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브라질과 국제금융위기
브라질 조희문 한국외국어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2009/09/12
이번 미국발 국제금융위기는 말 그대로 신용위기이다. 신용에 기초하여 자금을 운용하던 금융기관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국내외 투자가들의 신용을 기준으로 브라질의 올해 전망을 해본다면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비교적 양호하다. 대부분의 경제기관들이 올 해 성장률을 2%내외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5%대 성장을 했으니 썩 좋은 전망은 아니지만 다른 경쟁국에 비한다면 후한 점수이다. 이들은 브라질이 지난 3월에 위기의 저점을 통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라질은 국제위기가 생길 때마다 외환위기로 이어져 나라전체가 휘청거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심각한 정도의 환위기가 없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브라질이 가장 늦게 국제위기를 맞았고 가장 빨리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브라질에 대한 대우가 이렇게 변한 이유를 신용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첫째, 브라질의 외환보유고는 국제위기이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변동이 없다. 브라질은 지난 40여 년간 이머징 국가 중 최대 채무국의 불명예를 유지해 왔으나 2008년 초 사상 처음으로 순채권국으로 탈바꿈했다. 브라질은 무역의존도가 낮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국제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외환위기에 몰리곤 했다. 2003년 집권한 룰라는 외채를 줄이겠다고 작정하고 외채청산과 외환보유고를 높이는데 공을 들였다. 4월 현재 2000억불의 외환보유고를 기록하고 있는 브라질은 이번 금융위기에 체질개선이 성공했음을 보여주었다. 세계의 투자가와 투기꾼들이 브라질을 인정해준 것이다. 지난 1998년과 2002년에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룰라와 경제팀은 감격했을뿐더러 자신감에 넘쳐있다. 중앙은행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비상시 풀 수 있는 지준예치금으로 1860억 헤알(약 846억불)을 준비해 놓고 있다. 유비무환이다.
둘째, 브라질은행과 기업들의 위기대처능력도 뛰어나다. 브라질은 지난 1995-2000년 사이에 대대적인 금융구조조정(Proer)을 통해 경쟁력 없는 금융기관들을 모두 정리했다. 이후 중앙은행은 추진능력뿐만 아니라 엄격한 금융감독기관으로 인정을 받았다. 생존한 금융기관들은 금융위기에 지극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오고 있다. 작년 4/4분기에 상위 5대 은행(Itau-Unibanco, Banco do Brasil, Bradesco, Santander Real, Caixa)들은 총 70억 헤알(약 32억불)을 부실채권 추가유보금으로 남겨놓았다. (부실채권 추가유보금이란 중앙은행이 정한 유보금의 기준을 넘어선 잉여부분을 말함.) 2009년 상반기에 부실채권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기관들의 예상대로 올해 1/4분기의 체납율이 증가추세에 있다. 이러한 보수적인 태도는 주요 대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경제위기를 헤쳐오면서 위기관리내성이 쌓인 것이다.
셋째, 브라질은 해외시장의 의존도가 높지 않다. 반면, 세계최대의 농산물수출국으로 어떠한 경제위기에도 수출이 가능하다. 경기침체 시 소비자는 전자제품 등 내구재나 소비재의 구매를 줄인다. 반면 전체소비지출에서 식료품의 지출은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브라질은 소고기, 닭고기, 주스, 대두 등 국제경기에 둔감한 다양한 수출품을 갖고 있다. 아직도 총 경작 가능지역의 20%만을 사용하고 있다. 국제금융위기로 일자리가 줄어든 곳의 대부분은 해외시장에 의존하는 제조업체 들이다. 예를 들어 항공기제조업체인 Embraer는 지난 2월말에 총 인력의 20%인 4200명의 고용감축을 발표했다. 이러한 브라질의 경제특성을 알고 있는 국제신용등급기관들은 고질병인 외채와 인플레가 해결되자 2008년에 투자적격국으로 인정해 주었다. 수출 관련하여 또 다른 특징은 수출시장의 다변화이다. 수출시장의 80%를 미국에 의존하는 멕시코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2008년 브라질의 대미의존도는 14%로서 유럽연합의 24%에 도 훨씬 못 미친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인 자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투자가들의 브라질에 대한 믿음이다. 브라질의 올 해 성장을 1.5-2% 로 예상한 것은 브라질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다. 이러한 경제전망은 심리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과거수치에 근거한 전망이지만 여타 국가에 비해 낙관적이기 때문이다. 즉, 룰라정부의 지난 6년에 대한 평가이자, 룰라정부의 위기돌파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이 있으면 경제계획을 세워 집행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결국, 브라질이 국제금융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룰라정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장래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 및 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전글 | Mercosur와 시몬 볼리바르의 망령 | 2009-09-12 |
---|---|---|
다음글 | 인사는 만사다 - 메이렐리 중앙은행장과 룰라대통령 - | 2009-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