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미국 MD 정책의 수립과 수정, 그리고 동유럽
중동부유럽 일반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대학 교수 2013/04/18
2013년 3월 15일, 미국은 2017년을 목표로 알래스카 포트 그릴리(Fort Greely) 기지를 비롯한 미국의 서부 해안 지역에 미국 ‘방어 전략 미사일(MD: Missile Defence)’ 설치의 일환으로 ‘지상 발사 요격 미사일(GBI: Ground Based Intercepter)’ 14기를 추가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4년 MD 정책을 확립하기 위한 일환으로 미국은 자국 영토 내에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현재 서부 알래스카에 26기, 캘리포니아에 4기 등 총 30기의 요격 미사일이 설치되어 있는 상황이며, 이번 발표에 따르자면 여기에 추가로 14기를 설치할 계획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치들은 지난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언급한 것처럼, 북한의 3차 핵실험 감행과 이동식 대륙 간 탄도 미사일(KN-08)을 선보인 데 대한 자국 영토의 수호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을 겨냥한 미국의 이러한 발표는 세계 여러 국가들 가운데서도 특히 동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높은 관심과 미묘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반응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이 시기별로 두 가지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첫 번째는 미국의 MD 정책의 출발이 냉전 시절 소련 등 동유럽 국가들과의 체제 경쟁에서 비롯된 전략적 산물이었다는 점이다. 실제, 미국 MD 정책의 뿌리는 1980년대 미국의 군사력과 국가적 파워(Power)에 기초하여 국제 분쟁 개입 및 해결을 이끄는 현실주의적 전략 접근주의(Realistic Approach) 신봉자였던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 재임 1981-1989) 미 행정부의 주도 아래 설립된 스타워즈(Star Wars) 계획의 일환에서 출발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소련의 핵미사일을 미 본토로 떨어지기 이전에 공해상에서 격추시키겠다는 미국의 스타워즈 계획은 결과적으로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의 체제 전환에 일련의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번째는 1990년대 소연방의 해체와 동유럽의 민주화, 자유화 이후로, 미국 등 서방 세계는 과거 소련의 영향권 하에 있어왔던 동유럽으로의 이해 영역(Interest Sphere) 확장을 강력히 추진해 나갔으며, 여기에는 NATO의 동진과 함께 EU의 동유럽으로의 확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불어, 한 때는 오늘날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완충지대(Buffer Zone)이자 이해 영역 지대인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 등 과거 소연방의 구성 공화국들에게까지 이러한 의도를 확장하려는 시도를 단행하였고, 결과론적으론 러시아의 강력한 반대에 따른 신냉전(New Cold War) 대두와 에너지 무기화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의 폴란드와 루마니아,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MD 체계 구축 및 실제 진행은 비록 이란을 겨냥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등 국제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선 동유럽내 미국의 이해 영역 견고화와 함께 러시아 핵무기 무력화에 바탕을 둔 전략이라는 의심어린 시선을 받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미국의 동유럽내 MD 정책 추진은 러시아의 계속되고도 강력한 반발을 불러 왔다. 러시아는 우선 답보 상태에 있던 유럽 재래식 무기감축협정(CFE: Treaty on Conventional Armed Forces in Europe) 및 중거리 핵미사일 폐기협정(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에서도 탈퇴를 경고하는 것으로 미국을 압박해 나갔다. 특히 2008년 7월 미국과 체코 간에 X-밴드 레이더 기지 설치 합의 건이 서명되고, 뒤 이어 8월 미국과 폴란드 간에 GBI 10기의 설치를 위한 합의가 구체화되자, 이후로 계속해서 러시아는 발틱 함대의 전초 기지인 칼린그리드(Kalingrad)에 새로운 전략적 핵무기 설치와 함께, 폴란드 등 미국의 MD 정책에 참여한 동유럽 국가들을 향해 이러한 핵무기들을 겨냥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하여 왔다. 러시아의 이러한 위협은 폴란드와 체코 등에서 실질적인 전쟁 위협의 가중과 함께 심각한 국론 분열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독일과 러시아의 침략 경험 속에서 유럽 국가들에 대한 불신이 높았던 폴란드는 MD 정책을 둘러싼 여론 조사 평균에서 찬성 51%, 반대 45%를 보이며, 연일 MD 계획 참여를 둘러싼 찬반 시위대가 격론을 펼쳤다. 찬성론자들은 MD 정책 참여를 통해 미국의 핵우산에 들어감으로써 폴란드의 자국 안보를 보다 더 견고히 할 수 있으며, 그 대가로 자국 국방력 강화 및 현대화를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데 반해, 반대론자들은 미국의 MD 정책은 러시아의 폴란드 침공의 명분만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의 안보와 전략적 이해를 위해 폴란드가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논리로 강력히 반대하였다. MD 정책 참여에 대한 체코의 여론 또한 심각한 국론 분열을 불러왔다. 국민 여론의 70% 가까운 반대 속에 체코 정부는 이에 대한 대가로 자국에 대한 미국의 확실한 방어 체계 수립을 요구할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미국으로부터의 대규모 정치, 경제, 군사적 지원을 약속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설득하였다.
러시아의 반발 확산과 2008년 말 이후로 확대된 금융 위기에 따른 세계적 경제 위기 가속화는 오바마 행정부로 하여금, 신냉전의 가속화와 함께 천문학적인 자금이 예상되는 동유럽 MD 정책의 계속 추진에 대한 일련의 수정 필요성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를 방문하여 핵무기 없는 세계를 목표로 러시아와 협력할 것이라는 선언과 함께, 레이더 센터를 대신하여 위성정보 분석 센터를 설치하겠다는 공개 연설을 통해 러시아와 체코 국민 양측을 모두 설득하고자 했다. 이어 소련의 폴란드 침공 일(1939. 09. 17)에 맞춘 2009년 9월 연설을 통해선 동유럽 MD 정책을 철회하겠다는 뜻을 비치기도 하였다. 이것은 2009년 10월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지만, 미국의 지지부진한 MD 정책 추진과 러시아 눈치 보기는 국가 방위를 약속해 준 미국에 대한 폴란드와 체코의 불신만을 증폭시켰다고 할 수 있다.
실제, 폴란드에선 미국이 전략 플레이를 통해 지금까지 자신들을 속여 왔으며, 폴란드와 국민들을 러시아에게 팔아넘겼다는 자극적인 기사들과 함께 미국을 배신자로 묘사하는 언론 내용들이 연 이어 보도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기존의 MD 정책을 수정하여 2018년까지 보다 소형인 SM-3 등의 설치 등을 폴란드에 약속하는 것으로 폴란드의 비난을 피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러시아와의 사이에 어정쩡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체코 국민들의 불만 증대와 함께, 과거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굳게 믿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방관 속에 독일의 히틀러에게 슈데텐 지방(독일어 Sudetenland/ 체코, 슬로바키아어 Sudety)을 굴욕적으로 이양해야만 했던 1938년 뮌헨 협정(Munich Agreement)의 재판이 되었다는 자조적인 한숨을 낳게 하였다. 그 결과 2011년 6월 체코 정부는 미국 MD 정책 참여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였으며, 이것은 미국의 동유럽 MD 정책 포기와 이를 대신하여 미국 본토의 실질적인 방어 전략 체제로의 전환을 가져 온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동유럽 지역에서의 MD 계획의 축소와 철회 배경에는 다음 과 같은 두 가지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첫 번째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심각한 재정 적자와 이에 따른 군비 축소를 들 수 있다. 미국은 이미 1980년대 스타워즈 계획 수립 이후로 현재까지 1,000억 달러(약 110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하였으며, 현재 약 50%이내의 요격 율에 그치고 있는 MD 시스템을 보다 완벽하게 구축하기 위해선 천문학적 자금이 보다 더 투여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MD 정책의 단계적 축소 및 철회가 논의되던 2011년까지 동유럽 지역의 MD기지 건설에만 이미 총 16억 달러가 소요되었으며, 이에 따라 재정 적자와 압박을 받고 있는 미 하원은 동유럽 MD 정책 감축을 전제로 한 국방부 예산의 대규모 삭감을 결정해야만 했다.
두 번째는 러시아를 비롯한 중국 등과의 심각한 정치, 외교적 마찰을 비롯해 동유럽 국가들 내에서도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자신들의 국익과 국방 정책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격렬한 반대 여론 등 어려움을 봉착해 있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공공연한 위협 속에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MD 정책이 완공되기 이전에 국지적 도발 등을 비롯해 러시아의 침략이 구체화 될 것이라 우려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점은 실제 폴란드와 체코 등 동유럽 상당 국가들이 NATO 회원국이라는 점에서 핵전쟁을 비롯한 제 3차 세계대전에 대한 우려를 낳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동유럽에 대한 MD 정책의 후퇴와 본토 방위 전략으로의 수정은, 그 동안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 속에서도 미국을 강력한 우방으로 믿으며, MD 수립을 지렛대로 정치, 경제, 군사적 이득을 취하고자 했던 동유럽 국가들에게, 과거 서유럽 국가들과의 역사적 관계 속에서도 그러했듯 미국 또한 동유럽의 동맹국들을 포기하고 러시아를 선택했다는 배신감을 들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미국의 조치는 동유럽에 대한 미국의 이해 영역 확보의 후퇴로 비쳐줘 과거 1938년 뮌헨 협정이후 나타난 일련의 상황들과 유사하게, 동유럽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의존도 약화와 함께 에너지 무기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러시아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하겠다.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한다는 평범한 진리의 말처럼, 동유럽 국가들의 우려처럼 동유럽 MD 정책을 둘러싼 미국의 정책 수정이 훗날 어떠한 역사적 의미로 다가오게 될 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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