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헝가리 극우주의의 기원과 현황

헝가리 김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래교수 2013/06/11

■ 헝가리 극우주의의 기원

- 헝가리의 극우주의는 1989년 체제전환 이후에 나타난 특별한 현상이 아님.
- 헝가리에서의 극우주의 전통은 전간기 시기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음.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인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고, 이후의 혼란한 상황에서 모스크바파 공산주의자인 쿤 벨라의 지휘 하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헝가리에서 소비에트 정권이 탄생하였음.
- 이를 두려워한 국제사회의 간섭과 헝가리 극우세력의 투쟁으로 인해 호르띠 미끌로쉬를 수반으로 하는 기독교 극우정권이 탄생하게 됨.
- 이후 헝가리는 연합국과 체결한 1차 세계대전 종전조약인 트리아농 조약에 의해 전전의 영토의 67%, 인구의 60 % 정도를 상실하게 됨.
ㅇ 헝가리 북부의 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연합하여 체코슬로바키아가 되었고, 헝가리 동부에 자리잡은 트랜실바니아는 루마니아에 할양됨. 또한 헝가리 남부의 바나트 지역이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과 연합하여 유고슬라비아를 형성하게 됨.
ㅇ 트리아농 조약이 체결된 1920년 6월 4일 헝가리 일간 신문들은 검은 테두리를 두른 채 호외를 발간. 그 내용은 이제 헝가리가 몸통만 남은 처지가 되었으며, 이러한 헝가리의 운명은 강대국, 유태인, 공산주의자 때문이라는 것.

 

■ 레비지오 정책과 헝가리 민족주의의 등장

- 이때부터 헝가리에서는 소위 ‘레비지오(Revisionism)’라는 정책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 레비지오 정책의 핵심은 헝가리가 전쟁의 패배로 인하여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여 전전의 위치를 회복하자는 것.
ㅇ ‘레비지오’운동은 정치가들의 선동과 더불어 국민들의 여망에도 부응하는 것이었음. 따라서 이 운동은 헝가리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였던 것.
- 1921년부터 1929년의 기간 동안에는 베뜰렌 이슈트반의 영도아래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 할 수 있었음. 그러나 1929년의 대공황을 겪으면서 극우화가 진행되기 시작.
- 이후 극우주의자인 굄뵈시 줄러가 수상으로 재임한 1932년부터 1936년까지 극우적 성향이 강력하게 대두되기 시작하였으며, 민족주의, 인종주의, 반유태주의와 결합하여 전사회적으로 확대되어 감.

 

■ 극우정당의 이념을 계승한 ‘요빅’의 탄생

- 요빅(jobbik)은 기본적으로 1930년대 헝가리 극우정당의 이념을 계승
ㅇ 요빅의 정식명칭은 A Jobbik Magyarországért Mozgalom(어 요빅 머져르오르삭에르트 모즈걸롬)으로 ‘더 좋은 헝가리를 위한 운동’이라고 번역할 수 있음. 약칭은 요빅
- 요빅의 활동은 1999년 최초로 우파적 성향을 지닌 대학생 청년들의 운동으로 시작되었는데, 헝가리의 현안문제, 특히 청년들과 관련된 문제를 고민하는 그룹이었음.
- 그러나 2002년의 총선이 끝난 후 비트너 마리아, 퐁그라츠 게르게이 등 명망가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면서 2003년 10월 24일 공식 정당으로 등록되고, 활동이 시작됨.
- 요빅은 헝가리 정의생활당(MIEP)이 거의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새로운 우파의 대안으로 떠올랐으며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
- 특히 2006년부터 2009년 사이에 세력 확장에 주력하여 전국적인 조직을 완성

 

■ 요빅의 급진정책과 높아가는 지지율

- 이러한 성장에 힘입어 요빅은 2009년 6월 7일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14,77%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모르버이 크리스티너, 벌초 졸탄, 세게디 처나드가 유럽의회 의원으로 선출
- 이러한 성과에 이어 2010년 1월 16일 실시된 국내 총선에서 ‘제3의 세력’이라는 기치아래 16.67%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모두 47석의 의석을 확보
ㅇ 이 선거에서 요빅은 ‘급격한 변화’라는 이름의 급진정책을 발표하며 선거에 참여하였는데, 그 내용은 反집시, 국가세금강화, 다국적기업에 대하 과도한 지원 금지,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대가 주종을 이루는 것.
ㅇ 이러한 요빅의 강령은 대중으로부터 신선하다는 평가와 더불어 요빅의 정책이 국가를 위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게 됨.
ㅇ 요빅에 대한 이와 같은 지지는 2011년에 더욱 상승하여, 전년대비 두 배가량 지지자가 늘어났고, 2011년 말 실시한 여로조사에서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지명도가 높은 정당으로 자리하게 되었으며, 야당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는 정당이 되었음.


■ 요빅의 反EU, 反정부 시위 조직과 헝가리 국민들의 시각

- 2012년 1월 유럽의회가 헝가리에게 유럽연합의 정신과 배치된다고 판단한 3개의 법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자. 요빅은 이를 헝가리의 주권에 대한 중대한 타격으로 간주하여, 1월 14일 반 EU 시위를 조직하였고, 유럽연합의 깃발을 불태우기도 하였음.
- 이후 계속적인 반정부 시위를 조직하여 2012년 5월부터 여름 내내 反EU, 反정부시위를 주도함.
- 2012년 가을부터는 과거청산운동을 시작하여 구 공산당 간부들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것을 주장하고, 2012년 11월 21일에는 부다페스트의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도 조직
- 2013년 들어 요빅은 더욱 활발히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점점 더 국수주의,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러한 요빅의 활동에 대해 헝가리 국민들의 시각이 우호적이라는 점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