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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중동 상인정신 이해해야 돈이 보인다!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서정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2009/11/05

중동 업체와 거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역상담회에 가보면 문의는 많지만 실적을 내기 어렵다. 다짜고짜 총판매권 혹은 중동 지역 전체 에이전트쉽을 달라는 현지 업체도 있다. 가격을 협상할 때도 마찬가지다. 몇 센트를 가지고 며칠을 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은 항상 두 자리 수 퍼센티지 이상을 챙기려고 한다. 수수료도 높다. 중간의 커미션을 확실히 그리고 높은 비율로 받으려 한다. 중동에서 흥정은 필수다. 이들은 이를 즐긴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하고 이를 두고 장기간 협상을 하려한다. 주로 상품을 팔거나 플랜트를 수주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참고 또 참아야 한다. 화를 내서도 안 된다. 수천 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아니 행동과 정신에 박혀있는 이들의 상인정신을 이해해야 한다.


중동에 세계적인 제조업 회사 혹은 유명한 브랜드 네임 하나만 들어보자. 답은 ‘없다’이다. 25년간 중동을 연구해봤지만 그럴듯한 제조업 회사에 대해 필자도 딱히 언급할 회사가 없다. 아랍권 22개국을 포함한 중동 국가는 27개국이다. 이렇게 많은 나라가 있는데 왜 단 한 개의 회사 이름도 말하지 못할까? 이 때문에 특별히 유명 브랜드 네임도 없다. 극동의 작은 나라, 한국도 웬만한 세계인이 알 수 있는 삼성, 현대, LG 등이 있다.


특히 그동안 중동의 산유국이 벌어들인 오일머니를 생각해보면 더욱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요즘 제2차 혹은 제3차 오일쇼크에 이어 다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제1차 오일쇼크는 1973년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중동의 산유국이 이스라엘과의 갈등을 빌미로 석유를 정치화하기 시작한 해였다. 물론 저유가 시절도 있었지만 그 때부터 현재까지 35년간 중동으로 흘러들어간 석유대금은 계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수십조 달러는 족히 될 것이다. 2008년 사우디 한 나라의 석유수출은 약2800억 달러를 넘었다. 그 엄청난 오일머니를 가지고도 제대로 된 제조업 회사가 중동 27개국 중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투자시설을 사들여올 외화가 없어 사정하듯 국제사회에 돈을 빌려 산업을 일으킨 한국과 비교하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는 월남에 군대를 보내고 많은 청년들의 ‘피 값’으로 받은 돈으로 고속도로 등 하부구조를 건설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열사의 중동에 수백만의 근로자가 나가서 달러를 벌어들여 산업에 투자했다.


많은 국내외 경제학자들이 중동 경제의 낙후성을 분석하려고 시도했다. 국가주도의 발전전략, 석유에 대한 지나친 의존, 비효율적인 경제운용, 교육의 부재, 부족한 근면성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변수를 중동 전체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나라마다 경제 환경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산유국도 있고 석유가 전혀 없는 중동국가도 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인 나라도 있고 개방정책을 추진해온 나라도 있다. 일부 서방의 학자들은 이슬람 종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하루에 5번(실제로 각 기도에 걸리는 시간이 5분 이하) 기도하고 1년에 한 달을 단식하는데 어떻게 생산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에게는 좀 어색한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중동인의 정신세계에서 그 답을 찾아 볼 수 있다. ‘머천트(merchant) 마인드’다. 상인 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고 좀 비하한다면 ‘장사꾼’ 마인드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꼭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다. 페니키아인들처럼 이슬람 이전 시대의 사람들도 상업을 중시해 왔다. 중동 출신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장사와 고리대금에만 치중하는 민족으로 손가락질 받았다. 문제는 독립국가 형성 이후에도 이 상인정신이 중동 대부분 국가의 경제와 경제인의 마음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는 점이다.


제조업 보다는 장사


실제로 장사에 익숙한 사람이 제조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계약만 한 건 잘 성사시키면 몇 십 %를 남길 수도 있고, 사재기를 잘하면 몇 배의 이익도 올릴 수 있는 것이 장사이기 때문이다. 소규모 자본으로 할 수 있을뿐더러 제조업에 비해 관리도 쉽다. 국내외 인맥을 잘 구축해 계약 혹은 구매만 잘하면 된다. 중동의 무역상 중 고위관리 출신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와 어느 정도 인맥을 가진 사람들은 은퇴 후 무역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많다. 부지를 구입하고, 생산시설을 짓고, 인력을 관리하고, 품질을 높여야 하고, 최근에는 판매까지 신경써야하는 제조업으로 전환하기 어렵다. 아무리 잘해도 수익 발생에 5년에서 10년씩 걸리는 제조업에 중동 경제인들은 투자하기를 꺼린다. 이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중동의 오일 머니는 부동산 사업, 주식시장, 채권, 서비스업에만 집중됐다. 모두 자금회전이 빠른 분야들이다.


제조업을 하더라도 비즈니스처럼 하는 경우도 흔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이집트의 자동차 조립은 우리보다 20여 년 빨랐다. 1956년 당시 대통령의 이름과 유사한 ‘나스르’라는 자동차를 조립했다. 피아트 회사와 계약을 맺고 부품을 들여와 자동차 산업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제자리 수준이다. 21세기에도 이집트는 자동차를 조립만 하고 있다. 다른 중동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조립하거나 완제차를 수입하고 있다. 1976년 ‘포니’를 처음 조립하기 시작해 현재 세계 6위 전후의 자동차 대기업을 성장한 현대와는 큰 대조를 보인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현대, 기아, 그리고 대우 자동차도 이집트에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이집트 자동차 업체의 사업 방식은 간단하다. 3년 전후의 부품 공급 계약을 맺고 구 생산라인을 받는 것이다. 한국 기업은 엔지니어를 파견해 생산 공정 관리를 돕는다. 이집트 측이 주로 담당하는 것은 판매다. 3년 정도 판매를 해보고 잘되면 한두 해 더 연장한다. 그리고 시장이 어느 정도 포화상태라고 판단하면, 이들 이집트 기업인들은 한국 기업과의 계약을 종료하고 또 다른 나라의 차종을 찾아 생산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런 방식을 반복만 해온 것이다. 기술개발이나 부품자국화 혹은 영구적인 협력관계에는 큰 관심이 없다.


중소기업도 비슷하게 운영된다. ‘공장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비즈니스맨이 많다. 하지만 이들의 마인드도 비슷하다. 코트라에서 주관하는 한국제품무역상담회에 학생 때는 통역으로, 특파원 당시에는 취재 차 여러 번 가 봤다. 상담회에 오는 이집트 바이어는 대부분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또 완전히 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여러 한국 업체와 상담한다. 10년 전에는 플라스틱 사출기계를 상담하고 기계 2대를 구입했던 바이어도 만났었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는 알루미늄 그릇제조기에 관심을 보인다. 이들은 기계 서너 대를 구입하고 완전히 못쓸 때까지 돌려 생산하고 판매한다. 중간에 기계적 결함이 생기면 한국에 엔지니어를 요청한다. 그리고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다른 종목으로 옮긴다. 사실상 전문으로 하는 업종이 없다는 것이다. 한 비즈니스 가족의 경우 아버지는 전자제품 수입, 아들은 플라스틱 사출 공장, 다른 아들은 자동차 부품 수입 등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이 다양한 분야의 여러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거나, 에이전트로 활동하는 경우도 흔하다. 제조업이 아니라 장사다.


국가경제와 가계에도 악영향


중동 경제의 전반적인 실패에는 너무나도 지나친 상인정신이 배후에 있다. 정부만이 홀로 수없이 비효율적인 제조업에 투자해 왔다. 비민주화된 사회에서 부패와 나태가 만연해 공기업의 생산성은 상당히 낮다. 일부 사회주의 경제를 추구하는 나라에서는 ‘해고’가 불법인 경우가 많다. 기계 하나에 한두 명이면 될 것을 수십 명이 달라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산업이 발달하려면 정부가 주도하더라도 민간이 어느 정도 따라와 주어야 한다. 중동은 상인정신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은 곳이다.

 

이렇다 보니 과거 수십 년간 엄청난 오일 달러에도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일부 왕족들이나 군사정권 실권자들은 엄청난 돈을 해외 부동산 혹은 금융상품에 투자하곤 했다. 최근 막대한 오일머니로 정부의 공공부문 투자 노력은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민간부문이 여전히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장사와 서비스업에만 돈이 몰리고 있다. 물론 21세기에 꼭 제조업이 국가경제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동은 지나칠 정도로 제조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지나친 상업주의는 일반인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예가 높은 실업률이다. 중동의 대부분 국가는 실업률이 두 자리 수다. 실질실업률이 30 혹은 40%에 달하는 곳도 있다. 엄청난 석유를 파는 산유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사우디나 이란에서도 실업률이 가장 큰 사회문제다. 인구는 크게 늘고 있는데 일자리 창출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정부, 공공기업, 그리고 서비스업에서만이 인력을 어느 정도만 흡수하고 있다.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해 일자리가 크게 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동은 또 물가가 비싸다. 서민 가계에는 큰 부담이다. 내부에서 대량생산이 이뤄지지 않아 생필품조차 대부분 수입한다. 특히 공산품의 경우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비싸다. 상업주의에 물든 무역상들의 중간 마진이 지나치게 높아 소비자는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 전후인 이집트의 경우 자동차 값이 한국의 두세 배에 달한다. 정부도 관세를 높게 책정하고, 무역상의 마진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상업세력과 권력층이 결탁하는 경우도 많다. 외국 제조업체의 진출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 실세와 손잡고 무역을 하는 큰 상인들이 외국 제조업체의 진출을 막거나 여러 방편을 동원해 방해하고 있다.

 

물론 21세기 국가경제발전에 있어 제조업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 등 소위 3차 산업으로도 부유하고 경쟁력 있는 국가 경제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중동의 상인정신은 너무 지나치다. 그 속에서 소위 ‘돈 있고 빽 있는’ 왕족과 부자들만이 그 부와 또 이에 따른 정치적 영향력을 세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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