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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카자흐스탄의 다민족 간 관계 모델과 국가발전 전략

카자흐스탄 김게르만 카자흐스탄 국가전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12/05/10

주지하듯 지난 2011년, 카자흐스탄은 독립 20주년을 맞이했다. 이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 시기로부터의 사회적 개진과 독립국가로서의 발전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특히 신생독립국의 위상과 더불어 다민족국가의 특성을 지닌 카자흐스탄에서 이들 사이의 단결과 화합을 이루어냈다는 점은 국제사회에서도 대단히 주목받는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에 달성한 국가 발전은 비단 풍부한 에너지 자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민족 간 분쟁 없이 안정된 사회적 패러다임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에 가장 중요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카자흐스탄의 독립과 함께 다민족 간의 화합이 어떻게 문제없이 이행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즉 이러한 양상이 카자흐스탄의 민족화합 모델이나 종교적 관용으로부터의 특성인지, 국가 원수는 어떠한 역할을 해 왔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동시에 시민사회에서 어떠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인지해야 한다.

우선 카자흐스탄이 다민족 국가로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동양과 서양의 대상(隊商)들이 모이는 하나의 장이었으며, 자연스럽게 여러 민족과 이들의 문화와 종교 등이 혼용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련 시기에 카자흐스탄이라는 국가적 경계가 생기게 되면서 오늘 날에도 130여 민족이 공존하고 있는 다민족 국가가 된 것인데, 여느 다민족 국가와 같이 이러한 카자흐스탄도 다민족 간 관계에 대한 정책을 명확히 제시하여야 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다민족에 관한 이론들은 다양했지만 카자흐스탄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은 소위 잘 알려진 정책이론들에 적합하지 않았다. 환언하면, 러시아나 중국, 미합중국 및 서구, 호주와 같은 다민족 집단들과는 생성 배경이 다르므로 카자흐스탄의 특성에 맞게 다민족 간 공존이 이루어질 수 있는 모델이 필요했던 것이다.

1992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독립주권국가로서의 카자흐스탄 건설을 위한 발전 전략을 주창하였는데, 가장 우선시 했던 점이 바로 국가의 개혁을 위한 다민족 집단 간 화합과 안정적인 사회 구성이었다. 이러한 목표를 두고 카자흐스탄 정부는 상호 이질적 문화에 대한 바람직한 이해와 단결을 바탕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당시 카자흐스탄 정부의 정책은 모든 민족 집단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여 인정하는 것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중요시 되었던 것은 ‘관용’의 정책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이루어진 소위 ‘관용의 사회’에서는 각 민족들만의 특성을 인정해주고, 다민족 집단 간 종교, 정치, 문화들을 이해하기 위해 상호 노력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하여 카자흐스탄에서의 다민족 관계 모델은 다양한 민족 집단 내에서 ‘관용’과 ‘이웃’의 단계를 새로운 국민통합의 단계로 끌어올렸다.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계속해서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자흐스탄 국가건설은 경쟁력 있는 국가 내에서 대화와 민족 집단 간 관용 형성의 직접적인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민족 간의 화합과 국가의 활발한 경제발전은 하나의 과정 속에 연결되어 있는 요소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카자흐스탄 국가건설과 국가정책의 기초에는 공통의 시민의식을 기본으로 하는 정체성 형성의 원리가 자리 잡고 있다. 카자흐스탄 민법에서 명시하는 ‘국민(nation)’과 ‘통합된 카자흐스탄 시민’ 개념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인데, 이러한 국민의 개념은 민족, 문화, 종교의 차이를 넘어 통합된 시민 정체성을 가진 모든 카자흐스탄 시민들의 집합체를 말한다.

한편 카자흐스탄 다민족관계 모델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국가와 시민의 제도화를 이루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민족회의는 국가정책과 모든 민족문화 연대의 통합을 위한 주요 기구 중 하나이다. 1995년 3월 1일 창설된 이래, 카자흐스탄 민족회의는 다른 CIS 국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민족과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기구로 평가 받고 있다.
1992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독립 1주년을 맞아 개최된 제1회 카자흐스탄 민족 포럼에서 카자흐스탄 민족회의의 설립을 제안하였다. 2007년 헌법 개정을 통해, 모든 민족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카자흐스탄 민족 회의에 참여하는 민족 대표자가 하원(Majilis)에 선출되어 주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민족회의는 카자흐스탄에 존재하는 여러 민족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실질적인 기구가 되었으며, 민족회의의 지지 하에 470개의 주, 시 및 군 단위의 기구와 함께 지방 민족문화 센터가 존재하고 있다. 민족회의는 소회의(Small Assemblies)와 같은 하부 지역기구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언어적 평등은 다민족 사회 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합리적으로 진행된 카자흐스탄의 언어정책은 카자흐스탄 다민족 화합 모델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오늘날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언어의 ‘삼위일치’개념을 소개한 바 있으며, 이는 다양한 민족 집단들의 관계 속에서 갈등을 해소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는 국가 전반에 걸친 사회-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현대화 과정에 결부되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확실한 해법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카자흐스탄과 같은 다민족 국가 내의 통합은 여러 종교 간 관계 속에서 관용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카자흐스탄은 다수의 무슬림 및 45개의 다양한 종교들이 상존하는 가운데서도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세속국가로, 카자흐스탄에는 이슬람 모스크와 크리스트교 교회가 공존하며, 유태교 회당과 불교 사원이 존재한다. 이러한 배경 아래 카자흐스탄이 세계 지도자들 및 전통 종교들 간 대화의 장을 마련한 것은 세계적 수준의 독특한 행사로 이는 국제적으로 인정 받을만한 업적이다. 2009년 6월 ‘세계 종교지도자 회의’가 아스타나에서 개최되어, 본 회의에 29명의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이어 카자흐스탄 민족회의의 제15차 회의에서는‘국가통합주의’의 발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으며, 이는 다민족 및 다종교 간 관계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단결된 카자흐스탄이 형성되도록 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했다.

여러 민족 집단의 통합과 화합을 통해 강력한 카자흐스탄을 건설하고자 했던 카자흐스탄의 국가건설 계획은 공통의 국민사상, 공통의 가치, 단결된 카자흐스탄 애국주의와 함께 이루어졌다. 카자흐스탄 애국주의의 범주는 세계무대에서 주도적이고 경쟁력 있는 국가로 발전할 수 있도록 활발한 개인의 투자와 국가의 정신적, 물질적 부를 증대시키고 보존하는 것, 정치적 의제의 실현, 국가경제 및 사회문화적 현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독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정부에 시민사회의 현대화 전략 개발을 시행하기를 강력히 권고했다. 그는 2012년 1월 27일 연두교서를 통해 이 새로운 계획의 요지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사회 현대화를 위한 새로운 전략은 세 가지 우선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첫 번째는 2030년까지 계획된 노동, 주거, 의료 서비스, 교육을 포함한 대대적인 삶의 질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두 번째는 의료 기술 개발, 의료 사회 기반 시설 확보, 기대 수명 증대를 위한 ‘건강한 국가-2030’ 프로그램이다. 마지막 주요 사안은 ‘정보화 카자흐스탄-2030’ 프로그램을 통해 정보화 사회발전을 이룩하는 것이다. 본 계획의 주 목적은 사회의 전산화 및 정보화 공간의 디지털화를 이루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현대화는 카자흐스탄 내 정당들, 공공조합, 창조적이고 전문적인 기업들과 언론매체와 같은 영향력 강한 단체들에게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새 의회와 정부에게도 중심 사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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