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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쿠바의 종교 및 문화 정체성으로서 산테리아의 어제와 오늘

중남미 기타 박종욱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2013/04/23

 현대 쿠바의 종교문화적 특성을 살펴보면, 쿠바에는 이른바 ‘종교적 르네상스(Religious Renaissance)’라 불릴 만큼 종교적 요소의 다양성이 두드러진다. 산테리아를 중심으로 아프리카계 종교 의례와 행위가 현재적 시점에서 공공연하게 활성화되어 있는 ‘변화된 상황’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 요소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은 다분히 인종과 문화의 충돌에 의해 수백 년 동안 형성된 복합적 결과물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노동력을 대체할 필요성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주된 서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민속 및 의례를 들여오게 되었으며, 그들의 신앙은 쿠바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산테리아라는 이름(지역과 유형, 목적 등에 따라 'Regla de Ocha', 'Ocha', 'Culto a los orichas'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으로 토착화를 경험한다. 산테리아는 서아프리카 신앙이 노예무역과 노예노동 때문에 이산(diaspora)을 겪으면서 아메리카의 종교문화 환경의 주도적 세력이었던 가톨릭과 만나 변형되고 유지 발전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대표적인 혼합종교의 한 형태로서, 쿠바를 중심으로 분포된다. 노예선은 대체 노동력으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들여왔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의 문화와 종교도 들여오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식민지배자의 종교인 가톨릭과 흑인노예들의 종교인 요루바(Yoruba) 신앙과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마술과 종교, 의례, 춤, 음악과 무속이 뒤엉킨 파생물을 만들었고, 오늘날 쿠바의 독특한 종교와 문화적 배경이 되었다.

 식민 시대 대단위 농장을 형성하던 쿠바 사회에서는 원주민 인력을 대체하여 수입된 노예 노동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아프리카 노예들은 출신 지역에 따라 집단거주 지역인 까빌도(cabildo)에 거주하며 노동인력의 관리와 통제를 위해 가톨릭으로의 개종이 권장되거나 강요되었고, 자신들의 문화 정체성을 비밀스럽게 유지하기 위해 가톨릭 성인들의 성화를 외형적 포장으로 삼아 자신들의 전통 신앙을 일상 속에서 추억하고 숭배하였다.

 물론, 까빌도에서의 종교 활동이 늘 금지되고 통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낯설고 호전적으로 생각되던 아프리카계 신앙의 의례들은 까빌도를 중심으로 자율적 방식으로 인정되는 편이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아프리카계 신앙은 포괄적 의미에서 문화 활동으로 간주되었고, 음악과 춤 등을 곁들인 그들의 의례는 식민지배자들이 반드시 통제해야할 부정적 대상으로 비쳐지지는 않았다. 1886년(브라질은 1888년) 노예무역이 완전히 금지될 때까지 서아프리카에서 유입된 흑인 노예들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났으나, 아바꾸아와 빨로 몬떼, 산테리아 등 아프리카계 쿠바 종교는 여전히 까빌도와 도시 외곽 지역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도시 내부로의 진입은 느슨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인종적으로 물라또(흑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였던 바티스타 대통령은 산테리아 의례에 참석함으로써 혼혈과 흑인 시민들의 공감대를 자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쿠바 혁명은 산테리아의 운명을 뒤흔들었고, 혁명을 계기로 쿠바를 떠난 많은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미국과 베네수엘라, 멕시코, 콜롬비아 등지에서 광범위한 종교 확산이 이뤄진 것은 요루바 신앙의 2차 이산(Diaspora) 형태이며. 그 결과 최근에는 멕시코와 미국 등지를 포함한 아메리카 대륙 전역으로 확장되는 기세가 두드러진다.

 혁명 초기인 1960년대에는 까빌도(Cabildo)에 대한 긍정적 평가의 일환으로서, 산테리아는 저항정신의 종교문화적 파생물로 간주되어, 긍정적 인식의 대상으로 평가되기도 하였으나, 쿠바 혁명 시각에 있어서는 사회에 저해되는 요소로서 평가되었고, “고통을 마비시키는 술이나 마약”으로 치부되거나, 단순하게 흘러간 과거의 유산으로서 아프리카계 쿠바 민속(folclor afro-cubano)으로 인식되곤 하였으며, 1976년 개정 헌법의 “모든 쿠바 시민은 종교적 신념을 수행하거나 신봉하는 자유를 지니며, 법령과 공안(公安), 시민 건강 및 사회주의 윤리 규정은 이를 존중할 것이다”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공식적으로 산테리아가 쿠바 사회주의 사회에서 금지 대상인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여전히 산테리아의 많은 의례적 행위에 대한 쿠바 정부의 의혹과 통제의 인식적 대상이었다.

 70년대와 80년대 기니나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정상들과의 정상외교의 장소에서 카스트로가 흰 색상의 산테로 복장을 했던 것은 외교적 전략 때문이었지, 쿠바 사회에서의 종교 및 문화적 관용과 포용으로 확대 해석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산테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계 쿠바 종교에 대한 쿠바 정부의 입장은 이념적 자유와 의례적 다양성을 허용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프리카계 쿠바의 문화 정체성의 형성 과정과 노예 노동력의 저항정신에 대한 긍정적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유연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녀왔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산테리아를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계 쿠바 종교에 대한 쿠바 정부와 교회의 입장은 협력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쿠바 정부의 입장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탓이다. 아프리카계 쿠바 신앙의 지도자들은 가톨릭교회가 자신들의 종교 및 문화적 의례와 행사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유연한 입장을 취하기를 부탁하지만, 가톨릭교회는 쿠바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핑계 삼아, 해외 관광객들을 통한 외화 수입을 염두에 두며, 은근히 아프리카계 쿠바 종교의 의례를 관광 상품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불만을 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테리아를 축제 문화의 의미로 단순화하는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가톨릭과 산테리아는 본질과 유래를 달리하는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모두 신과 개인이 매개적 존재인 성인들의 안내를 받는다는 구도에서는 공통 요소를 공유한다. 이는 두 종교의 융합을 가능하게 한 공통된 내용이다. 요루바 신앙의 가톨릭과 합체의 결과물은 성모 공경을 포함하여, 다양한 성인에 대한 공경과 물신적 의존의 형식으로 파생되어 나타나는 데, 이 과정에서 가톨릭 사제와 산테로(Santero)는 초자연적 신의 섭리와 원리를 해석하여 제공하는 통역자(traductor)의 역할을 수행한다. 가톨릭 사제는 주술적 문화양태를 주도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상대적으로 차별되기는 하지만, 입문자 혹은 신앙인으로서 개인이 신의 계시와 징표를 인지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매개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가톨릭 사제와 산테로는 종교의 본질적 유사성을 공유하는 것이다.

 물론, 성인과 오리샤의 유사성은 종교적 역할 및 기능과 의례적 상징이 지닌 유사성으로 연결되며, 도상적 특성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산테리아와 가톨릭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데에 있다. 역사적 배경을 달리하면서, 때론 가톨릭이 산테리아를 숭배하기 위한 방패막과 외투이기도 하였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 본질적으로 이질적 요소를 포함한 두 종교가 하나로 융합되어 그 구분이 불명확하게 되는 시점에 이르기도 한다. 델 라 또레는 쿠바 산테리아의 종교적 정체성과 관련해서, “우리는 정통 로마 가톨릭 신자이다. 다만, 우리는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믿는 것 뿐이다.”라고 고백한다.

 쿠바 사회주의 혁명이 40년을 바라보는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쿠바를 방문했을 당시, 쿠바 가톨릭 신자는 공식적으로 4백만 명에 달했으며, 이는 전체 인구 1천 1백만 명의 36%에 해당하는 수치였으나, 대부분은 형식적으로 가톨릭 신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산테리아에 고무되어 있어서, 일상적으로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정규적인 신자는 평균 십오만 명이 고작이었다는 사실은 쿠바 역시 다른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처럼 형식적 신자들의 비율이 쇠퇴하는 한편 개신교 신자들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산테리아로 대표되는 아프리카계 쿠바의 혼합 종교를 믿는 신자들의 숫자가 5백만 명으로 추산되고,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가톨릭을 공식적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에서 무엇보다 쿠바 사회에서 독특한 현상으로 존재하는 가톨릭과 산테리아의 독특한 융합 관계가 종교와 문화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식함으로써, 쿠바인들의 의식구조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산테리아는 쿠바의 역사적 환경과 맥락에서 이질적 종교 문화의 다양한 요소들로 형성된 융합형 종교이며, 21세기 종교문화 환경에서 쿠바의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할 뿐 아니라, 쿠바의 사회적 건전성 진흥과 사회적 연대감을 위해 견고한 긍정적 요소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쿠바 사회에서 산테리아의 사회문화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이다.


※참고문헌 및 출처

박종욱(2013). "산테리아에 대한 쿠바 대학생들의 인식 연구". 『중남미연구』. 제32권. 1호.
Ciattini, Alessandra(2010). "Sincretismo y sincretización. Dos ejemplos cubanos". Caminhos. Vol. 8. Nº 2. jul./dez/ Goiânia.
Guanche, Jesús(2009). "Santería cubana e identidad cultural". Estudios afroamericanos. Biblioteca virtual. <http://www.archivocubano.org/sant_iden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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