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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빈 라덴 사망이후 중동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홍성민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 2011/06/21

9.11 테러의 주역 빈 라덴


지난 5월 1일 빈 라덴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전세계는 다시 한번 놀랐다. 9.11 미 테러사태이후 진행돼온 ‘테러와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으로 점화된 ‘아랍의 봄’은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이집트로 급속히 확산된 민중봉기는 리비아에서 대치중이며, 걸프지역의 바레인에서 멈칫하더니 예멘에서 다시 알-카에다(Al-Qaeda)가 부상하며 혼미를 계속하고 있다. 북으로는 시리아에서 발목이 잡힌 채 미국과 이스라엘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빈 라덴의 사망은 ‘테러와의 전쟁’을 종식시키지 못한 채, ‘아랍의 봄’을 기다리는 중동에서 또 다른 알-카에다의 부상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빈 라덴의 사망을 계기로 중동에서의 정세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향후 중동경제의 변화에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와 펜타곤에서 4대의 비행기에 의한 자살테러는 전세계를 경악케 했고, 미국은 즉시 오사마 빈 라덴을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알-자지라와 CNN에 주요 테러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예외 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빈 라덴이었고, 그는 미군의 비밀작전으로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약 100㎞ 떨어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사살되었고, 2011년 5월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공식발표함으로써 역사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알-카에다와 9.11 테러 연관설을 계속 부인하다가 2004년 10월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서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하였다. 2,974명의 무고한 인명희생과 19명의 납치범들이 사망한 9.11 테러사태는 미국으로 하여금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되었고 곧이어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게 된다.


미 FBI는 알카에다와 빈라덴이 9.11 테러에 개입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영국은 개입사실은 인정하지만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2001년 잘랄라바드에서 할레드 알-하르비와 공격을 논의하는 녹화 비디오가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아랍전문가인 압델 알-후세이니 박사는 이 사실로 9.11 개입의혹을 밝히기에는 부족하다고 반박하였다. 이런 와중에 2004년 10월 빈 라덴 자신이 직접 19명에게 공중납치를 지시하였다고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밝힘으로서 유일한 용의자가 된 것이다. 2006년 빈 라덴은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9.11은 자신이 책임자였으며, 람지 빈 알시브와 테러 당시 공중 납치범이었던 함자 알감디와 와일 알세흐리가 실제적인 공격을 준비했다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 빈 라덴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21세기 들어서면서 그 만큼 전세계에 알려진 인물도 드물다. 1957년 3월 생으로 알려진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재벌 출신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아드에서 사우드 왕가의 친구이자 부유한 사업가인 무함마드 빈 라덴과 그의 10번째 아내 하미다 알아타스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출생 직후 부모가 이혼하였다. 어머니는 무함마드 알아타스와 재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고, 빈 라덴은 이들 4명의 이복형제들과 함께 유년기를 보냈다. “라덴의 아들 오사마”로 풀이되는 오사마의 성(性)은 아라비아반도에서는 유명한 ‘알-카흐타니(āl-Qaḥṭānī)’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독실한 와화비즘 무슬림으로 성장한 그는 1968-1976년 영재교육을 담당하는 알타게르 학교와 킹 압둘아지즈 대학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또한 1979년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1981년 행정학 학위를 받은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종교에 커다란 관심이 있었던 오사마 빈 라덴은 1974년 17세가 되던 해 나지와 가넴과 결혼하였고, 2001년 9.11 테러사태 직전 그녀와 이혼하였다. 그 이후 빈 라덴은 5명의 여인과 결혼하여 이들 사이에 20-26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빈 라덴은 “이슬람율법인 샤리아(Shar'ah)를 회복하는 길만이 이슬람이 근본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며, 샤리아만이 범아랍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및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강조하며, 비이슬람국가들에 대항하기 위한 지하드(성전)를 역설하였다. 반유대주의자였던 빈 라덴은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반드시 축출해야하며 유대인들이야 말로 최고의 고리대금업자라고 비난하였다.


알-카에다(Al-Qaeda)의 지도자


1979년 빈 라덴은 파키스탄으로 자리를 옮겨 팔레스타인 학자 압둘라 아잠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가하였다. 1979-1989년 기간동안 미국은 파키스탄 정보부를 통해 무자헤딘 지도자들에게 무기 및 재정지원을 하였다. 이 당시 빈 라덴은 파키스탄의 3성 장군이며 ISI의 지도자였던 하미드 굴과 교분을 통하여 민병대 육성에 앞장선다.


1984년 빈 라덴은 아잠과 함께 아랍지역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자금, 무기, 전사들을 공급하는 조직인 ‘마크타브 알-키다마트’를 설립하였다. 빈 라덴은 이 조직을 통해 자신의 자금으로 지하드(Jihad)에 참여하는 전사들을 지원하였다.


1988년 ‘마크타브 알키다마트’를 탈퇴한 빈 라덴은 보다 적극적인 군사적인 성향으로 변모한다. 그는 아랍지역 전사들이 개별적인 조직으로 활동할 것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전투조직과 통합되기를 바랐고, 이러한 이유가 알-카에다(Al-Qaeda)의 성립배경이 된다. 1988년 8월 11일 알-카에다가 공식적으로 창설되었으며, 빈 라덴의 자금은 이 조직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한다. 1989년 2월 구(舊)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빈 라덴은 소련에 강력히 대항하여 승리를 이끌어낸 아랍전사들을 대동하고 ‘성전의 영웅’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귀국하였다.


귀국한 빈 라덴은 파드 국왕과 알-사우드 국방장관을 만나 사우디아라비아 방위활동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의 제안이 거부되고 미군의 사우디 주둔이 허용되자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및 사우디 주둔 미군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 후 빈 라덴은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한 공격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러한 사건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추방된 빈 라덴은 1992년 수단으로 자리를 옮겨 무자헤딘의 작전기지를 설립하였고, 이집트 이슬람성전단체(EIJ)와 연대하여 알-카에다의 핵심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1994년 과격한 행동으로 변신한 빈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여권을 말소 당했고, 수단정부 또한 그를 추방하려 노력했다. EIJ는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 암살에 실패하자 1995년 수단에서 추방되었다. 1996년 5월, 수단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및 미국의 압력으로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로 무대를 옮겨 탈레반의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와 손을 잡는다.

 

새 지도자 알-자와히리의 등장


빈 라덴 사망이후 침묵을 지키던 알-카에다가 6월 16일 새로운 지도자로 아이만 알-자와히리를 임명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겨냥한 `성전(聖戰)을 천명하고 있다. 이집트 의사 출신인 그는 현재 미 FBI로부터 2,500만 달러의 현상수배가 걸려있는 인물이다. 1951년 6월 카이로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15세에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조직인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하여 활동해온 알-자와히리는 현재 알-카에다의 최고 이론가이자 전략가로 알려져 있다.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암살사건에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85년 이집트를 떠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며 친소련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상대로 투쟁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가 알-카에다의 전면에 부각된 것은 1998년 빈 라덴과 함께 사우디에서 미국세력 축출,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인 축출 등을 목표로 한 ‘세계 반(反)유대-십자군 이슬람 지하드 전선’을 형성하면서부터였다.


파키스탄 북와지리스탄 또는 인근에 숨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알-자와히리는 지난 6월 8일 육성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무슬림의 땅에서 침략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빈 라덴이 추구했던 지하드(성전)의 길을 계속 따라야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와 함께 알-카에다는 새 지도자 임명을 계기로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성전에 다시 박차를 가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빈 라덴의 사망이 가져온 공백은 아직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연 새로 임명된 알-자와히리가 빈 라덴만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하는 점은 아직 미지수이다. 특히 중동에서 진행되고 있는 독재 및 부정부패에 대한 반정부시위에서 알-카에다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 것이 대부분 분석가들의 예측이다. 다시 말하면 중동의 반정부시위는 알-카에다의 역할을 축소시켰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중동 및 아프리카지역에서 반정부 시위로 각국의 대테러 전선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을 활용하여 신흥 거점인 예멘 등지에서 세력 확산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예멘에서의 활동이 알-카에다 좌표가 될 듯


빈 라덴의 사망에 대한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이슬람을 테러리즘으로 변화시켰다고 믿는 사람들은 빈 라덴의 종말을 반기면서 테러리즘의 종식을 환영한 반면,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나 헤즈볼라 등 과격파들은 미국의 빈 라덴 사살작전을 비난하고 있다. 일부 무슬림들은 빈 라덴의 죽음이 이슬람권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아직 혼미한 상태로 치닫고 있는 예멘의 정국에서 감지되고 있다. 예멘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지역에서 미국의 대테러정책에 적극 협조해온 국가이다. 예멘에 본부를 둔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지부(AQAP)가 2009년 디트로이트행 여객기 폭파 미수사건 등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미국 정부는 대테러전 수행에 있어 예멘정부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알리 압둘라 쌀레 대통령에 대한 반정부시위가 격화되고 최근에는 부상당한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반정부시위에서 부족간 갈등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는 예멘의 혼미한 정국에 알-카에다가 새로운 조직 부활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예멘의 남부지역에서 정부군과 알-카에다 간 전투로 최근 2주간 140명이 숨졌다고 보도(AFP통신 6월 13일자)하고 있다. 예멘군 관계자는 "남부지역 아비얀주 진지바르 지역이 알-카에다 수중에 넘어간 뒤 최근 2주간 벌어진 전투에서 최소한 병사 80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부상했으며, 알-카에다 대원은 60명이 사망하고 90여 명이 부상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예멘 야권은 쌀레 대통령이 테러위협을 부각하여 서방의 지원을 유지하려고 무장단체의 진지바르 장악을 방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 중앙정보국(CIA)이 예멘 대통령이 퇴진하고 미국에 적대적 정권이 들어설 경우를 대비하여 걸프지역에 공군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예멘에 CIA의 새 기지가 완성되면 미국의 대테러 당국은 유사시 예멘정부의 허락이 없이도 알-카에다에 대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무인기 프로그램을 확대할 경우 쌀레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CIA는 예멘의 알-카에다의 테러단체들을 상대로 보다 자유로운 상황에서 작전에 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이 예멘에서 알-카에다의 부활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현재 진행중인 중동의 반정부시위가 자칫 테러단체와 연계되어 중동정세를 보다 혼미하게 몰고 가는데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알-카에다가 선포한 대로 대이스라엘 성전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간다면, 아랍권의 결속은 물론 중동평화에도 커다란 먹구름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국제유가는 지난해 대비 33%나 올랐다. OPEC의 원유판매는 금년 최초로 1조 달러를 기록함으로써 1979년 제2차 석유위기시의 2배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산유국에서의 반정부시위는 재정에 커다란 압박요인이 되고 있기에 세계경제에도 그 파급효과가 조만간 나타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세계 원유공급의 약 40% 정도를 차지하는 OPEC의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 유지되는 상황 또한 세계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


아무튼 빈 라덴 사망이후 현재까지 중동에서 그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던 알-카에다의 활동이 예멘에서 감지되고 있음은 좋은 소식은 아니다. 아울러 새로운 지도부의 출범과 함께 또 다른 테러의 신호탄이 울려 퍼진다면, 중동의 상황은 반정부시위에 혼재되어 중동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점을 유념하면서 예멘에서의 알-카에다의 활동을 예의주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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