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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아르헨티나의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의 갈등 고찰

아르헨티나 하상섭 한국외국어대학교 한중남미 녹색융합센터 연구교수 2012/05/21

I. 들어가며:

오늘날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이라는 개념 논쟁은 많은 학자들의 논쟁과 더불어 쉽게 접할 수 있다. 둘 다 식량에 대한 이론 및 개념적 논쟁임은 분명한데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해 보면 사실 어려운 논쟁이다. 특히 식량안보를 위한 식량주권의 포기인가? 아니면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식량안보 위기를 방치해야하는가? 라는 보다 첨예한 논쟁 속에서 이러한 개념 논쟁은 더욱 신랄하다. 그래서 때로는 혼용되기도 하고 갈등 관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개념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사실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일반적으로 식량안보는 ‘달성’하는 것이고 식량주권은 ‘실현’한다고 표현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식량안보(food security)’라는 용어는 1974년 세계 식량정상회의에서 최초로 공식화되었다. 이후 식량안보 개념은 여러 차례 변화되는 과정을 가졌으며 현재 사용되는 개념은 1996년 세계 식량정상회의를 통해 합의된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항시적으로 자신의 음식에 대한 필요도와 선호도를 충족하면서 물리적, 경제적으로 안전하고 영양이 만족할 수 있는 먹을거리에 접근할 수 있을 때 식량안보가 존재’하며 이는 일종의 지향을 담은 목표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본래 식량안보는‘먹을거리의 보장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되어야 하는 한편 국가만이 아닌 개인과 공동체 차원 각각에서 논의되어야할 개념이다. 그런데 왕왕 식량안보는 곧 국가 차원의 안보 문제로만 여겨지고 소외계층의 먹을거리 접근성 문제는 무시되는 경향이 농후했다. 사실 일국의 정부는 자국의 식량안보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식량안보 역시 관심을 가져야 하며, 국민들의 식량안보는 먹을거리의 복지문제로 접근될 수 있다.

 

언급한 대로, 1970년대 중반부터 식량안보 개념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국제사회 내 식량위기가 발생하자 식량공급의 문제에 초점을 두어 국제/국내적 수준에서 기본 식량의 수급가능성(availability)과 가격 수준 안정성 확보를 위해 언급되기 시작했으며 세계 식량정상회의 (1974년 World Food Conference)를 통해 기근과 기아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녹색혁명을 통한 기술의 성공으로써 빈곤이나 영양실조의 획기적으로 줄일 수 없음을 인식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논의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국제사회 내 꾸준히 증가하는 식량소비를 따라가 줄 수 있고 생산과 가격에서의 변동을 맞춰줄 수 있도록 항상 적절하게 기본 식량을 공급해 줄 수 있는 능력” 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안보의 개념으로 거론된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식량안보의 개념은 1980년대 초반부터 이미 국내시장에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증산정책이 많은 나라의 핵심정책이 되면서 국가차원의 식량이 충분하더라도 개인 차원의 식량 접근이 모두 항상 보장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 및 무역자유화 차원에서 진행되던 우루과이라운드를 거치면서 식량안보의 중심이 국가에서 세계시장으로 옮겨지고 글로벌 식량안보 추구라는 목표 속에서 식량무역의 자유화를 뒷받침하는 개념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식량안보 개념은 개인, 공동체, 국가의 먹을거리 보장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함유하고 있는(실제로는 그렇게 적용되고 있지 않지만) 반면, 가장 중요하게 먹을거리가 어디서 오고, 누가 생산했으며, 어떻게 재배되고 그리고 가공 유통되었는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기초해서 식량안보의 개념은 굳이 힘들여 스스로 생산하는 것보다 값싼 먹을거리를 무역이나 수입 그리고 원조를 통해서 식량안보를 달성하는 것이 좋다는 논리로 확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적인 식량위기, 혹은 식량안보 위기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커다란 문제로 등장할 때마다 식량안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자유무역의 확대 및 이의 지속적 추진이 대안으로 항시 제시되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개념의 식량안보는 궁극적으로 자유무역으로 인해 국민들의 먹을거리를 국제시장에 의존하게 만들고 자국 농업의 독립적 발전을 훼손하고 오히려 파괴시켜 역으로 식량안보의 지속적 확보를 해치게 되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정치적 성향으로 이러한 개념들을 좀 더 세분화 해보면, 신자유주의 입장에서는 식량안보에 있어서 기업의 활동을 자유화해 식량사업에 많은 혜택을 부여하고 GMO 식량공급의 확대를 허용하지만 경작지는 많이 수탈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좀 더 개혁주의 입장에서 식량안보 개념은 일종의 기술적 개념으로 ‘발전’ 이라는 목표로 정부와 기업이 식량권에 피해가 있을 때 책임을 지며, 특히 중형농가생산 및 지역적 기반 하에 식량 원조를 확대하고 정부의 농업보조금 정책(GMO와 바이오기술 강화 및 기후변화에 강한 곡물 생산 장려)을 통해 빈곤인구를 구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처럼 식량안보 개념이 자유무역의 증진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허용하고 있는 개념이라면 이에 반해서 식량주권은 지금의 산업화된 농업의 무역 자유화를 거부하는 일종의 대안 패러다임이다. 식량주권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개발 패러다임이 절대적인 명제가 아니라 하나의 모델일 뿐이라는 문제제기에서 시작한다. 농업과 먹을거리 문제에 민주주의를 결합시킨 식량주권 개념은 1996년 멕시코의 국제 소농운동조직인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  총회에서 최초 발표되었다. 식량주권은 먹을거리가 인류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생산자원을 생산의 주체인 농민들에게 돌려주는 농업개혁, 자연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과 관리, 먹을거리 무역의 재편, 확산되는 기아를 종식시키는 한편 사회적 평화의 실현, 농업과 먹을거리에 대한‘민주적인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기초로 하고 있다

 

보다 실질적 차원에서 식량주권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푸드 퍼스트(Food First)'  창립자인 피터 로셋(Peter Rosset, 2003)은 “식량주권의 개념은 식량안보 개념을 뛰어 넘는 개념으로, 식량안보가 매일 모든 이들이 일정량의 식량을 충분히 공급받아야 된다는 측면만을 강조한 것이라면, 식량주권은 소농을 비롯한 농촌공동체, 어부 등에 대한 지원 등에 대한 정책적 개념도 포함되어야 하며 이는 보다 세계 경제에서 이미 산업화된 형태의 소규모 다국적 영농 기업들에 대한 지나친 집중을 배제할 때 가능한 개념” 임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식량주권은 “글로벌 차원에서 농촌 재활성화 플랫폼이 되어야 하며 이는 토지와 수자원의 공정한 분배에 기초해 종자의 농민 통제 강화 그리고 지방민들을 직접 소비자로 해 건강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생산적 소농의 증가를 기반으로 하면 가능” 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식량안보가 일종의 목표인 반면 식량주권은 농업과 먹을거리의 대안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책들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고 있는 개념이다 그리고 식량안보가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라면 식량주권은 농민들과 이를 지지하는 진보적인 세력이 광범위한 연대와 합의를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발전시키고 실천하고 있는 일종의 대안적 사회운동 개념이다. 일종의 식량주권에 인권을 부여한 정치적 개념으로 경작지. 수자원, 시장에서의 구조적 재분배 개혁 - 생산의 지역화, 문화적 적정성, 민주적 통제 - 등이 강조되며 보다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식량체제를 위한 정치적으로 가능한 조건 마련 혹은 권리부여(entitlement)를 목표로 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대립된 개념을 기반으로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의 개념을 분석변수(무역, 생산, 가격, 접근, 가치, 위기 그리고 덤핑 등)에 따라 분류해보면 다음 표와 같다


멕시코의 ‘비아 캄페시나’ 의 경우처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우 식량안보 개념을 따라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고 초국적 곡물기업들의 이윤추구의 논리가 되면서 라틴아메리카 농민들은 식량주권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식량안보 차원의 논리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찾기 혹은 식량주권 지키기 차원의 저항이 여러 국가들에서 시작되고 있다. 다음 섹션은 이러한 저항의 목소리가 높은 아르헨티나의 사례연구이다. 전통적으로 아르헨티나 농산물 식량문화와는 거리가 먼, 따라서 다국적 기업들에 의한 단순히 글로벌 차원의 시장수요에 부합하기 위한 단일재배 방식의 유전자조작 대두 생산의 등장과 아르헨티나 정부의 농업수출의 팽창 전략 그리고 이에 대한 아르헨티나 농민공동체 및 시민사회단체들의 갈등과 대립에 대한 경우이다. 물론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는 다음 섹션에서 보여 지듯이 아르헨티나 방식의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의 논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II. 21세기 대두산업 성장: 아르헨티나 식량안보


언급했듯이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평원은 우크라이나 흑토지대 및 미국 중서부의 옥수수지대(Corn Belt)와 함께 세계 3대 곡창지다. 아르헨티나의 2008년도 곡물생산량은 1억 톤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는 미국 및 브라질에 이어 세계 3위 대두 생산국인 동시에 또한 세계3위의 대두 수출국이다. 대두는 이제 통상 아르헨티나 곡물생산량의 반 정도를 차지한다.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되는 대두의 90%는 유전자변형 종자다. 아르헨티나는 대두 생산량의 대부분을 대두유 및 대두박으로 가공하여 수출하기 때문에 대두 생산량에 비해 수출량은 아직 작은 편이다. 아르헨티나는 1996년에 상업적인 유전자조작(GM) 대두를 도입하여 3년 동안 6백 8십만 헥타르에 대두를 심었었다. 식량안보 확보, 수출증대를 위한 공급과 생산 확대를 위해 제초제에 내성이 있는 Roundup Ready Soybean(RRS) 종자는 미국과 아르헨티나 재배지에 급속히 퍼져 있었다. 특히 2001년-2003년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위기와 외채탕감을 위해 더욱 많은 대두 생산이 정부 정책으로 선호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6년 현재 아르헨티나의 RRS 재배는 2천 1백 3십만 헥타르로 3배 이상 증가했고 아르헨티나는 미국과 브라질에 이은 대두 수출 분야에서 핵심 국가로 급성장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 200헥타르 이하의 소규모 운영은 전체 농가의 70%나 차지하지만 면적상으로는 6% 이하이다. 대두 경작이 확대되면서 대규모 대두 플랜테이션 농업이 아르헨티나의 곡물생산에서 주축이 됨에 따라 소규모 농장과 농업의 일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1988년-2002년 사이 약 100,000개 이상의 농장과 230,000명에 달하는 농업 일자리가 아르헨티나에서 없어졌고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은 도시로 이주하거나 토지가 없는 빈민으로 전락했다.

 

광활한 팜파에서 알팔파를 먹고 자라던 아르헨티나 가축들도 이제 복합 사료를 먹고 있다. 팜파 지대가 점점 대두 경작지로 바뀌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총 경작지 3,000만 헥타르의 64%가 대두 경작지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2010년 아르헨티나에서 대두 수출은 5,200만 톤에 달했다. 현재 세계 3위 대두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며 세계 1위 대두유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대두유의 국내 소비는 적다. 대두보다 대두 제품의 수출 선호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두를 통째로 국내에서 분쇄하고 생산품을 수출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분쇄를 목적으로 대두에 대한 세계 수요에 부응하여, 아르헨티나의 대두 수출은 급격히 증가해왔고 2020년까지 1천 8백만 톤까지 약 3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르헨티나에서 수출되는 이러한 대두의 대부분은 오늘날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위의 그림과 표에서 보듯이, 아르헨티나의 대두 생산은 대부분 아르헨티나에서는 팜파(pampas)라는 중앙부의 비옥한 평원에서의 곡류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대표적으로 대두의 공급요인을 보면 첫째, 제초제 ‘글리포세이트(Glyphosate)’에 내성이 있는 GMO(유전자조작) 종자(Roundup Ready, RR)의 도입, 둘째, 재배 방식의 변화에 손쉬운 적응(예를 들어, 직식 재배 방식의 성공), 아르헨티나 정부의 단기간 산업 투자 허용 정책, RR의 특허기간이 끝나 가격이 저렴해짐으로써 기업들의 종자의 보급 확대 전략의 작용 등으로 수확 면적과 생산량의 증가가 가능했다. 동시에 공급 확대에 따라 재배 면적도 아르헨티나 북부지역(Chaco 차코, Santiago del Estero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그리고 Salta 살타 및 Formosa 포르모사)으로 확대되었다. 물론 전제가 되는 수요 요인으로서 식량안보 정책에서 재배지 부족 등의 이유로 대두의 국내 식량 자급을 포기한 중국에 의한 수입수요의 급격한 확대가 주요 원인이었다. 한편, 옥수수와 밀은 내수를 우선시 하여 국내 식량가격을 낮추는 것(물가안정)을 목적으로 한 수출규제가 있기 때문에 수확면적은 대두에 비해 다소 침체되는 경향을 보였다.

 

21세기 아르헨티나의 대두 산업 발전은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농업 및 경제 정책적 고려에서 모색되었다. 아르헨티나 재정 수입에 막대한 영향을 주어 온 1차 농산물 수출 정책의 활용은 이전 19세기 혹은 20세기 동안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때마다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온 방안이다. 심지어 1970년 중후반 군부정권에서 경제부 장관이었던 호세 마르티네스 데 호스(JoséMartinez de Hoz)의 경우에는 아르헨티나의 1차 농산물 중에서 대두의 생산량을 늘려 식량안보를 확보함은 물론 이를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해야한다는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그의 책‘1930-60년대 사이 아르헨티나의 농업과 목축(Agriculture and Cattle Ranching in Argentina between 1930-60)'에서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장은 1차 농산물 생산 증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효율적인 비료 사용, 관개의 확대, 잡초 제거를 위한 충분한 화학 방법의 개발, 농작물 병충해 및 가축 질병의 방어, 토지의 효율적 관리”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지만 아르헨티나가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일이며 그것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를 성취해야 아르헨티나 미래 번영을 담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대두 공화국” 이미지가 발전했다.

 

특히 종자의 개량과 질소 비료의 빠른 보급은 더 많은 생산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1983년 들어선 아르헨티나 민선정부에서도 이러한 전략은 지속되었으며 화학비료 개발에 농업 투자가 강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1985년까지 아르헨티나 농산물 수출은 국제 가격과 균형을 맞추지 못해 수출은 저조했다.

 

하지만 오늘날 대두 농작물은 아르헨티나 경제위기(특히 외채 부담) 극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작물이 되었다. 1989년 아르헨티나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위기와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구조조정을 단행한 메넴 정권의 신자유주의 방식의 민영화, 규제완화 그리고 무역개방 전략은 아르헨티나의 외채 증가를 가져왔다. 비효율적 공기업의 매각을 통해 초창기에는 다소 외채가 줄어들었지만 1997년 메넴 2기에 이르러 아르헨티나의 외채는 1,250억 달러에 달했으며 경제위기가 극에 달했던 2003년에는 1,98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증가했다. 1990년대 초반 메넴 정권의 하이퍼인플레이션 대책으로 이행해 온 일명 ‘태환법(1달러=1페소 고정환율제)’ 은 경직되었고 아르헨티나의 무역 경쟁력을 상실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다시 한 번 아르헨티나 무역구조를 가죽을 수출하고 신발을 수입하는(혹은 목화를 수출하고 직물과 의류를 수입하거나 곡류를 수출하고 파스타와 비스킷을 수입) 구조로 전환시켜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무역수지 적자와 외채는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결국 2001년 12월 사상 유례가 없는 경제위기 국면으로 돌입했다. 통화 및 재정개혁 그리고 시장의 자유화를 중심으로 한 무역 개방이라는 신자유주의 방식의 경제구조조정은 농업정책에도 적용되었다.

 

1996년 아르헨티나의 농수산청인 SAGPyA(Secretariat for Agriculture, Cattle, Fisheries and Food)는 다국적 해외 농기업인 몬산토(Monsanto)에 유전자조작 대두(RRS) 산업에 대해 상업적 투자와 생산 그리고 무역의 권한을 허가했다. 몬산토의 대두산업에 대한 투자는 당시 국제 곡물 시장에서 아르헨티나의 고평가된 환율로 다른 곡물 수출은 그리 경쟁력이 없었지만 대두 가격은 높아서 상업적 이익 차원에서 투자 가치가 있었다. 국제 곡물 시장에서 아르헨티나 대두 산업의 경쟁력은 환율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어, 2005/2006년 대두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이윤이 많이 나는 작물 중에 하나였다. 특히 대두 생산과 수출 부문에서 경쟁 국가인 브라질의 투자와 이윤은 급격히 감소하였는데, 이는 작물의 문제가 아니라 대두에 대한 국제 시장 가격의 가치가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브라질 헤알(real)의 고평가(2004/2005년에 1달러에 3 헤알이었던 환율이 2.1 헤알로 평가절상)는 브라질에서의 대두 산업 투자를 많이 감소시켰다. 몬산토의 아르헨티나 투자 인센티브는 몬산토가 유전자조작 대두 종자 도입에 대해 세금부과(royalty charge)가 없었다는 이유도 투자에 대한 관심을 높인 이유이기도 하다. 대두 생산에 중요한 제초제 ‘글리포세이트(Glyphosate)’가격 또한 미국보다 싼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는 장점도 작용했다. 생산비용의 절감이 아르헨티나에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 입장에서 유전자조작 대두 산업에 대한 투자는 축복이었다. 그리 대규모 자본 투자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외부 대출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이 토지를 가진 기업의 손에 있었다. 유전자조작 대두 생산 전략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단기간에 전략적으로 생산량을 확대해 달러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2002년 수출세가 재설정되면서 대두산업 수출을 통한 재정수입은 증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III. 대두산업 성장의 평가와 결론: 식량주권의 위기?

오늘날 아르헨티나 북서부는 주요 기업식 농업의 확대 지역이다. 이는 기업인, 지역의 권력 엘리트, 지방정부 기관 및 매체, 심지어 ‘지속가능한 개발’ 관련 협회에 의해 촉진되어 왔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아르헨티나 북서부에서 소유권의 집중이 증가했고, 이는 소규모 농민을 추방하고 농촌거주민의 고용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2년 국가농업조사(CNA)에 의하면, 살타(Salta)는 토지 소유권 집중 비율이 높은 지역 중에 하나였고 5천 헥타르 이상인 농가는 3.1%였으며, 63%의 토지가 생산에 이용되었고, 주로 대두, 옥수수, 사탕수수, 담배, 소 방목에 이용되었다. 이 지역에서 아르헨티나 토착 지역사회의 1/3이상이 그곳에 거주하였으며 그들 중 70%는 토지 소유권(land titles)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식량주권의 위기에 대한 지방민들의 저항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부분이다.

 

대두와 사탕수수 확장은 아르헨티나 북서부 지역의 살타(Salta)와 후후이(Jujuy) 지방에서 토착민과 거주민의 이주와 산림 파괴의 주요 요인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산림법은 2007년 말에 채택되었는데 이는 토착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각 지역이 토지이용계획을 개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위치(Wichi), 또바(Toba), 코야(Kolla), 과라니(Guarani) 등의 산림은 그곳에서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토착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다. 그리고 멸종위기에 처한 많은 조류종이 여전히 그 숲에서 발견되었으며 귀중한 carob trees, cedar, palo santo, quebracho, palo amarillo, lapacho와 같은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반-건조 차코(Chaco)지역은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작물로 대두가 차지하면서 산림파괴가 확대되고 있다. 역시 지방의 환경 및 산림보호 이슈가 식량주권 개념 차원으로 연결되어 저항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저항의 움직임은 유전자를 변형시켜 판매하는 몇몇 종자회사, 영농회사, 가공회사, 수출유통회사 등이 대두농업에 관여 하고 있으며 신젠타, 몬산토, 붕헤(번지), 카길, 등의 다국적 대농기업들이 카르텔을 형성하여 대두 산업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 대두산업의 성장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식량안보 및 경제적 차원의 이해관계 만족, 다국적 대농기업들의 이익 투자 확산과 더불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성장은 동시에 많은 피해를 발생시키며 갈등을 유발하고 있기도 하다. 식량주권 확보라는 새로운 저항운동이 아르헨티나 시민사회 단체를 통해서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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