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흑해의 도시 트라페준다(트랍존)와 성모 수멜라 수도원

튀르키예 / 중동부유럽 기타 최자영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 HK교수 2013/09/23

트라페준다(터키어로‘트랍존’, 고대 그리스어로‘트라페주스’)는 흑해 남부, 소아시아 북부 연안에 있는 해변 도시이다. 이곳은 지금은 터키 영토이지만, 기원전(756 B.C.)부터 그리스 인이 드나들던 곳, 그리스 신화의 고향이다.

사실은 트라페준다 뿐 아니라 흑해 연안 전체가 고대 이래 그리스 인의 체취가 서린 곳이다. 흑해는‘아르고나우테스(아르고스 호 선원들)’의 영웅들이 황금의 양털을 가지러 원정을 왔던 곳이며, 헤라클레스가 여전사(女戰士) 아마존 종족과 싸웠고, 제우스의 독수리가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뜯어먹었던 곳이다. 또한 흑해는 그리스 역사에서 명성을 가진 사람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 희극시인 디필로스가 그곳 시노피 출신이며, 고명한 역사지리학자인 스트라본(스트라보)도 흑해의 아마시아 출신이다. 근대에 들어서서는 1821년 그리스가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항을 시작했을때 그 독립의 투사로 존경받는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도 흑해 출신이다.

특히 트라페준다는 13세기 십자군에 의해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었을 때 비잔티움 콤네노스 황가에 의해 망명정부(1204-1461)가 들어섰던 곳이기도 하다. 1204년 제4차 프랑크 십자군과 베네치아 상인들이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함락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라틴제국을 건설했을 때, 비잔티움 제국의 유민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3개 왕조를 건설하게 되었는데, 콘스탄티노플 남쪽 소아시아의 니케아 제국, 그 서쪽 발칸반도 이피로스(에피루스)과 함께 트라페준다에도 이들에 의한 왕조가 세워졌던 것이다.

트라페준다는 흑해 다른 어떤 지역보다 항구로서의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오늘날도 터키인들에게도 물류의 중심지로서 그 의미가 크다. 최근 터키 수상 에르도간이 터키 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도모하여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한편으로 현재 터키 영토인 에게해 북동부의 동부 트라키에서 흑해를 연결하게 되는 해안도로를 건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트라페준다에서 남부 디미아르바키르를 거쳐 시리아까지를 잇는 약 630km 길이, 시속 250km의 고속철도를 구상 중이라고 한다. 그리스 측에서는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될 이런 구상이 현실성 없는 ‘헛소리’로 매도하고 있다.

고대 이래 현대 그리스인 정교도들이 케말 파샤의 터키 공화국 정부에 의해 그곳에서 쫓겨나던 1922년까지 약 2,678년 동안 그리스 인의 전통과 체취가 강하게 서린 이곳 트라페준다에는 정교회의 상징으로서‘성모 수멜라(파나기아 수멜라)’ 수도원이 있다. 380년대에 세워진 이 수도원은 트라페준다에서 40km 떨어진 곳, 멜라스 산 높고 깊은 곳, 픽시티스 강 수원(水源) 가까운 곳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인 누가(루카스)가 지금까지 전해오는‘성모 수멜라’상을 만들어서 항상 들고 다니다가, 죽기 전에 그 제자인 아나니아스에게 주었고, 아나니아스는 그것을 테베에서 발견하여 아테네의 성모 교회로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 380년 성모 마리아가 바르나바스라고 하는 한 젊은 수도승에게 나타나 자신이 인도하는 곳으로 그‘아테네의 성모 상’을 옮기라고 지시하고, 그것을 들고는 사라졌다. 바르나바스(혹은 바실리오스)는 자신의 조카이며 하급사제였던 소티리오스(혹은 소티르코스)와 함께 성모 마리아의 인도를 받으며 6년을 다니다가, 이곳 수멜라까지 와서 성모상을 찾게 되었으며, 그것이 발견된 바위 위에‘성모 수멜라’ 수도원을 세우기에 이르렀으며(386년), 그 때부터 이 성모상은‘수멜라의 성모상’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멜라’의 어원은 흑해 방언으로‘멜라스 (산) 으로 (into the Melas)’라고 한다. 이 수도원은 멜라스 산 속 해발 1320m에 위치해있는데, 바위에 달려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수멜라 수도원은 중세 트라페준다의 콤네노스 왕조의 보호를 받으며 번영했다. 특히 알렉시오스 3세 콤네노스 (1349-1390) 때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물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성자와 황제들의 모습을 담은 벽화들도 그 때 만들어진 것이다. 15세기 중엽 이후 오스만 터키가 이곳을 점령한 이후에도 이 수도원은 흑해 연안에서 이제 피지배층으로 전락한 기독교 정교회의 상징이 되었을뿐 아니라, 흑해 전 지역의 그리스 문화(헬레니즘)의 중심이 되었다.

1923년 케말 파샤의 신생 터키 공화국과 그리스 간에 무슬림과 기독교 정교도 상호교환이 이루어졌을 때, 트라페준다의 수멜라 수도원은 무슬림들에 의해 약탈방화 당했고, 1924년 8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수도승들이 쫒겨남으로써 수도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당시 수도승들은 약탈당하기 직전 그곳 3점의 고명한 성물, 즉 사도 누가(루카스)가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성모 수멜라 상, 아기오스 흐리스토포로스의 성경 필사본, 트라페준다의 마누엘 3세 콤네노스(1391-1417)가 하사한 성(聖) 십자가 등을 인근의 작은 교회 성(聖) 바르바라 교회로 숨겨서 보관했다. 그 후 이 수도원은 8년 정도 방기되다가 그 후 박물관 및 전시관으로 이용되었다.

1931년 8월 당시 터키 수상 이스메트 이노누가 아테네를 방문했을때, 그리스 수상 엘레브테리오스 베니젤로스가 흑해의 멜라스 산에 보관된 성물(聖物)들을 이양해줄 것을 부탁했고, 이노누는 이를 수락했고, 성물들은 아테네로 옮겨져 비잔티움 박물관에 보관되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1951년, 그리스 마케도니아, 테살로니키 서쪽에 위치한 베리아의 작은 마을 베르미오, 이마티아의 카스타니아 산속에 같은 이름을 가진 새로운 수멜라 수도원이 세워지게 되고, 3점의 성물들이 그곳으로 옮겨졌다. 필로나스 크테니디스 등이 주도한 이 수도원의 건립은 1923년 소아시아 및 흑해에서 쫓겨난 후 실향민, 수멜라 수도원을 가슴에 묻고 살았던 그리스인 정교도들의 염원이 가시화된 것이었다. 해마다 성모 승천(사망)을 기념하는 8월 15일이 되면 성모 수멜라 기념행사가 이 수도원에 성대하게 거행되며, 흑해에 고향을 둔 실향의 정교도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올해(2013) 성모 승천 기념일인 8월 15일에는 흑해 출신으로 1821년 그리스 독립을 위해 터키에 항거하기 시작했던 민족의 영웅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와 그 형제 이오르고스 입실란티스의 방부 처리된 심장이 이곳 베르미오의 신(新)수멜라 수도원에 전시되어 정교도 참배객들을 맞았다. 당시 트라페준다 등 흑해 연안을 터키로부터 분리 독립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곳에서 쫓겨나서 그리스 내에 산재하여 거주해온 정교도들에게 독립투사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의 심장은 실향의 고통과 애환, 나아가 귀소의 소망을 상징하고 있다.

최근 들어 터키 측에서는 외교적 차원에서, 1924년 트라페준다의 수멜라 수도원이 그 기능을 상실한 이후 88년 만에 처음으로 이 수도원을 그리스와 러시아 측에 개방하고, 정교도들이 성모 승천 기념일(8월 15일) 행사를 이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할 뜻을 밝혔다(2010.6.8.일). 그래서 그 후부터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 바르톨로매오스가 터키 영토 멜라스 산 속‘흑해 정교도의 예루살렘’이라 할 수 있는 이곳 수멜라 수도원에서 이 날 성모 승천 기념 예배를 집전하게 되었다.

흑해 주변에는 아직도‘숨은 정교도(크립토흐리스티아니)’들이 만만치 않게 산재해 있다. 이들은 오스만 터키 및 터키 공화국의 무슬림들에 의해 가해지는 차별대우를 피하기 위해 무슬림으로 개종했으나, 내심으로 기독교 정교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스 정교회에 대한 터키 정부의 이런 조처는 단순히 외교적 관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터키 내의‘숨은 정교도’들에 대한 다소간의 배려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참고자료

http://greeknation.blogspot.kr/2010/06/blog-post_3134.html  [2013.9.12.일 검색]
http://www.dogma.gr/default.php?pname=Article&art_id=3339&catid=22 [2013.9.12.일 검색]
http://www.express.gr/news/ellada/725285oz_20130815725285.php3 [2013.9.12.일 검색]
http://www.kathimerini.gr [2013.1.26.]
http://www.kathimerini.gr [2013.8.11.]
http://www.opontos.gr/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25&Itemid=7 [2013.9.12.일 검색]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