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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키르기스스탄의 반 중국 열풍

키르기스스탄 현승수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HK연구교수 2012/05/29

키르기스스탄과 중국의 관계는 1991년 키르기스스탄이 독립국가로 출발한 시점부터 그렇게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확대되고 있는 투자와 무역 분야에서의 협력으로 두 나라 관계가 긴밀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양국 간 문화의 차이와 해묵은 국경 분쟁 그리고 키르기스스탄 경제에서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의 존재가 키르기스 국민들의 반중국 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최근 들어 반중국 정서는 그 정도가 열병으로 불릴 정도로 거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장차 두 나라 사이에 추진될 중대한 프로젝트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바로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정권의 사활을 걸고 있는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철도 건설이 그 프로젝트다. 유라시아 3국을 연결하는 이 철도가 완성되면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상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별로 없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유일한 WTO 가입국이며 따라서 중국 상품이 중앙아시아 지역에 진출하는 데 있어서 관문 역할을 해 왔다. 중국과의 교역으로 인해 대략 80만 명의 키르기스인들이 일자리를 얻었으며, 중국 상품에 매기는 관세와 통과세, 기타 세금이 키르기스스탄 국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막대하다. 이 나라의 신흥 부자들은 수입한 중국 상품을 다시 중앙아시아 타국에 재수출함으로써 얻는 이익 덕분에 자신들의 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의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것은 상품뿐만이 아니다. 수만 명의 중국 상인들이 따라 들어오고 있다. 여기에 각종 중국의 투자 프로젝트(도로와 공장 건설, 송전선 설치 등)를 수행하기 위해 유입되는 중국인들도 수천 명에 이른다. 최근 키르기스스탄 법무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약 9만 명의 중국인들이 불법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천 명의 키르기스인들이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있는 현상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많은 숫자다. 이민 인구의 불균형과 양국 간 경제 격차는 강대국 중국이 약소국 키르기스스탄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키르기스 민족주의자들과 애국주의 단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중국 정서가 중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 먹구름을 던져주고 있다는 점은 이미 언급했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추진되던 것으로, 이제 갓 정권을 발족시킨 아탐바예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이 장대한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정부 측 발표에 따르면 운송 시간을 6-7일 절약해 줄 이 철도의 길이는 268km로서, 2004년 기준 견적 금액은 20억 솜 이상이며, 연소득은 2억 1,000만 달러로 평가된다. 또 새로운 철도는 유용 광물 매장지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2만 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철도 건설 이후 2,000명 이상의 고용이 창출 되고 연간 25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이 키르기스스탄 정부의 주장이다. 이러한 수치가 사실이라면 고질적인 경제난에 시달려 온 키르기스스탄으로서야 이보다 더 좋은 경제 활성화 방안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결코 만만치 않다.
 
키르기스인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반중국 정서에 아탐바예프 대통령이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정세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아탐바예프 정부가 이 문제에 서투르게 대응했을 뿐만 아니라 모순적이고 혼란스런 정보를 무절제하게 유포시킨 것이 오히려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었다고 분석한다.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작년 1월, 철도 부설의 대가로 중국 기업에 금과 알루미늄, 철광석 등 세 개의 거대 광물 매장지를 넘겨줄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 한 예다. 당시 이사코프 교통·통신부 장관은 ‘아타메켄’ 당 회의에서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철도 건설에 관한 논의 시 키르기스스탄은 대외채무 규모를 감안하여 ‘투자 대신 자원’ 전략을 따를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3개 광물 매장지는 테레칸과 페레발노예 금광, 산디크 알루미늄 매장지, 제팀-토 철광석 매장지였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는 이들은 중국에 넘겨주려는 철광 산지 <제팀-토>의 매장량만 놓고 보더라도 미화 40억~100억 달러의 가치를 갖는 반면, 철도 부설 비용은 고작해야 20억~45억 달러에 그친다고 주장한다.
 
문제가 불거지자 아탐바예프 대통령은 서둘러 이 같은 결정이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이사코프 장관을 공공연하게 비난했다. 중국 측도 키르기스스탄이 철도 부설 프로젝트의 대가로 중국에 무엇을 제공해줄지 아직은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으며 다양한 안들이 검토 중에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현재 두 가지 안을 마련하여 중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중국 기업으로 하여금 12년 동안 철도를 관리하고 수익을 가져가도록 이권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철도를 건설하는 데 든 비용을 중국 측에 고스란히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 하나의 안은 재정 확충을 위한 기업을 양국이 공동으로 설립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나라의 국영 및 개인 회사가 참가하게 된다. 중국 측은 이 두 가지 안을 아직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의 혼란을 극복하고 키르기스스탄의 세 번째 대통령에 취임한 아탐바예프가 만일 이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현실화시킬 경우 그에 대한 평가는 눈에 띠게 높아질 것이다. 초대 대통령인 아카예프 당시 철도 건설이 처음 거론됐을 때, 중국은 99년  간의 이권 제공을 키르기스스탄 측에 요구한 바 있다. 또 그의 후임인 바키예프 대통령의 경우는 49년간의 이권 제공을 제시한 중국의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프로젝트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한편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철도 건설을 둘러싸고 반중국 정서가 확대되는 이면에 강대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시 말해 중앙아시아와 키르기스스탄에서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꼼수’에 키르기스스탄의 일부 세력이 놀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 간 ‘거대 게임’이 여전히 중앙아시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정학자들은 중국이 철도 부설을 통해 중앙아시아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확실히 제고시킴으로써 이 지역의 맹주로 부상할 속셈이 있다고 본다. 또 러시아나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계산이 실현되지 못하도록 키르기스스탄의 민족주의자들을 충동질해서 반중국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로서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사이의 철도 건설이 완성되면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유럽을 연결하는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 대륙 철도 구상이 물거품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중국을 유라시아 대륙의 내부가 아닌, 주변 해안 지대에 묶어둔다는 지정학적 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중앙아시아 간 철도는 향후 이란과 중동 국가들로까지 연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이란과 중동에서 석유를 수입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는 결코 미국이 바라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 지정학자들의 평가다.
 
그러나 이러한 지정학적 함의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탐바예프 정부는 철도 건설 프로젝트가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을 계산하는 데만 몰두해 있는 듯 보인다. 또 전임 정권이 성공시키지 못했던 난제를,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보다 깔끔하게 성공시킴으로써 자기 정권의 정당성과 권력 강화에 양호한 여건이 마련될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키르기스스탄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갖은 소문과 공포감을 가치 없는 것으로 일축하면서 아탐바예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중국을 두려워하면서 불필요하거나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행위, 중국이 우리나라를 침공할 것이라거나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는 등의 공포감을 조장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하지 못합니다. 키르기스스탄은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동안 국제 운송 망 안에서 겪어야 했던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서 반드시 철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탐바예프는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 반대하고 이를 훼방하는 세력을 ‘키르기스스탄 발전의 적’으로 규정하면서 맹비난을 퍼부었다.
 
현 상황에서 286km의 철로가 가져올 변화의 양상을 예측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중앙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결정한 스스로의 운명이 유라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결코 작지 않은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급부상과 미국의 쇠락, 러시아의 부활을 목도하고 있는 세계는 지금 키르기스스탄의 선택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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