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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아제르바이잔 유로비전(Eurovision) 2012: 정치-경제적 함의

아제르바이잔 오종진 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 교수 2012/02/17

막대한 유전개발로 인해 ‘불의 나라’ 로 알려진 아제르바이잔은 이미 100년 전인 1900년대 초반부터 석유가 본격적으로 개발된 국가이다. 중동의 석유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부터 이미 아제르바이잔은 세계적인 산유지로 주목을 받았을 정도로 석유 생산의 역사가 깊다. 1991년 독립과 함께 아제르바이잔은 서구의 지원과 투자로 자국 내 막대한 유전 및 송유관 개발을 통해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다. 특히 2006년 이후 아제르바이잔은 BTC송유관의 완공과 국제적 고유가로 인해 많은 오일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아제르바이잔은 20%대 이상의 초고도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곧 현 정권의 안정화 기재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아제르바이잔은 독립 이후 다른 구 소연방 국가와는 다르게 비교적 안정된 정치-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지만 아제르바이잔의 대외 인지도와 평판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카프카스지역의 맹주 또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허브국가를 자처하는 아제르바이잔이지만 실제적인 아제르바이잔의 국제적 위상은 매우 미비한 실정이다. 실례로, 필자가 아제르바이잔으로 세미나나 연구출장을 간다하면 많은 주변 지인들은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의 오지국가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비단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 및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어쩌면 독립한지 20년 정도 된 대한민국 면적만한 인구 800만 정도 국가가 가지는 한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제르인들은 페르시아의 사파비왕조를 창건한 후예로 1918년에 이슬람권 최초의 공화국을 설립하여 올해로 94년 된 아제르바이잔공화국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들은 민족적 자긍심과 아제르바이잔공화국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러한 아제르바이잔은 2012년 용의 해를 맞이하면서 승천하는 용의 기운처럼 저 평가된 그들의 국가이미지 형성 및 개선의 기회를 가지고자 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은 2012년을 국가 브랜드 메이킹을 통해 아제르바이잔의 국제적 비상을 꿈꾸는 원년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국제적 브랜드 메이킹을 가능하게 할 2012년의 대망의 이벤트는 금년 5월 22일부터 26일 개최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이다(Eurovision Song Contest 2012). 아제르바이잔은 2011년 독일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에르달(Eldar Gasimov: 영어예명 Ell)과 니가르(Nigar Jamal: 영어예명 Nikki) 듀오가 소비에트 구성 공화국 출신으로는 최초로 우승을 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은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았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1956년부터 유럽방송연합회 (European Broadcast Union)가 주최하여 8억 유럽인들이 즐기는 유럽 최대의 문화 축제이다. BBC보도에 따르면 유로비전은 매년 1억명 이상의 유럽 시청자들이 직접 실시간 투표하여 유럽 최고의 노래를 선정하는 방송행사로 국제적(정치-경제-사회-문화적) 영향력이 큰 행사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그룹인 아바(ABBA)와 가수 셀린 디옹도 유로비전을 통해 세계 음악 시장에 데뷔할 정도로 유로비전은 많은 가수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가수들의 국제무대 등용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실제 주최국의 국가 인지도 상승 및 자국문화 소개, 그리고 관광산업 활성화 등과 같은 많은 부수적 효과를 가지고 있어 참가국들의 경쟁과 막후 지원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우승 가수 출신의 국가가 차기대회를 주최하기 때문에 더욱 참가국들의 관심과 지원이 많다.

따라서 최근에는 참가국들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대한 국제정치적 역학관계가 상당수 작용한다고 하여 유로비전 대회가 국제적 문화 이벤트로서의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 특히 최근에 독립한 유럽의 신생국가들이나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국가들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유치하여 자국의 이미지 개선 및 홍보효과를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2008년 우승국인 러시아는 유로비전 개최를 통해 자국의 현대화된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 줌으로써 러시아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러시아는 이때 수백만 유로를 투자하여 기존의 어떤 유로비전 대회보다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며 수억 명의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이를 통해 좀 더 긍정적인 러시아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알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최다 우승국인 아일랜드 역시 유로비전 우승과 대회 주최를 통해 자국의 홍보 및 경제적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아일랜드는 경제위기에 대회를 주최함으로써 자국민의 단결과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꿈을 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작년 개최국인 독일 역시 약 5일간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행사를 보기 위해 약 7만명의 관광객이 입국했다고 한다.

아제르바이잔 유로비전 2012에 대한 동상이몽

유로비전 대회 같은 인지도 있는 국제행사를 유치한 아제르바이잔은 이번 대회 개최를 통해 그동안 아제르바이잔이 이루었던 경제적 성과를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자국민들의 애국심 함양 및 국가 이미지 개선의 기회로 삼고자 하고 있다. 또한 현 정권은 2013년에 있을 대권선거에서의 중요한 대외 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행사와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바쿠는 국제적인 홍보를 위해 새롭게 단장되었으며 많은 초고층 빌딩들이 해안가 중심으로 속속 들어서고 있다. 바쿠 시내를 거닐다보면 초고층 건물들로 깔끔하게 단장된 부산 해운대지역이 생각난다. 아제르바이잔에게 있어서 2012년은 한국이 성공적인 88올림픽대회 개최를 통해 얻었던 많을 것을 이룰 시기라 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국민적 단합 및 자긍심 함양을 통한 국내정치의 안정화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의 국제적 위상 제고 및 인지도 상승을 꾀할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아제르바이잔의 유로비전 우승과 대회 개최는 영부인인 메흐리반 아리예프(Mehriban Aliyev)가 이끌고 있는‘하이다르 알리예프재단’ (Heydar Aliyev Foundation)의 오랜 투자와 지원으로 가능한 결과였다고 홍보하고 있다. 현재 아제르바이잔 관료들은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의 음악 및 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그리고 외교적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작년의 아제르바이잔 유로비전 우승에는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2008년부터 대회에 참가한 아제르바이잔이 단 4년 만에 대회 우승이라는 성과를 이루어 내어 더욱 그렇다.

아제르바이잔은 유로비전 대회 우승을 위해 주변 우방국들과 유럽 전역에 살고 있는 아제르 디아스포라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실시간 투표에서의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터키를 비롯한 다른 투르크계 민족(우즈베크, 카자흐 등) 단체와도 공조를 했다. 작년 독일대회에서 아제르바이잔 듀오 에르달과 니가르는 아제르바이잔의 우방국인 터키, 러시아, 우크라이나, 크로아티아, 몰도비아, 루마니아 그리고 그리스, 몰타로부터 최고점인 12점을 받음으로써 우승을 할 수 있었다.

우승 당시 가수 에르달은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승리는 전 튀르크 세계의 승리라 말하기도 했다. 특히 우승 발표 후 니가르는 터키국기를 들고 나와 자축하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터키를 비롯한 유럽의 터키계 디아스포라 그룹들을 고무시켰다. 이에 터키 대통령 압둘라 귤은 즉시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에게 축하 전화를 걸어 양국의 형제애를 국제사회에 과시하기도 했다. 유로비전의 정치화에 대한 비판이 이와 같은 이유로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최근 몇 년간의 노력으로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영부인인 메흐리반 알리예프가 아제르바이잔 유로비전 2012 조직위원장을 맡아 막바지 행사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막대한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아제르바이잔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바쿠의 국기광장(Dövlət Bayrağı Meydanı)에 2만3천석 규모의 대규모 콘서트홀을 독일의 최신식 공법을 통해 3월 말에 완공할 예정이다. 크리스탈홀(Crystal Hall)이라 불리는 이 초현대식 공연장을 통해 아제르바이잔은 자국의 현대적인 면모와 경제발전을 유럽 및 세계의 대중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아제르바이잔 조직위원회는 2012 아제르바이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행사로만 약 6만명의 관광객이 자국을 방문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하는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계획대로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영부인과 일함 알리예프의 인기는 치솟을 것이며 이는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된다.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이와 같은 비상(飛翔)의 계획과는 다르게 아제르바이잔의 야권과 인권단체에서는 이번 행사를 통해 그동안 통제되고 억눌렸던 아제르바이잔의 민주화와 인권개선의 열망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이 유로비전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서방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아랍 민주화 운동 이후 정부의 감시와 통제로 약화된 이들의 활동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있다. 서구의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와 암네스티(Amnesty) 같은 인권단체들도 이번 행사를 통해 대외 이미지와 인지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많은 노력 때문에 반민주적인 통제와 감시는 상당히 완화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서방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중국정부가 2008년 올림픽대회를 통해 얻었던 긍정적 효과만을 얻기는 힘들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는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중국과는 다르게 외부의 개입을 일방적으로 차단하기에는 국가의 역량이 미약하다고 판단되며 유로비전 대회는 올림픽과는 다르게 민주-자유진영인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서방의 민주화 요구와 인권개선 권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는 힘들 것이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방세계는 이번 유로비전 대회가 아제르바이잔의 민주화와 사회개혁과 개방에 일조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이번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대회가 지역안보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는 1994년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간 전쟁과 나가르노 카라바흐 분쟁지역 문제로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카프카스 지역에 유로비전 대회가 평화적 해빙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적으로 답보 상태에 있는 양국 간의 관계와 군사적 대립이 이번 유로비전대회에 아르메니아가 참가를 결정하고 아제르바이잔이 이들을 환영함으로써 그동안 답보 상태에 있던 양국 관계의 개선이나 교류의 물고를 틀 수 있을 것이다. 서방세계는 이를 위해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정부를 적극 독려하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일이 이와 같이 추진된다면 이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또 하나의 국제-정치적 결실일 것이다.



2012년 아제르바이잔의 가장 큰 이벤트가 될 아제르바이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단순한 문화적 행사라기보다는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함의가 내재된 사업이라 할 수 있다. 현 아제르바이잔 정부, 아제르바이잔 야권 및 인권단체, 서방세계 모두 이번 행사를 통해 추구하는 바가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정치적 통제에도 불구하고 2011년 5월 18일 모든 아제르바아잔 국민은 에르달과 니가르의 유로비전 우승으로 자유롭게 자국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했고 아제르바이잔 정부도 이와 같은 대규모 거리 모임을 허가했다. 즉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우승은 아제르바이잔의 큰 정치-사회적 변동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대한민국이 2002년 월드컵경기 동안 대규모 군중이 그동안 터부시 되었던 붉은 옷을 입고 한국의 심장부인 서울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며 사회변동을 야기했던 것처럼 이번 2012년 아제르바이잔 유로비전 대회가 아제르바이잔이 가지고 있던 다양한 한계를 극복하고 용처럼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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