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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2014년 이후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관계 전망

우즈베키스탄 / 타지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 김상철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2013/10/25

2014년 미국과 나토군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철수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접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에서 무력 및 군사 분쟁 발발 가능성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매우 낮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내부의 지역적인 문제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연계되어 있고, 특히 이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존재하고 있는 무장 군사집단과의 관계와 관련되어 중앙아시아 내에서 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은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중앙아시아-아프가니스탄의 여러 연계요인들
중앙아시아는 아프가니스탄과 많은 중요한 연계점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미국과 나토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 이러한 연계 요인들이 중앙아시아의 안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행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려되어야 할 부분은 중앙아시아가 아프가니스탄과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대략 2,000킬로미터 이상의 국경을 공유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동부에 위치한 타지키스탄은 1,344킬로미터의 국경선을 아프가니스탄과 공유하고 있으며, 투르크메니스탄은 744킬로미터, 우즈베키스탄은 137킬로미터의 국경선을 아프가니스탄 서부와 접하고 있다.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간의 국경은 산악지대이고 따라서 국경선이 명확하게 설정이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며, 투르크메니스탄 및 우즈베키스탄과의 국경지대는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은 인구학적으로도 중요하게 연계되어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3100만여 명의 인구들이 십여 개의 민족-언어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주요 집단은 파슈툰이 42%로 가장 큰 집단이며, 타지크는 27%, 하자라 9%, 우즈베크 9%, 투르크멘 3%로 구성되어 있다. 타지크, 우즈베크 및 투르크멘 민족 집단들은 대부분이 북부 아프가니스탄에 집중되어 있고, 이들 지역은 대부분이 이들의 민족적인 모국이라 할 수 있는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및 투르크메니스탄과 인접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아프가니스탄 간에는 근대적인 의미의 국경이 존재하지 않았고, 지배세력이 늘 변화하는 전선 지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북부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단일 국가나 제국을 형성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초 시작된 러시아와 영국 간의 그레이트 게임으로 인해 변화하기 시작했다. 제정러시아의 중앙아시아로의 팽창은 시기적으로 영국의 인도 지배 시기와 일치하는데, 결과적으로 이 두 제국세력 간의 완충지대가 바로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이 형성되었고, 이는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이 역사적으로 최초로 분리됨을 의미했다. 이와 같은 단절은 중앙아시아가 소련 시기 70년간의 통치를 받게 되면서, 토착민 집단인 타지크, 우즈베크 및 투르크멘 민족은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으로 공동체가 분할됨에 따라 정치 및 문화적인 정체성이 지역에 따라 상이하게 형성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소련붕괴이후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연계상황 변화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간의 유대 관계는 단절이 어려웠는데, 국경 지역의 지리적인 요인들로 인해 이들 두 지역에 속하는 민족들 간의 상호교류 및 활동들은 계속되었다. 더불어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이어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소련 국민으로 살고 있었던 타지크, 우즈베크 및 투르크멘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었던 자신들의 동포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는 이들이 언어적인 이유로 소련의 군사작전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었다. 소비에트 중앙아시아인들이 자신들보다는 훨씬 더 고유한 민족공동체와 종교공동체 속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아프가니스탄의 동포들과 접하게 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분은 소련의 공격으로 인해 급진 세력으로 변모했고 이후 무자히딘(Mujahideen)으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중앙아시아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소련이 철군하고 그 이후 2년 뒤 소련이 붕괴함에 따라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에는 새로운 환경이 급격하게 형성되었다. 1991년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은 근대 역사에서 최초로 독립국이 되었다. 소련 시기에 공식적으로는 종교적인 활동이 억제되고 있었지만, 많은 중앙아시아인은 무슬림의 관행을 비공식적으로 지켜왔기 때문에, 소련 붕괴 이후 이 지역에서 이슬람이 쉽사리 재정착할 수 있는 그런 토대로 작용하였다. 소련군 철수 이후 이어진 아프가니스탄의 국내 갈등과 소련 시기 대소항전을 이끌었던 무자히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탈레반으로 알려져 있는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파슈툰족 출신의 이슬람 (급진) 세력이 부상하게 되었다.
 
1994년 초부터 탈레반은 칸다하르 지역을 견고한 지지기반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상당 부분에 대해 영향력을 확산시키고 통제권을 가지게 되었다. 다양한 파슈툰 전사들에 의해 남부 지역을 몇 달 내에 장악하고, 이후 아프가니스탄 동서부의 중심도시들인 헤라트와 잘랄라바드 지역까지 이러한 양상은 확산되었다. 1996년 탈레반은 타지크인이었던 부르하누딘 라바니 대통령과 아흐멧 샤 마스우드 국방장관이 이끄는 아프가니스탄 중앙정부의 통치를 무력화시켰다. 1990년대 말 탈레반은 탈레반에 대한 마지막 저항세력의 거점이었던 북부 아프가니스탄으로 진입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탈레반의 수니 이슬람주의와 아프가니스탄 지배에 대해 반대를 했던 시아파 하자라족과의 갈등, 탈레반보다는 온건 이슬람 성향인 아프간 타지크인, 우즈베크인들과의 갈등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부각되기 시작하던 시점에서 중앙아시아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발전양상이 나타났다. 중앙아시아의 탈 소비에트 신생정권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직접 통치한 경험이 부재했다. 또한 당시 중앙아시아의 신생국들은 러시로부터의 보조가 단절되고 중앙아시아를 밀접하게 결속시키고 있었던 소련 시기에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었던 군수산업 단지들이 사실상 붕괴함에 따라 심각한 경제 및 정치적 도전에 직면하였다. 타지키스탄은 지역 기반, 종교 기반 및 정치적인 성향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집단에 의해 내전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내전에 관여된 세력들을 지원하는 타지키스탄 외부 세력들 역시 내전에 관여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은 세속주의 세력 및 신공산주의 인민전선을 지지했고, 아프가니스탄의 타지크인 상당수는 타지키스탄 이슬람부흥당과 타지크 야당연합을 지원했다.
 
타지크 야당연합과 이슬람부흥당은 이후 주마 나망가니와 타히르 율다셰프가 이끄는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IMU(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 세력에 합류하였다. 나망가니는 소련군대에 복무했던 인물이었고, 율다셰프는 중앙아시아와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슬람 신앙이 가장 탄탄한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지역 출신으로, 이들은 우즈베키스탄 독립 초기에 카리모프에 대한 반대시위를 이끌었고, 카리모프에게 우즈베키스탄에서 샤리아 통치의 도입을 요구했다. 카리모프가 이를 거부하자, 이들은 테러, 폭발물 설치, 무장공격 및 납치 등의 활동을 통해 카리모프 정부에 대한 반대활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 탈출하여 타지키스탄으로 피신하고 나서 이슬람 부흥 당에 합류하였다. 타지키스탄 인민 전선은 현재 타키지스탄 대통령으로 4선 연임을 시도하고 있는 타지크인 에모말리 라흐몬은 인민전선을 이끌고 있었는데, 인민전선은 타지크의 우즈베크인들이 지지하고 있었다. 내전에서 인민전선이 승리하게 되자 타지키스탄 이슬람 부흥당은 연정 협상을 통해 연정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IMU는 원래의 활동지역과는 떨어져 있는 타지키스탄 동부의 타빌다라 계곡 산악지대를 토대로 우즈베키스탄 정권에 대한 반대 활동을 지속하였다. 
 
1999년부터 2001년 사이에 타지키스탄의 우즈베크 군벌 세력들은 우즈베키스탄과 페르가나 계곡의 남키르기스스탄에 위치한 우즈베크인 거주지역을 여러 차례 공격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타지키스탄 정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지키스탄으로 피신한 나만가니에게 주기적으로 안전한 은신처를 찾아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시점에서 나만가니는 탈레반 지도자인 뮬라 모하마드 오마르와 연계가 되어 있었는데, 당시 모하마드 오마르는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하였다. 탈레반은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에 대해서도 피난처를 제공했는데, 대신 북부 아프가니스탄의 타지크인, 우즈베크인 및 하자라인에 대한 탈레반의 공격에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이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북부 아프가니스탄 일부는 라바니, 마수드, 우즈베크인 전사 압둘 라쉬드 도스툼 및 하자르인 지도자인 압둘 카림 칼리리가 관할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북부동맹으로 알려져 있는 반-탈레반 전선을 형성하였다. 이후 북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국경을 넘나들며 북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혼전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혼전의 한쪽은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및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북부동맹이었고, 또 다른 한쪽은 알카에다와 IMU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탈레반이었다. 결국 폭력과 무법상태, 군벌과 국제적인 연계 등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 국가들 간의 국경선에서는 물류수송에서부터 각종 군사작전 등으로 인해 사실상 무방비 상태가 계속되었고, 이는 소련체제가 형성되기 이전 이 지역에서 존재했던 혼란상태가 재현되는 듯한 양상을 주었다.

9.11테러 이후 이슬람 무장세력 활동의 변화
탈레반의 우위는 2001년 알카에다의 9.11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게 되면서 변화하게 되었다. 미국의 공격은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 및 러시아의 지원으로 탈레반 및 이들의 활동을 몇 달 내에 주요 도시 지역들로부터 몰아낼 수 있었다. 이러한 공격에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안보적인 지원은 중앙아시아에 미국 및 나토의 작전을 위한 물류 및 지원기지들이 만들어짐을 의미했다. 이러한 상황은 중앙아시아 각국 정부 및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및 키르기스스탄의 안보 당국들이 IMU 및 히즈 알 타흐리르 같은 무장세력들의 토벌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적인 개입이 탈레반이나 IMU, 알카에다들을 완전히 섬멸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는 이들 집단을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지대 또는 파키스탄 영내로 몰아내는 결과로 이어졌는데, 파키스탄의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전면적인 군사작전 위협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에 형성되어 있는 대규모 파슈툰 공동체의 존재 그리고 파키스탄 정부 및 정보당국이 탈레반의 재결집 및 항전 활동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로 인해 파키스탄인 탈레반 전사들 역시 늘어나게 되었다. 국제적인 전사집단인 IMU와 알카에다는 문화 및 정치적인 지원의 배경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분쇄되거나 해체되기가 불가능하다. 
 
탈레반 정권하에서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우즈베크 전사들은 파키스탄의 오지로 유입된 우즈베크인들만으로 구성되어있지는 않았다. 이러한 우즈베크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소련군 철수시기 이후부터 탈레반 정권 붕괴시기 사이에 파키스탄으로 유입되어 파키스탄의 파슈툰족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가운데 다수는 하카니(Haqqai) 계통에 속해있었는데, 하카니 계통은 군벌 세력들의 점령 활동이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에까지 확대되면서 탈레반에 합류하였다. 물론 이들만이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의 전부는 아니었고, 다수는 알카에다에 연계되어 있었고, 아울러 상당한 숫자가 남부 와지리스탄의 바이툴라 메허수드 부족과 연계가 되어 있었다.
 
이후 탈레반은 나토군 및 미국의 지지를 받는 아프가니스탄의 하미드 카라자이 정부에 반대하는 내전을 시작했지만, IMU와 알카에다가 과거의 활동영역을 상실함으로 인해 영향력도 확연하게 감소하였다. 2001년에는 우즈베키스탄 및 페르가나 계곡 지역에서 IMU의 공격이 절정에 달했고, 이후 중앙아시아의 안보 환경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여 안정적인 추세로 변화했다. IMU의 카리모프 정권 전복 및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통치 국 전환 목표는 달성할 수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이 완전한 평온상태는 아니었다. IMU는 2004년 타슈켄트에서 폭발물 테러를 했고, 우즈베키스탄 보안경찰은 2005년 안디잔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했는데, 이슬람 활동가들이 이를 주도한 것으로 보았다. 여하튼 이러한 상황 전개는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무력 진압을 희망했던 우즈베키스탄 국내의 잠재적인 권력 갈등과 상당한 개연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되었다. 타지키스탄에서는 2010년 군용차량에 대한 고의적인 파괴행위의 형태로 공격이 재개되었는데, 이에 대해 타지키스탄 정부는 타지키스탄 동부에 위치한 IMU의 소행으로 간주했다. 이는 타지키스탄 내전 이후 국제적인 군사 저항세력의 은신이 원인이라기보다는 타지키스탄 대통령 에모말리 라흐몬이 내전 이후 특정지역에 대한 투자 철회가 이루어진 해당 지역들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철회로 인한 타지키스탄 내부의 정치적인 분열이 초래한 결과일 개연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최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안보에 대한 위협을 가하려 계획하는 IMU 과격분자들을 공격 계획이나 연루에 대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체포하고 있다. IMU세력들이 중앙아시아에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IMU 상황은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미국의 이 지역 개입에 대한 강경 노선도 사실상 포기되었고, 강경노선을 주도했던 과거 지도부들은 중앙아시아 외부에서도 추적을 당했고 제거되었다(주마 나만가니는 2001년 공습으로 사망했고, 타히르 율다셰프는 2009년 제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부는 새로운 인물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IMU는 민족, 종교, 전략 및 전술로 수많은 군벌 세력으로 분열되었다. 이들 과격분자의 상당수는 파키스탄에서 탈레반 및 알카에다를 지지하는 전투에 참여해왔고, 일부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 지역에서 부족 주의적 환경에 흡수되고 있다. 물론 중앙아시아 정권에서 IMU라는 딱지는 국내의 반정부 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간편한 구실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대단히 단순화된 계층구조를 지칭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IMU는 2001년 이후로 중앙아시아의 정권에는 제한적인 전략적 위협으로만 여겨져 왔다. 

2014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향후 전망
2014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이는 정치 및 안보적인 상황 모두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 사이에 새로운 역학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군과 다국적군의 철수는 아프가니스탄의 정치 및 안보 영역에서 탈레반의 재출현을 초래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탈레반 세력이 2014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없는 현재의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과 공존하는 현상이 예상되지만, 미군의 철수로 초래된 공백을 매우기 위한 정치 및 안보와 관련된 분쟁도 예상된다. 탈레반, 카르자이 진영 및 미국 간 삼자 협상은 아프가니스탄의 미래 정치 및 안보지형 결정의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행보와 현저하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탈레반이 재출현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오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IMU는 중앙아시아 내에서 별다른 위협을 가하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작전과 공격을 계속해 온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실제로 북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들의 활동 증가에 대한 동향보고들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에 따르면  쿤두즈와 탈로칸 같은 주요 북부도시들에서 민병대의 희생이 증가하고 있으며 국경지대인 파리압, 발크 및 바다흐샨 지역에서 특히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이 특히 더 우려하고 있는데, 이들 국가는 이미 상호 간에 국가 내부 문제 및 양국이 모두 관련되는 분쟁양상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기반으로 하는 이슬람 무장세력의 대대적인 중앙아시아 공격이 임박했다는 조짐은 여러 가지 이유로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첫째로는 군사활동의 절정기인 1999~2001년 시기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권력의 정점에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탈레반이 그러한 독점적인 입지를 되살릴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북부 아프가니스탄은 과거 아프가니스탄 영토 대부분을 통치했던 집단인 탈레반에 함락된 적이 없던 지역이었고, 북부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과 중앙아시아 사이에 완충지대로 계속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러시아가 이 지역을 정치 및 재정적인 측면에서 지원할 가능성도 높다. 셋째로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소련 붕괴 이후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국가 자체적으로 무장봉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치 및 안보적인 제도를 확립해왔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이란, 터키, 중국 및 서방을 포함한 많은 국가가 아프가니스탄 자체로는 군벌세력의 형성 및 활동, 중앙아시아로의 마약 유입과 같은 사안들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여,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탈레반은 초국가적으로 연계되는 상황을 회피하고 있고, 향후 자신들이 다시 권력을 가지게 되는 미래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집단들이 형성되지 않도록 인접 국가들에서 탈레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는 중앙아시아 자체의 내부적인 문제점들이 중앙아시아의 불안을 초래하거나 향후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에 의해 이러한 상황의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경우에는 장기간 통치해온 지도자들의 뒤를 누가 이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들이 명확히 해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권력투쟁의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타지키스탄은 동부지역에서 저항세력들의 잔존이 여전히 현안으로 남아있고 이는 2013년 11월 대선 이후 대통령 선거기간이나 그 이후 긴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또한 내부적인 분열이 존재하고 있고 이는 지난 몇 년간 두 번의 혁명 및 주요 내부인종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급진 세력들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중앙아시아 국가 간의 국경,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간의 국경은 사람, 물자, 마약 또는 과격분자들의 이동이 여전히 지속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이나 상황들은 이미 오랜 기간 중앙아시아에 영향을 끼쳐왔고, 따라서 2014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날 정치적인 변화 역시 이러한 구조에서 예외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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