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UAE 원전수주의 정치경제학

아랍에미리트 서정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2010/02/02

2007년 말 중동의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상당부분 우리의 기술로 제작되는 원전이 중동에 건설되면서 원전 수출국의 첫발을 내디딘다는 소식이었다. 첫 번째 해외진출치고는 규모도 엄청났다. 1400㎿급 원전 4기 건설이다. 사업비는 200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최종 수주를 한 것은 아니지만 향후 60년 원전 수명 기간 중 운영과 연료 공급 및 폐기물 처리 등 운영 지원용으로 200억 달러 정도의 사업을 추가로 따낼 것이 거의 확실하다.


사상최대 규모의 원전 플랜트 수주에 성공한 것은 우선 우리의 꾸준한 기술축적 덕분이었다. 수출되는 한국형 원자로는 APR(Advanced Power Reactor) 1400㎿ 모델로 국내 신고리 3, 4호기와 신울진 1, 2호기에 적용되는 ‘3세대’ 원전이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원자력발전소 10기를 지으면서 꾸준히 원전 건설의 노하우를 다져왔다. 현재 원자력발전소 20기, 18GW 설비 보유로 세계 6위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담당할 수 있는 기술을 상당부분 가지고 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원전이 수십 년간 운영되고 있고, 특히 신뢰도로 연결되는 ‘연간 이용률’에 있어 95%를 기록해 세계에서 가장 신뢰성이 높은 원자력발전으로 꼽히고 있다.


환경문제, 방사능 유출 위험 등의 이유로 적지 않은 반대도 있었지만, 우리는 원전분야에 꾸준히 기술과 경험을 축적했다. 20년도 안 되는 기간에 독자적 원자로를 개발하고 수출까지 하게 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 ‘3세대’ 한국형 원자력발전소는 이번 수주를 계기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2007년 중국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원자로 등 주요 설비를 수출하면서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의 독무대였던 세계 원자력 설비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후 2년 만에 UAE 원전건설을 수주하면서 우리는 바야흐로 세계 6대 원전 수출 강국으로 도약했다.


경제성의 평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세일즈 외교를 펼친 것도 이번 원전수주의 주요한 전환점이 됐다. 2009년 8월 그리고 12월 초에 UAE를 방문한 필자는 원전수주의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아레바가 가장 유력하다는 분석을 현지 언론인과 전문가들로부터 끊임없이 들었다. 하지만 대통령 주도로 정부가 개입하면서 수주에 궁극적으로 성공하게 됐다. 국가의 주요 사업에 있어 국가 원수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21세기 무한경쟁 세계경제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수주를 목적으로 한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면서 수익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일부에서는 ‘덤핑 수주’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국전력 등 관련기업들은 수익을 내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정부가 개입하면서 입찰가격이 적지 않게 낮아진 것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고 있다. 물론 높은 가격경쟁력을 가지고 완공해 낸다면 향후 원전 수주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낮아진 수주가격에 단기적으로 자칫 참여기업에게 커다란 재정적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우려의 근거는 UAE 원전건설이 순수한 우리의 기술과 장비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난 20년간의 기술축적은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안전을 중시해야 하는 원전은 상당히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번 UAE 원전 건설에도 일본 업체인 도시바와 자회사인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펌프기술, 증기터빈 기술 등이 도입돼야 한다. 특히 핵심기술의 대부분은 미국이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전 건설비 절반가량은 미국 회사인 웨스팅하우스의 몫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자로냉각재펌프(RCP), 원전제어계측장치(MMIS) 등 핵심기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설비들은 주요 기기설비 공사비용의 48%에 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본도 이번 사업 수주로 상당한 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최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의 도시바사(社)는 라이선스료만 약 200억 엔(약 2560억 원)을 챙길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실제 이익은 정부 발표보다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물론 사업의 수익성만을 계산하면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해외 단일공사로는 종전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금액(63억 달러)의 3배를 뛰어넘는 최대 규모다. 향후 적지 않은 고용창출 효과도 가지고 있다. 더불어 국내 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향후 5년간 원자력 부문에 약 3600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국내 원자력발전 관련 분야에 있어 연쇄적인 민간투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향후 세계 원전시장에서의 추가 수주 혹은 진출이다. 전문가들은 2030년까지 430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세계 전역에 설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80기의 원전을 한국인의 손으로 짓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중국이 단연 최대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020년까지 총 50조원 규모의 1GW급 신형 원전 31기를 건설하기로 해 앞으로 세계 최대의 신규 원전 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중동의 요르단, 터키 등이 가장 가까운 시일 내 원전 건설을 발주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전과 국제정세


요르단과 터키 외에도 중동에서는 현재 원전 건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미 22개 아랍 국가 중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한 나라 수가 13개에 이른다. UAE의 원전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아랍권 내 다른 국가들의 원전 건설 경쟁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아랍권 국가들은 풍부한 석유 자원 덕분에 원전 개발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갈수록 치솟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 석유 고갈 이후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전 건립이 시급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원전 건립을 서둘러왔다. UAE가 세계 3위의 원유 수출국임에도 원전 건립에 적극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두 번째 주요 변수는 안보다. 이란의 핵 위협이 주변 아랍 국가의 핵개발 추진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란과 근접해 있고 수니파 종주국으로서 이란의 시아파 패권주의를 견제하고자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걸프 국가들의 반응이 두드러진다. 결과적으로 자국 혹은 지역의 안보를 위해 걸프 국가들은 일제히 2006년 이후 핵 개발 의사를 표명했다. 마지막으로 정치·심리학적 원인이 있다. 이란의 핵 개발로 인한 국내 및 지역정치의 불안이 아랍 국가의 핵 경쟁을 가져왔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란의 핵 기술 발전 및 군사력 증대는 주변 아랍국가의 심리적 경쟁심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과의 군사 및 핵우산 하에 만족하고 자체적인 핵 개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자국 정부에 대한 아랍 언론, 지식인, 그리고 대중이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중동 내 원자력 경쟁은 단순히 에너지원 다각화라는 경제적 요인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정치적 그리고 심리적 배경도 작용하고 있다. 특히 서방이 개입하는 국제정치역학적인 복잡성도 내포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핵무기 제조에 악용될 수 있는 농축 우라늄을 취급하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은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원전 개발 러시를 달갑지 않게 보고 있다. 미국 의회의 일부 의원들은 아랍권의 한 국가가 원자력 기술을 갖게 될 경우 다른 국가로 기술이 이전돼 결국 핵무기 개발에 악용될 수 있다며 UAE의 원전 사업에도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미국 주도 서방은 이 때문에 아랍권의 원전이 평화적 용도로만 사용될 수 있도록 담보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UAE의 경우 한국 시간 2009년 12월 18일 미국과 원자력협력협정을 체결하면서 자체적으로 우라늄 농축 및 플루토늄 재처리를 하지 않고 핵연료를 수입해 사용하겠다고 천명했다. ‘123 협정(123-Agreement)’으로 알려진 이 협정은 UAE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 기업으로부터 원전 원천기술을 수입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보증해주는 것이다. UAE의 원전 발주에서 계약체결까지 수주 협상 전 과정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UAE 정부가 한국 정부와 기업대표들에게 최종적으로 계약에 서명하겠다고 통보한 날인 12월18일은 공교롭게도 워싱턴에서 미국과 UAE 대표가 만나 123협정문을 최종 교환하던 때와 일치한다. 미국으로서는 아랍 국가들의 원전 개발 의지를 언제까지나 봉쇄할 수 없을 바에야 안전장치를 확실히 해 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동시에 UAE 원전이 다른 아랍권 국가들의 원전 개발 시 역할 모델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원전수주의 중동정치학


그러나 미국 등 서방과는 가장 상반되는 입장을 가진 이란에게는 UAE의 원전 사업 진행이 껄끄럽기만 하다. 이란은 자국의 핵 프로그램이 핵무기 제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서방의 주장을 일축하며 어디까지나 에너지원 확충을 위한 평화적인 용도로만 사용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때문에 이란은 북한과 달리 단 한 번도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언급한 적이 없다. 기회만 되면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과 아야톨라 하메네이 최고 종교지도자는 이란이 절대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강조해왔다.


이란 지도부와 국민이 ‘정당한’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우선 전력부족이다. 이란은 인구 약8000만의 대국이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지속된 미국의 경제제재와 경제개발정책 실패로 석유대국임에도 불구하고 휘발유를 수입하고 있다. 정유시설이 낙후했기 때문이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전력이 모자라는 것이다. 더불어 실업과 미미한 경제발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효과적 이용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합의가 도출돼 있다. 세계 제2위의 석유매장량을 가지고 있지만, 석유생산량의 3분의 1이 국내 전력생산을 위해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정부와 국민은 원자력발전소를 통해 원유의 국내소비를 줄이는 대신 이를 수출해 받는 더 많은 석유대금을 국내 산업발전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만이 이란의 지속가능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실업문제 해결의 답이라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이란의 우라늄 농축 포기를 압박하고 있고, 유엔을 통해 추가 경제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국제법상 보장된 우라늄 농축을 포기하고, 한국과 일본 모델 그리고 이제 UAE 모델을 따르라는 것이다. 자체 농축이 아닌 서방이 제공하는 고가의 농축 우라늄을 수입하고 재처리도 서방의 손에 맡기라는 것이다. 이란을 포함한 중동국가들은 핵탄두 200여기를 보유한 이스라엘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서방이 국제법상 합법적인 평화적 우라늄 농축을 하고자하는 이란 등 중동 국가에 대해 반대하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 이중 잣대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현재까지도 IAEA에 가입하지도 않고 있으며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참여하고 있지 않다. 반면 서방은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다른 아랍 및 이슬람국가에 대해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UAE와 미국이 전격적으로 원자력협정을 체결하고 이와 동시에 한국이 UAE 원전을 수주한 것에 대해 이란과 반미 중동권은 떨떠름한 표정이다. 이란은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중동의 경제 파트너다. 우리의 중동 내 최대 무역파트너가 바로 이란이다. 우리 수출 상품의 중동 내 최대 판매처도 이란이다. 두바이를 거쳐 많은 한국 제품이 이란으로 향한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보다도 더 많은 한국 제품이 팔리는 곳이다. 더불어 이란은 석유 및 가스 자원에 있어 세계 2위의 매장량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우리와의 보다 긴밀한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국가다.


이란 정부는 한국이 그동안 IAEA와 유엔 반(反)이란 결의안에 계속적으로 찬성표를 던져온 것에 대해 적지 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서방의 ‘이란 때리기’에 우리가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할 뿐 국제사회에서 이란의 입장을 전혀 이해해주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 얼마 전 이란에서 만난 한 지식인은 필자에게 거칠게 말했다. 이란은 양국 간 경제적 협력 수준에 맞춰 정치적으로도 한국에 동반자 관계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미국 등 서방 친향적인 외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원전수주에 앞서 우리가 UAE와 양국의 군사교류 수준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군사교류협력 협정(MOU)을 체결한 것에 대해 이란 등 다른 중동국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에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UAE 원전 수주로 경제적 이익이 크다고 하더라도 중동 정세에 대한 적확한 판단과 대응자제도 필요한 시점이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