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Mercosur와 시몬 볼리바르의 망령
중남미 일반 조희문 한국외국어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2009/09/12
19세기 초 스페인으로부터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시몬 볼리바르는 독립 후에는 다시 독립된 국가들을 통합하여 미국과 같은 하나의 연방제 국가를 설립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었다.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정치인들이 볼리바르의 꿈이 자신들의 이상인 것처럼 통합(integration)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러나 다양한 지역통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통합체를 결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통합’은 정치인들의 구호일뿐 이들의 진정성을 믿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이 1988년 캐나다와 FTA를 체결하고 1994년 Nafta를 출범시키면서 상황이 크게 변했다. 남미에서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주도로 1991년 Mercosur가 결성되었고, 1995년 에는 관세동맹으로 발전했다. Mercosur는 처음 몇 년간은 역내교역이 크게 증가하여 성공에 고무되었으나 10년이 되지 않아 그 한계를 드러냈다. Mercosur가 브라질교역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자 브라질은 주변국가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역내시장을 확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등이 Mercosur에 준회원(associate member)자격으로 참가했다. 부분적인 FTA형태인 것이다. 그리고 베네수엘라가 2006년6월17일 정식회원국으로 가입서명을 했다.
남미의 북쪽에는 안데스동맹이 있다. 볼리비아, 페루, 에과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가 회원으로 있었으나, 차베스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는 페루와 콜롬비아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자 안데스통맹을 탈퇴하여 Mercosur로 자리를 옮겼다. 볼리비아, 페루, 콜롬비아, 에콰도르가 Mercosur에 준회원으로 가입했으니 안데스동맹은 이미 Mercosur와 끈을 맺은 것이다. 브라질 외무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Mercosur와 안데스동맹을 FTA형태로 합쳐 남미공동체(Unasur)를 결성하고자 했다. 드디어 2008년5월23일 Mercosur와 안데스공동체 회원국들과 칠레, 가이아나, 수리남 등 남미 12개국 정상이 브라질리아에 모여 Unasur를 정식 출범시켰다.
겉보기에는 Mercosur가 남미제국을 모두 흡수 통합하는 형태로 보인다. 그러나 속 빈 강정이다. 1995년 관세동맹으로 출범했던 Mercosur는 지금도 불완전한 관세동맹, 사실상 FTA에 불과한 관세동맹이다. 관세동맹에 맞는 공동체 기구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국가대표자들의 정치적 결단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회원국들간의 분쟁도 제대로 해결 못하는 상태에 있다. 2005년4월에 발단한 우루과이강의 펄프공장사건은 이러한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접경지역인 우루과이강에 위치한 Fray Bentos시에 우루과이정부가 외국투자를 유치하여 대규모 펄프공장을 건설하게 되었다. 이에 아르헨티나가 환경오염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심각한 환경오염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동 건이 국가분쟁으로 번지자 우루과이는 Mercosur분쟁해결기구를 찾았고 아르헨티나는 국제사법법원(ICJ)의 문을 두드렸다. Mercosur를 무시한 것이다.
한편, 2006년 5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리스 대통령이 천연가스의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볼리비아 가스전의 약 40%를 소유하고 있던 브라질 국영석유기업인 Petrobras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이때 Mercosur에 가입중인 베네수엘라가 볼리비아를 지지하고 나섰다. 브라질의 심기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브라질정계는 베네수엘라가 Mercosur에서 브라질과 주도권 다툼을 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차베스가 안데스동맹을 쑥대밭으로 만들더니 이제 Mercosur를 뒤흔들려고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여기까지가 남미경제통합의 현주소이다. 과거에 허황된 지역통합을 경험했기에 Mercosur결성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을 했다. 그러나 역내교역량이 정체상태에 머물면서 Mercosur를 계륵으로 보기 시작했다. Unasur는 한계에 달한 Mercosur에 활력을 주기 위한 돌파구로 볼 수 있다. Mercosur와 안데스동맹간에 FTA를 결성하여 역내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내적으로는 Mercosur의 문제를 일부 해결할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국제협상력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바로 이러한 정치적 접근에 있다. Mercosur가 살려면 단순히 회원국의 수를 늘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관세동맹을 운영할 수 있는 독립된 공동체기구를 설립하여 회원국의 정치적 간섭을 줄여야 한다. 브라질은 이러한 접근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경제력에 따라 가중 표를 달라고 요구하는데 아르헨티나는 1국 1표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적 해법이냐 경제적 해법이냐를 놓고 논란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재의 Mercosur시스템으로 관세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Mercosur의 내실을 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원국수를 늘리거나 역외국가와 FTA를 체결하는 것은 결국 Mercosur의 FTA 복귀를 의미한다. 칠레가 Mercosur에 정회원국으로 가입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정치오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조만간 Mercosur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Mercosur는 Unasur라는 통합바이러스에 감염될 것이다. 시몬 볼리바르의 망령이 되살아나기 위한 전초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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