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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렌드

러시아의 신흥산업, 민간보안회사

러시아 배규성 - - 2013/10/25

러시아, 특히 모스크바에 처음 가는 사람들은 모든 오피스 건물마다 무장한 경비원들이 건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고 한편으론 놀라고 한편으론 위축되기도 한다. 소비에트 시절의 통제와 감시가 되살아난 것일까, 아니면 러시아의 자본주의가 그만큼 위험한 걸까? 소비에트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거나 아주 소수이고, 또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는 것은 하나, 러시아의 자본주의가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다.

러시아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몇 가지가 있다. 가장 큰 땅덩어리, 가장 많은 지하자원, 공산주의, 그리고 마피아가 있다. 러시아에서 기업활동을 하려면 그것이 조직범죄집단이든 관료든 경찰이든 세무경찰이든 폭력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사실이다. 자본주의 도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의 러시아는 “자연상태(state of nature)”와 유사했다. 왜냐하면 국가가 통치질서와 안보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기업이 취약한 구조의 환경 속에서 활동했고, 국가의 법이나 규칙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상호작용을 통해 창조된 구조에 더 영향을 받았다. 이런 환경에서 경제적 기업의 폭력적 잠재력(자체적 보호능력)과 폭력관리 기구(보안 또는 경호회사)의 경제적 잠재력은 중요했다. 다른 자력구제 시스템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부상하는 시장경제 속에서 조직적 폭력은 중요한 자원이 되었고, 그것에 대한 접근은 국민경제 내에서 차별화된 결과를 가져왔다.1)

국가의 강제력 행사능력과 정보수집능력의 시장 자원화는 변화하는 경제체제와 양립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적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는 더 이상 폭력의 독점적 소유자가 될 수 없었다. 이전의 국가보안 요원이나 경찰들로 충원된 민간 보호회사와 보안회사들이 등장했다. 1993-96년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인 민간 보안산업(private security industry)은 러시아 개혁가들의 의제에는 아예 없었다. 오히려 구 소비에트 보안기구의 권력과 능력을 축소하고자 했던 단기적인 정치적 결정과 이러한 정책에 대한 국가보안기구 요원들의 대응이 부상하는 시장경제의 제도적 수요와 만난 결과 민간 보안산업이 급속하게 형성되었고, 성장했다. 시작 때부터 주요 개혁 프로그램이었던 경제의 사유화와 달리 보호(protection)와 강제(enforcement)의 사유화는 의도하지 않은 모호한 합법적 민간 보호기구의 확산이라는 발전을 이루었다.

소련의 정치지도부는 국가권력의 핵심이 되는 조직들에 대해 강력한 중앙집중적 통제를 유지해 왔다. 그런 대표적인 권력부서로는 군부, 정보기관, 경찰 등이 있다. 소비에트 말기, 국방부, 내무부(MVD), KGB, 외무성은 비공식적으로 “권력부서(실로비예 미니스체르스바, 줄여서 실로비키)”로 불렸다. 이런 권력부서의 통제는 정치권력의 핵심이 되기 때문에 당 지도부의 철저한 통제를 받았다. 1991년 8월 고르바초프를 몰아내고자 했던 쿠데타에 이들 핵심 권력부서와 그 장들이 개입했다는 사실은 권력부서의 통제 약화가 권력부서의 정치적 반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옐친은 바딤 바카친을 KGB 의장으로 지명하여 국가보안부의 개혁을 시작했다. 구체적인 개혁의 내용은 국가보안기구들의 분리와 분권화였다.2) 1993년 말까지 KGB는 5개의 독립된 조직, 즉 대외정보국(SVR), 연방통신정보국(FAPSI), 연방방첩 국(FSK), 경호총국(대통령경호실을 포함하는), 국경수비대로 분할되었다. 1995년 연방방첩 국(FSK)은 연방보안국(FSB)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러한 조직변화는 국가의 권력행사능력과 감시능력의 분절화를 가져왔다. 1995년 8월 12일 새로운 연방법에 따라 조세경찰과 연방세관도 수사와 작전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준군사적인 부대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하게 국가보안부서의 구조조정은 인력축소를 동반했다. 대중의 부정적 태도 또한 이런 직업의 위상을 저하시켰다. 게다가 국가의 예산축소와 인플레로 인한 실질임금의 감소는 보안부서의 장교들이 다른 일자리를 찾게 만들었다. 1991년 9월과 1992년 6월 사이 2만 명 이상의 KGB 장교들이 사직하거나 해고되었다.3) 1989년 내무부(MVD)로부터 83,500명의 경찰이 해고되었는데, 그중 37,000명이 장교였다.4)

1998년 7월 1일 현재 러시아 전체 민간보안부문 현황은 다음과 같다. 라이센스를 가진 전체 민간보안 종사자는 총 156,169명이고, 이 중 35,351명(22.6%)이 경찰출신, 12,414명(7.9%)이 KGB-FSB 출신, 1,223명(0.8%)이 기타 보안기구 및 법집행기구 출신이다.5)

정리하면 민간 보안산업이 국가보안기구 및 법집행기구로부터 약 5만 명 이상을 흡수했고, 이 숫자는 라이센스를 가진 전체 고용원의 30%가 넘는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 특히 전직 KGB 요원들이 이 부문의 핵심 요직들을 장악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 보안부서의 장교들의 재취업은 전직 FSB 요원들이 만든 기업에 의해 상당 부분 이루어진다.

러시아의 민간 보안기업들
법에 따르면, 러시아의 민간 보안산업과 요원들은 다음의 세 가지 형태로 나누어진다. 첫째, 사립탐정회사(private detective agency)6) , 둘째, 민간 또는 기업 보안회사(private or company security service), 셋째, 민간 경호회사(private protection company).

민간 또는 기업 보안회사(PSS: Private or Company Security Service)
규모와 소유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은 특별 보안부서, PSS를 설치할 수 있다. 민간기업과 국영기업 및 금융기관에 의해 물리적, 경제적 보호와 정보수집 및 분석을 목적으로 많은 PSS가 생겨났다. KGB 대테러 특수부대인 알파 부대 전직 사령관 V. 자이체프는 스톨리치니 은행의 보안부서장이 되었고, GRU(소련군정보총국)에 근무했던 미하일 고르부노프는 인콤방크의 보안부서장, KGB 전 부국장인 필립 보브코프는 모스트금융그룹의 보안부서장이 되었다.7) 러시아 최대의 PSS는 13,000명의 요원을 거느리고, 러시아 전역에 41개의 지부를 둔 천연가스독점기업인 가즈프롬의 PSS로 전 KGB 대령 빅토르 마루센코가 장으로 있다.8)

민간 보호/경호회사(PPC: Private Protection Company)
PSS와 달리 PPC는 고객으로부터 자율적으로 계약을 기초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독립적인 시장기구(market agents)이다. 모스크바의 알렉스(Aleks), 뻬쩨르부르그의 자쉬따(Zashchita)와 같은 최초의 PPC는 1992년 이전 관련 법률이 입법되기도 전에 설립되었다. 원래 많은 PPC은 개인경호 및 특정 비즈니스 프로젝트의 비공식적 보안서비스로 시작되었다. 예를 들면 군 방첩부대 전직 대령 예프게니 코스틴이 이끄는 뻬쩨르부르그의 PPC 세베르나야 팔미라(Severnaya Pal’mira)는 원래 시 건축 자재 시장의 보안서비스를 위해 설립되었다. 이것은 PPC의 전형적인 발전패턴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특정고객과 연계되어 설립되었다가, 나중에 독립적인 기업으로 시장에 보안서비스를 제공한다. 많은 성공적인 PPC의 사례는 그들의 전문기술과 명성을 시장적 자산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특수부대 출신의 전직장교들로 구성된 긴밀한 소집단에서 보여진다. KGB 대테러 특수부대인 알파(Alpha)Ⅰ의 전직 사령관들인 오레코프와 골로바토프는 알파 부대를 떠나, 그 이름만 들어도 유래를 알 수 있는, 알파-A, 알파-B, 알파-7, 알파-트비요르드와 같은 패밀리 경호회사를 만들었다.9)

민간보안 관련법(1992)이 채택된 직후 특히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그에서 민간 보안회사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공식적 기업등록이 1993년 초 시작되었지만, 그 해 말까지 러시아 전체에 4천 개 이상의 민간 보안회사들이 존재했다. 1996년까지 그 수는 두 배로 늘어났고, 1999년 말까지 11,652개(PPC 6,775개, PSS 4,612개)가 되었다. 한편 자격을 가진 보안요원(무기를 휴대할 수 있는)의 수도 196,266명(총 고용원 850,000명)에 이르렀고, 총기도 71,400정에 이르렀다.10)

민간 보안산업의 구조적 발전경향은 주로 PPC의 성장에서 보여진다. 내무부(MVD)의 인허가총국장 이반 마야츠키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설명한다.11) 첫째, 많은 PSS가 1990년대 초 은행확산기 동안 은행에 의해 설립되었다. 따라서 은행들이 파산함에 따라 PSS도 같이 사라졌다. 둘째, 은행이나 기업이 독자적으로 PSS를 보유, 유지하는 것보다 독립적인 PPC와 계약을 맺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기업 보호의 외부화라는 중요한 경향을 지적해 준다. 초기에 기업은 자체의 보안부서를 둠으로써 보호를 내재화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나중에는 대부분이 외부화한다. 규모의 경제와 기술적 장비의 격차로 PPC가 더 효율적이다. 그러나 PSS도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민간기업이나 은행의 한 부서로서 PSS는 공적인 규칙과 사적인 민간기업 대표의 명령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권위아래 활동하게 된다. 후자의 권위가 당연히 더 강하기 때문에 두 개가 충돌할 경우, PSS는 외부적(국가적) 권위의 공식적 규칙을 우회할 수 있다. 따라서 소속된 기업에의 충성도가 강하다. 반면 독자적 PPC는 고객들에 의해 통제를 덜 받는다. 그러나 그들도 기업으로서 내부소비용이 아니라 서비스를 팔아야 하기 때문에 시장의 규칙에 의해 억제받는다. 따라서 1996년 이후 PPC의 성장과 PSS의 감소는 고객들에게 경제적 고려가 직접적인 폭력의 관리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이것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결과로서 경제적 기업과 보안관리 기업 간의 차별화가 점점 더 커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결국, 모든 건물에서 마주치는 무장한 경비원이 상징하는 러시아의 시장환경은 러시아의 자본주의가 그만큼 위험하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이런 환경이면 기업의 자체적 보호능력과 폭력관리기구(보안 또는 경호회사)의 경제적 잠재력은 더욱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1) Vadim Volkov, Violent Entrepreneurs, (Ithaca and London: Cornell Univ. Press, 2002) p. 126.
2) Vadim Bakatin, Izbavlenie ot KGB, (KGB 제거하기) (Moscow: Novosti, 1992), p. 77. 
3) Evgeniya Albats, “Raport ob otstavke” (사직 편지), Izvestiya, 2 Mar. 1994.
4) Louise Shelley, Policing Soviet Society: The Evolution of State Control, (London: Routledge, 1996) p. 56.
5) Biznes i bezopasnost’ v Rossii 2 (1999), p. 34
6) 민간수사기구, 즉 탐정사무소는 사적인 문제에 대해 주로 사적으로 요청되는 좁은 범위의 특정과업을 주로 수행하기 때문에 그 수도 많지 않고 (러시아 전체에 100개 이상) 가격도 비싸다.
7) Olga Kryshtanovskaya, “Nelegal’nye struktury v Rossii” (러시아의 불법적 기구들) Sotsiologicheskie issledovaniya 8 (1995), p. 96.
8) “Sluzhba bezopasnosti RAO ‘Gazprom’: Sostoyanie I perspektivy razvitiya” (가즈프롬 보안서비스의 현재 상황과 미래 발전), Biznes I bezopasnost’ v Rossii 2 (1997) p. 6.
9) “Vse problemy reshaiutsia mirno – s pomoshchiu ‘Alphy’” (알파의 도움을 받으면 모든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된다), 오레코프(I.V. Orekhov), 골로바토프(M.V. Golovatov)와의 인터뷰, Biznes i bezopasnost’ v Rossii 9-10 (1998), pp. 28-29.
10) Mir i bezopasnost’ 2 (1997), 3 (2000); Biznes I bezopasnost’ v Rossii 2 (1999).
11) Ivan Mayatskii, “Tak o chem zhe my plakali v proshlom godu: Pokhlebka pusta ili zhemchug melk?” (작년에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슬퍼했지? 입질이 있었는데 물고기를 못 잡았는가, 아니면 진주가 작았는가?) Mir i bezopasnost’ 1 (1999) p. 2.

 

배규성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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