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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오바마 덕분에 남미에서 몸값이 올라간 룰라

브라질 조희문 한국외국어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2009/09/11

오바마정부의 중남미정책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취임하자 마자 쿠바에 대한 여러 경제제재조치를 해제하는 등 소위 스마트외교로 중남미국가들로부터 점수를 따나가던 오바마였다. 그런데 갑자기 미군을 콜롬비아에 주둔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난 8월15일 발표된 협정은 미군이 콜롬비아 군사기지를 10년간 사용하는 것을 주요골자로 한다. 차베스는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노리고 정부전복을 위한 1단계 수순에 들어갔다고 맹비난했고 다른 나라들도 이구동성으로 미국에 대해 비난과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8월28일에 아르헨티나 남부 바릴로체(Bariloche)에서 열린 12개국 남미국가연합(UNASUR) 정상회담이 미국의 성토장이 된 것은 물론이다.


남미국가들의 생각은 이렇다. 12가구의 작은 마을에 좀도둑이 한집만을 계속 털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집이 이웃과 상의 한 마디 없이 무시무시한 깡패를 불렀다. 온 마을이 들 끌었다. 집주인은 깡패를 자기집에 기거하는 동안 문밖으로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변명했다. 깡패도 그럴 생각이니 안심하란다. 그런데 이 깡패는 예전에도 이 마을에 온 적이 있었다. 있는 동안 동네집안 대소사에 모두 끼어들어 제 맘에 안들면 두들겨 패고 심지어 가장을 쫓아내기도 하여 마을의 원성을 한 몸에 받았던 자다. 그러니 집주인과 깡패가 아무리 변명해도 마을사람들이 믿을 리가 없다. 제 버릇 어디 가겠는가? 좀도둑 잡겠다고 이 집 저 집 들쑤시고 다닐 것이 뻔한데. 아닌밤중에 깡패와 동거라니!


미국이 콜롬비아와 체결한 협정은 지난 1999년 클린턴 대통령이 체결했던 협정의 재 연장이다. 미국은 기존 군사협정의 재 연장이고 마약퇴치와 테러진압이 목적이며 행동반경도 콜롬비아 내로 못박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콜롬비아에서 사용하는 미군의 대형 군용기인 C-17의 행동반경은 남미전역에 미친다. 사실상 미군이 남미하늘에 떠있는 것이다. 한국외대 중남미 소장인 정경원 교수는 미국의 이번 결정은 오바마가 내건 스마트 외교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는 부적절한 외교정책이라고 지적했었다(중앙일보 사설 8월13일자).


남미 12개 국가 중 미국을 옹호하는 나라는 페루가 유일하다.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은 주권국가가 알아서 결정한 일이니 우리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란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이웃국가들이 싫어한다는 점이다. 비교적 온건한 아르헨티나와 칠레도 우려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대통령은 이번에 미국이 남미에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을 수수방관한다면 앞으로 다른 나라가 같은 행동을 할 때도 역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UNASUR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브라질이 쾌재를 부르고 나섰다. 룰라대통령은 정상회의 전에 오바마 대통령과 통화하여 UNASUR에 직접 와서 설명하도록 초대했다. 대안 없는 오바마가 초대에 응할 리 없다는 것을 룰라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룰라는 남미 맏형의 노릇을 톡톡히 했다. 미군이 남미에 주둔하겠다는데 브라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아픈 마음을 접어두고 모두를 위해 행동한 룰라에게 남미국가들이 신뢰를 보냈다. 룰라는 중재자로서 미국의 신뢰도 얻었고 그 동안 소원했던 ALBA블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브라질외교의 승리이다.


이제 공은 오바마에게 넘겨졌다. 오바마는 스마트외교의 허점을 보완하고 중남미 외교정책의 실체를 보여줘야 한다. 문제는 오바마정부의 중남미정책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행정부내에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급한대로 측근인 국가안보자문관 짐 죤스를 남미로 파견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오바마의 고민의 골이 깊어질수록 룰라는 더 큰 여유를 누릴 수 있다. 국제적인 문제에만 골몰하고 남미문제를 등한시 한다는 비판을 받던 룰라였기에 힘을 쓸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 오바마에게 속으로는 감사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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