop이 중심이 된 현재의 한류가 싱가포르에 쉽게 안착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더불어 k-pop 가수들이 동남아 공연을 할 때에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k-pop 의 인기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구매력이 약한 국가에서보다는 싱가포르를 주요 공연 장소로 삼고 있다는 점이 한류 2.0 시대라고 하는 현재, 싱가포르에서의 한류가 강세를 보이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슬람 문화권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지만 화교의 높은 인구비율 덕에 동북아적 성격도 동시에 갖고 있다. 더욱이, 국제 무역항으로서 동서양 문화의 교차로라는 특색은 한국 문화콘텐츠의 세계 진출의 테스트베드(test bed)로서 싱가포르가 갖고 있는 중요성을 더해갈 것이다.

 

참고문헌
심두보 (2006). 싱가포르의 한류와 디아스포라적 TV 드라마 수용. 방송문화연구18(1), pp. 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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