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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가나의 부이(Bui)수력발전소 제1단계 조업 개시

가나 설병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2013/05/14

■ 건설 개요


- 1920년대 영국계 호주인 지리학자이자 박물학자인 앨버트 키트선(Albert Kitson)은 흑 볼타 강(the Black Volta)에 부이 댐을 건설하려는 생각을 했음.
- 가나의 전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2008년 쿠푸어(John Kufuor) 행정부는 부이수력발전프로젝트(Bui Hydro Power Project)에 착수하고, 2013년 5월 3일에 제1단계 조업을 개시함.
- 이 댐을 건설하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은 보안림 내에 위치한 구역과 흑볼타 강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곳은 식물을 보호하고, 이 지역 주민들의 식량 작물 재배와 수산 양식에 필요한 물을 제공했음.
- 그래서 이 댐의 집수역(catchment area) 내에 거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부이 댐 프로젝트에 반대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음.
- 환경 옹호론자와 환경 운동가들도 부이 댐은 동식물군을 파괴하고, 거주자들을 쫓아낼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시위 대열에 합류했음.
- 현재까지도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이주 문제, 보상금 지불, 생계 상실 등과 관련된 불만이 적지 않게 남아 있음.


■ 재원과 혜택


- 부이수력발전프로젝트의 초기 비용은 미화 6억 2천 2백만 달러였는데, 이 중 2억 6천 3백 5십만 달러는 할인 채권을 통해, 2억 9천 8백 5십만 달러는 중국 정부와 수출입은행(EXIM Bank)의 바이어 크레디트(Buyers Credit)를 통해, 그리고 6천만 달러는 가나 정부의 기여금으로 조성됨.
-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중국수력회사(Sinohydro Corporation Limited of China)는 총 1억 6천 8백만 달러의 재원 부족을 경험했는데, 이것은 예기치 못한 세계적 격변들의 영향과 본질적인 문제들에서 주로 발생함.
- 이 프로젝트는 브롱-아하포 州(Brong-Ahafo Region)를 비롯한 4개 주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데 크게 기여할 뿐만 아니라 서아프리카 전력풀(West Africa Power Pool, WAPP) 협정 하에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및 말리에 전력을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됨.
- 또한 이 프로젝트는 3만 헥타르의 농경지에 관개용수 공급, 생태 관광(eco-tourism)과 수산업 신장, 이주와 공동체 지원 프로그램 등의 혜택을 제공함.
- 이 프로젝트를 통해 건설될 부이 시(Bui City)는 이 지역의 사회․경제적 변화의 허브가 될 것으로 예상됨.


■ 부이전력공사의 설립


- 가나의 이스턴 州(Eastern Region)에 있는 아코솜보(Akosombo)수력발전소와 아크라에 있는 크퐁(Kpong)수력발전소 건설 이후, 부이수력발전소는 기술․경제적으로 가장 생존 가능한 수력발전소라고 간주되어 왔음.
- 2007년 가나 국회는 부이전력공사(Bui Power Authority, BPA)를 설립하기 위해서 존 쿠푸어 대통령이 동의한 법률을 제정함.
- 2007년 부이전력공사법(Act 740)을 통해서 그 공사는 부이수력발전계획을 입안․실행․관리할 권한을 부여 받음.


■ 노동력과 임금


-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중국수력회사는 초기엔 약 6천 명의 가나 사람들을 고용하고, 프로젝트가 상당히 진척된 후에는 약 1,100명을 고용했음.
- 그러나 많은 노동자의 진술에 의하면, 그 회사는 작업의 지루함과 위험성에 비해 충분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고, 그들은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내야 했음.
-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국인 기술자 1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하고, 가나인 노동자 11명이 사망하고, 중국인 노동자 4명은 심각한 질병에 걸렸으나 살아남았음.
- 중국수력회사는 2008년에 의료 기관을 설립하여, 중국인 노동자와 가나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역민을 돌보아 왔음.
- 중국인 노동자와 가나 노동자 간에 발생한 오해의 대부분은 의사소통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음.
- 그 회사는 지역 사회와의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장례식 등의 사회적 모임에 참석하여 기부금을 내기도 함.


■ 정착자의 이주와 그 결과


- 부이 댐 건설로 인해 부이국립공원(Bui National Park)의 일부와 5개의 공동체가 수몰됨.
- 도코키나(Dokokyina)의 경우엔 공동체 자체는 수몰되지 않으나, 주민들의 경작, 방목, 임산물 채취 등이 이루어지는 땅의 대부분이 수몰되므로 이주가 요구됨.
- 결국 부이 댐 건설로 인해 8개 공동체의 1,216명이 이주를 해야 했는데, 이주 프로그램은 3개 부분, 즉 A, B, C로 나뉘었음.
- 부이의 추장인 나나 콰조 우오 2세(Nana Kwadwo Wuo Ⅱ)는 주민들에게 2011년 6월 8일부터 이주가 시작될 것이라고 통보함.
- 그는 구 부이(Old Bui)에서는 약용 식물, 경작지 등 모든 게 공짜였으나, 이주지에서는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함.
- 또한 그의 주장에 의하면, 거주지에는 상이한 배경을 가진 온갖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생계비 상승뿐만 아니라 문화적 조악화(cultural adulteration)가 초래되었음.
- 이주지에는 병원, 경찰서, 시장 등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생활상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음.
- 그러나 이 지역의 퀸마더(queenmother)인 나나 아코수아 아제이(Nana Akosua Adjei)의 진술에 의하면, 이전과 달리 이주지에서는 차량을 이용할 수 있고, 식수와 전기와 공급되므로 행복함.
- 지역민들은 부이전력공사가 생계 프로그램 지원과 공공 편의시설 마련에 대한 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함.


평가와 전망


- 일부의 지역민들은 부이 댐 건설 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 생산 활동 제고 등의 혜택을 보게 됨.
- 또한 국가는 외화 획득, 댐 건설 관련 노하우 축적, 지역 개발 촉진,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공고화 등의 효과를 봄.
- 그러나 부이 댐 건설 사업은 해당 지역민들의 고향 상실, 생계 기반 박탈, 이주지에서의 다양한 문제 발생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낳았음.
- 부이전력공사로 대변되는 가나 정부는 해당 지역민들이 고향 상실에 따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이주지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임.


※ 참고 자료
 http://graphic.com.gh/General-News/first-phase-of-bui-power-project-comes-on-stream-toda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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