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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유럽재정위기와 러시아 경제

러시아 이종문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조교수 2012/06/21

지난 6월 9일 유로존 4번째 경제대국인 스페인이 구제금융(bail-out)을 수용한데 이어 17일 그리스 총선에서 유로존 잔류와 구제금융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공약한 우파연합이 승리하면서 유럽 재정위기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향후 EU와 그리스 간의 구제금융 재협상에서 난항이 예상되고 있고, 스페인에서의 2차 구제금융 가능성과 이탈리아로의 전염 위험성이 우려되고 있어 유럽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 상태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유럽 재정위기는 해당 국가들에 있어서 강력한 긴축정책과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장기간에 걸쳐 지루하게 반복될 수밖에 없다. PIIGS 국가들에서의 재정위기 장기화는 유로존 국가뿐만 아니라 글로벌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침체를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6월 12일 발표한 글로벌 경제전망(GEP) 보고서에서 올해 유로존이 마이너스 0.3% 성장을 기록하면서 세계경제는 2.5% 성장에 머물 것이라는 암울한 예상을 내놓았다.
  

유럽 재정위기가 세계 각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큰데 그 중에서도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훨씬 지대하다. 이는 러시아 경제가 지닌 구조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러시아 경제는 석유-가스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자원 수출 주도형이며, 유럽 의존 형이라는 구조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30%, 산업생산의 40%이상, 총 상품수출의 60%, 연방재정수입의 50%, 증권시장 시장가치의 50%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부문이다. 따라서 유럽재정위기의 확산으로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고 그 결과 국제유가를 중심으로 한 원자재가격의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러시아 거시경제지표의 불안정성은 고조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띄고 있다. 지난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촉발한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국제유가 하락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우랄산 국제유가가 2008년 연평균 배럴당 94.4달러에서 2009년 59.6달러로 37% 급락하면서 러시아로 유입된 에너지 부문 수출대금은 3,104억 달러에서 1,907억 달러로 38.5% 급감하였고 전체 수출 또한 4,716억 달러에서 3,034억 달러로 35.7%나 축소되었다. 그 결과 러시아는 7.8%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혹독한 경기침체를 겪어야 했다. 에너지부문에서 유입되는 연방예산수입 또한 4조 3,894억 루블에서 2조 9,840억 루블로 47% 감소하면서 재정수지는 국내총생산(GDP)대비 5.4% 적자를 기록했다. 달러대비 루블 환율은 24.8에서 31.7루블로 폭등하면서 러시아 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시장에 무려 2,000억 달러(한화 약 214조 원)에 달하는 외화를 방출해야만 했다. 2009년 러시아 거시경제성과는 채무지불유예(Moratorium)를 선언했었던 1998년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다. 다행히 아시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이머징마켓에서의 경제성장 유지와 미국 및 유럽에서의 양적완화정책(quantitative easing)에 힘입어 글로벌 경기침체가 단기간에 그치면서 러시아 또한 2010년부터 회복세를 시현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대외교역이나 외환 및 금융부문에서 미국 변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가 다른 이머징마켓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것은 국제 원자재가격 급락과 유럽금융기관의 자금회수라는 파생적 충격에 심각하게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그리스발 유럽재정위기가 러시아 경제에 얼마만큼 큰 충격을 줄 것인가는 스페인, 이탈리아를 거쳐 유로존 전체로 확산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유럽재정위기가 유로존 전체로 확산될 경우 러시아 경제는 지난 2009년 보다 훨씬 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유럽발 재정위기가 스페인에서 봉합되기를 바라고 있으나 이는 희망사항에 그치고, 스페인, 이탈리아로 확대될 가능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 경우 유로존 전체 위기로 이어지면서 글로벌 경기는 다시 깊은 장기 침체의 수렁으로 빠지게 될 것이며 동시에 국제원자재 가격 폭락과 외환 및 금융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이 고조될 것이다. 게다가 유로존 국가들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인해 유럽경제위기는 미국과 달리 수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고, 지난 세기 동안 러시아가 유럽 중심의 수출 및 경제구조를 지향해 왔다는 점은 러시아 경제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러시아 상품수출에서 유럽연합(EU)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넘는 52%에 달하는데 특히 천연가스의 경우 전체 수출의 80%이상을 유럽이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에서의 재정위기로 인한 긴축 및 구조조정과 실물경기 둔화는 국제 원자재가격의 급락과 더불어 러시아 주력 수출상품에 대한 수요 감소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러시아 상품 수출의 급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러시아 경제로의 외국인투자 및 금융자본 이동 부문에 있어서도 EU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러시아가 매년 유치하는 외국인투자자금의 80%이상을 EU가 차지하고 있으며, 러시아 기업 및 상업은행이 해외로부터 빌려오는 차입금의 주를 이루는 것도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계 상업은행이다. 2012년 3월 말 기준 러시아 민간부문의 대외부채는 총 5,200억 달러에 달하는데 그 중 상업은행의 해외차입금은 1,645억 달러이며 500억 달러는 1년 미만인 단기부채다. 그리고 기업을 중심으로 한 비 금융기관들의 해외차입은 3,546억 달러인데 그 중 유럽 중심의 해외금융기관 차입이 2,43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러시아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및 거래대금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25~3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또한 유럽계 자금이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유로존의 재정위기 심화로 유럽계 금융기관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해외 투자자금 회수를 본격화 하는 경우 러시아 기업 및 금융기관의 연쇄파산과 더불어 러시아 자본 및 외환시장은 패닉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실제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한 하반기 6개월 동안 러시아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자본은 132억 달러에 달했고 그 결과 주가지수(RTSI)는 2487.9 포인트에서 498.2포인트로 무려 80%나 폭락하는 장세를 연출하며 패닉상태에 빠졌었다.
  

러시아 경제로서 다행스러운 점은 지난 2009년 위기상황을 겪으면서 러시아 경제의 위기극복 능력과 면역성이 예전에 비해 훨씬 견고해졌으며, 경제 펀드멘탈 또한 다소 안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푸틴정부가 경제위기에 대해 강한 통제력을 여전히 지니고 있음은 물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정책적, 재정적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 1-4월까지 러시아 재정수지는 균형을 이루고 있어 재정지출 확대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은 다시 5,100억 달러를 넘어섬으로써 외환시장 개입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기준금리인 재할인율(Ставка рефинансирования)은 8.0%인데 반해 물가상승률은 4%수준으로 실질금리가 플러스 상태이므로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여력도 상당부분 여유가 있는 상태다. 또한 유럽채무위기국가(PIIGS)들의 국채에 대한 낮은 익스포저(exposure)와 GDP대비 10%수준에 불과한 정부 대-내외부채로 인한 국가 재정위기 발생 가능성도 대단히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는 에너지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로 인해 글로벌 경기둔화로 국제유가가 급락할 경우 심각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러시아 정부가 현행 재정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경우 각종 재정수요 감안 시 균형재정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우랄산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 이상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증가하고 있는 사회복지 수요, 국방개혁 및 인프라 확충 재원 소요 등을 감안할 경우 지금의 유가수준으로는 균형재정으로의 복귀가 힘들 수밖에 없다. 재정규율을 강화하여 불필요한 세출 삭감을 단행하는 대대적인 긴축기조로 전환하더라도 우랄산 유가가 최소한 배럴당 100달러대 수준을 유지해야만 균형재정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유가가 배럴당 100$ 미만으로 하락할 경우 경상수지 흑자폭은 대폭 축소되고 재정수지 적자는 확대되며 이는 거시경제지표 전반의 부진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난 18일 재무부 장관인 안톤 실루아노프는 파이낸설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유로존 재정위기에 대비해 기업 대출에 대한 정부기금 보증용으로 44억 달러를 이미 확보하였으며, 경기부양과 은행자본 확충을 위해 금년과 내년에 걸쳐 총 400억 달러의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유럽 재정위기 확산과 지속적인 국제 유가하락으로 러시아 거시경제지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주력 수출품인 석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 이하로 하락하고,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로 달러에 대한 수요가 몰리면서 달러에 대한 루블화 가치는 3월 고점대비 12.5% 절하되었고, 주식시장의 바로미터인 주가지수(MICEX Index) 또한 3월 고점 대비 약 25%나 급락했다.  
  

대외변수에 대한 대응력 제고는 러시아 경제가 지속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산업 및 경제구조의 다변화를 통해 에너지 및 자원 의존 형 경제에서 탈피해야 한다. 2020년까지 러시아연방 장기 사회-경제발전 구상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의 지식경제로의 체질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금까지 탁상 단계에서 논의되어 오던 중-장기발전 프로그램 계획 수립 차원에서 벗어나 정책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또한 2004년부터 추진되어 온 석유 및 천연가스 자원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오일머니를 국부펀드(National Wealth Fund)나 준비금(Reserve Fund) 형태로 단순 적립하는 것을 지양하고 경제 및 산업 인프라 구축이나 구조개혁 및 다변화를 위한 자본투자로 활용하는 효율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내수시장 활성화를 통해 자원수출주도형 경제구조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러시아 국민들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0,000달러로 중 소득 국가에 머무르고 있으나 전체 내수시장은 세계 8위에 해당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적지 않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구 소비에트 국가들을 포함할 경우 러시아 내수시장은 세계 5위권으로 수출시장의 침체를 대체할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내수시장은 지금까지 구조적인 측면에서 적지 않는 한계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수시장에서 러시아 가공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 러시아 소비재시장에서 러시아 제품이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부문은 식료품 가공과 관련된 소수 부문에 국한되어 있으며, 러시아 소비시장의 약 50%이상을 유럽을 중심으로 한 외국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내수시장의 육성은 수입확대를 초래해 무역수지를 악화시켜 성장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국내 소비재 산업의 육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셋째 서비스산업의 육성을 통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국민소득과 성장의 새로운 원천을 개척해야 한다. 2010년 기준 러시아 경제구조에서 서비스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59%에 불과하다. 80%수준에 육박하는 미국은 물론 73%수준인 EU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대단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러시아 서비스산업의 향후 발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비스 산업 중에서도 특히 고용창출 효과가 큰 관광산업과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 산업 육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금융 인프라 구축을 통해 금융시장 본연의 기능인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시켜주는 자금중개 및 조달 기능을 원활하게 작동시켜 경제성장과 발전을 도모함은 물론 고급인력 양성을 통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이번 유로존 재정위기를 계기로 러시아 정부가 지금까지 미루어왔던 은행산업 및 자본시장에 대한 구조조정을 과감히 단행하고, 투자확대와 정책적 지원을 통해 자원수출 의존 형 경제구조를 지식 및 혁신주도 경제로 전환시키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느냐의 여부가 러시아 경제가 2020년까지 세계 5대 경제대국, 1인당 국민소득(PPP기준) 30,000달러의 경제부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가를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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