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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국민들에게 ‘사랑받은’ 여성대통령, 미첼 바첼렛

칠레 이순주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부교수 2013/04/28

“레임덕” 대신, 국민의 84%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여성대통령이 있다. 미첼 바첼렛은 중남미에서 여성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나라 중 하나였던 칠레에서 첫 여성대통령직을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사회주의자이지만, 국익을 위해 이념보다는 실리적 정책, 그리고 타협과 대화의 정치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대통령시대를 맞게 된 만큼, 칠레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선이 칠레의 ‘라 테르세라(La Tercera)’라는 신문에서 지난 12월 17일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가 38.9%나 되며, OECD국가 평균 16%의 두 배 이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러한 보도는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앞서있는 국가이지만, 양성평등에서는 후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틀 뒤 한국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여성이 선택되었다는, 이틀 전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기사가 보도되었다. 또,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국회의석 10개 중 8개가 남성이며, 대부분의 기업대표와 기관장들이 남성인 국가의 수장이 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러한 상황은 그런 한국에서 어떻게 여성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을까? 혹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할 만 하다.

칠레에서는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박근혜대통령 당선자를 ‘전 독재자의 딸’ 혹은 ‘전 군부대통령의 딸’이라는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온도를 가진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라 테르세라’에서는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소개하면서 뭔가 적어놓지 않고는 연설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녀가 살아온 삶의 역정들로 인해 과도할 정도의 강인함을 지녔다고 말하면서, 그가 당선된 배경에 그의 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경제업적의 후광과 50-60대 유권자들의 결집으로 설명하고 있다. ‘엘 메르쿠리오(El Mercurio)’는 이번 선거에서 나타났던 세대 간 지지자 차이, 한국의 경제상황 등을 설명하고 박근혜 당선자에게 투표한 한 67세 주부와의 인터뷰 중 ‘믿어요,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해요’라는 한마디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성공에 대한 기대를 우회적으로 전했다.

올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간한 성평등에 관한 보고서에 의하면 칠레의 양성평등도는 세계 87위-라틴아메리카 국가들 대부분 칠레보다 양성평등도는 높다-로, 우리나라(108위)보다 양성평등도가 훨씬 높다. 하지만 칠레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보수적이다. 가톨릭전통이 매우 강하며, 2004년에 와서야 ‘이혼’이 법적으로 인정될 만큼 보수적인 국가다. 이러한 보수성은 칠레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등장될 가능성을 앞두고 각 정당마다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여성의 정치활동이나 능력을 폄하하는 발언과 이에 대한 공방들이 이어졌다. 이러한 발언과 공방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칠레의 첫 여성대통령 미첼 바첼렛은 임기말 84%의 경이로운 지지율을 기록했으며, 현재 집권중인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án Piñera Echenique)대통령에 이어 다시 대통령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모든 대통령들은 국민들의 높은 지지와 사랑을 받으며 임기를 마치는 것을 희망하지만,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바첼렛 대통령은 어떻게 칠레 국민들의 신뢰와 박수 속에 퇴임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미첼 바첼렛은 대학시절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비밀활동을 하다가 추방당해 해외를 전전하다가 칠레로 돌아와 의학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다. 민주화이후 군사정권기 동안 부친이 희생당했던 보상의 하나로 바첼렛에게 국립정치전략연구소와 미주안보학교 등에서 군사교육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바첼렛은 보건부장관 뿐만 아니라 칠레 최초의 여성국방장관도 역임하였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등장했던 과거 여성대통령들이 남편 후광을 입은 것이었다고 한다면, 바첼렛은 경험과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역량으로 대통령에 오르게 되었다는 점이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많은 정치, 경제, 지식엘리트들은 여성대통령의 등장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보수적인 엘리트들의 인식과 비난은 그가 갖춘 전문성과 경험에 대한 평가보다는 가톨릭 전통이 강한 국가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하지 않는 ‘불가지론자’이며, 세 명의 자녀를 둔 미혼모이기도 했던 이혼녀이며 모범적이지 않은 여성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는 데 있었다. 이에 더하여, 집권초기부터 이어진 사회적 갈등과 시위는 초기 65%였던 지지도가 임기 중반에는 44%까지 하락하게 되었다. 칠레교육시스템 개혁을 요구하면서 지속된 학생의 시위, 구리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익을 분배하지 않는 데 대한 야당의 반발과 구리노조의 파업, 전임 리카르도 라고스(Ricardo Lagos)대통령기에 도입되었던 산티아고 시의 신규교통시스템의 문제노출 등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바첼렛 대통령이 무능한 여성 지도자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첼렛은 시위나 반대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이들로부터 사회 내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기회로 받아들이고 이를 조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바첼렛은 취임 후 100일 동안 이행할 36개의 약속을 추진하기 위해 10개의 대통령 직속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이 위원회에서 연금개혁, 여성할당제, 경제정책 등 중요한 사안들을 다루었으며 필요한 경우 입법화를 위해 의회에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연금부분은 포퓰리즘적인 연금에서 벗어나 사회보장의 목적을 잘 살린 매우 정교하고 광범위한 개혁안이 제시되었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원회를 통한 정치가 민주화이후 유지되어 온 전통인 ‘콘세르타시온’ 내 ‘정당 간 협의’가 상실되었고, 중요 정책들은 국회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기도 했다. 이에 바첼렛은 여당연합에 소속된 4개의 정당대표가 참여하는 ‘정치위원회’를 매주 개최하며 정책과 정치적 상황에 대해 분석해 왔다. 이러한 방법은 바첼렛 정부에서 처음 시도된 것으로서 바첼렛이 보다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상호적인 ‘여성적 리더십’을 통해 다양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바첼렛은 인기를 얻기 위한 사회경제정책을 펼치지 않았다. 경제는 철저하게 실용적으로 유지되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심화된 양극화에 대해서는 극빈층에 대한 사회적 보호망의 강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특히 경제운용에서의 성공은 보수적 엘리트들도 바첼렛을 신뢰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야당과 구리노조의 이익배분에 대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구리가격 상승에 따른 부를 사회복지를 위해 활용했다. 또 2008년 구리가격 급락으로 인한 경제위기에서 강력한 경기부양정책을 수행하는데 활용하여 위기를 극복했다. 그 외에도. 탁아소 건립, 연금제도 개혁, 여성폭력 법 제정 등 다양한 사회복지 정책을 수행하여 나타난 긍정적인 결과들은 그들의 관점을 바꿀 수 있었다.

두 나라는 지구 반대편에 있으며 다른 점도 많지만, 닮은 점도 많다. 칠레와 우리나라는 군사정권기를 겪었고, 칠레의 기적,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두 나라 모두 매우 보수적인 나라에서 여성대통령을 배출하게 되었다.

미첼 바첼렛은 칠레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이지만, 여성대통령으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여성대통령으로서 시도했던 참여와 대화의 정부, 시민들과의 솔직하고 직접적인 관계구축 등 정치와 사회의 대 연대를 이루려는 시도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은 국민들의 가장 높은 신뢰를 받는 대통령이 되었다. 바첼렛이 대통령 당선 후 시행한 첫 번째 연설 중 한마디는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온다. “국민은 진실을 원합니다. 시민들과 솔직하고 직접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알라메다에서 제가 말씀드렸듯이, 제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한 대로 하겠습니다.”모든 긍정적인 관계는 솔직함과 신뢰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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