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브라질 중앙은행장 메이렐리(Henrique Meirelles)가 입각한지 6년을 넘겼다. 룰라정부 출범이래 경제팀의 최장장관이자 브라질 역사상 최장수 중앙은행장의 기록도 경신했다. (이전에는 군사정권시절 갈베아스(Ernane Galvêas)행장의 6년24일이었다.) 룰라와 메이렐리의 관계는 6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2002년12월10일 룰라는 대통령 당선인의 신분으로 워싱턴을 방문했다. 부시대통령과 국제금융계 인사들을 만나 면접시험을 치른 것이다. 시험직후 룰라는 미국에 있던 메이렐리를 만나 중앙은행장(BACEN)직을 제의했다. 당시 메이렐리는 야당인 사민당(PSDB)의 하원의원이었다. 보스턴은행의 세계행장을 끝으로 금융계에서 퇴역하여 정치인으로 새 출발하던 순간이었다. 메이렐리는 심사숙고 끝에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통화정책은 신용에 기반을 두는데 중앙은행의 자율권을 보장해주겠냐는 것이었다. 룰라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보장해주겠다고 답했다. 이렇게 둘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이때 헤알의 가치는 1달라에 3.79헤알이었다. (작년 중반만 하더라도 1.7헤알, 지금은 2.3헤알 정도이다.) 시장경제의 신봉자이자 야당출신인 메이렐리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안팎으로 몰려드는 도전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결과만 본다면 그의 업적은 수치로 증명된다. 물가와 이자율은 꾸준하게 낮아졌고 경제성장률과 외환보유고는 꾸준하게 증가했다. 작년에는 국제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투자적격국으로 상승했다. 그 이면에는 위기마다 메이렐리를 지지했던 룰라의 굳은 신뢰가 있었다.

메이렐리가 취임했을 때 브라질의 외환보유고는 200억불을 밑돌아 국제적으로 디폴트소문도 무성했었다. 메이렐리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25.50%까지 올렸고 다음에는 26.50%로 올렸다. 이후 금리통제가 가능해지지 바로 금리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련은 바로 찾아왔다. 로비스트인 마르꼬스 발레리오(Marcos Valério de Souza)의 로비사건이 터졌을 때 당시 정무장관(Casa Civil)이었던 조제디르세우(José Dirceu)의 음모로 메이렐리가 불법으로 자금을 해외 도피시켰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그러자 룰라는 대통령의 임시조치(medida provisória)를 통해 중앙은행장을 장관의 지위로 승격시켜 연방헌법재판소(STF)에서만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관할권(fórum privilegiado)을 부여했다. 조제디르세우장관은 비자금조성과 의원매수(mensalão)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만다. 2005년 후반에 연방국세청은 메이렐리가 재산을 해외 도피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14만8천6백헤알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의 무혐의가 입증된 것이다.

그러나 평온은 잠시뿐이었다. 2006년3월 그의 든든한 정치후원자였던 빨로씨(Antonio Palocci) 재무부장관이 정치스캔들로 중도 하차했다. 그 후임인 만떼가(Guido Mantega)장관은 전형적인 경제성장론 신봉자로 메이렐리의 고이율정책을 신랄히 비판해왔던 터였다. 이에 룰라대통령은 메이렐리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도록 하여, 재무부와 중앙은행간의 전통적인 상하관계의 고리를 끊어버렸다.

작년 9월 미국발 경제위기가 심각해지자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신용회복과 경기부양을 위해 다투어 기준이자율을 인하했다. 브라질도 이러한 압력에 봉착했다. 그러나 메이렐리는 4월 11.25%, 9월 13.75%, 12월 13.75%를 유지했다. 엄청난 비난과 압력이 쏟아졌다. 룰라는 이때도 메이렐리의 손을 들어줬다. 메이렐리는 올해 1월 들어서 기준금리를 12.75%로 낮췄고 연속적인 금융조치를 취했다. 브라질은 올 2월이 되면서 벌써 평온을 되찾고 있어 메이렐리의 성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브라질경제의 버팀목이 메이렐리라는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브라질경제는 변동환율제와 물가목표제의 성공적인 운용을 통해 경제안정을 이끌고 있다. 경기가 좋을 때 메이렐리는 룰라를 설득하여 2000억이 넘는 외환보유고를 이용하여 달라연동 국내채를 없애고 외채매입을 통해 순채무국으로 돌아섰다. 신용이 돈이라고 생각하는 메이렐리의 조치였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메이렐리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때그때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브라질은 국제경제위기를 맞아 처음으로 외환위기를 겪지 않고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중앙은행을 조타하고 있는 메이렐리가 있고, 그 뒤에는 룰라의 신임이 있다.

메이렐리는 올해 초부터 사임의사를 밝혀왔다. 고향인 고이아스주의 주지사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욕심이다. 그러자면 올해 9월 정도에는 중앙은행의 지휘봉을 내놓아야 한다. 들어오는 시기는 자신이 결정 못하지만 영예롭게 퇴진하는 시기를 정할 수 있는 메이렐리를 보면서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새삼 느끼게 한다. 룰라의 성공은 인사의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