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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서사하라 문제와 상징 기구에 불과한 아랍-마그레브 연합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임기대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강의전담교수 2013/11/06

오랜 기간 알제리와 모로코를 왕래하다보니 마그레브지역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이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르게 보인 부분이 있다. 다름 아닌 한국에서 주로 관심 갖는 <아랍-마그레브 연합>(Arab Maghreb Union, AMU)에 관한 것이다. AMU는 잘 알다시피 경제적인 관점에서 마그레브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두 국가를 왕래하다 보면 AMU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AMU는 리비아의 카다피가 발의하고 마그레브지역 5개국인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모리타니아가 합의하여 창립된 지역경제통합기구이지만 교역 규모는 크지 않다. 대부분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의 서방 국가들에 수출입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AMU과 같이 마그레브 지역경제 통합을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큰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알제리와 모로코의 관계 악화이다. 양국간 관계 악화가 새로운 사실은 아니지만 늘 서로에 대한 감정이 이런 식으로 폭발한다는 것은 향후 AMU에도 장애물이 될 것이다. 이 지역의 해묵은 골칫거리인 ‘서사하라’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AMU는 5개국으로 공통의 언어 및 종교 그리고 역사를 가지고 있어 오래 전부터 상호간의 통합에 관한 필요성을 느껴왔다고 하지만 국가 간 통치 이념과 정치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지역 간의 불화로 인해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중심에 알제리와 모로코가 있는데, 이 두 국가가 중요한 이유는 일단 경제 규모 및 인구 등에 있어 마그레브의 타 국가보다 훨씬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양국은 카사블랑카 항공 노선을 제외하고 수년 전부터 육로의 국경조차 폐쇄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11월 1일 모로코 주재 알제리 영사관(카사블랑카)에서 서사하라 문제의 불개입을 주장하는 모로코인들에 의해 알제리 국기가 수난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맞서 알제리 독립 전쟁을 선포한 날이었다. 8년 동안의 전투를 통해 대프랑스 전쟁을 선포한 이날은 알제리인들의 자부심이다. 온 국민이 경건함 속에서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었지만 모로코인들에 의한 알제리 국기 수난 사건은 양국 간의 관계에 단번에 찬물을 끼얹었고 급기야 국민들 간의 앙금은 쉽게 해소될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한반도의 휴전선에 248km를 가로지르는 장벽처럼 서사하라에는 모래 방벽이 2400km에 걸쳐 있다. 서사하라는 아프리카 대륙 북서부 연안에 위치한 면적 26,6만km2(한반도의 1.3배)에 인구 약 50만 명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서 흔히 <아프리카의 마지막 식민지>라 불리기도 한다. 이 지역이 분쟁지역이 된 데에는 나름의 역사적 과정이 있다. 오랜 기간 모로코 왕국의 지배를 받아오면서 왕국의 영향력에 있지 않으면서 자율적인 유목민으로 살던 서사하라 주민. 중앙 정부와 큰 충돌 없이 살아왔던 모로코와 서사하라는 이렇듯 같은 지붕에 살고는 있었지만 아주 느슨한 종속관계였다. 그런데 서구 열강들이 지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19세기 유럽 열강의 침략으로 북부는 프랑스령 모로코, 남부는 스페인령 사하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이후 유럽에 의한 식민통치 과정에서 서사하라 문제는 알제리와 모로코의 해묵은 감정싸움으로 치닫는데, 이곳이 어떻게 국제 문제, 그리고 모로코와 알제리의 싸움이 되었는지를 아래와 같이 요약해볼 수 있다.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토 분쟁과 관련 알제리의 입장은 반식민주의적 입장을 취했기에 모로코의 행동은 소(小)제국주의 행태로 보여졌다. 알제리는 독립운동과정에서 축적한 자신들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주변국을 도왔는데, 그 과정에서 서사하라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게 된다. 70년대 비동맹운동의 기수였던 알제리의 입장이 얼마나 강경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서사하라 분쟁, 그로 인한 알제리와 모로코의 국경 폐쇄 문제가 왜 최근 다시 불거지는 것일까? 가뜩이나 중병에 시달리고 있는 알제리의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어느 때보다 강력한 담화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8일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서사하라주민에 대한 인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모로코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그들의 자치권과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FP, El Watan, TSA 10월 28일). 이날의 알제리 대통령 발언 수위는 직접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6세를 겨냥한 발언으로 즉각 모로코 정부의 반발을 샀다. 모로코 주재 알제리 대사가 모로코 외무부에 소환되는 상황이 10월 30일 이루어졌으며, 이에 대해 알제리 정부 또한 자국 주재 모로코대사를 소환하는 맞대응을 하였다. 11월 1일에는 카사블랑카 주재 알제리 영사관 담을 넘어 알제리 국기를 찢는 장면이 알제리 전역에 방영되면서 독립기념일의 기쁨을 만끽하는 알제리 국민을 경악케 했다.

 

알제리 언론조차도 이번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발언에 우려를 표했지만 모로코 측의 대응이 더 심했다는 현지인들의 평가가 있다. 그것도 알제리인들이 가장 자부심 갖는 11월 1일에 영사관 담을 올라가 국기를 찢은 것은 도를 넘어선 행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어쨌든 사건 발생 후 양국 간의 긴장 국면은 현재 어느 정도 완화되는 상태이며, 11월 3일 알제리 주재 모로코 대사가 직접 사과를 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APS 11월 3일).

 

하지만 양국 간의 이런 분쟁은 향후 AMU와 관련 늘 새로운 문제를 또 양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결국 극단의 상황은 임시 봉합되었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갑작스런 대모로코 선언은 2014년 대선과 관련하여 자신의 건강 이상설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희석시키고 4선에 대한 의지를 내보이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의 출마가 기정사실화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최근 들어서의 이상 기류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한때 연정 파트너였던 민족민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Démocratique, RND)이 공식적으로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El Watan 11월 3일). 1997년 창당하여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RND가 2012년부터 연정을 파기한 상태였기에 예상외의 지지 선언에 알제리 정가는 당혹해하고 있다. RND는 집권 여당인 민족해방전선(FLN)과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슬로건에 일치하고 있다. 현재 여러 소수 후보들(공식적으로 4명인 Benbitour, Djilali, Khadra, Nekkaz. Algérie-Focus 11월 3일)이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고는 있지만, 대통령 4선 연임과 관련 국제적인 신뢰와 국민들의 지지, 정당들의 이합집산을 이끌어내려는 행태라는 시각에 이견이 없어 보인다.

 

둘째, 모로코에서 양국 간의 문제는 늘 재결합하기 힘든 수준이며, 심지어 알제리는 ‘모로코 외교의 적’이라는 표현까지 일삼고 한다. 모로코 언론은 늘 그 중심에 서사하라 문제를 모로코 문제로 돌리려는 알제리 정부를 비판해왔다 (Tel Quel 7월 1일). 알제리 정부는 자국의 정치 불안을 대외적인 문제로 돌리려 늘 애써왔다는 시각인데, 특히 모로코, 더 정확히는 모로코 국왕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으로 모로코 국민 전체를 폄하한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미국무부 장관 존 케리가 11월 6, 7일 알제리를 공식 방문한다. 그의 방문에 맞춰 알제리는 서사하라 인권문제를 UN 차원에서 다루려 하고 있고,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면서 알제리가 마그레브에서 인권을 어느 국가보다 중시한다는 인상을 주려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모로코를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시도라고 모로코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Yabiladies 10월 30일).

 

셋째, 알제리 언론은 모로코가 AMU를 위시한 대마그레브의 평화와 안정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소(小)식민주의에 사로잡혀 오로지 대(大)모로코 건설에만 혈안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El Watan 11월 5일). 이번 사건도 국왕의 의도된 계획이며 국왕은 아예 AMU 건설에는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1989년 AMU가 창설된 이후 37개의 조약이 체결되었지만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모리타니아가 각각 29, 28, 27, 25개를 비준한 반면 모로코는 8개만을 비준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알제리, 모로코 양국 언론이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선정적으로 기사를 다룬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알제리 국영매체 APS(Algérie Presse Service) 기자인 Idir Mokrani는 필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양국 간 민감한 사안, 즉 서사하라 문제와 테러 등의 문제 등이 특히 선정적으로 다뤄지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양국 간에는 오랜 기간 쌓인 감정이 있어 별 사건이 아닌 것도 언론들이 부풀려 놓는다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또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날 확률이 많은 이번 사건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AMU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현재 70여개 국가들이 서사하라를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있지만 프랑스, 미국, 스페인 등의 서방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또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모로코와 알제리는 매년 유엔 총회에서 상반된 내용의 서사하라 결의안을 제출하며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알제리 국기 방화 사건처럼 작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양국 간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이며, AMU라는 연합체는 마그레브지역에서 원만하게 진행되기 힘들 것이란 예상이다. 게다가 현재도 알제리는 모로코 정부의 구체적 사과가 없음에 불편해 하고, 자국의 국기 수난 사건을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정 31조> 위반이라는 사실을 들어 UN에 제소하려 한다 (L'Expression, El Watan 11월 6일). 이렇듯 잠시 수그러든 듯이 보이지만 누그러들지 않는 국민들의 감정, 외교 문제로 까지 확대되는 양국 간의 관계는 AMU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왜 AMU가 실질적인 연합체가 아닌 상징적인 기구에 불과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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