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아세안 2013: 술루 사태로 보는 남중국해 역내 정치
동남아시아 일반 서명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조교수 2013/07/02
지난 2월 중순 자신들을 술루 술탄국(Sultanate of Sulu)의 지지자라고 밝힌 필리핀 국적의 무장 세력이 말레이시아령 사바(Sabah)에 불법 입국했다. 사바 동쪽끝에 위치한 Lahad Datu 근처 정글에서 이들은 놀랍게도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술루 술탄국의 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에 대한 말레이시아의 대화노력은 결국 실패하고 3월 초부터 무력 충돌이 발생하였는데 현재까지 아홉 명의 말레이시아 경찰을 포함 무려 7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월 20일, 말레이시아 검찰이 이번 충돌에서 생포한 필리핀인 여덟 명을 테러리즘 및 전쟁 유발 혐의로 고발 조치했고 법원이 혐의를 인정한다면 이들은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의 당사국들인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는 물론 주변의 브루나이, 인도네시아가 이 술루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과 대응방식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더욱이 일련의 종교 기반 단체들(faith-based organizations) 사이에서는 이 사태에 대해 이미 격렬한 논쟁마저 일고 있다. 즉 술루국의 영토 주권을 주장한 이들은 독립투사인가 테러리스트인가? 또한 이들의 죽음은 순교인가 처벌인가?
현대 동남아 정치에서 영토 주권을 정의하는 문제는 상당히 논쟁적이다. 무엇보다 한 지역을 여러 정치공동체가 역사적 시간을 달리해 소유했다면 과연 그 지역의 영토주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역사가 보여주듯 왕국(kingdom), 제국(empire), 국가(state), 정치 혹은 종교 공동체들은 어디까지가 그들의 영토인지에 대해 오랜 기간 힘(power)으로 증명해 왔다. 그들에게 새로운 지역을 정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힘과 그에 걸맞은 외교적 전략이지 왜 그런 힘을 사용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즉 정복 행위 자체에 대해서 정당성(legitimacy)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사실 상당히 현대적인 발상이다.
20세기 이후 영토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에서 일어난 가장 놀라운 변화는 힘에 기반한 영토 확장은 국가의 건설이 아닌 침략행위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영토에 대한 주권을 논할 때 역사적 정당성이라는 신기루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1961년 인도가 포르투칼령 고아(Goa)를 강제 병합하고, 1975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무력침공했을 때, 그 행위의 역사적 정당성을 가늠하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과 25년 후인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게 쏟아진 국제사회의 압력과 뒤이은 무력 대응의 이유가 이라크의 쿠웨이트 병합행위가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러한 정당한 응징은 반드시 “다국적” 군의 이름으로 해결했다는 점은 교훈적이다.
술루 술탄국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역사적 정당성의 핵심은 사바가 과거 술루의 영토였다는 것이다. 7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이 역사적 정당성 증명의 최대 논쟁거리는 도대체 과거를 어느 시점으로 정의하는 가이다. 이들에게 과거의 시작은 1658년인데, 이 때 브루나이 술탄이 조력자인 술루 술탄에게 지금의 사바를 하사했기 때문이다. 이후 술루 술탄국은 19세기 중반까지 술루지역 뿐만 아니라 필리핀 남부의 일부를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이슬람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럼에도 이후 본격화된 서방 국가들의 동남아시아 진입에 서서히 국가로서의 경쟁력을 잃어간 술루 술탄국은 1878년 영국 북 보르네오 주식회사 (British North Borneo Company)에 사바에 대한 영대차지권 (永代借地權)을 주었고 이후 이 회사는 1946년에 사바에 대한 권한을 영국정부에 양도하였다. 비록 1957년 술루 술탄이 사바에 대한 임대계약 파기를 주장하였음에도 사바는 말레이시아가 1963년 독립한 후 말레이시아 영토로 복속되었다. 비록 말레이시아가 아직도 술루 술탄에게 명목상의 임대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역내 정치에 휘말린 술루 술탄국의 영토는 이후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영토로 나뉘어 편입되며 술루 술탄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필리핀에서 거주하는 술루 술탄 가문인 Kiram가(家) 역시 정치력을 잃은 채 지금은 명맥만을 유지하는 정도이다.
이 상황에서 벌어진 술루 사태를 가장 우려하는 국가는 필리핀이다. 현재 최대 외교 현안인 중국과 벌이는 남중국해 분쟁을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아세안 국가들 간의 대외관계 증진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필리핀 정부는 이번 사태로 말레이시아 및 브루나이를 자극하지 않으려 외교적 노력을 펼치고 있다. 즉 술루 사태에 대한 말레이시아의 강경한 입장에 필리핀이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고 있는 형국이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는 기존의 느슨한 출입국 규정을 새롭게 정비하였는데, 이는 이전까지 Seaman identification card를 발급받은 필리핀 어부와 어선은 말레이시아 입국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으나 새로 발효된 출입국 규정은 절차가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위반 시 법적 처벌도 한층 강화되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술루 사태와 관련해 이미 100명 이상의 필리핀인들을 체포하여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외국인에게 국내법을 적용해 법정최고형을 내리는 경우에는 언제나 정치적 고려가 필요하다. 특히 필리핀 국민이 말레이시아 법정에서 법적 절차를 밟아 처벌을 받는 것이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종교-민족주의 감정을 증폭시킬까 필리핀 정부는 매우 조심스럽다. 같은 죽음일지라도 교전 중에 사살하는 것과 말레이시아의 법적 절차를 밟아 사형에 처하는 것은 필리핀 국민에게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종교 기반 단체들은 필리핀 정부의 외교적 저자세를 벌써 지적하고 있지만, 양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번 사태의 여파가 무슬림 다수 지역인 민다나오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논조를 조절중이다. 술루 사태를 바라보는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의 언론의 온도차는 그래서 더욱 확연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이예승, 이은경이 조사한 『술루 술탄국의 사바 침략사건에 관한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의 언론 비교』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언론은 술루 사태를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사태 자체에 대해서는 테러리즘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 반면 필리핀 언론은 보다 원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말레이시아에서 친 여당적인 Utusan Malaysia는 이 사태를 테러라고 밝히면서도 야당 지도자인 Anwar Ibrahim을 이 사태와 연관시키는 기사를 썼고, 한편 친 야당적인 Haraka Daily 역시 테러라는 전제하에 술루 사태 발발의 시점이 왜 말레이시아 총선정국과 맞물려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Manila Times와 Manila Bulletin 등 필리핀 언론은 술루 사태의 서술에 있어서 테러라는 표현을 자제하고 있다. 민다나오 기반의 Minda News는 사바가 예전에 술루 술탄국의 영토였음을 언급하면서도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하고 있다.
이 시기 브루나이 하싸날 볼키아 술탄은 4월 25일 브루나이에서 아세안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4월 15일 필리핀을 국빈 방문했다. 더불어 하싸날 볼키아 술탄이 필리핀 민다나오 Cotabato City에 무려 4천8백만 US달러의 자금을 지원해 필리핀 최대 규모의 이슬람 사원인 Sultan Hassanal Bolkiah Masjid을 건립했다는 점을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1년 필리핀 정부와 모로이슬람해방전선이 맺은 평화협정의 올바른 이행을 위한 모니터링 단체인 International Monitoring Team in Mindanao에도 참가하고 있는 브루나이 술탄의 이번 필리핀 방문은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사이에서 이슈가 된 술루 문제에 대해 브루나이 술탄의 종교-정치적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브루나이 술탄은 술루 술탄국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더욱이 올해 아세안의 의장국으로 역내정치에 일정 역할을 담당할 브루나이가 술루 문제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제 22회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술루 문제는 아젠다로 채택되지 않았고 필리핀 외무부는 술루가 말레이시아와의 양자 간 문제이기 때문에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이것을 의제로 다룰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즉 필리핀에게는 남중국해 이슈가 최우선 과제이므로, 술루 문제가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의 아세안 역내분쟁으로 비치지 않게 하기 위해 양국 간 정치적 합의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2012년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의장국인 캄보디아가 남중국해 문제를 쟁점화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아세안과 중국 사이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조정하려는 행동수칙 (Code of Conduct in the South China Sea) 협상이 결국 무산되었을 때, 당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심각하게 겪고 있던 베트남과 필리핀은 캄보디아가 중국의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전략적 대상임을 강력히 비난했다. 베트남과 필리핀은 중국에 우호적인 캄보디아가 의장국이었던 2012년이나 혹은 현재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미얀마가 의장국이 되는 2014년에 비해 브루나이가 의장국인 2013년이 남중국해에 대한 아세안의 보다 적극적이고 통일된 지지를 이끌어 낼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2012년은 불리했고 2014년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2013년 브루나이에 대한 베트남과 필리핀의 기대가 높아진 만큼 합종연횡(合從連衡)에 익숙한 중국의 대응은 놀라웠다. 2012년 말 화려하게 정계에 등장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취임 후 해외순방이 아닌 베이징 자신의 안방에서의 첫 번 째 정상회담 상대로 브루나이의 하사날 볼키아 술탄을 접견한 것이다. 시진핑 스스로 베이징에서 처음 만나는 외국 정상이 하사날 볼키아라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은 브루나이와 아세안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하사날 볼키아 역시 중국의 대브루나이 투자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고 화답한 이 양국 정상의 만남은 아세안 외교가에 숱한 화제를 뿌렸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아세안 국가들 사이의 느슨한 연대를 흔들 수 있다는 중국의 자신감은 경제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캄보디아나 브루나이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싱가포르를 통한 중국계 자본 유입이 상당한 인도네시아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베트남과 필리핀이 기대하는 것만큼 뜨겁지 않다. 오히려 이번 술루 사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간의 해묵은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바로 사바가 속한 보르네오 섬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섬들인 시빠단(Sipadan)과 리기딴(Ligitan)을 둘러싼 양국 간 영유권 분쟁이다.
시빠단은 관광 리조트로 어느 정도 개발이 된 반면 리기딴은 대부분 모래로 이루어진 작은 무인도다. 20세기 말 이 섬들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에서 벌어졌고 양국의 합의하에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하였다. 2002년 국제사법재판소는 말레이시아의 손을 들어주며 사태는 일단락이 났다. 그러나 이번 술루 사태는 시빠단-리기딴 분쟁에 새로운 단초를 제공하였는데 이는 말레이시아가 이 섬들이 과거 술루 술탄국이 소유했고 그 권한이 술루에서 스페인, 미국, 영국을 거쳐 말레이시아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승소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소유권의 시작이 술루 술탄국이기에 지금의 말레이시아가 시빠단과 리기딴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갖는다면, 본래 주인인 술루 술탄국의 사바에 대한 영토 주장은 왜 묵살되는가를 인도네시아는 묻고 싶은 것이다. 즉 술루의 예전 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말레이시아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인도네시아가 시빠단과 리기딴에 대해 다시 이의를 제기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 해결을 위해 전문가 위원회를 함께 구성하는 안을 아세안에 전격 제안하였다. 베트남과 필리핀이 이를 시간끌기라며 강력 반대하는 한편 브루나이와 인도네시아는 이 제안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아세안의 2013년은 기대만큼 결속력 있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 술루 사태에 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 즉 술루 술탄국 지지자들이 성전(聖戰)을 벌이는 것인지 폭력을 휘두르는 것인지에 대한 정당성 논쟁이 격렬한 만큼 이 사태는 아세안 국가들이 역내 정치에서 피아(彼我)를 구별하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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