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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황금번호판 소동: 마약과 부패로 신음하는 타지키스탄

타지키스탄 현승수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HK연구교수 2012/02/29

최근 타지키스탄 당국은 자국에서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부패 및 마약 유통과 관련해 정부 내 고위급 인사들이 체포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이번 검거 작전은 에모말리 라흐몬(Emomali Rahmon) 대통령이 타지키스탄 군과 경ㆍ검찰 내부에 부정부패와 족벌주의 관행이 횡행하고 있다면서 이를 맹비난한 직후에 발생한 것이다. 지난 1월 18일,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정부 관료 회의에서 라흐몬 대통령은 내무부 소속 군부대의 장성들과 국가안보위원회의 고위 관료들을 심하게 질책했는데 이들이 자신의 자녀와 친인척들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자리에서 타지키스탄 대통령은 일부 고위 공직자들이‘특별한’차량 번호판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기 가족과 친인척들을 법망에서 벗어나도록 해 왔다면서 다시는 이러한 불법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타지키스탄에서 권력층이 특수 번호판을 사용해 온 것은 어제 오늘 시작된 관행이 아니다. 이러한 번호판이 붙은 차량의 소유자는 경찰의 검문ㆍ검색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7777’이나‘8888’같은 이른바‘황금 번호’가 붙은 차량은 대통령의 가족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1월,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 수도 두샨베로 향하던 자동차 안에서 110 킬로그램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마약이 적발되면서 엉뚱하게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오게 된 것이다. 바로 마약을 싣고 달리던 차량이 황금번호판을 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체포된 피의자 두 명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그 가운데 한 명은 퇴역한 군 장성의 아들이며 다른 한 명은 외교관 자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이 특별히 라흐몬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이유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황금번호판을 보면 일반인들은 대통령의 가족 혹은 친인척이 탄 차량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번호판을 부착한 차량에서 마약이 쏟아져 나오고 번번이 범법 행위가 이루어진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것이다. 당국은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민첩하게 움직였다. 사건 발생 직후, 두샨베에서‘가짜 황금 번호판’을 만들어 판 업주가 구속된 데 이어, 전국의 황금번호판을 모두 일반 번호판으로 교체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또 하나 이번 사건이 라흐몬 대통령의 분노를 자아낸 이유는 경찰과 치안 부대 소속의 고위급 장성들이 마약 밀매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증거가 포착된 점이다. 1월 6일, 타지키스탄 마약 단속국은 루스탐 하이토프(Rustam Haitov)라는 이름의 남성을 체포했는데 그는 타지키스탄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약 밀매 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조직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된 마약을 타지키스탄 영내를 통해 카자흐스탄이나 러시아로 밀거래하는 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타지키스탄 남부 파르호르(Farkhor) 지구에 있는 하이토프의 자택에서는 42 킬로그램의 아편과 헤로인이 발견되었다.

또 수사가 진행되면서 관련 인물들이 추가로 구속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파르호르 지구의 불법 마약 밀매 단속반을 지휘하는 파리둔 우마로프(Faridun Umarov)라는 이름의 경찰 간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자신의 직책을 이용하여 위에서 언급한 하이토프를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이토프 조직이 아프가니스탄 국경으로부터 마약을 들여올 때 직접 협력해 왔다는 국가 마약 단속국의 발표는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이러한 공생 관계에 뇌물이 개입되었으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이 밖에도 타지키스탄 내무부 직속의 불법 마약 밀매 단속반 반장과 수도 두샨베의 마약 밀매 단속반 반장 등을 포함해 수 명의 경찰 간부들이 체포됐다. 더욱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우마로프의 형이 타지키스탄 국가안보위원회의 부서기로 재직 중이며 그의 숙부는 내무부 부장관이라는 사실이었다. 당국은 이들이 우마로프의 마약 밀매를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또 여기에 도움을 주지는 않았는지 조사 중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리던 타지키스탄 정관계와 불법 마약 조직 간의 믿기 힘든 유착 관계가 사실로 드러났다. 1월 24일, 파토흐 사이도프(Fattoh Saidov) 마약단속국 국장은 기자회견을 통해“사실상 어떤 마약 밀매 조직도 고위 관료들의 협력 없이 활동한다는 것은 불가능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타지키스탄 마약통제국의 루스탐 나자로프(Rustam Nazarov) 국장은 대략 15개 범죄 조직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마약 밀매에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면서, 그러나 여태껏 당국이 이들 조직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근본 이유는 치안 기관의 고위 관료들이 이들을 비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이 같은 범죄와의 유착이 군 내부까지 심각할 정도로 확산되어 있음도 드러났다. 지난 1월, 타지키스탄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비상사태위원회 소속 낙하산 부대의 부부대장이 마약 5 킬로그램을 소지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나, 아프가니스탄 국경에 위치한 다르보즈(Darvoz) 지구의 한 부대 부부대장이 헤로인 1 킬로그램을 소지하고 있다가 체포된 사건이 이를 증명한다.

타지키스탄의 마약 문제는 최근 10년 동안 심각한 국내문제로 부상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문제로 확대, 발전하고 있다. 타지키스탄이 세계 굴지의 마약 국가로 변모하게 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불안정 요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분쟁의 평화적 해결 없이는 타지키스탄의 마약 문제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기란 불가능하다. 타지키스탄은 마약의 재배와 생산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된 마약이 여러 국경을 통해 범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핵심 중계국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타지키스탄 영내에서 적발되는 마약 밀거래와 수송, 소비는 이 나라에서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국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부정부패는 정부의 말단 직원으로부터 고위급 관료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벨에서 공공연하게 목격되지만 좀처럼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라흐몬 대통령 스스로의 개혁 의지와 법제적, 경제적 개선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마약 밀거래를 비호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정부 내 관료의 존재는 분명히 마약 국가 타지키스탄의 오명을 불식시키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번 사건들로 그 치부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중앙아시아 최빈곤 국가인 타지키스탄의 주민들로서는 소연방 붕괴 직후 발발해 7년 동안 계속되었던 내전의 후유증과 더딘 전후 복구로 인해 입은 경제적 피폐가 여전히 심각하며, 인근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월경하는 부정적 영향 때문에 마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약 재배와 밀거래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 산업의 육성과 주민 계도야말로 양귀비 밭을 갈아엎고 마약 밀거래자를 적발해내는‘강성 단속’못지않게 중요한‘연성 단속’의 핵심 사안이다.

문제는 타지키스탄의 체질적인 경제적 빈곤과 국가, 사회적으로 충일한 비효율성 때문에 타지크 정부 스스로가 마약 거래의 철저한 단속과 제도적 개혁을 완수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UN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미ㆍ러 및 중앙아시아 주변국들의 관심과 협력, 공조와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음은 환영할 만한 일이며, 지금까지 이상으로 더 많은 성과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협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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