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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카자흐스탄, 그 발전의 놀라움, 한-카 관계의 실제와 전망

카자흐스탄 기연수 한국외국어대학교, 한러교류협회 명예교수, 회장 2013/03/29

    “21세기 카자흐스탄은 독립적이고 자신에 차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적인 위기의 영향 아래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놀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는 우리가 독립이후 쟁취한 모든 것을 유지하며, 21세기에 지속 가능한 발전을 계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요 목표는 2050년까지 강한 국가, 선진 경제, 그리고 보편적 노동기회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사회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본인은 6년 전 가장 경쟁력 있는 50대 강국에 진입하기 위한 국가적 과제를 설정했습니다. 세계경제포럼 순위에서는 카자흐스탄이 이미 51위를 차지하여 이제 한 단계가 남았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50년까지 카자흐스탄은 세계 30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야 합니다...... 21세기 카자흐스탄은 동서간 대화와 협력을 위한 가교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대 국민 연두교서 <새로운 정책노선 “카자흐스탄-2050” 전략> (2012.12.15)-

   

   카자흐스탄은 인구 1690만, 면적 2,717,300km²(세계9위, 한반도의 12배)에 140개 민족(카자흐인 59.2%, 러시아인 25.6%, 우크라이나인과 우즈벡인 각 2.%, 독일인 1.4%, 기타 8%, 고려인 약 10만 명, 교민 약 1900명), 17개 종교(이슬람교 70%, 러시아정교 23%, 개신교 2% 기타 5%)의 다민족 이슬람 국가이다. GDP는 1934억불(1인당 GDP 11433불), 산업구조는 서비스업 56.2%, 광공업 37.9%, 농업 5.2% 등이며, 경제성장율 5.5%에 교역규모는 1,329억불로 수출 887억불, 수입이 442억불이다. 또한 석유(매장량 300억 배럴 세계10위), 천연가스(매장량 1.9조m³ 세계17위), 석탄(매장량 336억 톤 세계8위), 우라늄(매장량 세계2위), 크롬, 아연 등의 부존자원이 풍부한 자원부국이기도 하다.(2012년 말 외교통상부 자료)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이들 5개 <스탄> 1)국가들은 1991년 말 소련이 붕괴하기 전까지는 소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15개 구성공화국들 가운데 중앙아시아 5개 구성공화국들이었다. 그리고 소련 붕괴 후 이들은 각각 중앙아시아 5개 주권ㆍ독립국가로서 세계화 지구촌 시대의 국제사회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여 실크로드(Silk Road) 시대를 상기시키는 듯 동ㆍ서양 가교의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국가를 새롭게 건설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사회적 국가 기반을 다지는 등 파격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함과 2) 동시에 최근 2~3년 동안에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상하이협력기구(SCO), 이슬람협력기구(OIC),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서 의장국의 역할을 맡는 등 오늘날 국제무대에 일고 있는 이른바 신 거대게임(New Great Game) 3) 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카자흐스탄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극대화시켜나가고 있다. 또한 우리 서울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우리 역시 구(舊)소련을 대체하고 있는 CIS국가들 가운데 카자흐스탄과의 관계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물론 정치ㆍ문화적인 측면에서까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1992년 1월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9회에 걸쳐 양국 간 정상회담이 이뤄졌으며, 소련 시기 1990년 11월 나자르바예프가 카자흐스탄 공산당 제1서기 겸 공화국 대통령 그리고 소련공산당 정치국원의 자격으로 서울을 방문한 것을 합하면 무려 10회 걸친 정상회담이 있었다. 정상회담 가운데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5회에 걸쳐 방한했으며, 우리 측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1회, 이명박 대통령이 3회에 걸쳐 카자흐스탄을 방문했고, 1회는 2008년 8월 북경올림픽을 계기로 양국 정상회담이 이뤄졌었다. 특히 카자흐스탄이 아직 독립국가가 아니고 소연방 붕괴 직전의 구성 공화국일 때부터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서울을 방문했었다는 사실과 나라의 경제발전을 최고의 국정목표로 내세우면서 자원외교를 주창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5년 임기 중 3회에 걸쳐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한국과 카자흐스탄 양국 간 관계의 현주소에 대해 시사해주는 바가 매우 크다.

   최근 외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사실 이상과 같은 10차례의 정상회담 말고도 수교 이후 양국 간 총리 및 장관급 상호 방문만으로도 상호협력 우의를 다진 횟수는 20차례나 되며, 2009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당시 양국관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면서 양국 간 협력분야 및 수준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 후 우리나라 기준 2012년 말 양국 간 수출입현황은 11.9억불에 이르렀으며(수출: 기계, 합성수지, 전자 등 8.8억불; 수입: 철강, 비철금속, 금, 은 등 3.1억불), 우리의 대 카자흐스탄 투자는 신고기준 삼성물산, LG전자, 국민은행 등이 진출하여 2012년 말 누계 약 31.73억불로 CIS 국가들 가운데 우리의 최대 투자대상국이 되었다. 카자흐스탄의 대한 투자는 2012년 말 누계 약 462만 불이다.

   현재 우리나라와 카자흐스탄 간의 주요 협력 사업은 발하쉬(Balkhash)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사업주체: 삼성물산ㆍ한전 한국컨소시엄 75%, 삼룩에너지 25%), 아티라우(Atyrau) 석유화학플랜트 건설(사업비 40억불로 자본금 12억불, 외부조달 28억불, LG화학 참여), 잠빌(Zhambyl) 광구 탐사(카스피해 북서부 해상에 위치한 28억 배럴 예상의 광구, 지분으로는 카자흐 국영석유공사(KMG) 73%, 석유공사ㆍSK이노베이션ㆍLG상사ㆍ현대아이스코ㆍ삼성물산ㆍ대우조선ㆍ아주산업ㆍ대성산업 등의 한국컨소시엄 27%) 등이 진행 중에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카자흐스탄은 에너지, 천연자원의 개발 분야에서 우리의 공동프로젝트 참여 및 진출, 이에 따른 인프라 분야에 대한 진출의 확대가 크게 기대되는 나라이다.

   지정ㆍ지경학적 및 지전략적 측면에서도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를 대표하여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아시아와 유럽, 유라시아 대륙의 남북을 잇는 내륙통로의 요충지임과 동시에 에너지자원의 보고인 카스피해와 길게 접하고 있어서 우리에게는 물론 다른 석유 수입국들에게도 중동지역을 보완할 에너지자원 대체의 핵심적 공급원이 되고 있다. 나아가 현시적으로도 카자흐스탄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및 서중국-서유럽을 연결하는 요충지로서 관계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면서 이른바 21세기 신 거대게임의 중심지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유라시아 중심부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은 국제경제무대의 물류 분야의 거점지인 것과 더불어 유라시아 지역 내 중층적 외교안보망(OSCE, SCO, CSTO, CICA 등)의 핵심국으로 우리의 글로벌 및 지역안보 경제협력 파트너로서도 상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심화ㆍ발전시켜나가야만 하는 나라이다.

   한편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이번 대 국민 교서 <카자흐스탄-2050 전략>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국제적 핵 비확산 체제를 위한 초석이라고 강조하면서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이 조속히 발효되어야 한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2009년 자신이 UN총회에서 세계핵실험방지의 날(8월 29일) 제정을 발의한 점도 상기시켰다. 또한 이 교서를 통해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릴 <엑스포 2017>이 카자흐스탄 경제가 <녹색>성장으로 전환하는 확실하고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토로한 것은 핵문제와 더불어 오늘날 국제무대에서 카자흐스탄이 우리의 강력한 우군이 되고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나아가 카자흐스탄은 알타이 문화권 속에서 우리와 문화ㆍ역사적 친연성이 있어서 중앙아 한류 확산의 거점으로도 튼튼히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1992년 수교 이래 양국 간에는 전통문화예술단 순회 교환공연, 해외봉사단 파견, 상호 친선의 밤 개최, 영화ㆍTV드라마ㆍKpop 등을 통한 한류열풍 확산의 거점, 특히 상호 청년ㆍ학생 교류와 1937년 스탈린 강제이주정책의 슬픈 결과인 Korean Diaspora 고려인들의 모국 방문 등 20여 건이 넘는 커다란 문화교류 행사가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2009년 9월 양국 정상의 합의에 따라 2010년 3월 카자흐스탄에 한국문화원이 개설되었고, 같은 해 5월과 2011년 5월에는 각각 <대한민국 카자흐스탄의 해>와 <카자흐스탄 한국의 해>가 개막식을 올렸다.

   생각하면 벌써 5년여 전인 2007년 7월 필자는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7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참석차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이자 오늘날 경제수도인 알마티市에 머무는 동안 경험했던 일 하나가 결코 잊혀지지 않고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공식 일정이 없던 어느 날 아침 산책길에 카자흐스탄 국립사범대학교에 들렸다가 본관 2층 총장실 앞 복도 오른편 끝을 가로막는 벽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벽에는 형형색색의 훈장으로 앞가슴이 온통 뒤덮인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실물크기의 커다란 반신상 초상화 액자가 늠름하게 걸려있었다. 그리고 이 초상화 오른쪽 옆에는 카자흐스탄 국가(國歌)가 적힌 같은 크기의 액자가 걸려 있었다.

      “하늘엔 황금빛 태양, 초원엔 황금빛 알곡!
                            오! 자랑스럽고 용맹한 카자흐 민족이여!!
       오! 나의 민족! 나의 조국이여!!
                            나의 조국 - 나의 카자흐스탄이여!!”

   가사를 읽으면서 이 국가의 작사자가 16년째 1인 장기집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개혁가이자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당시 서울의 답답함과 막막함에 가슴이 울컥하면서 온몸이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의 힘에 휩싸이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사회주의체제 붕괴에 따른 고난의 이행기를 넘어 국민에게 꿈과 희망과 자부심을 심어주는 이 국가! 이 지도자!

   이제 카자흐스탄이 1991년 12월 소연방의 붕괴와 더불어 새로운 독립국가로 태어 난지 22년! 붕괴 당시 소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15개 공화국들은 15개의 독립국가로 각각 새 출발을 했었다. 이들 가운데 발트3국을 제외한 12개국은 러시아 연방을 중심으로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들 15개국 가운데 새로운 국가 정체성 확립의 과도기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내적 안정과 발전은 물론 국제무대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여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나라는 푸틴의 러시아 연방과 나자르바예프의 카자흐스탄뿐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는 대통령은 ‘중동의 기적’ 두바이의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와 더불어 상상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 국가경영으로 그의 리더쉽이 카자흐스탄 국민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국제사회에서는 커다란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결과 오늘날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맹주로서 21세기 신 거대 게임의 주역으로 나서고 있다. 다만 필자는 20년여 장기집권자로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장기집권자들이 필연적으로 겪는 당해 사회의 비판적 지식인들의 비난과 불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부럽게 목도하면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정치학의 ABC적 경구를 그가 마음에 깊이 새기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카자흐스탄이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강건한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1) ‘스탄(stan)’이라는 말은 땅(land)이나 영토(state)를 뜻하는 고대 인도ㆍ유럽어족에서 기원했으며, 각 민족의 명칭이 그 앞에 붙어서 국가의 이름이 되었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자유롭게)방랑하다’라는 투르크어 동사 ‘카즈(kaz)’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2) “국가경제는 1997년 1조7천억 텡게(화폐단위, 1$=약 150텡게)에서 2011년 28조 텡게로 성장하였고, GDP는 16배 이상 증가했으며, GDP성장률은 연7.6%를 기록했다. 1인당 7배 이상, 즉 1998년 1500불에서 2012년 12000불로 증가했다.(2012년 12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대 국민 교서)
3) 국제정치학계에서는 19세기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막으려던 영국의 시도를 거대게임(Great Game)이라고 지칭하는 한편, 소련 해체 이후 오늘날 유라시아 지역이 교차되는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서방,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각축을 신 거대게임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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