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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UAE 원전 수주, ‘놀라운 선택’이 아니었다

아랍에미리트 홍성민 중동경제연구소 소장 2009/12/28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우울하고 힘든 한해가 막 가려는 세모의 끝자락인 12월 27일 저녁 UAE로부터 낭보가 전해졌다. 뉴스특보로 전해진, “한전 컨소시엄, 400억달러 UAE 원전 수주 확정”이라는 기사는 온 국민을 경악시켰다. 갑자기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神話)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당시에 우리는 8강 정도의 목표를 잡아놓고 그 수준이면 만족할 기세였지만 온 국민이 힘을 합쳐 4강 신화를 창조했다. 이 같은 저력이 세계가 놀라는 한국인의 기질이다. IMF 위기탈출 때도 전세계가 놀랐다.


이번에도 기적에 가까운 신화를 창조하며 UAE 최초 원전수출의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그저 기적이니 신화를 떠올린다는 것은 너무 추상적 개념이다. 1970년대 한국이 ‘중동신화’를 창조할 때도 그 기반은 한국인의 근면성과 온 국민이 하나 된 마음이었다. 당시 외국에서는 한국을 ‘한국주식회사(Korea Trading Company)’라는 표현을 썼다. 온 국민이 힘을 합쳐 기업은 뛰고 정부는 밀어주고 근로자는 열사의 사막에서 땀 흘려 일한 결과가 ‘중동 붐’을 가져왔던 것이다.


결코 신화나 기적이 아니었다. 이번도 마찬가지이다. 한전이 주축이 되어 컨소시엄을 형성했고 5%정도의 확률에 도전하며 지난해부터 밤을 낮 삼아 뛰었다. 한전은 워룸(war room)을 만들고 작년 12월 한국수력원자력, 두산중공업,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컨소시엄 참여 기업 직원 100여명이 주말까지 반납하고 불철주야 뛰었고, 여기에 에너지 및 경제관련 연구소와 기획재정부, 교과부, 외교통상부 심지어 국방부까지 총동원되어 함께 뛰었다. 하지만 세계적 명성을 등에 없고 있던 프랑스의 아레바 컨소시엄에 대해 UAE-프랑스간 긴밀한 유대관계와 당선직후인 지난 5월 사르코지 대통령의 방문외교 등으로 12월초까지만 해도 패색이 짙었다.


우리도 이에 뒤질세라 퇴임한 한승수 총리까지 특사자격으로 막판까지 물밑교섭을 벌였지만, 이 같은 총력전에도 한국의 수주는 어려운 것으로 점쳐졌다. 결국 참다못한 국가원수가 직접 발로 뛰었고 모든 상황은 언론이나 국민 모두에게도 극비에 부쳐졌다. 직접 찾아가는 세일즈 외교가 성공을 거둔 것이고 그들의 마음속을 파고 든 것이다. 그래서 모스크도 찾았고 통역도 영어가 아닌 아랍어로 심중을 읽으며 가슴을 파고드는 혼신의 힘을 기울인 결과 한국 역사상 단일 수주로는 최대의 건설공사를 중동에서 일궈낸 것이다.


외신들은 ‘놀라운 선택(surprise choice)'라고 경악하고 있지만, 결코 놀라운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세이크 칼리파 아랍에미리트 국왕은 계약체결 직후 분명히 했다. 한국의 원전수주는 ‘안전성’과 ‘경제성’이 선택의 조건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상대국가에 이익이 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고 천명했다. 한국 컨소시엄이 프랑스 아레바 그룹 주도의 컨소시엄,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와 일본 히타치의 연합 컨소시엄과 경쟁한 점은 국제사회의 경쟁에서 한국의 높은 기술력과 낮은 시공비를 전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미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 원전 수출국이 된 것이다. 규모로 볼 때 ‘리비아 대수로’ 공사의 6배가 넘는 수준이며, 향후 20년간 1200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사실 우리는 2004년 중국, 200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2008년 캐나다 등에서 원전수주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왔다. 중동에서의 첫 수주가 갖는 의미는 그래서 더 크다. 국가브랜드 상승은 물론  10년간 신규 고용창출효과도 총 11만명에 달한다. 중동진출은 이제 거대한 세계 원전시장에 새로운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한국 수주의 성공은 역시 기술력이 기반이었다. 한국은 1978년 1호 원전 이후 거의 매년 1기의 원전을 건설해 현재 총 20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중이다. 더욱이 50년 만에 원전 수입국에서 원전 수출국으로 변신한 한국의 기술축적과 가동능력이 성공의 주요인이었고, 그 과정에 경쟁단가를 낮출 수 있던 점이 그 다음 성공요인이다. 한국은 30년간 원전 무사고 운영과 국제경쟁에서 20%정도 낮은 건설단가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 점을 간파한 이명박 대통령은 최후 순간에 ‘공기 6개월 단축에 사업비 10% 삭감’이라는 빅딜 카드를 들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성공을 일궈낸 것이다.


역시 한국 원전의 기술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 이번 기회에 밝혀진 것이다. 가동률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원전가동률은 세계 평균 79.4%보다 훨씬 높은 93.4% 수준으로 미국(89.9%), 프랑스(76.1%), 일본(59.2%) 등과 비교할 때 월등히 우수한 편이며, 고장이 거의 없다(단 한번도 대형사고를 일으킨 적이 없음)는 안전성이 큰 경쟁력이었다. 우리의 기술축적 또한 큰 진보를 이룩했다. 그래서 기술자립도도 95%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이번 UAE 수주로 중동의 파급효과는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미 지난 12월 4일 요르단이 한국원자력연구원-대우건설 컨소시엄을 우성협상 대상자로 선정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터키 등도 원전 건립의사를 밝히고 있어 밝은 전망을 주고 있다.


불과 얼마 전 두바이 금융시장의 패닉에서 중동시장의 불안감에 초조해하던 투자자들에게도 다시 힘을 실어준 동기가 되고 있다. 이번 원전수주는 역시 철저한 준비와 경쟁력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좋은 경험이다. 역시 한국은 위기에 뭉치는 대단한 저력을 가진 민족임에 틀림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는 ‘제2 중동 붐’을 향해 다시 매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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