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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카리모프 대통령의 떠보기 우즈베키스탄 대외정책의 향배

우즈베키스탄 현승수 한양대학교 아태지역 연구센터 HK연구교수 2013/09/12

중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들여다보면 유독 우즈베키스탄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친미에서 친러로 외교 노선이 바뀌었는가 싶으면 느닷없이 CSTO(러시아 주도의 CIS 안보기구)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해 관측자들을 당혹게 하기 일쑤다. 경제 규모나 국제적 위상에서 이웃 국가인 카자흐스탄에 밀린다는 인상을 받지만 중앙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는 우즈베키스탄의 야심은 사뭇 커 보인다. 예측이 불가능한 우즈베키스탄의  외교 행태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우즈베크인 교수의 글 하나가 중앙아시아 전문가들 사이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7월 6일, 인터넷 상의 <12news.uz> 사이트에 우즈베키스탄 교수인 루스탐존 압둘라예프(Rustamjon Abdullaev)의 글이 실려 논란이 불거졌다. 이 사이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친정부계 사이트로 알려져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NATO에 가입해야 하며 구 소련 국가들에 대해 영토 및 기타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압둘라예프 교수는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 건설 중인 수력발전소에 우즈베키스탄이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또 그는 우즈베키스탄이야 말로 역사적으로 코칸드 칸국, 히바 칸국 그리고 부하라 수장국의 정통성 있는 계승국가이기 때문에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전역과 더 나아가 카자흐스탄의 일부 지역을 자국 영토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압둘라예프는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이 주권 국가로서 존속할 권리도, 또 이들 국가의 민족들이 민족 정체성을 가질 권리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러시아가 우즈베키스탄의 좋은 동맹국이 결코 아니며 따라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CIS와의 일체의 관계를 끊고 대신 NATO에 가입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압둘라예프 교수의 이 도발적인 기고문은 게재일로부터 4일이 지난 7월 10일 사이트에서 삭제됐다. 또 다른 우즈베크 뉴스 포털 사이트인 의 편집자는 압둘라예프의 글이 갑자기 사라진 사실을 눈치채고 그 이유를 알아보려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으며 기고문과 함께 적혀 있던 <12news.uz>의 이메일 주소도 사용이 중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구소련 지역 연구자인 폴 글로브(Paul Globe)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주변국 상황을 미리 떠보려는 카리모프 정부의 의도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고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더욱 불길할 것은 이번 사태가 NATO와의 연대 가능성을 저해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NATO는 이웃 국가들과 영토 문제를 갖고 있는 나라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중앙아시아의 정세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 뉴스 에이전시 의 편집인 다니일 키슬로프(Daniil Kislov)는 글로브와는 다소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그 역시 압둘라예프의 기고문이 게재된 것이 단순한 우연이나 해프닝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검열은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담은 그런 글이 정부의 허가 없이 인터넷 상에 게재될 가능성은 결코 없다면서, 우즈베크 정부가 의도적으로 여론을 떠보거나 다른 나라의 반응을 살필 겸 동 기고문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언론인 세르게이 예즈코프(Sergei Ejkov)도 <12news.uz> 사이트가 카리모프 대통령의 전 언론 담당 보좌관 알리셰르 아지조자예프(Alisher Azizhodjaev)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키슬로프의 견해에 공감한다.   

이 같은 견해와는 상반되게 러시아의 권위 있는 중앙아시아 연구가이자 러시아학술원 민족학연구소 소장인 세르게이 아바신(Sergei Abashi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도 루스탐존 압둘라예프 교수의 글들을 많이 접해 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저명한 학자는 아니다. 그는 인터넷 상에 매우 이상한 내용의 글을 자주 게재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글 역시 우즈베키스탄 당국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우즈베크 정부가 그를 이용해 국제사회의 반응을 떠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우즈베크인 정치학자 타쉬풀라트 율다예프(Rashpulat Yuldaev)는 압둘라예프의 기고문이 카리모프 대통령의 생각이나 정책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해 말 카리모프가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를 방문했을 때 우즈베크 정부의 동의 없이 중앙아시아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행위는 무력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전문가들은 우즈베크 정부가 중앙아시아의 맹주로 인정받고자 하는 열의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희망이 우즈베키스탄의 외교 정책에 반영돼 왔다고 지적한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글 속에도 종종 역사적인 근거를 들어 투르케스탄(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정주 지역)이 중앙아시아인들의 유일하고 공통된 조국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러나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의 중앙 광장에는 현지인들이 ‘우즈베키스탄의 지구’라고 부르는 범상치 않은 조형물이 들어 서 있다. 이 기념탑은 받침대 위에 황금색 지구가 올려져 있고 우즈베키스탄의 지도가 지구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독립 후 새로 편찬된 우즈베키스탄의 역사 교과서는 우즈베크인 국가의 시조를 제왕 티무르로 소개하면서 그가 전 세계의 3개 지역, 즉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호령하던 맹주였다고 추켜세운다. 카리모프 대통령이 야심차게 건설한 티무르박물관은 그 건물의 규모도 어마어마하지만 그 안에 전시된 지도가 적잖이 도전적이다. 티무르가 조공을 받던 지역들을 보여주는 지도에는 북아프리카와 인도 북부는 물론, 오늘날 러시아에 속하는 상당 지역들 특히 모스크바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러시아 언론인 이고르 로타르(Igor Rotar)는 티무르가 러시아를 몽골의 압제로부터 구했다는 내용을 우즈베키스탄의 학교에서 공공연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증언한다.

독립 이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중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심각할 정도의 무력 분쟁이 발생한 적은 없지만 종종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갈등에 거의 우즈베키스탄이 관여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례로 소연방 해체 직후부터 1997년까지 계속된 타지키스탄 내전에 우즈베크 정부가 개입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5년간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정전이 성립되자 1998년 카리모프 대통령이 나서서 이를 훼방 놓으려 했다는 분쟁이석이 있다. 당시 타지크 반군 지도자인 마흐무드 후다이베르디예프(Mahmud Khudayberdiev)의 부대가 탱크를 몰고 우즈베키스탄의 시르다리야 지역을 거쳐 타지키스탄 북부 영내로 진격하도록 카리모프가 허용한 적이 있다. 이 작전은 결국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말이다. 또 1999~2000년에 이슬람 무장 과격파 단체인 IMU(우즈베키스탄이슬람운동)의 무장병들이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으로 침투하여 무력투쟁을 벌이자, 카리모프 대통령이 두 나라 정부의 동의 없이 이들 국가 영토에 폭격을 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키르기스인과 타지크인 민간인들이 희생된 것으로 전해진다.   

앞에서 언급한 재미 우즈베크인 학자 타쉬풀라트 율다예프는 최근 카리모프의 노쇠 현상이 눈에 띄게 증가한 탓에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지적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카리모프의 연설 후에는 종종 그의 정신 건강에 대한 우려와 현실 인식 오류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즈베크 정부가 대통령의 공식 연설 전에 미리 주변의 반응을 떠보려는 다양한 술책을 구사하며 루스탐존 압둘라예프의 기고문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율다예프의 분석이다.

어쨌건 압둘라예프의 글은 <12news.uz> 사이트에서 금새 모습을 감췄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이것이 단순히 해프닝일 뿐이며 우즈베키스탄의 대외정책에 심각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여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는 사뭇 다른 행태를 보여주면서 관측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우즈베키스탄의 대외정책에 모종의 변화가 있을지를 둘러싸고 전문가들의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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