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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그루지야(조지아 Gerogia), 카스피해 그리고 黑海

조지아 기연수 한국외국어대학교, 한러교류협회 명예교수, 회장 2013/02/22

   “러시아는 확실히 알겠지만, 그루지야라는 나라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한데, 도대체 지도상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야!?” 이 말은 지난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과 함께 벌어진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의 충돌(서방 언론들은 이를 러시아의 일방적인 그루지야 침공으로 보도)에 관한 기사가 외신을 타고 들어와 우리나라의 모든 언론에 집중적으로 보도되던 때, 항간의 인구에 회자되던 말이었다.

   과연 그루지야는 어떤 나라이며, 왜 그렇게 우리나라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나라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언론들은 러ㆍ그루지야 양국의 충돌을 그처럼 일방적으로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이라고 연일 크게 보도하는데 열을 올렸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가능하면 오늘날 늦게 나마라도 이 나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일까?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을 지나 세계 에너지 자원의 보고인 카스피해를, 서쪽으로는 세계 무역의 십자로인 안개와 폭풍우 속의 신비로운 바다 흑해를 끼고 있는 나라가 바로 그루지야(조지아 Georgia)이다. 또한 그루지야는 신(神)들의 고향이라고 일컬어지는 카프카즈(코카서스) 산맥을 머리에 이고 있으며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바람 덕분으로 장수(長壽)의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지정학적으로는 유럽, 중앙아시아, 중동의 길목에 위치해 있으면서 역사적으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긍정적 가교의 역할을 해 온 지역이면서 동시에 강대국들 간의 충돌지역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한반도가 과거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서 동양의 은자(隱者)의 나라였던 것처럼, 그루지야 역시 기원전부터 오랜 역사와 높은 문화를 간직해 온 흑해 연안의 은자의 나라로서 동쪽 끝 멀리 있는 우리와는 역사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매우 생소한 나라였던 것이다.

   
   그루지야는 약 7만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인구 450여만 명, 1인당 GDP 약 3000불 정도의 대통령 중심제, 단원제 공화정 국가이다. 주지하다시피 소연방 15개 구성공화국의 하나였던 그루지야는 1991년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독립을 선언하고, 그 해 말 결성된 독립국가연합(CIS)에도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과 더불어 가입하지 않아,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는 민족분규 등 골치 아픈 친 서방 이단 국가였다. 그러다가 1993년에야 어쩔 수 없이 CIS의 12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그러나 2008년에 러시아와 충돌을 빚은 후,  2009년 6월 의회에서 CIS 탈퇴를 결의하여 지금까지도 친 서방 경향의 노선을 추구하면서 여전히 복귀하지 않은 채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서 그루지야 출신의 저명인사로는 소연방의 실질적 창설자인 소련공산당 서기장 스탈린과 고르바쵸프 전 소련 대통령 시절 소연방 외무상직을 맡아 국제무대에서 소연방 외교정책의 핵심인 ‘새로운 사고(思考)’를 주창했던 셰바르드나제가 있다. 셰바르드나제는 1991년 1월 소연방 외무상직을 사임하고 고향인 그루지야로 돌아가 1995년 그루지야의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2003년 11월 총선부정으로 촉발된 이른바 민주화 ‘장미혁명’으로 인하여 대통력직을 사임하게 되었고, 2004년 1월 친미, 친 서방 성향의 41세 젊은 미하일 사카쉬빌리가 대선에서 90%가 훨씬 넘는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사카쉬빌리 역시 2007년 11월 부정ㆍ부패 등으로 촉발된 반정부 데모로 사임을 하였다가 바로 이어진 2008년 1월 대선에서 겨우 50%가 넘는 지지를 받아 재선에 성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국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카쉬빌리는 재집권에 성공한 뒤 얼마 되지 않은 2008년 8월, 당시 러시아의 실세 총리 푸틴이 북경올림픽 개막식에 참석차 모스크바를 비운 사이 러시아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남오세티야를 선제공격하여 2300여 명의 주민들을 숨지게 했다. 그런데 이들 희생자 대부분이 러시아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이와 같은 그루지야의 돌발적 무력도발행위는 푸틴의 즉각적인 조치에 따라 무력충돌로 이어졌다. 그러면 사카슈빌리는 이미 국제무대의 확고한 강자로 재부상하고 있는 러시아를 향해 왜 이러한 무모한 짓을 감행했을까?

   남오세티야는 1991년 소련 붕괴 당시 행정구역으로는 그루지야에 속하게 되었으나 주민의 거의 80%가 러시아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줄곧 그루지야로부터 독립하여 러시아에 편입되기를 갈망해왔다. 그래서 사카쉬빌리 대통령은 기회만 있으면 남오세티야를 확실하게 장악함으로써 자신의 통치권을 강화함은 물론 그루지야의 통일성을 확고히 다지고자 하였다. 사실 미국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른바 2003년 민주화를 지향하는 ‘장미혁명’의 여파로 집권을 하게 된 사카쉬빌리는 집권과 더불어 줄곧 CIS 탈퇴, NATO 가입 추진 등 친 서방정책을 펴왔다. 게다가 그는 이른바 GUAM(그루지야,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몰도바)을 통한 친 서방연대를 주도함으로써 러시아로부터 극도의 반러, 친미주의자로 낙인찍히고 말았던 것이다.

   또한 사카슈빌리는 그루지야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중요성 및 석유ㆍ천연가스 등의 파이프라인과 가스관 문제에 따른 지경학적(地經學的) 그리고 지전략적(地戰略的) 중요성 때문에 미국과 서방세계가 즉각 자신을 지원하고 나설 수밖에 없으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러시아와의 충돌을 빤히 내다보면서도 선제 무력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소련 붕괴 후 푸틴의 1,2차 집권기를 통해 이미 강력한 국가로 부활하여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세력으로 재등장하고 있었다. 때문에 러시아는 남오세티야의 독립보장으로 우크라이나와 발트3국, 폴란드 등 과거 구 소련권 국가들의 반 러시아적 친 서방정책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까지를 전달하고자 좌시하지 않고 남오세티아에 진입한 것이었다.

   특히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것은 21세기 인류의 최대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 문제와 관련하여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지역이 바로 2700억 배럴에 달하는 원유와 수십조 입방미터에 달하는 천연가스가 매장된 에너지 자원의 보고 카스피해이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카스피해는 내해(內海)로서 이곳의 무진장한 석유와 가스가 배를 통해서는 수출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전략가들에게는 그루지야를 관통하여 유럽에 석유를 공급하는 BTC(Baku-Tbilisi-Seyhan) 파이프라인이 막중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만일 그루지야가 지금과 달리 러시아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면 카스피해의 석유가 러시아의 간섭을 받지 않고 유럽으로 갈 수 있는 BTC 파이프라인은 매우 불안해지게 되고, 이로 인한 미ㆍ러 대결양상은 국제유가 및 국제정세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의 발전은 100% 원유수입 의존국인 우리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게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러한 그루지야와 우리나라는 1992년 12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북한은 1994년 11월). 그래서 현재 우리의 주아제르바이잔 대사가 그루지아의 공관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그루지야는 2011년 8월 서울에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외교관계 수립이후 그루지야의 경제발전ㆍ에너지자원관계 장ㆍ차관들의 방한이 10여회 있었지만 우리 측에서는 1997년 CIS무역사절단, 2002년 감사원장, 2011년 의원친선협회장이 그루지야를 방문했을 따름이다. 2012년 3월 핵안보정상회의에는 사카쉬빌리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하여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바 있다. 최근 외무부 발표 자료에 따른 양국 간 교역현황은 수출: 99백만 불(차량, 비료, 고철) 수입: 41백만 불(연료, 기계부품, 곡물); 투자현황은 對조지아 투자 : 1,725만 불(23건) 對韓 투자 : 43.9만 불(2건)이다. 현재 약 20여 명의 재외동포들이 조지아한인회를 결성하고 재외동포재단과 긴밀히 연락하면서 현지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그루지야가 지리적으로는 물론 기타 여러 가지 정치, 경제, 사회ㆍ 문화적인 측면에서 수교 전까지 우리와 매우 동떨어진 관계에 있어왔음에도, 수교 이후로는 우리와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는 그루지야 측의 태도가 매우 적극적이라 할 수 있다. UN에서도 우리의 입장을 매우 우호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루지야가 국제무대에서 여러 가지 측면으로 매우 중요한 한 꼭짓점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는 스스로 국제사회의 주요 일원으로써 이 나라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보다 현실적으로는 보스포러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을 거쳐 지중해, 인도양으로 연결되는 세계무역의 한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흑해 연안을 그루지야가 폭넓게 자유경제구역(FEZ)으로 지정하고 있음에 주목하여 이러한 경제특구에 우리는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그루지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물론 전통적인 문화관광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 그루지야가 세계 최고 품질의 포도주 생산국으로서 오늘날 우리나라의 급성장하고 있는 포도주 시장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루지야의 농촌과 자연의 풍광이 마치 우리나라에 와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우리와 유사하다는 것도 깊이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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