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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에티오피아의 가다(Gadaa) 체계, 그 미래는?

에티오피아 설병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2013/12/23

다 종족 사회(multi-ethnic society)인 에티오피아에는 80여 개의 종족 집단이 존재한다. 이들 중 암하라(Amhara)족과 오로모(Oromo)족은 양대 산맥을 구성하고 있다. 2007년 에티오피아 정부 센서스에 따르면, 암하라족은 총인구(73,750,932명)의 26.89%(19,870,651명), 그리고 오로모족은 34.49%(25,489,024명)를 점유한다. 오로모족의 대다수는 오로미아 주에 살고 있다. 오로모족은 오로모어(Afaan Oromo)를 사용한다. 오로모어는 아프로아시아어족(Afro-Asiatic phylum) 중 동부쿠시어의 하위 어족(Eastern Cushitic linguistic sub-phylum)에 속한다. 오로모족의 주요 종교는 기독교(48.2%)와 이슬람교(47.5%)이다. 오로모족의 일부(3.3%)는 여전히 전통 종교(와케파나(Waaqeffannaa): 천신 신앙)를 신봉한다.


오로모 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제도는 가다 체계이다. 이 체계는 오로모족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문화적․종교적 삶을 모두 포괄하는 복잡한 조직이다. 그래서 아사파 잘라타(Asafa Jalata)는 가다 체계를 “오로모 문화와 문명의 기둥” 혹은 “오로모 문명의 총체”라고 표현한다. 아스마롬 레게세(Asmarom Legesse)의 주장에 의하면 가다 체계는 아프리카 전통 사회에서 가장 정교한 사회․문화 조직이다.

 

가다 체계의 기원이나 출현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이 체계는 16세기 초반에 이미 완전한 형태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세기 동안 오로모족은 가다 행정부 하에 있었다. 가다 정부는 세 가지 수준의 정부 즉, 국가 정부, 주 정부, 지역 정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국가 정부를 이끈 집단은 루바 협의회(luba council)였다. 이 협의회는 오로모족의 주요 반족(moiety)과 씨족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었다. 이 협의회는 일반법(general law)의 제정과 집행, 전쟁과 평화 문제 취급, 국가의 방어 관장, 오로모족 씨족 내의 갈등 관리 및 비(非)오로모족 처리 등과 같은 중요한 사안들에 책임이 있었다.

 

가다 체계는 세 가지 주요 원리를 가지고 있다. 첫째, 가다 체계는 8년마다 주기적인 계승을 통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가진다. 둘째, 이 체계는 권력 분배, 균형 잡힌 대립 및 권력 공유의 원리를 가진다. 즉, 이 체계 내의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는 권력을 나누어 가지고, 다섯 개 집단(miseensas) 간에는 균형 잡힌 대립이 존재하며, 권력이 전제 군주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위 행정 기관과 하위 행정 기관 간에는 권력이 공유된다. 셋째, 이 체계는 모든 씨족․종족(lineage)․지역․동맹의 균형 잡힌 대표성, 지도자의 책임, 화해를 통한 분쟁 해결, 기본권과 자유에 대한 존중의 원리를 포함한다.

 

가다 체계는 연배(age-set, hirya) 집단과 세대(generation-set, luba) 집단에 따라 조직된다. 전자는 시간상 나이에 근거하며, 후자는 계보학적 세대에 근거한다. 이들 두 가지 개념, 즉 연배 집단과 세대 집단은 가다 체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대개는 다섯 개의 연배 집단이 하나의 세대 집단을 구성한다. 또한 가다 체계에는 선출직 공직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아바 가다(Abba Gada: 가다의 아버지 즉, 가다의 우두머리), 아바 둘라(Abba Dula: 전쟁의 아버지), 아바 세라(Abba Seraa: 법과 정의의 아버지) 및 몇몇 다른 공직자를 포함한다.

 

새로 태어난 모든 남자애는 출생과 더불어 가다 집단에 들어간다. 그들은 동년배의 다른 남자애들과 함께 동일한 집단에 소속된다. 이후 그들은 40년 동안 8년마다 새로운 연배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입회 단계(통과의례)를 거친다. 소년들은 사춘기부터 ‘신참 전사’, ‘고참 전사’, ‘정치 및 의례 지도자’, ‘의례적 권위를 가진 반(半)은퇴자’, ‘의례적으로 특별한 신성성을 가진 자’의 지위를 차례로 가지게 된다. 소년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40년 동안 세대 집단에 들어가게 된다.

 

레게세에 의하면 가다는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가다는 하나의 계급(class)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정치․의례적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동안 등급(grade)의 의미를 지닌다. 둘째, 선출된 공직자들은 이전의 공직자들로부터 권력을 인계 받아서 8년간 보유한다. 셋째, 가다는 오로모 사회의 제도이다.

 

전통 사회에서 가다 체계는 복합적 기능―정치적․사법적․사회적․경제적․문화적․종교적―을 수행했다. 이들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 기능이다. 레게세는 가다 체계에 대해 언급하길, “이 문화적 전통이 놀라운 것은 오로모족이 전쟁 추장과 전제 군주의 수중에 권력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은 견제와 균형 체계를 창출함으로써 이러한 목적을 달성한다. 이러한 체계는 우리가 서구 민주주의에서 발견하는 체계만큼이나 복잡하다.”

 

16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 지역에서는 여러 민족이 경제적 자원을 둘러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 시기 동안 오로모족은 공격전과 방어전을 위해, 가다 제도 하에서 효율적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는 서구의 근대식 무기가 유입되지 않았으므로, 오로모족과 암하라족-티그라이족은 대체로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서구 식민 권력이 암하라족-티그라이족의 편에 서게 되면서, 힘의 균형은 깨지기 시작했다. 19세기 초반에 도입된 군주제와 더불어, 이러한 균형 붕괴는 가다 체계의 존속을 점차 위협하게 되었다.

게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암하라족과 티그라이족이 오로모족을 지배하게 됨에 따라, 오로모족은 점차 사회․문화적 독자성을 상실하고, 2등 시민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살레 셀라시에(Sahle Sellassie) 왕, 메넬리크 2세(Menelik Ⅱ) 황제와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lassie) 황제는 오로모족을 약탈하고, 오로모어를 비롯한 쿠시 문화를 말살했다. 오로모족의 독자적 문화는 전멸하다시피하고, 지역 리더십은 파괴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다렐 베이츠(Darrel Bates)는, “오로모족은 식민화되고, 짐승처럼 취급 받고, 비인간화되고, 착취당하고, 경멸 받고, 속임을 당했다.”고 표현한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에티오피아에서 정복자와 피정복자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했다. 암하라-티그라이 문화가 오로모 사회에 강요됨에 따라, 제국주의적 사회질서 내에는 두 개의 적대적인 사회가 창출되었다. 암하라-티그라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신의 선민(選民)으로 간주된 반면, 오로모 사회의 구성원들은 인간 이하의 존재로 간주되었다. 오로모 문화와 언어를 억압하는 정책이 더욱 선명해진 것은 하일레 셀라시 황제 재임 기간 동안이었다. 새로운 정책은 에티오피아 정교 및 암하라 문화와 언어 확산, 오로모의 암하라화(Amharanization) 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억압 정책은 오로모 사회의 내부 분화를 초래했다. 교육을 받은 소수의 오로모족은 지배 체제에서 성공하기 위해, 암하라어를 배우고, 암하라족 여자나 남자와 결혼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암하라식으로 바꾸고, 자신들이 마치 암하라족인 것처럼 행동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정권들도 오로모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오로모족이 민주주의적 권리를 획득한다면, 그들이 오로미아의 독립을 요구할 수도 있고, 이는 생존 가능한 정치적 실체로서의 에티오피아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오로모족과 암하라족-티그라이족 간의 역학 관계뿐만 아니라 근대화 과정 역시 가다 체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에티오피아의 근대성(modernity)은 암하라-티그라이 문화와 언어의 맥락에서 주입되었다. 또한 제국주의적 국가 관료주의 체제는 오로모족을 비롯한 주변부 민족들의 사회 조직 전반에 침투했다. 외래 종교와 근대 문명의 유입 및 확산 역시 가다 체계의 쇠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오로모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가다 체계를 자신들의 정체성, 가치, 규범 등을 표현하는 전통이자 문화적 자산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그들이 가다 체계가 존속되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은 실현 가능성이 그다지 없어 보인다. 이것은 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수 세기에 걸친 암하라족-티그라이족의 지배로 인해, 오로모족은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이나 독자성을 거의 상실하다시피 해 왔다. 둘째, 근대화라는 거대한 물결은 전통에 토대를 둔 가다 체계의 설자리를 더욱 좁게 만들고 있다. 셋째, 1960년대부터 민족주의자들이 오로모 문화의 재정립과 부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최근의 에티오피아 사회․정치 지형을 감안할 때 이들의 노력이 상당한 성과를 내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요컨대 오로모 사회의 내부 분화 및 외부의 힘으로 인해, 가다 체계는 지속적으로 쇠퇴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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