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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렌드

푸틴과 러시아 신흥엘리트그룹 소고(小考)

러시아 기연수 - - 2013/04/25

 어느 한 나라의 체제전환기는 물론 정권교체기에 있어서 그 나라의 정치ㆍ경제ㆍ사회 변동의 상황과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해 시기 그 나라 파워 엘리트그룹의 성향에 대한 고찰이 가장 적절한 방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 파워 엘리트들은 “국가의 전략적 정책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받은 인사들이거나 혹은 특정한 국가정책의 추진을 차단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1)”이기 때문이다. 즉 보다 우수한 능력을 갖고서 높은 지위에 올라 강력한 정치ㆍ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 또는 집단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엘리트 또는 엘리트그룹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사회학자 모스카(G. Mosca, 1858~1923)는 고전적 의미의 엘리트주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모든 사회에는 두 가지의 계급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엘리트라는〕통치계급이요, 다른 하나는 통치를 당하는 계급이다. 통치계급은 수적으로 열세이나 모든 정치적인 기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독점하며, 그 권력이 만들어내는 이익을 향유한다.2)” 나아가 동시대의 파레토(V. Pareto, 1848~1923)는 엘리트를 권력과 연관 지어 설명하면서 “한 사회에서 직ㆍ간접으로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엘리트를 통치엘리트라고 할 수 있으며......통치엘리트에는 직접 정치에 종사하는 직업적인 정치ㆍ관료엘리트, 그 밖에 군사엘리트, 종교엘리트, 기업엘리트 및 문화엘리트 등이 포함 된다3)”고 지적하였다.

   이상과 같은 엘리트에 대한 여러 고찰들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면서 이를 현대 러시아의 체제전환 및 정권교체와 연관 지어 생각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러시아의 파워 엘리트그룹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 Номенклатура)라는 소비에트 러시아 시대의 엘리트그룹, 소비에트체제 붕괴와 더불어 나타난 체제 이행기 옐친 시대의 올리가르히(Oligarch, Олигархи)라는 엘리트그룹, 그 후 강력한 국가건설의 지향과 더불어 체제안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 푸틴 시대의 실로비키(Siloviki, Силовики)라는 신흥(新興)엘리트그룹을 들 수 있다.

   원래 ‘특권을 갖는 간부직 리스트’라는 의미의 라틴어 Nomenklatura를 그대로 옮겨다 쓴 러시아어 노멘클라투라(Номенклатура)는 레닌의 직업적 혁명가 시대를 지나 스탈린의 집권 이래  소비에트 러시아(소련)의 체제 유지를 위한 특권적 지배계층의 간부직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러한 노멘클라투라가 되기 위해서는 당시 당기관의 지도적 간부의 추천을 받고 당 간부회의에 의한 임명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노멘클라투라가 되면 높은 소득을 보장받고 여러 특권을 누리게 되는 외에 고급 아파트와 별장(dacha, дача)이 주어져서 이들을 별장을 가지고 있는 특권계층이라는 뜻으로 다차족(族)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최상급 노멘클라투라라고 하면 바로 소비에트 러시아시기 최고 정치ㆍ경제권력 엘리트로서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정점으로 하는 10명 미만의 당 정치국원과 정치국 후보위원 및 당 중앙위원들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멘클라투라 중에는 훗날 체제 전환기인 옐친 시대에 기업가로 변신하여 정경유착과 더불어 마피아 조직과도 손을 잡으면서 크게 권력과 부를 축적하여 이른바 ‘노멘클라투라-올리가르히’라는 새로운 정치ㆍ경제엘리트그룹으로 등장하게도 된다.

   ‘과두제 지배자, 과두정치의 집정자’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Oligarch에서 유래한 러시아어 올리가르흐(Олигарх)의 원래적 의미는 역시 ‘과두지배자’를 의미하며, 이 단어의 복수형이 바로 올리가르히(Олигарх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올리가르히라는 말이 소련의 붕괴ㆍ해체 이후 체제 이행기인 옐친 시대 민영화 과정에서 정경유착의 과정을 통해 석유와 천연가스, 광물 등 주요 천연자원과 국가 기간산업의 사유화 및 은행을 포함한 금융, 유통, 언론ㆍ통신 등의 분야를 장악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산업금융과두재벌을 가리키는 용어로 전환되었다. 결국 올리가르히라 불리는 이들 러시아 산업ㆍ금융ㆍ언론 과두재벌은 그 막강한 부를 이용하여 옐친의 재선을 돕는 한편 마피아와도 결탁하면서 더욱 많은 부를 축적함과 동시에 국가권력을 사적인 영역에까지 끌어들였다. 그 결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 권력의 복원을 통한 법치(法治) 위에서 러시아를 재건하고자 했던 푸틴은 이제 국가권력에 대한 간섭과 통치권에 방해가 되는 압력그룹으로 변모해버린 올리가르히라는 경제파워엘리트그룹을 정치권 밖으로 내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올리가르히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옐친 시절 정ㆍ재계를 호령했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B. Berezovsky)이다.

    1996년 옐친의 재선을 도움으로써 크렘린 내의 정치적 킹메이커이자 옐친 패밀리의 확고한 일원으로 자리 잡은 베레조프스키는 국가안보회의 부서기, CIS 집행위원회 사무총장 등의 권력 요직을 맡았었다. 동시에 그는 TV방송 ORT, 주요 일간신문 콤메르산트(Kommersant), 네자비시마야 가제타(Nezavisimaya Gazeta) 등을 확보함으로써 언론까지를 장악함은 물론 지방권력 및 마피아 등과도 거래하여 1990년대 중반에는 러시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이러한 베레조프스키는 처음 푸틴의 출세를 도왔지만 이내 푸틴과의 갈등 속에서 2001년 영국으로 망명한 뒤 지속적으로 反푸틴 비판활동을 벌이다가 결국 지난 3월 인생의 회한 속에 조국을 그리며 숨을 거두었다. 또 다른 反푸틴 과두 언론재벌 올리가르히 블라디미르 구신스키(V. Gusinsky) 역시 2000년 강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한 유리 루쉬코프(Yuri Luzhkov) 모스코바 시장 편에 섰다가 푸틴의 미움을 받아 사기혐의로 2003년 이래 유럽 각국을 떠도는 방랑인 신세가 되어 있다. 또한 푸틴 집권 초기 러시아 최고의 부자로서 막강한 석유재벌이었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M. Khodorkovsky)는 권력을 향해 푸틴에 맞서다가 결국 탈세ㆍ횡령혐의로 재산을 몰수당한 채 2003년 이래로 10년째 옥중생활을 하고 있다.

   반면에 푸틴의 정경유착 고리 단절에 동참하면서 중앙권력으로부터 멀리 떠나 극동 츄코트주(州)에 머물면서 주지사직을 맡고 있는 한편 영국 프로축구팀 구단주이기도 한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R. Abramovich)는 오늘날 푸틴 시대의 권력엘리트인 실로비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올리가르히-실로비키로서 건재하고 있다. 아브라모비치보다는 약간 뒤처지지만 알루미늄의 제왕으로 푸틴 집권2기 종반 러시아 최대 부호였던 금년 나이 약관 45세의 올렉 데리파스카(O. Deripaska) 역시 오늘날 여전히 푸틴의 총애 아래 2012년 9월 블라디APEC 비즈니스포럼 주관, 정부 내 국제무역위원회 위원장, 러시아산업ㆍ기업가 동맹(RSPP) 부회장 등으로 올리가르히-실로비키로서 건재하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힘, 에너지 때로는 폭력, 복수명사로 쓰일 때는 ‘어떤 특징을 갖는 사회계층’까지를 의미하는 러시아어 실라(sila, сила)라는 말로부터 파생된 실로비키(Siloviki, Силовики)라는 용어는 푸틴 시대의 러시아에서 정치ㆍ경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권력엘리트그룹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이들은 푸틴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은 주로 옛 소련시절의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그 후신인 오늘날 러시아 연방의 연방보안국(FSB)을 비롯한 정보기관 및 군부 출신으로 푸틴 집권기에 권력 최상부의 핵심으로 떠오른 인물들이다. 그 대표적 인물들이 바로 전 부총리로서 현 로스네프트(Rosneft) 회장인 이고르 세친(I. Sechin), 정부와 국영기업의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대통령부 부장관 빅토르 이바노프(V. Ivanov), 국가안전보장회의 서기 니콜라이 파투르셰프(N. Patrusev), KGB를 거쳐 국방장관과 부총리를 지낸 뒤 대통령 행정실장 자리에 오른 세르게이 이바노프(S. Ivanov), 푸틴의 KGB 후배인 세르게이 나르이쉬킨(S. Naryshkin) 현 국가두마(하원) 의장, 러시아 비상사태부 장관과 모스크바州 지사를 거쳐 현 국방부장관에 이른 세르게이 쇼이구(S. Shoigu), 검찰총장 블라지미르 우스티노프(V. Ustinov) 등이 오늘날 대표적인 실로비키에 속한다.

   한편 엄격한 의미에서 오늘날 강력하게 정경분리의 원칙을 내세워 올리가르히의 정치권에 대한 개입이나 간섭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푸틴 시대에 즈음하여 그래도 거대한 부를 축적함으로써 실질적 경제파워엘리트를 구성하고 있는 이른바 올리가르히-실로비키로 불릴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2013년 3월 포브스(Forbes)지 선정 러시아 재계 10대 재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부의 순서대로 알리셰르 우스마노프(A. Usmanov), 미하일 프리드만(M. Fridman), 레오니드 미헬슨(L. Michelsn), 빅토르 벡셀베르크(V. Vekselberg), 바기트 알렉페로프(V. Alekperov), 안드레이 멜니첸코(A. Melnichenko), 블라디미르 포타닌(V. Potanin),  블라디미르 리신(V. Lisin), 겐나디 팀첸코(G. Timchenko), 미하일 프로호로프(M. Prokhorov) 등이 그들이다4). 주목할 것은 이들이 모두 한결같이 석유, 천연가스, 철강 등 천연자원 및 은행관련 재벌들이며, 정치적으로는 특별히 드러나지 않게 푸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권력엘리트 실로비키와 직간접으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러시아에서는 과거 소비에트 러시아 시대의 노멘클라투라이건, 옐친 시대의 올리가르히건, 푸틴 시기의 실로비키 또는 올리가르히-실로비키라는 신흥엘리트들이건 집단주의적 중앙집권주의라는 러시아 정치문화의 특성 위에서 전통적으로 최고 통치권자의 정치ㆍ경제적 지배권 행사에 강력히 얽매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러시아와의 관계를 발전ㆍ심화시키거나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신흥엘리트그룹 중에서도 푸틴과의 인맥관계가 가장 밀접한 실로비키ㆍ올리가르히-실로비키 파워엘리트를 찾아 나서야만 할 것이다.

 

1) Michael G. Burton and John Higley, "Elite Settlement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Vol. 52(June 1987), p. 296. 周長煥ㆍ朴正鎬, “체제전환기, 중ㆍ러 정치엘리트 비교 연구:특성과 형성배경을 중심으로,” ⌜中蘇硏究⌟, 제34권 제1호, p.110에서 재인용.
2)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8872(2013.4.18일 검색)
3)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ewahee&logNo=80012548381(2013.4.18일 검색)
4) 이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보는 최근 출간된 김병호, ⌜올리가르히⌟(서울: 북퀘스트, 2013), pp. 243~351을 참고.

 

기연수

한국외대 명예교수, 한러교류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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