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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흑해, 불가리아와 多문화성

불가리아 김원회 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스불가리아어과 교수 2012/10/29

고대 시대에는, 최초로 흑해를 찾아온 그리스인 항해가가 연안에 살던 원주민에게 사살되었기 때문에 이 바다를 “폰토스아크세노스”라고 불렀다. 이것은 “이방인에게 비우호적인 바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기원전 8∼6세기에 흑해 연안에 올비아·판티카파이온·시노페 등 그리스의 식민 도시가 발달하여 내륙의 스키타이인이나 사르마트인들과 곡물·노예·포도주·무기 등의 교역으로 번영하였기 때문에 “이방인에게 우호적인 바다”라는 의미를 지닌 “폰토스에우크세이노스”로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다. 기원전 1세기에는 폼페이우스의 동방 진출로 흑해 남서해안이 로마령에 편입 되었고 이어 기원전 2세기 초에는 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하여 연안의 대부분이 로마 제국에 편입, 로마 제국의 내해가 되어 비잔틴 제국에 계승되었다. 슬라브인들이 흑해 북서 해안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6∼7세기이며, 9∼12세기의 키예프 루스(러시아) 시대에는 '루스의 바다-러시아인들의 바다'라고도 불렀다. 13세기에는 몽골인의 유럽 침입에 의해서 슬라브 세력이 한때 후퇴하였고, 이어서 15∼16세기에 오스만 터키 제국이 연안지역을 정복하고 오스만 터키의 바다가 되었고, 이때부터 비로소 “흑해1)” 라고 불리게 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오스만 터키 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러시아의 남진이 재개되어(17세기 말), 표트르 대제의 아조프 지역 점령에 이어 수차례에 걸친 러시아-오스만 터키전쟁에서 러시아는 차차 흑해의 지배권을 장악하였다. 오스만 터키 제국의 붕괴이후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터키 등의 민족 국가로 분화되면서 이 지역은 절대적인 지배 세력이 없는 지역이 되었다.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독립국이 되면서 흑해 지역의 서부는 서유럽의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었다. 이 시기가 역사적으로는 18∼19세기이다. 이윽고 지중해로 진출할 태세를 갖춘 러시아는 그 세력을 점점 확장해 나갔는데, 여기에 열강(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가 충돌, 결국 크림 전쟁(1853∼1856)이 발발하게 된다.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패배하여 기득권(특히 흑해 함대 보유권과 연안 요새 구축권)을 상실하고 흑해의 중립화가 확립되었다. 러시아는 그 후에도 집요하게 지배권의 회복을 도모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로잔 회의(1922∼1923)와 몽트뢰 회의(1936)를 거쳐 현재 흑해는 모든 나라 상선에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군함에 대해서만은 연안에 영토가 없는 나라는 제한(45,000t 이상은 집결할 수 없음)을 받는다. 출입구인 보스포러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의 군함 통항권도 끊임없이 국제문제가 되고 있다. 터키는 전시에 한해 이 해협을 모든 나라의 군함에 대해서 폐쇄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1) 흑해라고 불리게 된 연원은 확실치 않으나, 당시 흑해의 광막한 바다에서 항해 중에 이따금 때 아닌 폭풍이나 짙은 안개로 위험에 휩싸이게 되는 데서 흑해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시작된 냉전 질서 속에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소비에트 진영에 편입되었고, 그리스 역시 공산화의 위기가 있었으나, 영국의 개입으로 공산화는 좌절되었다. 이후 흑해 지역은 소비에트 연방에 소속된 흑해와 소비에트화 된 흑해지역(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지역), 친 서방 지역으로 NATO 안보체계에 속하며 경제 체제 상 자본주의의 성격을 띤 지역(그리스, 터키)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소비에트 체제는 1989년 붕괴되었고, 이후 이 지역은 다시금 절대적인 지배질서가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흑해지역은 지정학적으로 볼 때, 유럽, 중앙아시아, 중동의 교차로이며,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상이한 문명이 서로 충돌하는 지역이었다.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후 유럽의 기독교 세력과 러시아 정교 세력, 오스만 터키 제국의 각축장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 질서 속에서는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첨예한 대립의 현장이었다. 특히 근대에 들어와 흑해지역의 패권은 크게 두 세력2)이 장악하게 되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첫 번째 세력은 오스만 터키 제국이다. 흑해 연안을 비롯하여 중부 유럽에 까지 세력을 넓혔던 오스만 터키 세력은 이슬람 전통을 이 지역에 심어놓았다. 현재 이 세력은 터키가 이어받고 있으며, 범 흑해지역 역내에 이슬람 국가들과 소수민족들로 유사 세력을 구성하고 있다. 두 번째 세력은 러시아를 중심점으로 하는 사회주의 세력이었다. 이들은 20세기 초 사회주의 혁명 후 흑해 연안에 사회주의 국가를 확장3)시키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문화 정체성 측면(Cultural identity)에서 이들은 사회주의, 소비에트 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러시아와 구 사회주의 국가들, 구 소비에트 구성 국가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분야별 친소관계를 흑해를 접해있는 6개국 중심으로 표로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2) 오스만 투르크제국이 범 흑해지역에 남긴 문화적 기억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슬람 세계제국으로서의 오스만 터키 제국이 남긴 기억이 있으며, 두 번째로 오스만 터키 쇠망기의 민족국가 건설과 근대화에 대한 기억이 있다. 러시아에 대한 범 흑해 지역의 기억은 먼저 러시아 제국주의의 확장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표트르 대제 이후 러시아는 흑해 영유권 선점 문제를 선결 과제로 삼았다. 그 이유는 발트 함대로서는 제해권을 영유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흑해와 보프러스 해협의 영유를 통해 지중해 진출을 꿈 꾼 것이다. 당시 흑해권을 영유하고 있던 오스만 터키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맞서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pan-slavism)을 제창하였다. 특히 1853-6년의 크리미아 전쟁과 1877-8년의 러시아-터키 전쟁, 1914년의 세르비아에서 러시아는 범 슬라브주의적인 민족주의에 기반한 정책을 펼쳤다. 특히 발칸반도에서의 범 슬라브주의는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제국과 독일 제국이 표방한 범 게르만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오경환 (2008) “다문화공간에서의 집단적 기억과 그 함의: 범 흑해지역을 중심으로” 『슬라브학보』23-4: 329-349에서 인용).

 

3)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루지아, 우크라이나 등이 대표적인 확장된 사회주의 국가들이다.

 

 

종교 중심

 
이슬람
(오스만 터키 및 피 지배 국가)
정교회
(러시아, 불가리아)
기타
정치체계 중심
소비에트연방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사회주의 국가
(불가리아, 루마니아)
친서방 국가
(터키)
민족 중심
슬라브계
(러시아,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그루지야)
라틴계
(루마니아)
아시아계
(터키)
세력 중심
러시아계
터키계
 

 

<표1: 흑해 문화지리지 표>
 
 
역내 국가들 간의 헤게모니 경쟁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이 지역의 맹주로 자처하는 러시아와 터키의 첨예한 대립은 크리미아 갈등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에 귀속된 크리미아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합병시키려고 애쓰기보다는 이해 당사국간의 우호선린관계 유지와 협력증진을 모색하면서 공존과 상호 발전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정책을 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일명 러시아의 유화적 남진 정책)이 터키의 북진정책과 맞물리면서 크리미아의 주도권을 놓고 격돌하게 된다. 그 구체적인 양상이 우선 크리미아 지역 내 소수 인종 “크리미아 따따르인”들 처리문제이다. 이 지역에는 친 러시아계 주민, 우크라이나 주민 그리고 크리미아 따따르인들이 소수민족으로 거주하고 있다. 친 러시아계는 크리미아의 루블 존(Rouble Zone) 잔류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중시민권 허용, 크리미아의 독립과 독립국가연합(CIS) 회원국 가입을 주장하고 있다. 세바스토폴의 자유경제지역 전환 문제도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양상의 대립은 러시아 흑해 함대의 처리를 놓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갖는 입장차가 잘 보여준다. 통제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심각한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구소련의 대표적인 함대. 우크라이나 크리미아반도 세바스토폴 항을 모항으로 하는 이 함대는 지중해에서 미6함대에 맞서는 전략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내에 기지를 두고 있는 흑해함대 중 비핵탑의 전력은 우크라이나에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독립국가연합의 전략통합군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크리미아의 영유권 분쟁과 흑해함대의 분할을 매듭짓는 문제, 세바스토폴을 비롯한 군항의 조차문제 그리고 크리미아 내부의 인종갈등에서 러시아인들의 권익을 수호하는 문제로 이 지역의 분쟁 현황을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지역 내 구성 집단인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그리고 크리미아 따따르인의 3각 구도가 흑해를 놓고, 지역적 패권 장악을 노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터키의 충돌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분쟁 외에도 흑해 지역에는 다양한 역내 국가들 사이의 분쟁4)이 상존한다. 상존하는 분쟁에도 불구하고, 흑해지역의 중요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흑해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본질적인 이유는 그 지정학적 중요성에 기인한다. 광의의 개념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트라세카(TRACECA)5)로의 중요 통과 지점으로 간주되는 흑해는 역 내외 교통, 통신, 무역 등 사회 전반적 중심지이다. 다음은 흑해가 현재적 의미에서 주목받고 이유들이다.
 
4) 대표적인 것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종족과 종교 분쟁: 코소보 분쟁,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2. 역내 간 국경분쟁: 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터키-그리스, 몰다비아-루마니아-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러시아.
 
5) “트라세카”라는 개념이 나타난 것은 1993년부터이다. 이것은 유럽에서 중앙아시아까지 동서축으로, 흑해를 지나 카프카즈, 카스피해를 지나 중앙아시아로 연결되는 도로, 철도, 항공 노선을 포함하는 국제운송회랑(International transport corridor)을 의미한다.
 
 
1. 문명의 교차로로서 영토, 인종, 종교 분쟁 등 국민욕구가 분출되는 지역
이 지역은 인종, 종교 등 문화의 다양한 모자이크 양상을 보이는 지역이다. 이러한 지역에서의 민주주의 여건 성숙과 인권 문제 등이 주요한 국제적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 냉전 이후 다자주의에 입각한 질서가 형성될 여건이 성숙되어 감
기존의 흑해지역 주도 세력이었던 러시아와 터키의 양강 구도가 약화되고 다자주의 협력이 필요한 지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 시기에 맞추어 프랑스 정부는 European Security and Defense Policy (E.S.D.P.)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미국과 영국 중심의 NATO 프로그램과 대립을 이루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흑해지역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발칸-중앙아시아 전략과 에너지 축에 의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광역화된 지역 협력기구로서의 G.U.U.A.M.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것은 역내 그루지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그리고 몰도바의 협력체이다. 향후 이 지역의 발전은 러시아의 전통적 패권주의, 미국의 새로운 접근과 EU 국가들의 확대 노력이 서로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그 중에서 미국과 독일의 관계 그리고 독일의 전략 선택이 위 3가지 개연성의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될 것이다.

3. 코카서스, 카스피해, 동부 및 남동부 유럽으로의 길목으로서 지리적 중요성 부각

4. 구소련의 위성국가들에서 서유럽화의 가능성이 있음
역내 구소련의 위성국가에서 EU 국가로 변신한 나라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들 수 있다. 2007년 1월 1일 이들 양국의 EU가입에도 불구하고,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모두 모스크바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에서 불가리아가 좀 더 러시아 쪽에 우호적이다. 이것은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종교적인)인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러시아와의 관계가 루마니아나 불가리아가 NATO나 EU내에서 능동적 역할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5. 서구기업의 카스피해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관심 증가
향후 EU 지역으로 수입되는 에너지 자원은 흑해를 통하게 될 가능성이 많은데, 현재 2020년에는 카스피해지역으로 부터의 총 수입량 중 70%를 흑해지역을 통해서 받게 될 전망이다. 

6. 이 지역의 분쟁이 서유럽에 위험요소로 작용 가능
이 지역의 민족 간, 종교 간, 영토 관련 분쟁은 인접지역인 서유럽지역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흑해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 테러조직원들의 활동 영역 확대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연합이 안전 면에서 특히 신경 쓰는 것은 불법이주(민), 마약운반, 테러리스트의 이동 등이 그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국제적 급진적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이동과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 확보도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위에서 보여 지는 바와 같이 다양한 부문에 있어서 흑해, 불가리아와 관련된 중요한 현안이 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현안의 해결을 위해서는 양자 혹은 다자간 협상과 협력이 필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양자 혹은 다자간 연합과 대립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흑해 지역의 한 국가가 다른 국가 혹은 국가 그룹과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 문화 간 소통 코드이며, 적절한 문화 간 소통 코드의 이용은 관계의 발전과 해당 사업의 성공을 담보해 주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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