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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아르헨티나 YPF 국유화를 바라보는 시각

아르헨티나 손혜현 한국외국어대학교 초빙연구원 2012/05/30

2008년 300억 달러의 민간연금펀드의 국유화와 2009년 Aerolineas Argentinas 국유화에 이어 스페인 렙솔(Rapsol) 석유회사의 자회사인 YPF가 지난 5월 4일 국유화 되었다. 이로써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Cristina Fernandez) 대통령 임기동안 세 번의 국유화 조치가 단행된 셈이다. YPF 국유화 법안은 4월 16일 처음으로 의회에 제출되었고 그 후 급물살을 타면서 4월 25일과 5월 3일 각각 상원(찬성 63표 반대 3표)과 하원(208표 반대 32표)의 표결을 거쳐 5월 4일 공식적으로 국유화가 선포되었다. YPF의 지분 비율이 연방정부 26.03%, 지방정부 24.99%, 아르헨티나 페데르센그룹 25.46%, 렙솔 6.43%, 일반 주주 17.09%로 재편됨으로써 아르헨티나 정부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지분을 합친 51%의 YPF 지분을 보유하게 되었다. 다국적기업 소유의 석유회사를 국유화하는 데 걸린 시간이 채 한 달도 되지 않는다. 간단한 민원서류 한 장을 발급받기 위해서도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몇날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아르헨티나에서 이번 사태는 절차와 속도 면에서 절박성을 짐작하게 한다. 이번 사태가 이 시점에 이렇듯 급박하게 진행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상 2010년 12월 국민들 앞에서 대통령이 렙솔과 에스케나지가문(페테르센 그룹)을 에너지 생산 혁신에 공로가 있다고 칭찬할 때 까지만 해도 아무도 렙솔로 부터 YPF를 몰수할 것이라고 예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불과 5달 전인 지난해 11월 네우켄(Neuquen) 주 분지에서 230억 배럴에 달하는 셰일석유와 가스를 발견했을 때 까지만 해도 렙솔사의 몰락은 예견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4월 19일 경제부차관인 키실로프(Kicillof)가 국민들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어긋날 때 국가는 개입해야 한다며 YPF 인수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렙솔사의 운명은 예상되었다. 그러나 왜 하필 이 시점에 그런 차이가 뚜렷해졌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YPF의 국영화 조치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다. 일부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에너지 위기문제가 초래한 에너지주권 즉 자원민족주의 문제로 보고 있고 또 다른 일부에서는 국내 정치⦁사회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보고 있다. YPF국유화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는 날 회의장은 물론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는 마치 축제장을 방불케 했다. YPF 국유화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표현하는 거대한 행렬과 대통령을 자원민족주의의 챔피언으로 묘사하는 슬로건과 벽보들이 나부꼈다. 과연 아르헨티나 YPF 국유화 결정은 에너지주권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에너지정책의 일환이었을까? 아니면 재선 이후 국내적으로 끊이지 않았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취해진 포퓰리즘인가?


자원민족주의와 에너지안보
 

자원민족주의와 에너지안보는 국가의 에너지정책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개념이다. 자원민족주의는 자국의 영토 혹은 영해에 있는 천연자원이 보유국가의 재산이라는 개념으로써 자원은 사적인 이익이 아닌 국가의 이익과 국민들의 복지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자원민족주의의 목적은 정치엘리트 자신과 그들 측근들의 부의 축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발전과 이익극대화에 있다. 자원가격인상, 채굴삭감조치, 외국기업에 대한 경영참가 또는 국유화라가 자원민족주의 대표인 사례이다. 에너지안보는 국제시장의 에너지 쇼크로부터 국가의 경제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에너지의 안정적·합리적인 공급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최근 아르헨티나는 막대한 에너지 무역적자와 국내 에너지위기를 해결하고 에너지안보를 달성한다는 명분으로 YPF를 국유화 하였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국유화 법안에 서명한 뒤 연설에서 ‘이번 국유화 조치는 렙솔이 아르헨티나 석유부문에 투자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며(YPF에 대한 정부보조금이 원유생산의 34% 그리고 가스 생산의 23%에 해당) 수익금을 석유부문에 재투자하기 보다는 배당금지급을 위해 해외로 이전시켰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설명하였다. 아르헨티나정부가 제시한 명분은 설득력이 있다. 렙솔은 계획했던 대로 투자를 하지 않았으며, YPF를 인수한 이후 원유생산을 감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주에게 더 많은 이익을 배당하였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압력이 있기 직전인 4월 초 회사는 “전략적” 계획을 발표하였으나, 한 푼의 투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2011년 아르헨티나는 연료 수입에만 90억 달러를 쏟아 부으며 순 에너지 수입국으로 돌아섰다. 현재 에너지부문 무역적자액만 30억 달러에 이른다. 2012년에는 수입에 120억 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999년 YPF 민영화 당시 렙솔이 지불한 금액은 151억 6천 9백만 달러였다. 렙솔은 1999년부터 2011년까지 YPF에 2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고 주장하였으나, 정부는 투자액은 36억 6천 9백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반박하였다. 아르헨티나에 충분한 투자를 했다는 렙솔사에 대해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 13년 동안 YPF의 석유 매장량은 40.5% 그리고 가스는 47.1%나 감소였고 석유의 생산량은 38.8% 그리고 가스 생산량은 25.4% 감소함으로써, 생산량과 매장량 감소로 인한 석유산업의 공동화현상을 가져왔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수입금은 국내유전 탐사에 전혀 투입되지 않았으며, 렙솔사의 이익은 아르헨티나가 아닌 페루,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알제리아, 리비아, 미국, 브라질, 러시아, 이라크 등 다른 국가의 새로운 유전탐사에 투입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렙솔사는 회사수익금의 90% 이상을 해외로 송금하였으며, 13년 동안 410억을 벌어서 470억을 주주에게 배당함으로써 수익금보다 더 많은 돈을 배당금으로 지불하였다. 석유회사들의 경우 평균 수익금의 30%정도를 배당하지만, 렙솔사의 경우 2011년 90%를 배당금으로 지불하였다. 렙솔사는 PEMEX, BBVA, STANDARD와 같은 국제금융기업들을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석유 생산 보다는 수익성이 높은 금융산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에너지 가격통제가 심해지자, 렙솔사가 석유산업에서 번 돈을 수익성이 높은 금융산업 등 다른 사업에 투자하였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스페인은 최근 3년 사이 두 번째 경기침체에 빠져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페인 회사들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사실상 스페인정부에게는 유일한 외화수입원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렙솔사가 전 세계에서 내는 이익의 1/3은 YPF에서 나왔다. 2010년까지 YPF는 매년 평균 3억 달러를 유럽으로 송금했다. 따라서 이번 조치에 대해 스페인 정부는 무역적, 법적, 그리고 외교적으로 강도 높은 보복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스페인의 반응에 대해 아르헨티나 여론은 500년 동안 지속되었던 식민성이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한 전략자원의 몰수는 자원보유국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자원은 국가의 경제발전과 국민의 복지를 위해 우선적으로 이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렙솔사에 대한 YPF몰수 조치에 대해 EU와 국제기구의 비난은 부당하다는 것이 아르헨티나 정부와 국민들의 입장이다.

아르헨티나의 자원민족주의의 역사는 1958년에 집권한 아르투로 프론디지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론디지의 주된 선거 전략은 1922년 창립된 YPF의 국가운영이었다. 그는 “석유와 정치” 라는 책을 집필하였고, 페론의 석유정책을 비난하면서 국민들의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하였다. 아르헨티나는 자결권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석유 수입을 계속 해서는 안 되며, YPF의 독점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석유와의 전쟁(la batalla del petróleo)"  을 선포하면서 석유자급자족 달성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프론디지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집권 직후 그는 YPF 자체적으로 자급자족을 달성할 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외국자본의 도움 없이 석유생산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인식하였고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자원민족주의와는 대치되는 민간자본과의 협력을 결정하였다.

이후 정확히 54년이 지난 현재 YPF와 렙솔사를 둘러싼 기류는 프론디지 시기와 유사하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국기 색깔의 하늘색과 흰색 줄무늬 리본으로 묶인 뿌연 노란색 액체가 담긴 실험용 튜브관(1907년 아르헨티나에서 처음으로 추출된 석유 견본)을 들고 국가주권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감정에 호소하였다.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사실상 전 세계에서 자신들의 자연자원을 통제하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 라면서, YPF 국유화 조치는 주권회복의 차원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아르헨티나는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셰일가스를 보유한 국가이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르헨티나는 확인된 세계 원유 매장량의 0,2%와, 비슷한 수준의 천연가스 매장고를 보유한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국내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연료수입에 쏟아 붇고 있는 실정이다. 아르헨티나의 가스와 원유매장량은 2000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2000-2010년 아르헨티나 원유생산량은 22% 감소한 반면 소비는 40%나 증가하였다. 가스의 경우 1999-2007년 소비가 생산을 추월하였으며, 1999년부터 생산량의 감소와 소비량의 증가로 인해 수입량이 증가하였다. 2010년 까지 에너지 무역을 통해 20억 달러의 흑자를 냈으나 2011년에는 30억 달러의 적자를 보았다. 원유수출에 대한 세금부과, 에너지 가격을 동결, 에너지 보조금 제도 등은 투자와 생산 보다는 소비에 초점을 둔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에너지보조금은 2010년 63% 증가하였고 56억 달러에 달한다. 이웃국가들과 비교할 때 가스요금은 75-80% 전기료의 경우는 70% 저렴하다.

소비와 생산의 불균형문제는 아르헨티나 배급망의 문제로 인해 더욱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10년 동안 아르헨티나 가스 충전소는 1/3이 문을 닫았다. 다수의 에너지 기업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철수 하였다. YPF 또한 현재 49개의 충전소를 폐쇄하였다. 국내 가스와 석유 부족현상은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다. 투자부족, 운영실패 그리고 석유회사들의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접근 제한은 아르헨티나의 가장 심각한 문제들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렙솔사의 국내투자 부족을 비난하면서 앞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외국기업을 포함한 모든 회사들에게 수출이익금을 아르헨티나로 송금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제 아르헨티나 회사들은 배당금을 지불할 수 없으며, 수익금은 아르헨티나에 재투자해야만 한다.

아르헨티나의 원유생산량은 상당히 감소하였다. 또한 현재의 에너지정책은 화석에너지 소비중심 구조를 변화시킬 어떠한 정책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에너지 소비는 1차 에너지 소비의 83%를 화석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원유생산과 소비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며, 2012년 부족량은 350억 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석유부문의 특징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보조금정책과 국제시장에서의 높은 원유가격 때문에 석유채굴회사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된 많은 양의 석유를 해외로 수출하고 정부는 국내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부족분을 해외로부터 다시 수입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로 인한 무역수지적자가 2011년에는 30억 2천 9백만 달러에 달했다.

아르헨티나를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다시 전환시켜줄 희망은 네우켄주 바카 무에르타(Vaca Muerta)에서 발견된 9억2700만 배럴의 석유 및 가스매장량에 있다. 비전통적 석유와 가스를 포함한다면 230억 배럴이나 된다. 이는 아르헨티나의 일 년 치 원유소비량(약 4억 배럴-4.5억 배럴)의 두 배 및 현재 생산량 기준 향후 5년 치 생산량에 해당된다. 당시 렙솔사의 새로운 유전발견 소식은 휘발유 공급부족으로 몇 블록이나 되는 긴 줄을 서 가면서 주유를 해야만 했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에너지자급의 가능성으로 들뜨게 만들었다. 그러나 렙솔사는 비정통적 자원개발에는 어려움이 따르며, 450억 달러가 부족하다면서 개발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국내 에너지위기문제 극복을 위해 정치적 위험부담이 큰 에너지가격 인상이라는 카드 보다는 에너지회사를 몰수함으로써 시장을 압박하는 카드를 사용하였다. 4월 16일 연설에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이번 조치는 단순한 국영화가 아니다. 그 보다는 핵심적인 수단에 대한 통제와 주권회복이다. 주권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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