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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투르크메니스탄, 대규모 민영화 프로그램의 허와 실

투르크메니스탄 현승수 한양대학교 아태지역 연구센터 HK연구교수 2012/12/31

투르크메니스탄이 2013년 초 국유 산업의 대규모 민영화를 추진할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2012년 11월, 투르크메니스탄 지도부는 투르크메니스탄의 기업 및 국가 자산 민영화 프로그램 2013-2016년제하의 전략문서를 승인했다. 이 문서는 정부의 민영화가 의도하는 최종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바, 만일 투르크멘 정부가 이 문서에 제시된 대로 민영화를 추진할 경우, 여전히 소비에트 식 중앙 통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자유 시장경제와는 담을 쌓아온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바야흐로 순수한 민간 부문이 창출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번 민영화 프로그램은 2년 이상 준비된 것이며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Gurbanguly Berdimuhammedov)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이자 거시경제 정책의 입안과 운영을 담당하는 <전략계획및경제발전연구소>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프로그램은 2012년 11월 16일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의 각료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심의되었으며 이에 대해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즉각적인 지지 의사를 밝힘에 따라 사실상 승인이 이루어졌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국가 발전 목표와 대통령의 지시들로 메워져 있는데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투르크메니스탄의 GDP에서 민간 부분이 차지하는 비율을 2020년까지 70%로 끌어올리라는 대통령의 특별 지시와, 탄화수소 부문이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부분이다. 또 국영기업과 국가 소유 자산의 민영화는 2016년까지 세 단계를 거쳐 완수되는바, 1단계는 2013년, 2단계는 2014-15년 그리고 3단계는 2016년에 각각 수행된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 건설, 수송, 통신을 비롯한 산업 부문은 직접 인수나 경매, 매각, 국유기업의 합자회사로의 전환 등의 방식을 통해 민영화되고 투자기금 설립, 주식거래, 증권시장 개설도 추진된다. 뿐만 아니라 동 프로그램은 핵심 국영기업과 국가 자산을 전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규정하여 민영화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며 탈국유화나 소유권의 이전도 불가능하도록 못 박고 있다.    

사실 투르크메니스탄은 1991년 독립한 이래 지금까지 시장 경제로의 이행이 가장 더딘 국가로 인식되어 왔으며 세계은행이나 EBRD와 같은 국제 금융 기관의 신용도 평가도 매우 낮았다. 초대 대통령인 사파르무라트 투르크멘바시 니야조프 (Saparmurat Turkmenbashi Niyazov)의 통치시기에 이 나라는 대외적으로 고립정책을 고수하면서 경제 자립 국가로 스스로를 선전했었다. 물론 이 같은 국가 전략의 최종 목표는 경제 개혁이 아닌, 니야조프 정권의 안전 보장이었다. 또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하다는 천혜의 조건이 고립주의 전략을 가능케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06년 니야조프 대통령의 급작스런 사망 이후, 그의 뒤를 이은 베르디무하메도프 정권 하에서 일련의 긍정적인 개혁이 시작됐다. 이들 개혁 조치는 후임 대통령 스스로가 천명한 경제의 현대화와 산업의 다각화를 실현하려는 의지의 일환이었다. 그는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제를 선진국에 가까운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동시에 세계 경제에 통합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혁의 초점은 무엇보다, 우선 추진 분야에서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자본 투자에 맞춰졌다. 예를 들면 새로운 석유 및 가스 매장층의 상류(upstream) 개발이나 에너지 인프라의 발전 등이 우선 추진 분야에 해당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투르크메니스탄의 수출에서 가장 큰 이득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추진하는 다양한 국가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중요시된다.     
    
그 밖에도 베르디무하메도프 정권 하에서 눈에 띠는 몇 가지 개혁이 더 있다. 예를 들어 투르크메니스탄의 재정과 금융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데에서 중요한 진보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국가 통화의 화폐 단위 변경(redenomination)이 성공리에 완수됐으며 외환과 대외무역에 대한 규제도 완화되었고 가격도 부분적으로 자유화됐다. 또 대중교통이나 일부 식료품, 가솔린 등에 투입되던 정부의 보조금도 줄었다. 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최소화하고 국가경제가 지나치게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는 현상을 줄이기 위해 2008년에는 <투르크메니스탄안정화기금>이 설립되었다. 투르크멘 정부가 그동안 등한시하던 인적 자본의 구축에 투자하기로 한 결정도 평가할만하다. 교육과 과학에 대한 베르디무하메도프의 관심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개인 기업의 촉진이야 말로 국가 GDP 안에서 민간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확대시키기 위한 핵심 추동체다. 이에 따라 국내의 중소기업 발전을 도와줄 야심찬 대출 제도가 2008년부터 가동되고 있다. 이 제도는 일차적으로 농업과 공업, 수송, 통신, IT를 대상으로 하며 경쟁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혁신과 수입대체 품목 및 수출 지향 품목에 우선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과를 볼 때 이들 국가 주도의 개혁 조치는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고 촉진하는 데는 기여했지만, 고질적으로 비효율적인 국영 기업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데에서는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국영 기업들은 국가로부터 나오는 보조금에 계속 의존하고 정부의 계획과 예산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그 결과, 국가의 과도한 규제와 개입이 투르크메니스탄의 지속적인 성장에 근본적인 구조적 장애가 되고 있다. 2012년의 경우만 하더라도 국가 GDP의 약 75%가 여전히 공공 부문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해외 기관의 평가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정부가 점진적으로 민간 부문을 확대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대규모 민영화 프로그램을 추진한다고 발표한 것 자체가 투르크메니스탄의 정치적, 경제적 맥락에서는 일대 획기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민영화는 시장 경제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보다 경쟁적인 경제 환경을 창출하고 시장 행위자들의 전반적인 효율성 향상을 도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다. 우선 순수하게 기술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민영화를 가능케 할 법제에 관해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투르크멘 정부는 지난 몇 년 동안 나라의 비지니스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일련의 중요한 법을 통과시켰지만 탈국유화와 민영화에 관한 새로운 법령은 여전히 계류중이며 이와 관련된 다른 시행규칙들도 아직 세부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사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 발표의 민영화가 착실히 실행될 수 있는 제도적, 정치적 틀을 마련하는 일이다. 민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법제와 더불어, 보다 폭넓은 구조적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법치의 강화, 좋은 거버넌스, 효율적인 공공 행정, 사법부의 독립 따위가 모두 포함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이러한 조건들이 하나라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고 보기가 힘들다. 중앙아시아의 여타 공화국들, 보다 넓게는 포스트소비에트 국가들의 경험을 볼 때, 투르크메니스탄의 민영화 과정도 공정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추진될 가능성은 사실 적어 보인다. 더욱이 이 나라에 만연해 있는 부패와 정실인사, 족벌주의는 베르디무하메도프 정권 하에서도 여전하며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때문에 민영화된다고 해도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줄 핵심적인 자산들은 대통령의 측근 세력들 혹은 그들과 유착되어 있는 이들의 수중에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우연일까? 투르크메니스탄의 옆 나라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정부의 민영화 발표가 거의 같은 날 있었다. 11월 16일, 우즈베크 정부는 아지즈 압두하키모프(Aziz Abdukhakimov)를 위원장으로 하는 새로운 민영화위원회가 발족한다고 공표했다. 압두하키모프는 국가자산운영위원회를 이끌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기존에 존재하던 국가자산운영위원회와 비독점 및 민영화위원회로 통합될 것이다. 사실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우즈베크 정부의 계획은 지난 5월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이며 당시 미화로 5억 달러 상당의 국유 자산이 향후 2년에 걸쳐 민영화될 것으로 알려졌었다.

어쨌건 투르크멘, 우즈베크 양국 정부의 이번 대규모 민영화 결정이 두 나라의 운명을 가늠 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독립 후 20년 이상을 유지해 오던 소비에트 식 통제 경제에 작별을 고하고 시장 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경제 모델로 이행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영 기업과 국유 자산의 민영화가 이 이행 과정의 핵심 사안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위에서 이미 언급한대로, 정책의 성패는 구조적 변화에 달려 있으며 해외로부터의 투자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유치할 지도 관건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모두 투자 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민영화가 본격화되면 이들 나라의 국가 자산의 경매에 외국 국적자와 해외 기업이 참여하게 될 것이며 또 문서상으로는 여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중앙아시아 스탄 5개국 정부와 지배 엘리트들이 종종 적용하는‘그들만의 게임의 법칙’(local rules)이 과연 해외 투자자들을 골탕 먹이지는 않을지 두고 볼 일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결코 서구와 같은 시장경제 민주주의 국가로 쉽게 변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고 보면, 이번 민영화 프로그램의 가시적인 성과를 쉽게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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