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유로존 위기와 동유럽, 슬로베니아의 현황과 선택은?

중동부유럽 기타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대학 교수 2013/07/23

2004년 5월 EU 가입, 2007년 1월엔 까다로운 가입 조건을 통과하고 동유럽 국가들 중에선 가장 먼저 유로존에 가입하는 등, 슬로베니아는 동유럽의 체제 전환 국가들 중 정치, 경제, 사회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선진화된 국가란 칭송을 받아 왔다. 특히, 과거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6개 공화국 중 하나였던 슬로베니아는 올해 7월 EU에 새롭게 가입한 크로아티아와 함께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북부 지역 공화국으로서, 상당 기간 내전과 민족 간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던 유고 지역 국가들과 달리, 정치,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여러 문제들을 조기에 극복하고 신속하게 경제 발전을 이룩한 대표적인 동유럽 모델 국가로서 소개되곤 했었다.

슬로베니아가 이러한 평가를 받았던 배경에는 첫째, 유럽 내 민족구성의 높은 단일성으로 인해 사회적 소모적 소요와 분쟁을 겪지 않았다는 점을, 둘째, 아드리아 해의 코퍼(Koper)항을 비롯해 지리적으로 서유럽과 발칸유럽을 잇는 중요 중간 교역로에 위치한 관계로, 주변 선진 유럽 국가들과의 계속된 교류와 무역 활성화를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와 선진 기업 운영 방식을 조기에 도입할 수 있었다는 점을, 셋째, 초등과정의 98%가 중등 과정을 이수하는 높은 교육열, 세계적으로 우수한 교육 환경과 우수한 고급 인력 양상(2013년 현재, 고급 과학 기술자 1만 여명)을, 넷째, 높은 사회 간접 자본시설 발달과 IT 산업 등 첨단 산업 소재 개발 등을,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국내 정치의 안정과 꾸준한 경제 성장에 따라 선진국에 버금가는 높은 국가 신용도 유지를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6월 미국 경제 주간지인 포천(Fortune)은 슬로베니아가 채무 불이행을 의미하는 ‘디폴트(Default)’의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이로 인한 투자 매력이 심각한 도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발표하였다. 

그렇다면 현재 슬로베니아를 둘러싼 위기설의 배경과 그 요인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무엇보다도 슬로베니아의 수출입을 둘러싼 구조의 한계점을 들 수 있다. 슬로베니아의 경제 특징은 약 인구 200만 명에 불과한 내수시장의 협소와 율리안 알프스 산지라는 지리적 험준함으로 인해 우리나라와 유사한 가공 생산 주력과 수출주도형 경제 체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그 비중이 수입의 80%, 수출의 70%가 독일, 이탈리아 등 EU 국가들에 집중되어 있어, 그 경제가 유럽 경제의 부침과 매우 중요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슬로베니아는 전기전자, 의약품, 기계류, 철강제품, 종이 및 플라스틱 제품 등을 중심으로 한 수출주도형 경제 체제인데, 이들 기업들 중 99.7%, 그리고 전체 근로자의 66%가 중소기업에 종사할 정도로 유럽 내에서도 중소기업의 산업 경쟁력이 높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경제 호황기와 달리 장기간의 경제 위기 속에서 중소기업들의 자금력 한계와 투자자들의 외면은 슬로베니아 경제의 어려움을 더욱 더 가중시키고 있다 하겠다. 세 번째, 슬로베니아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수출주도형 경제 구조 외에도 중개 무역과 관광 등 서비스 산업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 슬로베니아는 무역 및 운송 산업 발전을 위한 지리적 이점과 기간 시설이 뛰어나,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잇는 관문인 코퍼 항구 및 제 2 도시인 마리보르(Maribor)를 통한 중개무역이 활발하고, 알프스 남단의 다양한 주변경관과 상대적으로 안전한 치안으로 관광산업이 매우 발달해 있다. 하지만, 장기간 이어진 유럽의 경제 위기는 결과적으로 산업 물동량의 급격한 하락과 함께 주요 고객인 유럽 관광객의 감소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행 등 국영기업의 민영화 부진과 부실화는 표면적이고도 매우 핵심적인 요인으로 평가될 수 있다. 즉, 체제 전환 당시 혹독한 시련을 통해 대부분의 국영 기업들의 민영화가 진행된 여타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당시 경제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슬로베니아는 은행들을 포함해 기업의 약 50%만을 민영화 하는 데 만족하였다. 따라서 2010년 이후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고 기업 대출 중 약 1/3 가량이 부실화되는 과정 속에서 국영 은행들의 부실 문제와 정실주의 등 부패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고, EU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슬로베니아 정부에게 은행 등 국영기업 민영화에 주력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여 왔다.

유럽으로의 수출 감소 등 경제 위기는 슬로베니아 GDP의 하락과 내수의 급격한 침체를 불러왔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보다도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함께 기업에 돈을 대준 국영 은행 등 은행들의 부실화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 슬로베니아의 전체 GDP는 2004년 EU 가입이후 매년 4.3%-6.8%까지 성장해 왔으나, 2008년 3.6%로 줄어든 이후, 2009년엔 -8%를 기록하고, 이후 제로 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2008년 이래 슬로베니아의 전체 GDP는 작년까지 약 10.6%까지 그리고 내수 또한 2007년 이래 약 20% 이상 줄어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유럽 국가들 중에선 비교적 낮은 실업률로 인해 사회적 안정망이 건실하다 평가되어 왔던 실업률 수치 또한 2009년 5.9%를 시작으로, 2010년엔 7.3%, 2011년엔 8.1%, 그리고 작년엔 8.7%까지 치솟아 오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재 EU 보고서에 따른 슬로베니아 은행권의 부실 채권은 2011년 이후로 계속 확대되어 슬로베니아 전체 GDP의 1/5에 해당하는 약 70억 유로에 가깝다고 추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배경에는 체제 전환 과정 중 민영화 되지 않았던 상당 수 국영 은행들이 시중 대출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특히 정치권 입김에 따른 대출심사 부실과 부실 채권 증가에서 요인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슬로베니아의 계속된 경제부진은 세수 감소로 이어지고, 또 이로 인한 정부 및 기업, 은행 부채가 도미노처럼 확산된다는 점에서 EU와 국제 사회는 많은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 지난 4월 말 거시경제와 재정전망의 악화를 들어 무디스(Moody's)가 슬로베니아의 장기 국가 신용등급을 'Baa2'에서 두 단계 아래 투자부적격(정크)에 해당하는 'Ba1'으로, 그리고 이어 5월엔 피치(Fitch)가 슬로베니아의 신용등급을 'A-'에서 투자 적격 등급 중에선 세 번째로 낮은 'BBB+'로 한 등급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것은 슬로베니아가 유로존 국가들 중 지난 키프러스(Cyprus)에 이어 구제 금융을 받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해서 나오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현재, 슬로베니아는 국제 사회의 우려와는 달리 구제 금융 거부는 물론, 스스로 재정 위기 문제를 타파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슬로베니아는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올해 안에 우선적으로 15개 국영 기업 중 해외 투자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제 2 국영 은행인 ‘새로운 마리보르 투자 은행(NKBM: Nova Kreditna Banka Maribor)’을 포함해, ‘슬로베니아 통신(TS: Telekom Slovenije)’,‘아드리아 항공(Adria Airway)’과‘류블랴나 공항(Ljubljana Airport)’등 중요한 국영 기업들을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또한 슬로베니아 정부는 이번 7월부터 부가가치세를 2% 포인트 더 올린 22%로 적용할 것을 추진 중에 있다. 이러한 결실들이 이루어질 때, IMF와 EU 등에서 예측하고 있는 올해 슬로베니아에 필요한 약 30억 유로의 자금이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슬로베니아 정부의 이러한 대응 외에도 현재 구제 금융을 받고 있는 다른 유로존 국가들과 달리, 슬로베니아 정부 부채의 규모 또한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은 슬로베니아의 재정 위기 타파를 향한 자신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있다. 즉, 국제 사회에선 슬로베니아의 정부 부채 비율이 2008년 GDP의 22%에서 2013년 예상치로 72% 수준까지 오르는 등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이 수치 또한 유로존 평균인 약 90%에 비하면 아직까진 낮은 수치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지난 5월 초 국제 입찰을 통해 10년 만기물 25억 달러 규모의 국채를 수익률 6%에, 5년 만기물 10억 달러 어치를 4.95%에 발행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슬로베니아의 재정 위기는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현재 부실화 논란이 되고 있는 슬로베니아 은행들의 자산 규모 또한 전체 GDP의 1.4배에 불과한 데, 이것은 얼마 전 구제 금융을 받은 키프러스의 8배와 비교할 때 매우 안정적인 수치라 할 수 있으며, 그 외 예금주의 구성과 정부 부채 규모 등을 들여다 볼 때 양국 간에는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하겠다.

무엇보다도 얼마 전 7월 5일 발표된 EU 집행 위원회의 긴축 완화 추진을 통한 재정투자 및 적극적인 경기 부양 유도는 슬로베니아의 재정 위기 문제가 당분간 크게 부각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EU는 그 동안 재정적자가 GDP의 3%를 넘지 말 것과 정부부채가 GDP의 60% 이내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을 고수해 왔지만, 재정 적자 평가기준 변경과 완화를 통해 교통, 에너지 분야 등 사회간접시설 등 대규모 개발 사업 및 투자 확대를 유도해 나가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것은 유로존의 위기 지속 속에 EU 27개 회원국(2013년 가입한 크로아티아 제외) 중 20개국이 이미 재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채 어려움을 겪어 왔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이다. 그 배경에는 그 동안 요구한 과도한 긴축 재정이 성장 지체와 실업률을 확대해 왔으며, 무엇보다도 유로존의 경제 위기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판단한데서 나온 조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슬로베니아는 재정적자 감축시한을 약 2년 더 연장 받을 것으로 기대되며, 재정과 예산 운용에 있어서 한결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향후 슬로베니아가 국제 사회의 우려를 씻어내고 과거의 경제 발전을 향해 다시 한 번 도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유럽의 경제 위기 타파라는 외부적 조건 외에도, 국영 은행의 민영화를 통한 은행 부문의 경쟁력 강화, 은행의 자본 확충 및 부실 은행의 신속한 정리, 그리고 국가재정의 안전성을 어느 정도 확보해 나가는지 등 내부적 개혁이 슬로베니아의 재정 위기 극복과 그 미래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