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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투르크메니스탄 대선 분석: 정치적 의의 및 향후 전망

투르크메니스탄 황영삼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2012/03/16

지난 2월 12일에 치러진 투르크메니스탄의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대로 현직에 있던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투표율 96.28%와 득표율 97.14%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7명의 타 후보들을 누르고 압승하였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정치 문화적 특성상 다소 싱거운 면이 없지 않았던 이번 대선에서 현지 대통령이 승리하게 된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이번 대선의 총유권자는 2,987,324명이었으며 투표참여자는 2,888,887명(96.28%)이었는데 5개 주별 참여자 비율은 아할 주(96.24%), 발칸 주(96.15%), 다쇼구즈 주(96.46%), 레밥 주(96.43%), 마리 주(96.94%) 등이며 수도 아슈하바트는 98.42%를 기록하여 전국적으로 매우 높은 투표 참여율을 보였다. 우선 대선 경쟁에 출마한 후보들과 대선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투르크메니스탄 대선결과(2012.02.12.)

후보 성명(연령, 출신주)

직책

득표율(%)

비고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55, 아할)

대통령(2007 ~ )

97.14

국가민주당

테케 부족

아나겔디 야즈미라도프(47, 아할)

수자원부 장관(2008 ~ ), 차관(2007)

1.07

국가민주당

테케 부족

야르무하메트 오라즈굴리예프(52, 아할)

에너지산업부 장관(2009 ~ ), 제1차관(2006 ~ 2009)

1.02

테케 부족

레젭 바자로프(54, 다쇼구즈)

다쇼구즈 주 농업담당 부주지사(2011 ~ )

0.28

지방 행정가

사파르무랏 바티로프(58, 아할)

섬유산업부 산하 아할 주 게옥테페 방적공장 사장(2010 ~ )

0.19

경제전문가

테케 부족

카카겔디 압딜라예프(46, 마리)

국영기업 ‘투르크멘가스’ 마리지사장(2009 ~ )

0.16

국가민주당

채굴전문가

구르반맘메트 몰라니야조프(65, 발칸)

국영기업 ‘투르크멘네비트’ 산하 ‘네비트가스두이프리라바틀라이쉬’ 사장(2010 ~ )

0.08

가스-오일

채굴전문가

에센두라디 가이포프(53, 레밥)

건설부 산하 레밥 주 생산협회 회장(2009 ~ )

0.06

토목건설 전문가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현직 대통령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차지한 득표율은 가히 압도적인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세밀히 분석해 보면 동일 정당에서 3명, 대통령 휘하의 정부 각료가 2명이나 출마했다는 것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정치 문화적 속성으로밖에 볼 수 없다. 2011년 6월 1일에 개정된 대통령선거법에서 대통령 후보는 정당, 사회단체, 시민단체에 소속된 자로서 일정한 지지서명을 확보한 사람이면 누구나 입후보할 수 있다. 따라서 외형적으로 볼 때 이번 대선도 2007년의 대선에서와 같이 복수후보가 경쟁한 구도를 갖추었다. 실질적으로 결과를 지나치게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대선이었다는 점에서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의 5대 부족 중 가장 큰 파워를 지닌 테케 족 출신이 4명이나 포함되고 아할 주에서 역시 4명이나 입후보한 것은 불필요한 중복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아할테케 부족의 정치적 위상이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대개 서구 민주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대통령 입후보자들은 정당을 기반으로 정치엘리트들인 경우가 많고 그 결과 또한 쉽게 예상할 수 없다.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은 과거 공산당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민주당 1당 체제로 되어 있으며 야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과거 소비에트적 유산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때 정당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권력 획득을 위한 조직이라기보다는 국민을 지도하는 엘리트 조직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당은 국민을 지도하는 조직인 것이다. 이들 속에서 의견대립과 토론은 있을 수 있어도 또 다른 국민지도 조직은 부재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이기 때문에 단일 정당적 국가가 바로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도로 인하여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에서와 같이 국제적인 선거감시인단을 허용하여 공정한 선거가 되도록 하였다.

국제 선거감시인단에는 유럽안보협력기구의 민주제도 및 인권국 대표, UN 사무국의 중동 및 서아시아 부서 대표, CIS 집행위원회의 감시단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벨라루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러시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의 대표들이 포함되었는데, 전국적으로 2,307개의 투표구에서 2,345명의 감시단원들이 철저한 선거감시를 한 결과 금번 대통령 선거는 공정한 것으로 공식 발표되었다. 이로써 베르디무하메도프는 향후 5년 동안 지금까지 진행해 오던 개혁정책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베르디무하메도프의 높은 지지율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90년 10월 27일에 있었던 투르크멘 소비에트 공화국의 대선에서 단일 입후보한 사파르무랏 니야조프는 98.3%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최초의 ‘대통령’직에 당선되었다. 이와 같은 높은 득표율은 투표행위를 하나의 의무로 간주하고 대개 한 사람의 후보자에 대해 찬반을 묻는 신임 투표적 성격이 강한 소비에트식 방식의 결과에서 비롯된다. 독립이후 신헌법에 입각하여 1992년 6월 21일에 치러진 대선에서 니야조프는 99.5%라는 절대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국민들의 ‘신망’을 받았다. 그리고 1994년 1월 15일에 대통령의 임기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1997년의 대선을 생략하고 2002년으로 연기하자는 안이 통과되었는데 그때 지지율은 99.99%였다. 물론 2002년의 대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1999년 12월에 초대 대통령을 종신직으로 만드는 법령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야조프 대통령은 2005년에 인민회의(할크 마슬라하티)와 자신과의 대통령 종신직 문제에 관한 토론에서 자신이 종신직을 원하지 않는다고 표명하였다. 물론 당시 최고의 입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던 인민회의에서는 대통령의 안을 거부함으로써 사실상의 종신제 대통령을 합법화시켜 주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구도로 생각되는 이러한 정치적 스타일은 참고로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경우에서도 발견된다.

2006년 12월 21일 밤 니야조프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당시 부총리 겸 주치의였던 베르디무하메도프는 국가 최고의 기관이던 인민회의로부터 대통령 권한 대행직을 부여받고 대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 무렵에는 우크라이나, 그루지아, 키르기스스탄 등 이른바 정권교체 정변이 구소련 국가들을 강타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의 대통령 서거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정변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나타나지 않았고 2007년 2월 11일에 대선이 무난하게 치러짐으로써 투르크멘식 국가발전이 고착화되었다. 치의학 박사로서 합리주의적 개혁성향을 가지고 있는 베르디무하메도프는 전직 대통령의 단일입후보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경선제를 도입한 점이 무엇보다도 큰 정치적 변화였다. 당시 총 투표율은 98.65%였고 6명의 후보자 중 베르디무하메도프는 89.23%를 획득함으로써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어떤 대선이든 비난과 비판은 필연적인 것이다. 특히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추방되어 모스크바나 서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수의 반체제 인사와 투르크메니스탄의 현 정권의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이 사실상 편파적이며 불공정한 것이라고 보는데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장관들이 입후보한 것이나 같은 국가 민주당원들이 동시에 입후부한 것을 보면 서구의 비판을 의식한 복수후보 구색을 갖추기 위한 형식적인 선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지나치게 서구편향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립 20년에 불과한 투르크메니스탄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정치문화가 있으며 하루아침에 서구화될 수는 없고 더 나아가 서구화가 인류보편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가지도자의 인격과 정책 그리고 건전한 비전이야말로 한 국가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2007년의 대선에서 승리한 후 즉각 전직 대통령이 비난받았던 개인우상화 정책을 폐기하고 경직된 정책을 민주주의적이고 개방적인 정책으로 전환하여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적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지난 5년간의 집권 동안 베르디무하메도프는 국내외적으로 개혁적인 지도자로 평가되었으며 특히 국내적 지지기반이 확고하다. 이러한 지지의 배경에는 일반 국민들이 향유하는 보편 지향적 복지정책을 실행시키고 고립적 외교정책에서 탈피하여 개방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기, 수도, 가스 등에 대하여 국가가 국민들에게 거의 무상에 가까운 요금을 적용하고 있고 소금을 지원하는 등 일상생활 주거비를 크게 경감시켜주고 있다. 수도 아슈하바트는 아파트 현대화 사업이 진행되어 주민들의 자긍심이 높아지고 있고 이러한 경향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낡은 아파트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택 개량화 사업은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게다가 의료비와 교육비가 거의 무상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정권에 대한 불만적 요인이 아주 낮을 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야조프 시절에 곧장 북한 정권과 비교되기도 했던 고립주의 정책은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과감하게 척결하여 현재는 러시아, 서구, 중국 등 다방면에 걸친 활발한 외교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국가의 개방성 정도 또한 매우 높아지고 있어서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또한 러시아 의존성에서 탈피하여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통과하여 중국까지 연결되어 있다. 현재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노선을 추진 중에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다각화는 자연적으로 외화증대 곧 국부의 증대로 연결되고 자연스럽게 국민복지에 사용될 수 있는 재원이 확보되는 것이다. 신흥국 중에서 보기 드물게 IMF의 지원을 받지 않을 정도의 재정건전성이 높은 투르크메니스탄은 이번 대선결과로 인하여 국내외적인 발전 속도를 더욱 더 높여 갈 것으로 보인다.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주요 약력

1957 아슈하바트 주 게옥테페 군 바바랍에서 출생

1979 국립 투르크멘 의대(아슈하바트) 졸업

1979-1997 투르크멘 정부 보건의료산업부에서 근무(치예방부 강사, 조교수, 국립 투르크멘 의대 치의학부 학장, 보건의료산업부 치과센터 소장, 의학박사, 경제학박사, 학술원 교수 및 정회원)

1997 보건의료산업부 장관, 국가의료발전재단 사장, 투르크멘 의대 총장 직무대행

2001 부총리

2006.12.21. 대통령 및 군최고통수권 직무대행

2007.02.11 대통령 당선

2011.10.25. ‘투르크메니스탄의 영웅’ 칭호 부여

취미는 스포츠와 승마, 러시아어와 독일어 구사, 1남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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