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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동유럽 난민 문제를 통해 본 한반도 과제

중동부유럽 일반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대학 교수 2013/10/17

 2013년 6월 20일, 동유럽과 서유럽 간‘철의 장막(Iron Curtain)’을 걷어낸 것으로 유명한 줄러 호른(Gyula Horn, 1932-2013, 외무 장관 1989-1990, 총리 1994-1998) 헝가리 전(前)총리가 별세하였다. 그는 1989년 헝가리 공산 정권의 마지막 외무장관 시절, 당시 동독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간 국경을 개방하여, 헝가리로 휴가 온 동독 난민 수천 명이 국경선을 따라 서독으로 탈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동독인들의 대량 탈출을 감행시킨 그의 용기 있는 외교적 결단은 이후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독 사회주의 정권의 소멸을 불러왔고, 뒤 이어 다른 동유럽 공산정권들의 몰락과 소련 해체로 이어지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이처럼,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유럽 지역에서 동유럽 난민이 처음 발생하게 된 계기는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공산당 서기장 1985-1991)의‘개혁(Perestroika)과 개방(Glasnost) 정책’에 따라 과거 소련이 문호를 개방하고,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을 포기하게 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비록 사회주의 체제 내의 견고성을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초기 그의 이러한 정책들은 소련 내 급진 개혁 세력의 저항 확대를 불러왔고, 동유럽 국가와 민족들에겐 사회주의 통제를 벗어나 민주화와 자유화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게 사실이다. 이후 한동안 수많은 동유럽 난민들이 서로의 국경을 넘어 혹은 서유럽 자유 국가로의 탈출을 감행하게 되면서, 20세기 말 동유럽 난민 발생의 출발을 예고하게 된다. 한동안 이어지던 동유럽 민족들의 서유럽 국가로의 탈출 러시는 1989년 사회주의 체제의 견고성으로 상징되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에서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함에 따라 잠시나마 그 진행이 멈추었다. 하지만 1990년대 자유 민주주의로의 체제 전환 속에 발생한 여러 갈등과 혼란, 특히 발칸 유럽에서의 다양한 민족 간 갈등 상황은 이 지역에서의 대규모 난민 사태와 함께 다시 한 번 동유럽 난민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 말 유럽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색다른 형태의 대량 난민 문제를 경험해야 했다. 1990년대 동유럽의 발칸반도에서 발생한 수차례의 민족 간 분쟁과 내전은 이 지역에서만 약 300만 명에 가까운 난민을 낳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UN과 EU 등 국제사회와 국제기구들은 이러한 난민 문제를 해결하고자 깊숙이 개입해 왔으며 관심을 확대해 온 것도 사실이다. 또 국제사회와 다양한 국제기구들은 다방면에 걸친 국제공동체들 간의 공조와 함께 포괄적 지원을 행해왔으며, 현재까지도 그러한 지원과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 동유럽, 특히 발칸유럽 지역의 민족 문제와 난민 문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아가는 중이라 할 수 있다. 민족 갈등과 내전으로 발생한 다양한 형태의 동유럽 난민은 원래 거주 지역에서의 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감에 따라, 귀향하거나 혹은 새로운 정착지에서 또 다른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2012년 국제난민기구(UNHCR)의 통계에 따르자면 약 33만여 명에 가까운 난민들은 아직까지도 귀향이나 정착을 하지 못하고, 난민 상태로 남아 국제사회의 관심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난민 중 특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와 코소보(Kosovo) 민족분쟁 그리고 마케도니아(Macedonia)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약 232,000여 명의 실향민 및 난민 문제 해소는 관련 국가들의 복잡한 대내외적 사정과 민족 문제 어려움으로 인해 여전히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사회와 유럽 국가들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동유럽의 사회주의 붕괴 전까진 ‘1951년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제네바 난민 협약)’과 이를 보완한 ‘1967년 난민지위에 관한 의정서(뉴욕 의정서)’에 근거해 여러 지역의 난민 및 인권 문제에 대처해 왔다. 특히 유럽과 EU 회원국들의 경우,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동안 유럽 내에서 대규모 난민 문제를 경험하지 못했고, 20세기 중엽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내에서 발생한 일련의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거나 일부 NGO 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해주는 역할에 그쳤다. 하지만 20세기 말, 동유럽에서의 민족 충돌 및 내전 발발 그리고 이에 따른 유럽 본토로의 대규모 난민 유입과 새로운 형태의 인권 유린 양상 확대는 그동안 이들이 취해온 난민 문제 해결 방식과 인권 정책에 있어 상당한 수정과 보완을 요구하게 된다.

   동유럽에서의 다양한 민족 갈등과 내전 그리고 이로 인한 대량 난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방면에서 UN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과 국제사회의 참여가 진행되어 왔다. 이중 지리적인 이유로 인해 EU의 역할과 참여가 자연스럽게 확대되었으며, EU와 유럽 국가들의 난민 및 인권정책에 관한 논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향과 목적을 지니며 변모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동유럽 난민 사태의 경우처럼 외부에서 유입되는 대규모 난민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 둘째, 인종적, 종교적으로 이질적인 외부 이재민들의 EU 역내 유입을 통제하기 위한 난민 및 망명 정책 강화의 필요성 확대 및 이들에 대한 EU내 시민권 부여 기준 강화를 어떻게 확대해 나갈 것인가? 셋째, 대내적으로 이미 EU 내에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제 3국인들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진행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기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유럽에서의 민족 갈등과 충돌, 내전 그리고 이에 따른 대량 난민 사태는 유럽과 EU 국가들 사이에서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과 다양한 논쟁 그리고 공통된 대응 전략 수립의 필요성을 낳았다. 우선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대표적 국제기구인 UNHCR는 되도록 짧은 시간 안에 대규모 난민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기존의 경직된 난민 수용 원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대응 전략 수립이 절실히 요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유럽에서 발생한 대량 난민의 역내 진입을 막으려는 EU의 자구책과 대량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신속한 대응책이 필요했던 UNHCR는 서로의 고민 해결을 위해 합의점을 찾고자 했으며 그 결과 ‘임시보호정책(Temporary Protection)’이 수립되게 된다. 실제 동유럽 난민 문제 해결에 있어 UNHCR는 문제 해결 접근 방식 중 자신들과 국제사회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인 ‘자발적 본국 귀환(Voluntary Repatriation)’을 기초로 한 ‘임시보호정책’을 수립했고, 이에 대해 EU와 공조하여 그나마 성공적으로 난민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1992년 이후로 발칸유럽에서 내전들이 연 이어 발발하고 대량 난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던 상황 속에서, 난민 수용과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유럽 국가들을 설득하기 위해 UNHCR가 제시한 ‘임시보호정책’의 핵심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UNHCR는 과거 난민 정책과 달리, 유고 지역 및 보스니아에서의 내전 상황이 종료된 후, 난민들의 본국 송환이 이루어지도록 약속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난민이 비호국(庇護國)에 임시 체류하는 동안 난민들의 망명 신청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둘째, UNHCR는 발칸 유럽에서의 대규모 난민 발생으로 인해 과거처럼 국경에서 일일이 난민 자격 심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유럽 각국이 집단 단위로 난민 심사기준을 적용하는 등 입국 절차를 간소화 해 난민의 대규모 입국을 허가하도록 유도한다. 셋째, UNHCR는 이들 비호국들이 난민들의 체류 기간 동안 기본적인 생활조건 충족과 난민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처럼, UNHCR가 현지 내전 상황이 종료된 직후,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는 동유럽 난민들의 본국 송환을 약속하고, 난민들이 임시보호 자격으로 유럽 국가에 체류하는 동안 정치적 망명 신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유럽 정부들은 대내적 부담을 떨치고 동유럽 난민 수용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이를 기초로 유럽 각국은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일반적인 정치적 망명 절차 대신 보다 빠른 입국 절차를 마련해 발칸유럽 내전에서 발생한 대규모 난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게 된다. 즉, 난민 자격으로 유입된 사람들이 자기 국가에 영구 거주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유럽 국가들의 바람과 대규모 난민 문제를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해소해야 했던 UNHCR의 고심이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이와 같은 전략적 정책 수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강대국들 사이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민족의 미래를 고민해야 했던 동유럽의 입장을 반추해 봤을 때, 이는 한반도 및 이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의 한반도 전략 또한 북한과의 전면전 대비에서 내부 붕괴로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상황이며, 이것은 곧 과거 동유럽의 난민 문제 확대가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듯이 한반도내 커다란 변화를 예견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김정은 체제 출범 후 북한의 강력한 통제 확대로 인해 탈북자들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역으로 해석했을 때 북한 정부가 드디어 난민 문제 확대가 북한 체제의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1990년 한·러 수교 당시 옛 소련 외무차관으로 주역을 담당했던 이고르 로가초프 러시아 상원의원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수교 당시 한국 정부는 성급한 통일을 할 생각이 없었으며, 그 배경 중 하나에는 급격한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약 100만-200만명의 북한 난민들이 휴전선을 넘어 남한으로 몰려올 것을 크게 우려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의 급변 사태 발생시 대량 난민 문제 발생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따라서 EU와 UNHCR가 동유럽 난민 문제들을 통해 얻은 여러 난민 문재 해결 정책과 선험적인 경험들을 우선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향후 대두될 수 있는 동북아시아의 긴장 사태 및 대량 난민 발생 문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 전략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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