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ㆍ유라시아

러시아 외국인 투자를 제약하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관료주의로 평가되고 있다. 각종 인허가와 관련된 규제가 많고 관료주의가 심한 국가인 러시아에서 비즈니스를 수행하는데 있어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이 바로 정치적 네트워크의 설정이다. 특히 정책 결정권자와의 관계 구축은 비즈니스의 성공적인 운영과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며 러시아 사업 진출시 많은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따라서 진출하고자 하는 지역의 경제적 환경 뿐만 아니라 정치적 상황, 특히 대통령 교체시기 지방자치단체장의 중앙정부 및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04년부터 임기 5년의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 직선제에서 대통령 임명제로 바뀌면서 신임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최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투명하고 명확한 기준 없이 이루어지는 관료들의 인사 문제를 제기하면서 2009년까지 약 26명의 지방자치단체장을 교체할 계획임을 밝혔다. 주요 교체대상자는 2년내 임기가 만료되거나 69세 이상 고령의 관료들이다. 물론 2년 이상의 임기가 남아 있는 지자체장 중에서도 자질에 문제가 있는 몇몇 인사들의 교체가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관료들을 대신할 새로운 인물로는 대규모 인원과 몇 십억 루블의 예산을 집행해 본 경험이 있고 55세 이하의 젊고 유능한 비즈니스맨 또는 정부 기관(정보기관, 군, 검찰 제외) 출신 인사를 중용할 방침이다.

이번 명단에서 특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은 모스크바 시장의 교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992년부터 17년간 모스크바 시장으로 장기 집권하고 있는 유리 루쥐코브의 퇴임으로 그 동안 많은 한국 기업들이 그와 맺은 사업적 관계들을 정리해야 시점이 온 것이다. 물론 후임 인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또한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극동의 연해주에서도 최근에 주지사가 검찰의 조사를 받는 등 교체 가능성이 높다. 세르게이 다르킨 주지사는 국유재산의 사유화와 관련된 비리 혐의로 집무실 및 가택 수색을 당하는 등 2010년 1월까지 임기를 채울 수 없을 정도로 지위가 위태롭다. 중앙정부는 2012년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새로운 주지사로서 적임자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모습이다. 블라디보스톡 진출을 원하는 기업들은 당분간 주지사와의 관계 설정을 유보하면서 사건 추이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 취임 이후 새로운 정부 각료 인선에서 푸틴 총리의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푸틴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였음을 볼 때, 향후 지방관 인사에서 얼마만큼 신임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러시아 비즈니스에서 관료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방자치단체장과의 관계 설정도 중요하지만 투자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정도(正道)경영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장기적 관점의 자세이다. 아무리 든든한 정치적 후원자가 있다고 해도 모든 일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려 해서도 안될 것이다. 비정상적인 방법은 항상 상대방에게 약점으로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변화무쌍한 정치상황에서 정치인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비즈니스 전체를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리스크를 항상 안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및 영국 석유 메이저의 합작사인 TNK-BP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한 경영권 찬탈 움직임 등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개입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러시아인들도 “친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Вдруг не станешь друг)는 문구를 즐겨 이야기한다. 러시아인들은 유럽인들의 합리성보다는 동양적인 정서인 의리를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단기적인 득실을 따지기 보다는 지속적인 교류와 상호 존중을 통해 진정한 인간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정치적 네트워크에서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